사진가이자 행위예술가인 아조가 창전동 쌈지 스페이스에서 7월 3일까지 전시회를 연다. 아조의 사진전은 일반 작가의 사진전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작품성향만큼은 확실히 구분된다. 타인을 찍은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모델을 한 것. 그녀는 앞으로 사진가 활동을 접고 퍼포먼스예술가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 힘든 한 사람이 전시장 내 까페에서 창밖을 주시하고 있다. 사진가 아조(본명 김민정 28)다. 스포츠형의 헤어 스타일 때문에 얼핏 보면 남자 같다. 머리카락이 짧은 뒤통수에 영문 이니셜까지 표기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뒷통수에 영문 이니셜을 넣은 것은 예술적 영감 때문이란다. 영화 ‘주홍글씨’를 보면 한 여성이 불륜을 저지른 댓가로 몸에 붉은 글씨를 새기게 되는데 그 영화 내용을 인용했다는 것.
“영어 이니셜을 표기한 것은 특별히 다른 뜻은 없어요. 다만 영화 ‘주홍글씨’를 보면서 한 여성에게 부과하는 도덕적 처벌이 잔인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저도 한번쯤 ‘주홍글씨’를 경험하면서 주홍글씨를 받았을 때의 느낌을 대중과 함께 공감하고 싶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술적 체험인 셈이죠.”
그녀의 이름은 ‘아조’. 특이한 이름이다. 이름의 속뜻을 물어보니 가끔씩 어린이들이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밀면서 내는 소리인데 단어가 재미있어 지었단다. 이름이 예뻐서 이메일 아이디로도 만들었지만 애칭을 짓고 난 뒤 몇달간은 놀림도 많이 받았다. 동료들이 그녀를 만날 때마다 “아조~ 아조~” 하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늘 그녀에게 고정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그런 놀림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애칭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는 것. ‘아조’라는 이름만큼이나 그녀의 작품은 특이하다. 이번에 그녀가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은 총 5점 정도. 자신을 모델로 한 그녀의 작품은 총체적으로 ‘여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하는 것은 영상매체속의 여성과 본연의 여성과는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규명하는 일. 한마디로 여성을 제대로 볼 줄 아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 저는 TV속의 여성과 일반 여성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작품 속의 저는 남성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 제 성격은 여성스럽거든요. 물론 어떤 경우라도 예외는 있겠지만 매체속의 여성과 일반 여성의 이미지가 다르다는 것을 사진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남자분들도 매체 속의 여자연예인들에게 속지 마세요. 큰코 다친답니다.(웃음)”
그녀가 자신을 모델로 전시회를 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우선 그녀의 집안에서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전시회를 여는것은 당연히 축하해줄 일이지만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반누드를 찍는 것이 부모된 입장에서 편치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는 곧 수긍했다. 머리카락을 밀고 옷을 벗는 일 모두 예술활동의 일환임을 이해했던 것이다.

“ 아이템을 내고 스튜디오 빌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후배 앞에서 옷을 벗으려고 하니까 쑥스럽긴 하더라구요. 다행히 후배가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무사히 촬영을 마쳤지만 촬영 당시는 많이 흥분되고 기다려졌습니다. 사진작가활동만 하던 저에게 좋은 경험이었구요”
그녀의 작품엔 선정성 대신 엽기적인 내용이 많다. 엉덩이 부위에 꽃을 심는가 하면 하체와 손이 없는 모델이 공중에 뜬채 강아지의 목을 움켜쥔 장면은 보는이로 하여금 섬뜩함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작품을 통해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작가의 숨은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포장되지 않은 인간 본연의 모습 , 가식을 털어냈을 때 비로소 미적 혜안에 열린다는 것을 그녀는 행위예술을 통해 호소한 것이다.
엄마가 사준 카메라로 사진가의 꿈 키워
여고시절 그녀의 꿈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서클활동을 통해 ‘신문반’에서 학생기자 활동을 했기 때문에 대학도 신문방송학과를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가 사온 카메라의 매력에 빠진 이후 급작스레 진로를 바꿨다. 차갑고 표정도 없는 카메라. 만지고 조작할수록 느낌이 손끝에서 살아났다. 카메라와 함께 하는 시간은 짧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3년 동안 사진을 공부한 후 상명여대 사진과에 입학했다.
입학한 이후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던 총 6년간의 사진과의 동거. 사진학과를 다니며 사진예술은 그에게 변함없는 친구와 같았다. 특히 공격적인데다, 직접적이고 사실을 왜곡하지않는 사진의 매커니즘이 좋았다.
그러나 최근 그녀는 사진 찍는일을 접고 있다. 사진보다는 대중들에게 폭넓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행위예술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진을 그만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녀는 무엇보다 진정한 의미의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 지금껏 아홉 번 정도 사진전시회를 한 것 같아요. 그런데 희한한 것은 전시장에서 사진을 전시할 때보다 길거리에서 자신을 알리는 일이 더 재미있어요. 신명도 나구요. 그래서 나름대로 제 미래의 직업관을 정했어요. 앞으로는 사진가 활동보다는 퍼포먼스예술가로 거듭나기로요. 대학원 졸업하면 곧바로 행위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다시 할 생각입니다.”
사진에 미치고 행위예술에 심취했던 아조. 그러나 그녀도 여자로서 아픈 추억이 있다. 사랑하던 애인과 원치않는 이별을 했기 때문이다. 성품이 여린 그녀에게 ‘이별’은 충격이었다. 그로 인해 3년 동안 우울증에 빠져 집밖을 나서지 않기도 했었다. 그럴때마다 그녀에게 힘이 되준 것은 ‘행위예술’이었다. 무언가 창작하고 작품을 만들어갈때마다 힘이 솟고 기운이 났던 것이다.
“ 가끔 주위분들이 제가 남자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니니까 동성애에 관심이 있냐는 질문을 하실 때가 있는데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저 아니예요.(웃음). 그런 기질도 없구요. 애인사귀고 또 이별을 겪으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인연은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것과 또 남녀간 인연은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지요. 지금은 남자친구가 없지만 외롭지 않아요. 언젠간 상대자가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고 지금은 해야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예요.”
그녀에게 어떤 남자가 좋으냐니까 그녀는 첫째로 돈이 엄청 많아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자신이 예술을 하기 때문에 그런 직업을 이해해주고 든든하게 밀어줄 수 있는 남자가 멋진 배필감이 아니겠냐고.
아조의 꿈은 포토그래퍼가 아닌 예술을 아우르는 아티스트가 되는 일이다. 현재는 연봉 4백만원의 가난한 예술가지만 앞으로 글도 쓰고 작품도 팔고 좋은 기획전도 열 생각이라는 행위예술가 아조. 그녀의 포부는 꿈이 아닌 현실로 향해가고 있다.
글/ 연주흠 기자 사진/ 전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