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 화백이 「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이라는 독특한 책을 펴냈다. 애니메이션 바리공주 제작을 위한 34일간의 실크로드 답사는 이 책 한 권에 오롯이 실려있다. 그곳에서 만났던 순수한 사람들, 광대한 자연, 그리고 사랑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실크로드에 대한 환상과 매력을 박화백의 그림에서 엿볼 수 있다.

박재동(51) 화백을 처음 만난 해는 1997년도였다. 잘나가던 ‘한겨레그림판’ 시사 만화가를 그만두고 ‘오돌또기’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대학생 기자의 신분으로 인터뷰를 한 ㅁ것이다. 나긋나긋한 이야기와 표정 좋은 웃음, 그리고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박화백이 그려준 기자의 캐리커처는 두고두고 친구들에게 자랑거리였다.
6년이 지난 후 다시 박화백을 만났다. 그동안 화백은 몇 권의 책을 펴냈고,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2년전 한국종합예술학교 전임교수가 됐고, 지난 대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홍보 CF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34일간의 실크로드 답사기를 스케치 그림과 글로 정리한 「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 1, 2」(한겨레신문사)을 펴냈다. 책 발간을 핑계로 그동안의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6년 전에 비해 머리카락은 많이 하얗게 됐지만, 그의 넉넉함만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 책에 실크로드에 관한 사진 대신 스케치 그림만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이번 여행에서 내가 그렸던 풍경이 5백여장이나 된다. 그리고 촬영한 사진 정리하는데만 꼬박 한달이 걸렸을 정도다. 그림만 들어간 여행기라, 다른 여행책자를 읽을 때와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내 그림을 통해서 실크로드를 상상하고 음미할 수 있으면 좋겠다.
출판사에서 책 반응은 어떻다고 하는가?
재판을 찍는다니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 그래도 이번 책에서 사용하지 못한 그림과 사진들이 많이 아쉽다. 나중에 이 자료들만 모아서 실크로드 정보책자를 만들고 싶다.
글이 중심인 책은 그리 많이 내지 않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만화 내 사랑」(1994)이나 「한국만화의 선구자들」(1995) 같은 책이 글이 중심이었다. 그 외의 책은 만화가 중심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대표적인 책이 「목긴 사나이」라다. 답사를 다니면서 메모를 많이 해놨기 때문에, 책을 펴내는데 그리 어려운 점은 없었다. 하지만, 책을 펴내는 것은 새로운 작업을 하는 것과 같았다. 몇 개월 예상했는데, 이것저것 자료를 보강하다 보니까 1년이나 걸렸다.
전문가와 함께한 답사라 좋은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전문가와 동행했기 때문에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깊숙한 곳까지 갈 수 있었다. 바양블라크 호수같은 곳은 일반인이 가기에는 너무 힘들다. 전문가와 같이 다니니까 방문한 곳의 역사적 배경과 특징들 또한 이해하기 쉬웠다. 일반 여행객처럼 실크로드를 가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전문가와 여행을 하는 것도 장점이 많다.
일반인들과는 다른 실크로드 코스를 다녀왔는데.
대부분의 실크로드 여행은 중국 서안에서 시작해 돈황, 트루판을 거쳐 우루무치를 다녀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트루판에서 선산산맥을 거쳐 초원지대를 여행했다. 그리고 일반인에게 개방이 안됐던 쿵나스 임장을 거쳐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할 수 있었다. 그 후에 파미르 공원과 파키스탄의 간다라 지방에서 인도 델리까지 갔으니까 실크로드의 대부분 지역을 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손오공과 현장 법사가 갔던 긴 코스다. 답사를 간다니까 사람들이 너무나 부러워했다. 한 소설가는 ‘전생에 어떤 복을 지었길래 그렇게 다녀올 수 있었냐’고 부러워하기도 했을 정도다.

답사 중 음식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나?
중국 음식은 전부 센불에다 튀기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기름기가 많고, 식탁을 빙빙 돌려서 먹고. 특이한 것은 생선은 잉어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어디를 가던지 잉어는 꼭 나온 것 같다. 예전에 먹어보지 않았던 음식인데도, 탈이 없었다. 아쉬운 것은 싱싱한 생선을 먹지 못한 것이다. 서역 쪽으로 들어가면서 바다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잉어를 빼고는 생선은 전혀 구경을 못했다.
답사 중에 가장 불편했던 점은 무엇이었나?
특별히 불편한 것은 없었는데, 내 경우에는 화장실 사용이 어려웠다. 중국은 물이 귀해서 화장실 청소를 잘 안한다. 중국인들은 평생 세 번 목욕을 한다고 할 정도니까. 먼지가 너무 많아서 목욕을 해도 별 효과도 없다. 비위가 약해서 공중화장실 사용을 하는데 무척 어려웠다. 특히 남녀 구분이 없는 화장실을 사용할 때는 남자 팀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답사원 모두 개성이 강했는데,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은?
실크로드를 6번이나 다녀왔던 소설가 김영종 선생이다. 답사 중에 ‘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는데, 답사팀에게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해준 사람이다. 인간성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사계절 출판사 사장을 하다가 지금은 소설을 쓰고 여행을 다니는데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답사를 계기로 친해졌다.
실크로드는 일반 사람이 여행하기 힘든 곳이다. 여러 가지를 많이 느꼈을 것 같다.
실크로드를 여행하면서 손오공을 이해하게 됐다.(웃음) 사막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모래 언덕은 바람 때문에 매시간 모양이 변하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옛날에는 길의 이정표가 죽은 사람의 뼈였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옛날 사람들이 실크로드를 여행하면서 만났을 많은 어려움이 이해가 됐다. 손오공이 만났던 수많은 요괴들은 자연이 만들어낸 난관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크로드를 횡단했던 현장 같은 사람들은 모두 존경받아야 한다.
여행 중에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바양블라크 호수에서 만난 눈먼 소년과, 훈자에서 만난 소녀가 그립다. 눈먼 소년이 불러줬던 노래는 천상의 음성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자신에게도 필요한 헤어밴드를 서슴없이 줬던 소녀 샤위나의 모습에서 난 순수함이라는 것의 실체를 느꼈다.

실크로드 답사를 끝낸 후 개인적으로 변한 점이 있다면.
실크로드를 다녀온 후에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됐다. 실크로드 답사가 끝난 인도의 델리에 이어서 티벳, 네팔, 몽고, 이란, 이라크 등을 쭈욱 따라가보고 싶다. 실크로드 답사를 계기로 여행 중에도 그림 그리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사진을 찍을 때 나는 그림을 천천히 그릴 것이다.
실크로드 답사는 장선우 감독이 만들기로 했던 애니메이션 ‘바리공주’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리공주 제작 소식이 없는데.
현재 오돌또기 팀은 ‘바리공주’ 팀과 헤어진 상태다. 장선우 감독의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애니메이션 투자가 중단됐다. 그 후에 유니코리아 픽처스사가 투자자를 다시 끌어모으고 있다는데, 오돌또기 팀은 바리공주에 합류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은 우리의 일을 하고 있는 상태다. 장선우 감독은 바리공주에서 손을 땐 상태라고 알고 있다. 장선우 감독과 연락한지 오래되서 요즘 뭐하는지는 잘 모른다.
오돌또기는 4년 후에야 완성될 듯
박재동 화백은 오돌또기가 언제 만들어지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만큼 사람들이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하는 오돌또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상태는 그리 좋지 않다. 얼마 전 애니메이션 ‘오세암’이나 ‘원더풀데이즈’ 같은 작품은 극장에서 상영한지 얼마 후에 중단됐다. 한마디로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애니메이션에 투자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상태다. 박재동 화백 역시 이런 현실을 이야기한다.
애니메이션 만든다고 했던 것이 벌써 7년째인데.
음…. 현재는 시나리오를 손보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시나리오 작가에게 맏겼는데,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가 직접 만들고 있다. 시나리오는 약 70% 정도가 진행된 상태이다. 애니메이션은 약 4년 정도 지나야 빛을 볼 것 같다.
현재 오돌또기 팀은 무엇을 하고 있나?
여러 가지 작업을 하고 있다. 영화 ‘첫사랑사수궐기대회’ 타이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몽실언니」「아홉살인생」같은 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작업을 기획 중이다. 이런 작업들을 하면서 우리의 노하우를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멤버들이 많이 고생하고 있다.
왜 작업이 자꾸 늦어지는지.
자꾸 늦춰지는 것은 탄탄한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가 오돌또기를 준비한 시간만큼 질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자위하고 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는 상태기 때문에, 우리도 먹고 살기 위해 일하면서, 오돌또기를 함께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애니메이션이 부활하는 시간을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려 보는 중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느끼는 것이 없다. 내부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컨텐츠진흥원 같은 기관도 개혁을 해서, 상업적인 마인드로만 애니메이션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대한 진흥책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이 두 분야를 정책적으로 지원할 과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정부는 좀 멀리 내다보고 문화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시사만화가를 그만둔 지 7년째다. 시사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들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만화로 발언을 계속할 예정이다. 예전에 미선이와 효순이 사건 때 만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시사만화가는 그만뒀지만, 사회적 발언을 멈추는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 캠프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부담은 없었는지.
시사만화가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그런데, 대선 후보를 도와준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를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노무현 카드만이 개혁세력에 힘을 줄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대선 후보를 돕는 일을 할 것인가?
상황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절박한 상황이고, 그 사람만이 시대의 카드라고 생각되면 또 나설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데.
내가 적극적으로 지지한 정부인데, 많이 괴롭다. 하지만 초반에 이렇게 비난을 많이 받아도,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정부가 될 것이라는 자위를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처음에 비틀거리다가 자신의 페이스를 찾을 것이라 믿고 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기행을 일으켰던 미술 교사, 현재는 대학 교수
박재동 화백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한다. 박화백이 고등학교 미술 교사를 할 때는 기행으로 유명했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교사였다. 딴지일보에는 박화백의 제자였던 한 네티즌이 고등학교 교사 박재동에 대한 추억을 적어놓은 글이 있다.
‘대학생이 된 나는 박 선생님을 잊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박 선생님의 행적을 다시 접하게 된 것은 두 살 터울인 남동생 친구를 통해서였다. 그 친구는 자기 학교에 굉장히 재미있는 미술선생님이 계시는데, 학교 연못에서 낚시를 하고, 축제 때는 나무에 성황당 장식을 하고, 운동장 축구골대 앞에는 허수아비를 세워 놓는 등의 기행을 한다는 것이었다. 뭔가 머리 속을 스치는 것이 있어 혹시 그 선생님 성함이 박재동 아니냐고 물었고 그 동생 친구는 맞다며 그걸 어떻게 아느냐며 물었다. 나는 우리 학교에 계실 적의 기행을 말해주었고, 마치 서로의 무용담을 풀어놓 듯 서로 맞장구를 쳐가며 밤늦게까지 정말 즐겁게 박재동 선생님 이야기를 나눴다.’
교사 박재동은 학생에게는 환영받았지만, 대부분의 교사와 학교 관리자들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그만큼 정해진 틀을 싫어했고, 학생들에게는 실천으로 보여줬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데, 어떤가?
재미있다.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이 기초가 없거나 열의가 없으면 힘든데 기본기가 있으니까 즐겁다. 예전에 고등학교 선생도 해봤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능력이 있는 것 같다.(웃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작품 활동에 도움을 주는가?
노련한 작가들에게 배우는 것도 있지만, 나보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배울 것은 있다. 신선한 맛이라고 할까. 그림은 어렸을 때부터 보았던 것들을 그릴 수 밖에 없는데, 젊은이들은 많은 것을 봐왔기 때문에 참조할 만한 것이 많다. 그들의 발상도 자연스럽게 내가 접하게 된다.
나이나 문화 그리고 정치적 코드가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다. 학생들에게 사회성 있는 작품만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를 자유스럽게 다루게 해야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도 나를 낯설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겨레그림판의 박재동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학생도 많다. 나이 생각은 하지 않는다.(웃음)
계속 학생들을 가르칠 예정인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다. 내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계속 할 것이다. 요즘은 이런 생각도 한다. 혼자 작업하는 것만이 좋은 것일까?라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만나는 데도 자극을 받고, 활기를 얻는다. 사람들 속에서 생활 속에서 자신의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취재 후기
박재동 화백은 술자리나 모임에서 인기가 좋다. 음주가무가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잘 그려주기 때문이다. 실크로드 답사기 사진을 봐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박화백의 주위에는 현지인들이 빼곡히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박화백은 그림을 그려주는 것은 작가 자신을 기억시키는데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그림을 받은 사람은 박화백에 대한 호감이 업(!) 될 수 밖에 없다.
박화백의 손길을 거친 만화와 그림은 생동감이 있다. 그리고 재미와 감동이 있다. 이번에 나온 책을 읽어보면 실크로드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맛과 흥이 글 속에 담겨있다. 무엇보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곳곳에 숨어있다. 박화백은 이번에 나온 책을 통해서 자연과 세계의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미덕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글 / 최영진(객원기자) 사진 / 신규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