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미스코리아 진에 뽑힌 최윤영양과 농구감독 최명룡씨(전 원주 나래)가 부녀지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친구 같은 부녀지간을 자랑하는 꺽다리 부녀와 나눈 솔직 담백한 대화.

지난 5월21일 ‘리틀엔젤스 예술회관’에서 2003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렸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스코리아 진의 발표만을 남겨놓은 그 순간, 서울 진이던 최윤영양(20)도 긴장된 순간을 맛보아야 했다.
“이런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꼭 진이 될 것만 같았어요. 물론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진이 되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한 거죠.”
스무 살 나이에 비해 상당히 당차고 야무져 보이는 최윤영양은 현재 캐나다에 있는 브리시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시원스러운 눈매에 늘씬한 몸매가 한눈에 들어오는 미모의 여대생이다.
“중학교때 언니랑 공부를 하러 캐나다에 갔어요. 특히, 심리치료에 관심이 많이 가더라구요. 아직 우리나라는 도입기지만 외국의 경우 사회적으로 심리치료사들의 역할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거든요. 평범한 대학생으로서 학교에 다니다가 작년 여름, 주위에서 미스코리아대회에 한번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솔직히 어렸을 때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씩 꿈꿔보는 거잖아요. 이젠 진로도 정했고, 젊었을 때 아니면 나가기도 힘든 대회라서 부모님께 조심스레 말씀 드렸죠.”
그녀의 책임감 있는 행동에 늘 신뢰를 아끼지 않으셨던 부모님은 선뜻 대회 출전을 허락하셨다. 이왕 하려면 확실하게, 잘하라는 충고까지 해주셨단다. 그때부터 군살을 빼기 위해 휘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시작했고, 지적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일반상식이며, 시사공부도 꾸준히 했다.
“대회에 참가한 친구들이 정말 다들 예뻤어요. 외모뿐만이 아니라 성품 또한 예뻐요. 처음엔 합숙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세상의 많은 부분을 몸소 체험할 수 있어서 앞으로 저의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될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정신대 할머니들을 방문하러 갔을 때예요. 처음엔 멋쩍어 하시다가 저의 손을 잡으시면서 나라가 힘이 없으면 안된다며, 열심히 해서 나라의 큰 일꾼이 되라고 하셨어요.”
여성의 상품화라는 비판과 함께 안티 미스코리아대회가 열리는 등 논란의 여지가 많아 공중파 방송에선 더 이상 미스코리아대회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이렇다.
“안티 미스코리아를 왜 저희와 비교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안티미스코리아에 관한 사이트를 인터넷에서 많이 봤는데, 마임이라던지, 퍼모먼스 등 다양한 행사를 하더라구요. 보는 시각이 다른 거죠. 취향에 따라 보는 신문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요? 저희는 저희대로 그분들은 그분들대로 인정하면 되는 거죠.”
이젠 미스코리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진로로 결정한 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해 학업에 전념할 계획이란다. 미스코리아가 됐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갈 계획이다. 이젠 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이 생겼기 때문에 더 힘이 난다고.
“우린 부전녀전, 이심전심이죠!”
그녀가 미스코리아가 된 후 가장 뿌듯해하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다. 그녀의 아버지는 유명 프로농구감독 출신 최명룡씨다. 평소 젠틀한 이미지로 스포츠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모았던 그가 미스코리아 진의 아빠로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항상 아기 같다고만 생각해왔는데, 대회에 나가서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죠. 한편으론 정말 대견스러웠습니다.”
그녀를 보고 아버지를 보면, 정말 닮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서글서글한 이목구비하며 큰 키까지 두 사람은 정말 닮은꼴이다. 하지만 이런 멋진 아빠의 모습을 보며 자란 그녀에게도 나름대로 아픈 기억이 있다.
“아빠가 프로 농구팀 동양의 감독으로 있던 시절, 계속되는 연패로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몸무게도 많이 빠지고 얼굴이 말이 아니었죠. 그냥 아무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저희에게는 절대로 힘든 티를 내지 않으신 거죠. 어느 날 아빠가 계신 숙소로 찾아가 오랜만에 가족끼리 한방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아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을 껴내시더군요. “아빠는 최선을 다했다, 엄마랑 너희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그러니까 너희들도 아빠마음 이해해주길 바래”라구요. 늘 자신감 있던 아빠에게 그렇게 진솔한 모습도 있구나 싶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그때를 기억하는 딸을 보며 기특해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마음을 항상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딸.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 주는 단단한 끈이 놓여 있다. 미스코리아가 된 후로 조금씩 바빠지고 있는 딸을 보면, 아버지로서 걱정하는 마음도 앞선다.
“이제 방송출연을 몇 번했는데, 혹시 실수나 하지 않을까, 많이 힘들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듭니다. 제가 항상 얘기하는 건 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은 다른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낮추고 건방지게 행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잔소리 꺼리가 더 늘었죠.(웃음)”
그녀는 그런 아버지의 말씀이 전혀 귀찮지 않다. 언제나 가족을 먼저 생각하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명령하고 간섭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늘 자식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믿어주시는 것에 늘 감사한다는 그녀는 장래에 만날 남자친구도 딱 아버지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직 남자친구가 없는데요. 저의 이상형은 진짜 아버지 같은 사람이에요. 이런 말하면 다들 웃으시더라구요. 제가 만날 사람은 우선 크리스찬이면 좋겠구요. 외모는 장동건씨나 김석훈씨 같은 스타일이라면 바랄게 없어요.(웃음)”
그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늘 아쉬웠던 그녀였기에, 요즘은 최대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가족들과 함께 찜질방이나 헬스클럽을 즐겨 찾고, 미식가인 부모님 덕분에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니며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당분간 휴학을 하면서 한국생활에 적응하고 그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미스코리아로서 어디든 달려가 봉사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체험 삶의 현장’ 녹화 때문에 과천대공원에서 갔었는데, 돌고래와 물개를 훈련시키고 먹이도 주고 정말 재미있었어요. 돌고래가 정말 영리하다는 걸 알았어요. 미스코리아 되어서 가장 좋은 점은 저에게 좀 더 여러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거예요. 돌고래, 물개 훈련을 제가 언제 해보겠어요?”
그녀는 늘 긍정적이다. 이것 또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며 아버지 자랑이 끊이질 않는다.
감독직에 물러나 스포츠 컨설팅 업무를 시작한 최감독은 요즘 여러 업체의 스포츠 컨설팅을 맡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바쁜 와중이지만 최근 큰딸까지 귀국하는 바람에 웬만하면 저녁 시간은 가족을 위해 비워두려고 노력하는 가정적인 가장이다.
“가족사이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대화예요. 대화가 없으면 생각을 말할 기회를 잃게되고 결국 서먹서먹해지는 거죠. 우리 부부는 아이들하고 항상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하는 습관을 예전부터 들였어요. 그래서 이렇게 다정한 부녀지간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딸 때문에 또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저희 윤영이가 많은 사랑을 받고, 멋진 사회인이 되기를 바랄 뿐이죠.”
멋쟁이 젠틀맨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쏙 빼 닮은 딸.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면 연인 사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다정한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글 / 김수영(자유기고가) 사진 / 황정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