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안무가 홍승엽의 어제와 오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안무가 홍승엽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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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에서 무용수로의 변신은 제 안에 ‘끼’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국내 현대무용계의 대표적인 안무가 홍승엽. 그는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잘나가는 춤꾼에서 존재 자체가 묵직한 안무가로 변신은 한국 무용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용인보다 일반인이 더 많이 찾는 무용 공연을 만드는 안무가

무용은 몸 하나로 의미와 감정을 전하는 예술이다. 무대 위에는 무용수의 땀과 춤만이 있기에 일반인들은 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용에 관심없는 사람들에게도 홍승엽(41)이라는 이름은 그리 낯설지 않다. 뛰어난 무용가이면서, 안무가로 무용의 대중화를 일으킨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대중성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의 이름과 댄스씨어터온(Dance Theatre On)이라는 무용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안무가와 무용단이다. 지난 6월 6일 ~ 7일간 LG아트센터에서 열렸던 댄스씨어터온 정기공연 ‘두개보다 많은 그림자’에는 무용인보다 일반인이 더 많이 찾아왔다. 많은 무용단 공연이 ‘집안 잔치’라는 비난을 받지만, 댄스씨어터온의 무대는 일반인이 웃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번 정기공연은 흡사 잔치집 같은 분위기였다. 무용수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박수를 쳤고, 재미있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이 마음껏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무용 공연이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열리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공연을 마친 후, 커튼콜(공연이 끝난 후 출연진들이 관객의 박수에 답하여 다시 무대로 서는 것)을 위해 무대에 단원들이 나올 때마다 환호와 뜨거운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마치 인기가수 콘서트 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은 대부분 두 번 이상 작품을 본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관객들이 스스로 공연을 즐길 줄 알게 되고, 다른 공연장과 분위기가 다르죠. 무용수보다 일반인이 더 많이 찾아오는 무용 공연이 댄스씨어터온 작품입니다.(웃음)”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무용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홍승엽과 단원들의 처절한(?) 노력 덕분이다. 공연이 있건 없건 간에 15명의 단원들은 매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연습을 한다. 물론, 월급은 받지 못한다. 연습 이외의 시간을 이용해 단원이나 안무가나 모두 스스로의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 단원들은 연습이 끝난 후 편의점이나 서빙 아르바이트, 무용 과외를 한다.

“고생이라는 생각은 안 해요. 춤을 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요. 단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는 직업 무용단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단원들과 마찬가지로 홍승엽은 작품 하나에 거의 1년을 매달린다. ‘두개보다 많은 그림자’의 안무노트는 1년 전부터 시작됐다. 매일 작업을 하면서 안무노트에는 새로운 것이 채워지고, 기존의 것이 바뀌곤 한다. 안무 노트의 내용을 전부 무대에 전부 올리면 80분 짜리 공연의 10배 이상이 될 것이다. 그만큼 무대에 올라가는 것은 추리고 추려서 가장 필요한 것만 들어간다. 그래서 홍승엽은 ‘아이디어의 귀재’라는 평가를 단호히 거부한다.

“땅에 노출된 다이아몬드가 세상에 있을까요. 귀한 것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숨어있어요. 저의 작품 속에는 단원과 저의 노력이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갈고 닦는 노력이 더 중요하죠.”

무용을 한지 2년 만에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대상 수상

홍승엽이 대중적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은 독특한 경력 때문이기도 하다. 경희대학교 섬유공학과 81학번. 그의 전공은 무용과는 전혀 상관없었지만, 감수성이 풍부했던 남학생은 무용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무용학과를 찾아갔다. 무용을 한지 2년만인 84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있는 무용경연대회인 제 14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86년 대학 졸업과 함께 경희대학교 무용학과 대학원에 진출했고, 그해 ‘대한민국무용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했다. 92년부터 3년간 유니버설발레단 단원으로 활동했고, 96년에는 ‘가장 문학적인 현대무용가’(한국문인협회 주최)에 뽑혔다. ‘13아해의 질주’ ‘말들의 눈에는 피가’ ‘백설공주’ 등의 무대가 바로 문학 텍스트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그의 ‘끼’는 무용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

무용가로 인정받던 홍승엽은 1993년 댄스씨어터온을 창단하면서 안무가로 변신한다. 춤꾼 홍승엽이 세계적인 안무가로 인정받은 것은 2000년 프랑스 리옹댄스비엔날레 초청 공연 때문이다. ‘달보는 개’와 ‘데자뷔’를 들고 간 그의 공연은 5회 연속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공연을 본 평론가들은 그에게 최고의 평가를 선사했다. 이 공연 덕분에 홍승엽은 국내·외에서 최고의 안무가로 인정을 받았다.

춤꾼에서 안무가로의 성공적인 연착륙을 한 홍승엽. 그에게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무용가는 항상 춤을 추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보다 댄스씨어터온을 발전시키고 싶을 뿐입니다. 안무가로서 후배들이 좋은 작품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댄스씨어터온에서는 초대권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자신들이 힘들고 어렵게 만든 작품이라는 사랑과 자신감 때문이다. 초대권이 없는 무용 공연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거의 정착단계다. 공연 티켓값이 많이 오르고 있다는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려봤다.

“제가 원하는 관객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경제적 부르조아가 아닌 문화적 부르조아를 원합니다. 저희 공연은 술 한잔 마시지 않으면 볼 수 있어요. 마음 먹기에 달려있죠. 하지만, 사람들이 문화적인 혜택을 많이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이 생겨야 합니다.”

홍승엽이 국내에서 공연을 계속하고 있을 때, 외국의 무용 관계자는 ‘왜 외국 공연 투어를 하지 않느냐’라는 말을 자주 한다. 홍승엽 자신도 댄스씨어터온이 해외 무용단과 비교해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외국 투어도 많이 하고 싶지만, 외부 환경이 그리 좋지 않다. 외국 공연을 가려면 스폰서도 있어야 하고, 무용단의 제반 사항을 조율해줄 수 있는 에이전시가 필요하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면 해외 공연도 자주 다닐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요즘 해외공연을 추진 중이다.

“댄스씨어터온이 만들어진지 10년 째네요. 처음에 사람들이 무용단을 만든다고 했을 때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실패해봐야 쓴맛을 안다는 말도 들었죠. 하지만, 지금은 해외 공연도 추진할 수 있을 만큼 제 괘도에 올라갔어요. 춤도 10년 정도 출 때 ‘이제야 내 춤을 추는구나’라는 느낌을 가졌는데, 무용단도 여기까지 오는데 10년이 걸렸네요. 제 작업은 10년 단위의 긴 호흡이 필요한 것 같아요.”

댄스씨어터온 단원들은 다른 무용단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교수나 스승의 밑에서 무용을 하던 관례를 깨고 이곳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다른 무용인들로부터 따가운 시선도 많이 받았지만, 각오한 일이기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10년동안 차근차근 춤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을 해왔다.

춤보다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안무가 홍승엽. 언제라도 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타나면 춤을 그만둘 수 있다는 말도 거리낌없이 말한다. 하지만, 평생 춤보다 더 재미있는 일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웃는 그의 모습에서 춤이 그의 인생이고, 홍승엽 자체라는 것을 느낀다.

핸드폰도 없고, 이메일도 모르는 컴맹 홍승엽.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것 같지만, 그의 작품은 시대를 앞서간다. 이것이 그의 매력이다.

글 / 최영진(객원기자)  사진 / 김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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