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만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은 평범해지는 것이다”
이름이 그의 소망이었다. 원익은 ‘으뜸 날개’의 뜻으로 조종사가 되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그대로 드러냈다. 하지만 좌절, 시력 저하로 그 길을 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았다. 결국 파리국제에어쇼에서 민간인으로 누구도 하지 못했던 프랑스 최신예기 ‘라팔’의 평가 비행을 하게 됐다.
그 꿈을 이룬 그는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항공 전문가! 그는 지금 그 꿈을 향해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비행기만 쳐다보고 달려온 하늘바라기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욕심이라고 한다. 하지만 도전 앞에 겸손은 죄악일 수 있다. 여기 한 젊은이의 이력서가 있다. 아직 채워가야 할 게 많은 그의 이력서엔 성찬이 이어진다. 어학연수 한번 가보지 않은 토종 영어 실력으로 TOEIC 만점을 받았다. 운이 좋아선지 4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리포터로 선발되었다.
더군다나 2001년 프랑스국제에어쇼에서 민간인 최초로 프랑스 전투기 ‘라팔’ 평가 비행을 했다는 대목에선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 바쁜 와중에 항공 전문지 '월간항공'과 시사 월간지에도 기사를 썼다. 오히려 이건희 장학재단 1기 장학생으로 뽑혔다는 사실이 어색하지 않은 그는 지금 10만 달러의 장학금을 손에 쥐고 하버드 동아시아 지역학과(RSEA)와 하버드 케네디스쿨 두 학과에 동시 합격, 이 중 케네디 스쿨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앞에 수식할 말은 뻔하다. 천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한 단어는 한우물에 총력 매진한 한 젊은이의 노력을 평가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이 청년의 이름은 이원익(28)이다. 남들은 일생에서 한 가지도 하기 힘든 일을 대학 4년 동안 이루어냈다. 자신의 꿈을 달성하기 위해 그저 열심히 노력만 했다고. 어렸을 때부터 전투기 조종사가 되겠다는 꿈은 시력저하로 좌절되었으나 국제 항공 비즈니스 무대에서 활약하겠다는 또 다른 꿈을 가슴에 새긴 후, 그 꿈을 달성하기위해 열정을 불태운 젊은이다.
“젊은이만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은 평범해지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삶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제임이 분명하다.
그의 꿈은 원대하지만 복잡하지는 않았다. 명확했고 집요했다. 그의 이름이 바로 그의 소망이었다. 원익(元翼)은 돌림자로 지어진 이름이다. 원(元)자 돌림이던 그의 이름은 공군 전투기 파일럿이었던 아버지에 의해 날개란 뜻의 익(翼)자가 더해지면서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비상'(넥서스북스 간)이란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경남 사천의 비행장에서 태어난 그는 ‘으뜸 날개(元翼)’가 되길 원했고, 그 간절한 소망만큼 비행기에 미쳐갔다.
항공 관계서가 부족한 유년 시절, 그의 눈에 띈 비행기 관련 서적은 그에게 수집되어져야만 하는 제물이 되었고, 그렇게 손에 들어온 책은 보물마냥 그의 품에서 떠나지 않았다. 영화 ‘탑건’을 57차례나 보았던 편집증적인 비행기 편식은 이 영화 대사를 모두 외워버리게 만들었다. 이런 집착은 쏟아진 성냥갑의 성냥개비 수를 정확히 맞추는 영화 ‘레인맨’의 자폐 환자 더스틴 호프만처럼 비행기 소리만 들어도 기종을 알아맞히는 ‘신기’를 가지게 했다. 공군사관학교 진학을 꿈꾸며 지옥 같은 고3을 즐겁게만 기다리던 아이의 꿈은 그러나 신기루였다! 조종사가 될 수 없는 결격 사유인 시력 저하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좌절! 우리에게 친근한 그 단어는 그의 꿈을 억누르기엔 역부족이었던 듯싶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다. 대학 입학 후에도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항공 전문잡지 필진으로 참가했는데, 사람들이 항공대학 교수라고 생각될 만큼 전문적인 항공지식을 펼쳐보였다. 미2사단 카투사 제대 후 대학(고려대 영어영문학과)에 복학했을 때 ‘제4세대 전투기’로 일컬어지는 ‘라팔’ 제조사인 다쏘로부터 파리 국제에어쇼에 초청됐다.
수차례에 걸쳐 장문의 편지를 보낸 끝에 얻어진 천우신조의 기회였다. 당시 다쏘사 이브 로빈스(Yves Ro bins) 부회장은 “전투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고급스러운 영어 실력에 놀랐다”라며 그를 초청했다. 그러나 창공을 나는 꿈을 지우지 못하고 있던 그는 단순히 참가하는 것에 만족을 못하고 민간인 자격으로 ‘라팔’ 조종자격을 따내기 위해 월간지에 기사를 내겠다고 큰소리치며 다쏘사와 협상을 벌였다. 결국 ‘프랑스의 자존심’이라는 이 최신예 전투기를 타는 최초의 민간인 평가 비행사가 되었으며, ‘F-16’ 전투기로 한반도의 하늘을 비행하기도 했다.
이제 하늘 제국을 만드는 꿈에 즐겁다
소원 성취. 시속 1,500km의 음속을 뚫는 마하 속도에 피가 거꾸로 쏟아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지만 그것은 환희였다. 그렇게 창공을 난 그의 눈은 그러나 또 다른 세계를 보게 됐다. 파리국제에어쇼에서 세계적인 항공사 거물급들과 만나 충격을 받은 후, 하버드대에 입학하여 국제적인 항공 비즈니스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하버드대 입학을 결심한다. 그가 결심하면 된다! 그를 하늘이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선택을 받기까지 정말 끈질기게 노력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건희 장학재단 1기 장학생에 도전해 10만 달러의 장학금을 받았다. 인문계열 학생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장학금이 지원된 것이다.
면접 심사관이 그의 심혈을 기울인 자기소개서를 보고 “정말 당신이 쓴 것이냐”고 물을 정도로 완벽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 죽도록 공부해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 합격했다. 그가 이곳을 택한 이유는 파리에어쇼에 참가해서 만난 세계적인 거물 항공업계 에이전트와 CEO들에게 “당신들과 같은 일을 하려면 내가 어떤 진로를 택하는 것이 좋으냐”고 물었을 때, 케네디 스쿨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인생의 행로를 결정하는 중간 기착지에 다다른 셈이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비행기에 대한 한 우물 파기에서 시작한 일이다. 영어 공부도 비행기를 알기 위해 시작했다. 유년시절 당시 출간된 비행기 관련 서적이 전무했던 탓에 아버지가 보는 외국 비행기 관련 잡지를 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영어 공부를 해야 했다. 여섯 살 되던 해, 책받침 뒷면에 씌어 있는 알파벳 표를 보고 혼자 깨우쳤다. 발음기호대로 혼자 외운 터라 ‘the’를 ‘트헤’로 읽는 수준이었지만, 비디오에서 ‘톰 캣’ 하고 소개하는 멋진 비행기 이름이 ‘Tom cat’ 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의 희열은 엄청났다.
“전투기에 관한 한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러자면 영어가 필수였어요. 그래서 방과 후에는 물론 점심시간에도 영어책에만 매달렸습니다.”
영어가 좀 된다 싶자 외국인과 직접 말해보고 싶어졌다. 중학생 때 마침 88서울올림픽이 열렸다. 그는 길에서든 지하철에서든 외국인만 보면 무작정 시계를 풀어서 감추고 다가가 “몇 시냐”, “한국에 처음 오느냐”며 말을 걸었다. 그렇게 만난 외국인 친구만 수십 명. 정확히 못 알아들었을 때는 꼭 다시 물어봐서 확인했다. 이뿐이 아니다. 맥아더·케네디·마틴 루터 킹의 연설문도 완전히 외웠다. 그렇게 배운 영어인 것이다. 그렇게 영어광이 되었다. 비행기 관련 다큐멘터리를 독파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영어 실력은 단 한번의 유학·연수의 경험이 없이 TOEIC 만점을 획득하는 쾌거로 다가온다.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는 등 다양한 대학생활을 경험했다. 한 드링크 음료의 신문 광고 속 그의 사진에 오버랩된 카피는 그의 삶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아름다운 젊음을 응원한다고.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짜자자작짝, 대~한 청년!”
글 / 강석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