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을 예술로 끌어올린 국내최고 타투이스트 김건원의 항변

문신을 예술로 끌어올린 국내최고 타투이스트 김건원의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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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씨 용 문신보고 예쁘다는 아줌마 때문에 너무 행복했죠”.

‘조폭마누라’의 신은경 등에 새겨있는 ‘용 문신’은 문신에 대한 선입견을 확실하게 깨준 작품이었다. 장장 40여 시간의 작업을 통해 태어난 용 문신을  그렸던 타투이스트 김건원. 그 후 국내 최고의 타투이스트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건원씨는 지난 6월 13일 긴급 체포됐다



‘문신=조폭’이라는 선입견 깬 타투이스트

“문신도 이렇게 멋있는 것이 생기는구먼.”

야간작업을 하고 해장국을 먹으러 갔던 타투이스트 김건원씨(28, 본명 김유미)는, 식당 아주머니가 신문에 나온 신은경의 문신을 보며 했던 이야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2001년 최고의 히트작인 영화 ‘조폭마누라’의 신은경 등에는 지금까지 보기 힘든 예술적인 용 문신이 새겨졌다.

용 문신이 어깨에서 엉덩이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는 데만 8시간이 걸렸다. 김건원씨 역시 문신분장 작업이 처음이어서 많은 문제가 생겼다. 그림을 작게 그렸을 때에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할 때는 먼저 칠한 부분이 말라버려 살에서 떠버렸다. 문신의 최대 효과를 내야 했기에, 신은경은 먹지도, 자지도, 화장실까지도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장장 40여 시간의 작업 끝에 신은경의 용 문신은 세상에 나왔다.

영화 ‘조폭마누라’의 문신 작업은 만족스러웠어요. 처음에는 좀더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에 거절했는데, 영화라는 매체를 이용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문신의 매력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죠.

‘조폭마누라’ 이후 ‘달마야 놀자’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보스상륙작전’ ‘강타 뮤직비디오’ ‘정우성 뮤직비디오’ 등 여러 작품에서 작업을 하게 됐다. 이때부터 타투이스트 김건원의 이름 앞에는 ‘국내 최고’라는 단어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김건원씨는 ‘문신=조폭’이라는 공식을 깨고, 문신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녀가 문신을 처음 본 것은 음악에 빠져있던 고교 시절. 외국가수들의 음반 재킷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문신을 접했다. 이때는 타투가 그녀의 평생 업이 될 줄은 몰랐다. 그 후 성신여대 서양화과 97학번으로 입학했지만, 유학 준비로 1년만에 휴학을 했다. 유학을 가서 어떻게 생활비를 마련할 것인가를 궁리하던 중, 외국에 다녀온 친구들이 ‘타투(문신이라는 의미의 세계 공용어)’를 알려줬다. 타투가 외국에서는 대중화됐고, 생활비를 벌 수 있다는 말에 시작하게 됐어요.



기지촌 주변에 문신을 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보니까, 너무 비위생적이고 제 눈에 차지 않는 거예요. 1997년 말, 아는 사람의 소개로 타투이스트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미국 사람을 만나서 배우게 됐죠.”

이때부터 기계의 조립과 분리, 타투의 원리, 바늘은 어떻게 만드는지, 기본적인 테크닉, 위생 등 타투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교육받았다. 하지만 선생이 예술적인 것보다 상업적인 것에 치우치는 모습을 보고 그만두게 됐다. 타투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느냐가 김건원씨의 큰 고민이었다.

“저에게 ‘타투가 예술이냐?’라는 질문을 많이 해요. 저는 어떤 생각으로 시작하느냐에 따라서 예술이 될 수 있고, 상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타투는 평생 몸에 따라다니잖아요. 단지 학비를 벌기 위해서 타투를 할 수 없었죠. 제 인생을 걸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타투에만 빠져들기 시작했다. 준비하고 있던 유학도 접고, 다니던 대학도 그만두면서 타투이스트 김건원의 이름으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선진적인 타투 기법을 배우기 위해 외국에도 나갔고, 타투의 대중화를 위해 ‘문신 설명회’나 전시회도 가졌다. 



그녀를 찾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났고, 그녀가 작업해준 타투는 호평을 받았다. 모든 것이 다 잘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6월 13일, 작업실에 들이닥친 경찰은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위반 혐의로 그녀를 긴급체포했다.

위생적이고 질 높은 타투 위해 법제정 필요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문신은 불법이다. 1992년 내려진 판례는 문신 역시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의사 외의 사람이 문신을 하는 것은 불법 의료행위에 속하므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문신은 음지에서 은밀히 이뤄질 수 밖에 없다.

김건원씨가 체포된 이유는, 병역기피 혐의로 구속된 이 모씨의 진술에 그녀가 2년 전 문신을 해줬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김건원씨는 검찰과 법원 구치소를 왔다갔다하며 열흘간 구속됐다. 병역기피를 도왔다는 혐의는 풀렸지만, 지난 8월 22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벌금 3백만원을 선고받았다. 현재 그녀는 타투 법제화를 위해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구치소에 있을 때 가장 빠른 시간과 가장 느린 시간을 함께 경험했어요. 새벽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눕지도 못하고 책만 읽는데 너무 지루했어요. 타투를 시작한 후에는 계속 타투 작업만 하고 지냈는데, 아무것도 못하니까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지금도 작업을 못하고 있는데, 실력이 줄어만 가는 것 같아서 너무 가슴이 아파요. 지금은 계속 실력을 늘려가야 할 시기인데….”



현재 김건원씨의 안타까운 상황을 아는 예술인들이 예술인 김건원 구명 대책 위원회(cafe.daum.

net/artistgun)를 꾸려 ‘타투 법제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건원씨는 문신 법제화는 ‘문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위생적으로 문신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운동’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9월 19일 홍대 Z클럽에서 신해철, 박재동, 최소리 등의 여러 예술인들이 김건원씨 후원행사를 열기도 했다.

“1992년 판례에 의해 문신을 의료법으로 처리하고 있어요. 하지만 문신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늘어나고만 있는데, 불법으로만 간주하니까 음지에서만 이뤄지게 되죠. 법제화가 되면 사람들도 위생적인 환경에서 질높은 문신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국가와 법정 소송을 하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매우 힘든 일이다.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동료들의 외면도 힘들지만, 타투가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을 길이라며 위안한다.

“저는 평생 타투를 할 거예요. 나이가 들어, 손이 떨려서 타투를 하지 못할 때까지 평생 할 거예요.”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정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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