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프로 9단을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표현한다. 약관의 나이에 프로 9단이 된 천재 기사 이세돌이 바둑 팬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그의 톡톡 튀는 언행은 지금까지 바둑계에서는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생방송 MC를 맡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브레인 서바이버’ 출연으로 인기 급상승

바둑 전문 채널인 바둑TV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9시부터 80분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생생바둑한게임’에 이세돌이 진행자로 나섰다. 프로기사 한해원 2단과 전문방송인 김유리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지난 12월 11일 첫 방송 이후 이세돌 프로기사의 ‘끼’를 알게 됐다는 사람들이 많다.
흔히들 방송의 묘미는 생방송에서 느낄 수 있다지만, 그것도 전문 방송인의 연륜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는 돌발상황에 잘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세돌은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첫 방송으로 잠재웠다. 전문 MC가 아니기에 대사도 놓치고, 실수도 했다. 하지만, 상대 MC의 이야기에 유머스럽게 응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첫 방송은 성공이었다.
“한 달 전에 섭외가 왔어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가 오고 갔지요. 막상 첫 방송을 하고 나니까, 제가 서툴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대본이 있지만, 따라가지도 못하겠고. 제가 방송인이 아니기 때문에 실수를 해도 사람들이 다 이해해주실 거라 믿어요.(웃음)”
이세돌이 방송에서 끼를 먼저 보여준 것은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노인 ‘브레인 서바이버’를 통해서였다. 프로기사가 코미디 프로에 나오는 것도 드문 일인데, 이세돌은 한술 더 떠 출연자들을 웃겼다.
“한해원 사범이 브레인 서바이버에 나가보라고 해서 나가게 됐는데…. 그런 방송에 처음 나가는 것이어서 부담됐지만 재미있게 했어요. 연예인들을 처음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그날 방송에서 했던 이야기는 다 재미있으라고 한 이야기예요. 실수로 바둑돌을 놓아서 이긴 적이 많다는 것도 농담이었어요.(웃음) 그런 경우가 있겠어요?”
이세돌이 출연한 후에 반응이 좋아서 ‘브레인 서바이버’ 크리스마스 특집에 다시 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먹은 것이 체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이세돌은 ‘브레인 서바이버’을 통해서 바둑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역할까지 했다. 흔히 프로기사하면 떠올랐던 ‘반상(盤上)에서 장고(長考)하는 이미지’를 확 바꿔놨다.

우리나라 바둑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다. 그동안 조훈현 9단, 그의 제자인 이창호 9단이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세계를 제패했고, 얼마 후에는 이창호 9단의 독주가 시작됐다. 많은 프로기사들이 이창호 프로의 앞에서는 주눅이 들고 콤플렉스를 느낀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세돌은 달랐다. 이창호 앞에서도 거침없었다. 자신의 목표는 ‘이창호 9단을 이기는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바둑세계에서 이세돌 프로처럼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프로기사는 드물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이세돌은 ‘당차다’ ‘건방지다’라는 양 극단의 평가를 받는다.
상하이에서 열린 LG배 준준결승에서 이세돌의 기자 회견 내용이 화제가 됐다. 입단 동기이자 가까운 동료인 조한승 6단에게 ‘화려하게 몰아쳐 케이오 시키겠다’라는 이야기를 한 것. 그리고 ‘이창호, 조훈현, 마샤오춘 가운데서 누구를 존경하느냐’는 질문에는 처음에는 “다 좋은 기사들”이라고 했다가 이내 “마샤오춘의 이름은 거기서 뺏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했다. 바둑팬들은 ‘패기 있어서 좋다’라는 측과 ‘오만방자함의 극치’라는 대조되는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이세돌은 한국 바둑계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언행을 보여준다.
“솔직한 성격이에요. 생각한 것은 그대로 이야기하는 편이고. 사람들의 평가가 그런 면에서는 맞죠.”
속에 담아두지 못하는 솔직함은 그의 공격적인 바둑 기풍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입단 8년 만에 9단 신화 만들어내
이세돌의 별명은 섬소년이다.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10살 때까지 섬에서 자랐다. 이세돌은 아버지로부터 바둑을 배웠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아버지는 목포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신안으로 들어갔다. 서울 아이들에게 뒤처질까봐 가르친 것이 바둑이었다.
이세돌은 바둑을 특이하게 배웠다. 농사일을 하러 나가는 아버지는 아침마다 막내에게 사활문제를 내주고, 저녁에 점검했다. 글자도 깨우치지 못한 6살 아이가 바둑만은 신기하게 잘 이해했다. 2년 만에 아버지와 아들은 맞바둑을 둘 수 있게 됐다. 이세돌은 어린이 바둑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이세돌에게 바둑의 정신적 지주는 아버지다.
“제가 입단하기 전까지는 노력보다는 재능이 훨씬 많았다고 생각해요. 기억은 잘 안나지만, 바둑을 배울 때 정말 이해를 잘했던 것 같아요. 입단 후에는 노력이 더 크죠. 다른 프로기사에 비해 수 읽기와 감이 좋은 것은 제 장점이죠.”
이세돌은 10살 때 서울로 올라왔다. 권갑룡 도장에서 사범을 맡고 있던 큰형 이상훈(현 프로 4단)이 그를 돌봤다. 서울로 올라온 후에 그는 일취월장했다. 1995년 입단했고, 8년 만인 2003년 입신의 경지인 9단이 됐다. 입단할 당시 12세 4개월의 나이. 당시로서는 조훈현(9세 7개월), 이창호(11세 1개월)에 이은 역대 3위의 최연소 기록이었다. 예전에는 초단에서 9단이 되기까지 약 13년 정도 걸렸다고 하니까 얼마나 초고속 성장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프로기사의 단수에 따라 실력과 연륜이 함께 인정됐어요. 하지만, 요즘은 성적으로 단을 받는 것이니까 예전 9단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죠. 우선 제가 나이가 어리니까요. 요즘은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어 있어서 초단과 9단의 차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봐요.”
이세돌이 가장 존경하는 프로기사는 조훈현 9단. 50이라는 나이에도 후배들과 바둑을 두는 모습이 존경스럽단다. 요즘 프로기사들의 나이가 계속 어려지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가 없다면 마흔이 넘어서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 9단의 기풍도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쉼없이 몰아치는 공격적인 스타일이 이세돌의 장기다.
이세돌은 바둑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이뤘다. 세계적인 대회인 후지쓰배에서 2번이나 우승을 했고, 지난 4월 LG배 세계기왕전에서는 이창호 9단을 이기고 우승도 했다.
“우선은 응창기배에서 우승하고 싶어요. 응창기배는 4년마다 열리기 때문에 제가 출전할 기회가 지금까지 없었거든요. 내년에 응창기배가 열리는데, 지금은 우승이 목표예요.”
하지만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이뤄서인지, 요즘 공허함을 느낀다. 특히 LG배 세계기왕전 우승 이후 목표감 상실로 해이해진 것도 있다. 전적도 나빠졌다. 하지만 이세돌에게 바둑은 인생의 전부다. 바둑 이외에는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세돌은 차기 한국 바둑계를 이끌어갈 대들보다. 그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쉽게 주저앉지 않는다. 그의 바둑 신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세돌의 톡톡 튀는 언행 때문에 오래간만에 바둑계에 활력이 넘치고 있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지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