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명성황후’의 음악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박칼린. 수많은 작품을 기획하고 연출하던 그녀가 신예 스타 발굴 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기획사, 매니저먼트사를 운영하는 건 절대 아니다. 잠재된 능력을 찾아줄 뿐. 그녀에게 연예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칼린(36)을 거쳐간 연예인들은 거침없이 “무섭고 엄격하다”는 표현을 쓴다. “넌 실력이 없으니 집에 가라”는 말을 안 하고도 스스로 아예 연예계 생활을 접게 만들기도 한다. 흔히 연예인들은 천성적으로 타고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타고난 ‘끼’만으로 스타가 되는 건 아니다. 실력 있는 스타로 꾸준히 활동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훈련시킬 조련사가 필요하다. 대부분 작곡가, 작사가, 기획사, 매니저들이 교육을 하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과외 수업’이 절실한 것이다. 이 때문에 연예계에선 그녀를 찾는 일이 종종 있다. 교육받기 원한다고 무조건 받아주진 않는다. 나름대로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
“에너지가 느껴지는 연예인들이 있어요. 말 그대로 힘을 말합니다. 심장에서 끓어 나오는 듯한 강한 힘이 있거든요.”
에너지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섹시가수 비를 꼽았다. 그녀는 박진영의 소개로 비를 훈련시켰다. 본인이 직접 교육을 시킨 건 아니지만, 그녀의 작업실로 찾아와 그녀의 후배들과 함께 매일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비는 진정한 대중가수라는 말도 했다.
“지인의 소개라고 해도 무조건 신인들을 교육하진 않아요. 비는 처음 대면했을 때 모습과 무대에서는 하늘과 땅 차이였어요. 수줍어하며 조용히 있다가 노래와 춤을 연습할 때면 에너지가 넘쳤으니까요.”

데뷔 초와 달리 실력이 늘어가는 비는 예상한 대로였다. 그녀가 강조하는 또 다른 점은 비트를 잘 타야 한다는 것이다. 음의 처음과 끝을 그대로 따라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음을 감각적으로 쪼개서 흐름을 타야 한다는 얘기다. 같은 노래를 불러도 맛깔스럽게 들리는 건 비트를 타기 때문이라고. 비의 경우 노래 실력은 약간 부족하지만 비트를 잘 느끼는 가수라고 했다.
가장 주목하는 뮤지컬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에 쏘냐를 지목했다. 19세의 어린 나이에 ‘렌트’라는 큰 무대에서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현하는 쏘냐의 모습을 보고 그녀도 놀랄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몸을 혹사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별의 경우, 뛰어난 음색을 가지고 있음에도 오락 프로그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그녀의 매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한다. 남몰래 키운 뮤지컬 배우도 있다. 뮤지컬 ‘맘마미아’에 더블 캐스팅된 정선아와 배혜선.
현재 대학 1학년인 정선아와는 고등학생 때 뮤지컬을 배우겠다며 찾아왔는데, 첫눈에 욕심이 생겼다. 그녀가 철저히 지키는 또 하나의 규칙은 키우던 배우를 자신의 인맥을 통해 출연시키지 않는다는 것. 정선아의 경우도 그랬다. 비밀리에 음악 교육을 시키며 ‘때’를 기다렸다. ‘맘마미아’ 공개 오디션에 주연으로 발탁됐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뻤다고.
“준비성이 강한 학생이었어요. 성숙한 무대 매너도 놀라웠구요. 게다가 상황에 맞게 애드립을 연출할 줄 아는 재치꾼이지요.”
노래 실력은 서툴러도 상관없다. 발전 가능성이 얼마나 존재하느냐, 충분히 노력하고 있느냐에 따라 후한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명함처럼 변해버린 이름
영화배우 조승우와의 인연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6년 전 뮤지컬 ‘명성황후’의 새로운 고종 역을 찾고 있을 무렵이었다. 습관처럼 대학로를 다니며 하루에도 두세 편의 연극을 봤다. ‘의형제’라는 공연을 보면서 한눈에 반한 배우를 만났다. 가슴이 쿵쾅 뛰었다. 제대로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채 연출가와 함께 극단을 찾았다. 극단측 소개로 만난 배우가 바로 조승우다.
“무대에서 볼 때와는 체구와 얼굴이 좀 달랐다. 진한 분장, 어두운 조명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더블 캐스팅된 다른 주연이더라구요.”
하지만 테스트해본 뒤 오히려 조승우의 인간적인 매력에 푹 빠졌다. 정확한 발음, 다양한 표정 연기에 놀랐다. 고종 역을 그에게 맡기며 대단한 배우가 될 거라 예상했다.

“조승우씨는 음악이나 연기에 대해 뭔가 요구하면 눈으로 흡수하고 있었어요. 이해력도 빠르고 감성도 풍부해서 앞으로 팬들에게 인정받는 배우가 될거라 믿습니다.”
그녀가 ‘사부’로서 보람을 느끼게 하는 진짜 제자들도 적지 않다. 수련 과정이 힘들어 포기하는 듯했던 한 뮤지컬 배우가 어느덧 ‘득음’을 하고 자랑스럽게 나타난 것. 한참을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가수들 사이에서 그녀에 대한 유명세가 높아지면서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두 번 작업실을 방문했거나 인사 한 번 나눴을 뿐인데도 ‘박칼린으로부터 창법을 전수받았다’고 소문을 내고 다니는 여가수들이 종종 있다. 매니저와 함께 찾아온 한 여가수는 바쁜 스케줄 때문에 실제 강습을 받지 못했으면서도 ‘박칼린의 제자’라며 소문을 내고 다닐 정도다. 그녀는 이에 대해 “더는 내 이름을 거론하지 않길 바라요. 그와 몇 마디 대화조차 한 적 없거든요”라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평생 살면서 진정한 제자가 3명 있다면 스승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가수라면 노래는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섹시라는 컨셉으로 추함을 연출할 때가 있어요. 배우가 창녀 연기를 하더라도 무대에선 천하거나 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고상함이 배어 있어야 하는데 아예 창녀가 돼버리는 경우가 많죠. 환경에 흔들리면 정체성도 사라지게 되니까요.”
글 / 강수정(객원기자) 사진 / 지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