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참 아줌마’역할 모델로 선정된 임달연의 새로운 도전

이 시대 ‘참 아줌마’역할 모델로 선정된 임달연의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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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YWCA는 최근 ‘참아줌마상’이라는 것을 제정했다. 임달연씨는 이 상의 제1회 수상자다. 이 상은 억척스럽고 가족에게 헌신적이던 종전의 아줌마 상에서 탈피, 새로운 아줌마 상(像)을 정립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15년간 독거 노인 돌보고 있어

전주 서남쪽에는 해발 793m의 모악산이 있다. 그리고 그 산 뒤편에는 산을 오르는 초입길이 애돌아 나 있는 ‘중인리’가 있다. 전형적인 한국 농촌의 정감 있는 길을 따라 쭉 들어가다 보면 군데군데 그림처럼 아름다운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고, 그 어디쯤에 임달연씨(52)의 집이 있다.

“작년 12월 19일에 이사해서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짐도 정리가 안 되었고….”

아담하고 깨끗하고 심플한 집이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남을 돕는다는 비범한 미담을 소개하겠다는 컨셉트는 약간 비껴갔다고 느껴지는 찰나다. 임달연씨는 중산층 가정의 전업주부다. 남편 구자웅씨는 전북대학교 농공학과 교수고, 공부 잘하는 아들과 말 잘 듣는 딸과 함께 그림 같은 집에서 채마밭을 가꾸며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선뜻 ‘봉사’에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자신의 경제력과 육체적·시간적 투자를 꼽을 수 있다. 임달연씨는 두 가지 조건에서는 비교적 자유롭다.

그녀는 “정작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가 아니었다”며 오랜 봉사 활동의 후일담을 털어놓았다. 그녀가 처음 봉사 활동을 시작한 것은 교회를 통해서다. 15년 전 교회의 여집사 20명과 함께 ‘사랑의 자원봉사회’를 설립하고 독거 노들인을 돕기 시작한 것. 사명감과 성실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까운 곳에 홀로 사시는 노인들 한 분씩과 연결되면 그때부터 그분들을 돌봐드려요. 빨래, 설거지, 각종 민원 대행, 음식 장만 등을 해드리는 거죠. 가끔 놀아드리기도 하구요. 불문율이 하나 있어요. 절대 한 번에 두 분씩은 맡지 않는 거예요. 한 분에게 충실해야만 그분들과 인간적인 신뢰감을 쌓을 수도 있고, 또 노인들이 질투가 많으시거든요.(웃음)”

그래서 그녀가 현재 돌보고 있는 할머니는 이제 두 번째 분이다. 처음 만난 할아버지는 3년 만에 돌아가셨고, 그때부터 12년 동안 지금의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12년이라는 기간은 자기만족의 봉사를 넘어서서, 생활이고 삶의 깊숙한 부분이다.

“처음 만난 할아버지는 예전에 머슴이셨대요. 오갈 데가 없어 양로원 청소와 잔일을 봐주며 생활하고 계셨죠. 처음 할아버지 이불과 옷가지들을 집으로 가져와 세탁하는데, 욕조에 담가놓은 빨래 냄새만으로도 그간 할아버지의 삶이 짐작되더라구요. 왜 좀더 일찍 도와드리지 못했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이 일은 나에게 주어진 평생의 일이구나 생각했죠.”

십자수 때문에 시작하게 된 대학생활

지금 돌봐드리는 할머니가 편찮으시다거나 급하게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밤중에라도 달려가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혼자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녀에게 가장 큰 힘은 가족의 도움이다.

“처음 할아버지 빨래 얘기해드렸잖아요. 그때 그 낡은 빨래들을 거실에 죽 널어놓았는데, 당시에 유치원 다니던 딸아이가 나오더니 무슨 빨래냐고 묻는 거예요. 불쌍한 할아버지 거라고 했더니, 우리 딸이 ‘불쌍한 할아버지 빨래 빨리 말라라’ 하면서 빨래에 부채질을 하는 거예요. 엄마의 이런 모습이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봉사의 의미를 깨우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어린 딸아이였던 셈. 남편은 더 난리(?)다. 할머니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빨리 가보라’고 성화였고, 밤에 일이 생기면 직접 데려다주기도 한다.



봉사 활동을 하면서 그녀를 가장 괴롭힌 건 ‘좀더 잘 해드리고 싶은데, 더 신경 써드리고 싶은데…’같은 성의의 결핍감이다. 사실 많은 봉사자들이 봉사 활동하는 데 가장 힘든 점이 이러한 것들이라고 한다. 그럴 때는 같은 봉사회 동료들의 격려가 위안이 되고, 피아노 치면서 찬양하는 것이 기분을 풀어준다.

그녀는 처녀 때 수원에서 중학교 음악 교사 생활을 했다.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생면부지의 전주에 와서 살게 되었고, 외로움을 신앙과 봉사 활동으로 달랬다. 사실 그녀는 아이 키우고 독거 노인들 보살펴드리는, 자기계발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누구보다도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의 삶을 살아왔다.

그녀가 참아줌마상 수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최근 다시 시작한 배움에 대한 열정과 만학도의 고충이 큰 역할을 했다.

“전북신학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공부가 더 소중하고 재미있습니다. 나이가 드니까 이해력은 빠른데, 암기력은 떨어지더군요. 시험만 없으면 참 좋겠는데….(웃음)”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은 엉뚱하게도 십자수다. 남편이 교환교수로 미국에 가 있을 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십자수를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돋보기로 들여다보며 새벽 2~3시까지 빠져 있었다. 문득 이런 열정이라면 공부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사회복지가 아닌 신학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봉사 활동을 오래 해보니까 봉사는 지식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더군요. 신앙의 힘이 없었다면 이렇게 오래 하지 못했을 겁니다.”

여성들의 자기계발은 작금의 이혼율 50% 사태와 무관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녀는 상생의 논리를 펼친다.

“할머니가 부르시면 열 일을 제쳐두고 달려가기 때문에, 가정이 뒷전인 면은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이 봉사 활동을 존중하기 때문에 배려해주고, 저도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라도 최선을 다합니다. 가족과 일은 빛과 소금이라고 할 수 있죠. 진정한 아줌마는 결혼의 신성한 약속들을, 아기를 낳는 고통을 견뎌낸 인내심으로 지켜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달연씨는 “어둡고 사람들 북적이는 곳이 싫어서 찜질방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며 천장 높은 남향집의 커튼을 젖힌다. 창 밖으로 길고 완만한 모악산의 능선이 펼쳐진다. 봉사하고, 찬양하고, 공부할 시간도 빠듯할 것이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 있잖아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원하던 꿈들이 대개 이뤄졌거든요. 남편과 결혼 전에 남을 도우면서 살자고 약속했는데, 그것도 지켜가고 있고, 외국에 나가서 몇 년 살아보고 싶은 소망도 이루어졌고, 통나무집을 지어준다는 약속도 이루어지고…(웃음) 앞으로 꿈은 공부랑 봉사랑 열심히 하고 채마밭 잘 가꾸면서 사는 거죠, 뭐.”

그녀는 가진 게 참 많다. 그중 가장 부러운 것은 거실 한켠을 장식하고 있는 근사한 벽난로도, 창 밖으로 펼쳐지는 포근한 모악산의 풍경도 아니었다. 슬픈 것을 보고 슬프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사람의 고통은 사람만이 치유할 수 있다는 신념과 용기였다.

글·사진 / 양성호(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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