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이란 선입관, 선천적 시력약화 뚫고 벤처일군 이건범 대표

운동권이란 선입관, 선천적 시력약화 뚫고 벤처일군 이건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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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으로 10년, 사업으로 10년… 이제 새로운 방식의 한글 교육을 시작합니다”

운동을 좋아했다. 말 그대로 스포츠였다. 그러나 한 시대를 운동권으로 살아왔다. 한때를 추억하는 무브먼트는 아니다. 이제 비즈니스맨이다. 때 묻기를 거부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 선천적인 시력 약화라는 콤플렉스를 명확한 비전으로 극복하는 이건범 사장의 성공담.

운동권 출신 386 벤처기업인 중 빛나는 보석

콤플렉스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 그런 선입관을 더 크게 재생산해낸 것. 그래서 약점 하나 잡히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수도 있다. 그것이 비즈니스 현장이라면 더더욱. 90대년 초반까지 운동권 출신은 사회적인 약자였다. 공문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취업의 제한이 공공연했고, 사회적인 편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때 새로운 사업에 눈뜬 이가 아리수미디어의 이건범 사장(39)이다. 운동권 출신으로 젊은 나이(?)에 두 번의 옥고를 치렀다. ‘양심수’라는 거창한 이름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전과자’다. 그가 사업을 택한 이유는 이런 전력이 취업에 장애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소위 ‘빵쟁이’니 어쩔 수 없기도 했지만, 한발 물러나 사회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사회 변화를 예측할 수 있었어요. 당시는 인터넷 시대라기보다는 PC 통신의 시대였지요. 그때 인터넷 시대를 대비하면서 대용량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CD롬 사업을 생각한 거예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 생활을 하면서 많은 책을 읽은 것이 도움이 됐어요. 뭐 거창한 이론서를 읽은 게 아니라 소설책을 많이 읽었는데 인간 내면의 복잡함과 다양성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지요. 이런 생각들이 세상과 유별할 수는 없으니까요.”

386 운동권 출신 벤처기업은 이제 부지기수다. 경제계 곳곳에 포진하기 시작한 이들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는 것은 경제적인 성공만큼이나 사회적인 도덕성에 무게가 있다. 야합보다는 정도가 정치적인 덕목만은 아니기에.

아리수미디어가 설립된 것은 지난 1994년 8월. 올해 회사 창립 1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그 기간 동안 교육용 콘텐츠사업의 한 우물만 팠다. 하지만 기업하기 어려운 점은 바로 이 속에 있다. 우리 사회의 높은 교육열이 곧 교육 콘텐츠 시장의 고속 성장이라는 등식이 맞아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는 바 아니었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부분이었기에 그렇게 한 것이란다.

그렇다고 ‘눈앞의 떡’에만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소위 ‘운동’과 수감 생활로 점철된 그의 대학 시절은 지금의 기업경영에도 직ㆍ간접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윤창출이라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기업 본연의 속성과 그에 따른 치열한 경쟁은 다소 분위기가 다르게 ‘더불어 사는 삶’ 등 그 이상의 무엇을 추구하고 있다. 아리수미디어는 여전히 이건범 사장이 지닌 인생철학의 시험장인지도 모른다.

10년간 교육 콘텐츠의 한 우물 판 유일한 CEO

그의 인생은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어온 듯싶다. 운동을 좋아하고 잘해 체육과를 가겠다는 고집은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사회학과(서울대)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차선으로 택한 사회학과에 입학한 지 10일만에 경찰에 연행되면서 세상에 대한 눈높이에 혼란을 겪게 됐다고.

“별일 아니었어요. 단과대 체육대회를 하면서 스크럼을 짠 것이 죄라면 죄였을까요. 그런데 그게 죄라고 해서 경찰서에 잡혀갔죠. 이건 아닌데… 생각하면서 세상의 모순에 눈을 뜨게 된 것이지요. 이런 문제로 집안 어른과도 많이 다투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성향은 나이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나이가 되면서 만들어오고 지켜왔던 세상을 지켜내고 싶을 테니까요. 당연하다고 느끼지만 그것이 사회에 해악이 되어서는 안되기에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의 생각과 엇나간 아들을 보면서 언제나 어머니는 “네가 원하는 대로 체육과를 보내는 건데…”라는 말씀을 하기도 했다고. 물론 본인도 과연 내 길일까라는 고민을 했단다. 그러면서 대학 4학년 때 4개월간 구속되었고, 결국 그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내게 된 것이다. 운동(?)을 좋아했지만 운동권이 되고나서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88년 9월 결혼했지만 몇 개월간의 신혼 생활을 끝으로 수배자가 되어 도피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고, 결국 수감되어 2년 4개월을 살고 나왔다. 물론 아내와 업무 분담을 했기에 운동에 힘을 다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아내는 학과 후배예요. 운동도 같이 했죠. 결혼을 결심하면서 운동과 생활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합의한 것이 나는 운동을 계속하고 아내는 가정 생활을 책임진다는 거였지요. 그 말대로 저는 수배와 구속이 되는 생활의 연속이었고, 아내는 대기업에 들어가 건실한 직장인이 되었어요. 물론 이 사업을 하면서 LG EDS에 과장으로 있던 고액(?) 연봉자인 아내의 연봉을 반으로 후려치면서 아리수미디어 프로그램팀으로 모셔와야 했지만요.”

회사를 키우고 ‘능력 있는’ 아내를 영입하는 등 이건범 사장은 2002년부터 야심찬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그동안 CD 중심의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리수한글(www.arisu.co.kr)을 탄생시켰다. 아리수한글은 인터넷으로 만 3~6세 유아를 대상으로 한글을 깨우치게 하는 것인데, 이미지 중심의 일방적인 주입식 학습법에서 벗어나 진일보한 방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CD 하나에 통상 1억원의 개발비가 들어가는데, 아리수한글에 무려 30억원의 개발비를 투입했다. 아리수미디어의 연간 매출 규모는 1백억원. 그는 올해 교육 콘텐츠 개발 및 유통 사업과 아리수한글 사업 비중을 80대 20에서 내년 60대 40으로 예상하는 등 아리수한글 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한글은 영어와 달리 매우 과학적인 원리를 따르고 있어 컴퓨터를 이용해서 배우기에 적합해요. 사업 초기에는 같이 프로젝트를 완성한 서울대 인지발달연구소에서 조차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죠. 하지만 서울대 심리학과에서 글자 처리에 대한 인지 등 관련 연구 성과물들이 있어 운 좋게 아리수한글이라는 결실을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또 EBS에서 아리수미디어의 ‘한글탐정 둘리’가 3회 연속 방영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지요.”



결국 그의 생각은 지난해 디지털콘텐츠대상 정보통신부장관상을 수상하게 만들었다. 아리수한글은 어린이들이 게임이나 캐릭터를 키우며 놀이하듯이 한글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어느 정도 한글을 익힌 아이들은 캐릭터에게 한글을 가르쳐야 하는 등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한글 교육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학 교육용 콘텐츠도 개발해 올 초에 출시할 예정이다.

뜻을 세우면 거침없이 돌진하는 특유의 힘이 나오는 것을 보면 에너지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이건범 사장은 선천적으로 시신경이 약하다. 어떤 때는 글씨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심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는다. 현실적인 시력과 사업적인 전망과 개인의 비전은 다른 듯싶다. 오히려 신체적인 약점을 놀라운 혜안으로 극복하니 그게 신기하다는 생각.

벤처기업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그. 집무실에서도 독특한 철학이 묻어난다. 사장실은 오히려 회의실이고 비서가 앉을 법한 사장실 앞의 공간이 그의 자리다. 사장실에 집무를 봐야 할 책상은 보이지 않는다. 회의용 탁자와 의자, 긴 소파에 벽을 둘러싼 책장뿐.

사진 촬영 중 사장실에서 발견한 기타를 가리키며 “한번 연주해 보시죠”라는 말에 어색해하며 그의 애창곡 전인권의 ‘분명하게’를 튜닝하는 모습. 어설프지 않고 방황하지 않고 분명한 선을 그으며 살아가는 386다운 벤처 사장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됐다.

글 / 강석봉 기자  사진 / 임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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