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신자의 매력

유인경이 만난 사람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신자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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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빛이 맑고 밝아지면 분명히 좋은 일이 생긴답니다”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며 산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중인 이신자씨는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까지도 함께 나눈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력만큼이나 무거운 입

사소한 일에 쉽게 흥분하고, 아주 조용한 곳에서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며, 무슨 소문을 들으면 입이 간지러워 견디지 못하는 나. 그런 내가 정말 경이롭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서울 남산에서 `헤어·메이크업 살롱 ‘헤어뉴스’를 운영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신자씨다.

사람들을 예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일을 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항상 다소곳하고 음전하기 이를 데 없다.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내는 것을 못 봤다. 늘 속삭이듯 소곤소곤, 웃을 때도 잔잔하게 웃는다.

언젠가 그의 돈을 안 갚는 사람의 이야기를 꺼냈다. 프라이버시 때문에 실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잘나가고 잘난 척하는 커리어우먼이다. 나 같으면 흥분해서 “아유, 그 얌체가 내 돈 떼먹고 안 갚는 거 있죠. 돈만 아니라 내가 그 사람한테 당한 거 생각하면…” 하고 마구 흉을 보련만 이신자 씨는 달랐다. 그래도 화는 나는지 얼굴이 약간 발개지더니 “아이 참, 자꾸 열이 오르네”라며 손으로 부채질만 하고 끝이다. 속상하면 얼굴이 험악해지고, 부끄러우면 얼굴이 발개지는 것이 아니라 새카매지는 나로서는 중년의 나이에도 얼굴이 꽃잎처럼 발개지는 것이 너무너무 부럽다.

더더욱 신기한 건 어떻게 그렇게 입이 무거울 수 있느냐는 거다. 물론 그는 자분자분 말을 잘 하는 편이다. 상담을 할 때나, 영화나 공연을 본 다음의 느낌 등은 아주 표현력이 뛰어나다. 그런데 자신의 단골이나 업무에 관한 내용은 `‘꿀 먹었다’며 입을 다문다.



유명 연예인들은 물론 국내 최고·최대의 재벌가, 정치인, 외국 기업 대표들까지 단골로 찾아온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엔 청와대에서 열린 아들의 결혼식 때 며느리를 비롯, 집 안의 화장을 맡아 청와대에도 갔다. 때론 그들의 인생 상담까지 하는데 아직 그 숱한 소문들 가운데 ‘`이신자씨가 그러는데…’ `‘헤어뉴스에서 들은 이야기인데…’라고 흘러나오는 말이 없다.

얼마 전 이혼한 고현정·정재용 커플, 결혼 날짜까지 잡았던 심은하·정호영 커플은 물론 삼성, 현대, 효성 등 재벌가들이 이곳 단골이어서 수시로 기자들과 매스컴에 시달리지만 그녀의 입은 열리지 않는다.

“혹시 집에 커다란 항아리 있는 거 아니에요? 집에 들어가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 거기다가 보고 들은 말 다 토해내는 것 아니냐구요. 절대 소문 안 낼 테니까 나한테만 알려줘요.”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빙긋 웃기만 한다. 아무리 친해도 별 소득이 없다. 유명인들이 얼굴과 마음을 맡기는 사람, 그의 매력과 비결은 뭘까.

자연스러운 매력의 발견

이신자씨 남매는 미용업계에서 매우 유명하다. ‘샤니고’란 이름으로 알려진 언니, 스타일리스트로 더욱 명성을 날리는 헤어 디자이너 이상일씨가 남동생이다. 각자 자신의 일을 하던 3남매가 1982년 명동에 `헤어뉴스’를 열었다.

‘○○미장원’ ‘○○미용실’ ‘○○살롱’ 정도가 고작이던 시대에 이름부터가 파격적인 헤어뉴스는 헤어와 메이크업을 분리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아동복 회사에서 일하던 이신자씨가 메이크업을 담당하면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

“당시엔 연예인이나 모델도 직접 화장을 했죠. 신부화장이나 일반인들 역시 `‘나 화장했다’고 말하듯 두꺼운 밑화장에 요란한 색조화장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자연스러운 화장을 시도했죠. 가능한 투명하고 맑은 피부를 강조하고 한 듯 안 한 듯 은은하게 보이는 화장을 했더니 아주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었어요.”



쥐 잡아먹은 듯 검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손톱으로 긁으면 오선지처럼 자국이 날 만큼 두꺼운 화장을 하던 여자들의 얼굴을 그는 가볍게 만들었다. 전문 미용실의 도움을 받아도 과거의 미스코리아 스타일, 즉 부글부글한 사자머리에 요란한 속눈썹 등 천편일률적이던 화장에서 탈피해 그 사람의 장점과 자연스러움을 잘 표현해주는 그녀의 화장법이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각종 잡지의 표지, 화보, 패션쇼 등의 화장을 도맡아 당시 잡지만 보면 ‘`메이크업 이신자’란 이름이즐비하다.

그녀는 신부화장으로 알려졌다. 요즘 ‘아침형 인간’이 화두지만 그녀는 이미 20년 전부터 아침형 인간이었다. 결혼식이나 사전 촬영 때문에 아침 일찍 찾는 신부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미용실로 달려나왔다.

상류층은 다르다

“신부화장을 하려면 신부 개인의 개성보다 집안 특성이나 분위기를 알아야 하거든요. 교육자 집안의 며느리인데 너무 섹시함만 강조해선 안 되죠. 결혼은 개인의 일이기도 하지만 집안의 커다란 행사여서 당연히 양가의 특징, 신랑 신부의 직업 등을 물어봐요. 또 행사에 참석할 때도 각각 메이크업이 달라지죠. 자선행사에 참석하는지, 화려한 파티인지에 따라 화장법이 달라지니까요. 요즘은 상류층이 그저 돈 많은 집으로 잘못 판단되지만 그래도 상류층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갑자기 돈을 번 졸부와 그야말로 뼈대 있는 가문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뼈대있는 집안일수록 겉으로는 수수하고 행동도 신중히 한다. 모든 걸 갖춰서 그런지는 모르나 치사한 혼수 시비도 없는 편. 눈에 띄는 장신구나 로고가 들어간 명품도 사용하지 않는다. 화장 역시 은은히 한다. 재미있는 것은 중년층 이상의 재벌 부인들의 경우 약속이나 한 듯 선명한 붉은색의 립스틱을 선호한다는 사실. 관상학에서도 ‘아내의 붉은 입술이 남편을 잘 되게 한다’는데 그 때문일까.

20여 년간 수만 명의 얼굴을 만지고 숱한 사람들을 보다 보니 이젠 거의 관상학자 수준에 이르렀단다. 얼굴빛이 맑고 밝아지면 분명히 좋은 일이 일어나고, 탁해지면 당장은 아니라도 건강 악화나 일에 나쁜 일이 생기더란다. 표정과 혈색은 그 사람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를 알려주는 표시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을 너무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신부화장을 해주기 때문에 항상 “행복하세요, 잘 사셔야 해요”라고 덕담을 해주고, 진심으로 자신이 화장을 해준 부부가 잘 살기를 기원한다. 또 사람들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사람이 지저분하거나 느슨할 수 없어 항상 긴장하고 자신을 가꿀 수 있어 고맙단다. 하긴 남 잘 되라고, 잘 살라고 매일 축복해주고 ‘예쁘게 해줘서 고마와요’란 찬사만 받으니 그렇게 얼굴이 평화로울 수밖에…. 나도 오늘부터 아무에게나 덕담과 축복을 해줘야겠다. 내가 예뻐지려고….

글 / 유인경(경향신문 여성팀 부장)  사진 / 박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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