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대한민국’으로 천하를 평정한 열쇠 수리공 이용석

‘퀴즈 대한민국’으로 천하를 평정한 열쇠 수리공 이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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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하게 번 돈이니 이럴 때 남을 돕지 언제 돕겠어요?”

퀴즈라면 사족을 못 쓰는 충남 예산의 이용석씨. 지난 연말에 열린 KBS-1TV ‘퀴즈 대한민국’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중졸이라는 학력과 열쇠수리공이라는 직업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상금을 대부분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50대 열쇠 수리공의 훈훈한 미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퀴즈 영웅’에 도전했어요

최근 KBS-1TV ‘퀴즈 대한민국’에서 중졸 학력으로 대학생, 직장인, 기업체 간부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퀴즈 영웅’의 타이틀을 거머쥔 열쇠 수리공 이용석씨(54). 어릴 때부터 라디오와 TV에 나오는 퀴즈 프로그램은 모조리 섭렵했을 정도로 퀴즈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열쇠 수리공이라는 직업을 무시하는 사회 풍토를 조금은 바꿔보고 싶었다. 물론 ‘퀴즈 영웅’에 등극해 못 배운 사람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도 싶었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험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인터넷 예심과 필기 , 면접을 거쳐야 하고 방송에 출연하더라도 3라운드 토너먼트 방식에서 최종 승자가 되어야 한다.

“특별한 비결은 없어요. 단지 신문을 꼼꼼히 읽고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귀동냥으로 들은 정보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본 경험도 긴장하지 않고 문제를 풀 수 있었던 비결 같네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일찍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든 그는 가방공장에서 금속을 만드는 일부터 과수원, 양장점, 식당, 목공소, 철강회사, 자동차 공업사, 광부, 시계 수리, 인테리어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그가 처음 퀴즈 프로와 인연을 맺은 건 1969년 KBS 라디오 백만 인의 퀴즈를 접한 때였다. 공장 일을 하면서 유일한 낙은 ‘백 만인의 퀴즈’를 청취하는 것이었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아나운서의 문제를 듣고 직접 푸는 사람들보다 재빨리 대답하면서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려버리던 기억. 한동안은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다 동생과 참여하기로 결정, 신청서도 제출했다. 당시에는 가족수가 많을수록 참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는데, 달랑 둘이라서 아쉽게 밀려나고 말았다.

그의 꿈이 실현된 건 2002년 딸과 함께 00의  ‘GO!GO! 퀴즈센터’에 출연하면서부터. 다른 사람들은 부부나 형제가 참여하는 것이 보통인데, 모녀 커플이 참여한 건 드문 케이스라고. 멋지게 실력 발뤼하여 부상으로 김치냉장고를 받기도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퀴즈 프로그램에 참가한 딸은 “제가 한 건 없고 아버지 옆에 서 있기만 했어요”라며 겸손해했다. 작년 6월에는 ‘MBC-TV 생방송 퀴즈가 좋다’에도 출연했다.

객관식을 모두 풀고 6단계 주관식 문제에서 떨어졌는데, 설욕전을 펼치기 위해 ‘퀴즈 대한민국’에도 네 번이나 도전했다고 한다. 문제가 어려워 떨어진 적도 있고, 막혀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적도 있다. 한 동안 잊고 살았는데 제작진에게서 방송 출연하라는 연락이 왔 다. 문제를 푸는 도중에 그는 여러 번의 위기를 맞았다. 영어 문제로 “토마토가 빨개지면 의사 얼굴이 파래진다”는 서양 속담이 나왔는데 토마토를 맞히는 문제였다. 소리는 멍멍하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생각난 건 ‘Doctor’와 ‘Red’였다. 이발소 앞에서 회전하며 돌아가는 것이 생각나 ‘이발소’라고 대답한 게 지금도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함께 문제를 푼 명문대 출신의 여자분은 쉰일곱 살인데 3개 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죠. 3개 국어로 간단한 인사를 했을 정도니까 자신이 없긴 했어요. 둘 다 두 문제씩 틀리다가 다음 문제를 연속해서 맞히는 등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죠. 마지막 동점자 퀴즈에서 나온 한자 문제가 승부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아요. 한자는 누구보다도 강했거든요. 천자문에 나오는 글자를 맞히는 문제인데, 정답이 이끼 야(也)자였죠. 정답이라고 말하는 순간 환호성이 들렸고 누구보다도 기뻐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봤어요. ‘이제 다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갑자기 긴장이 탁 풀리데요. 다음날 가게 문을 열어야 해서 저녁만 먹고 집으로 내려왔어요.”

우승하고 난 후, 친구들이나 동네 주민들에게 인사하느라 바빴다는 그는 이제 예산의 유명인사가 됐다. 대전 TJB(대전 SBS)에도 출연했고, 자서전을 써달라는 청탁도 받았다. 점차 알아보는 사람들도 늘어서 매상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대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큰누나가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아내 박희서씨는 상금으로 받은 돈을 선뜻 불우이웃에게 낸다고 했을 때 속상하지 않았냐고 묻자 “남을 돕겠다는데 별다른 반대란 게 있남유. 그냥 하자는 대로 할 뿐이쥬”라며 대답했다. 상금이 1억 원이었다면 어떻게 했겠냐는 질문에도 “그랬더라도 처음에 말한 것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사용했을 거예요.

사람이니까 고민이 되긴 하겠지만 지금도 입에 풀칠할 만하거든요. 너무 많아도 못 써요”라며 미소 짓는다. 사람들은 상금으로 당시 승률 금액 3천7백25만원 전부 수령하는 줄 알지만, 실질적으로 받는 금액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선 이공계 장학금으로 50%가 쓰이고 세금을 제하면 남는 게 1천4백만원이다. 1천만원 정도는 놔두고 나머지는 가족을 위해 쓸 생각인 그는 방송대 동아리 사람들, 동창, 향우회 회원들과 함께 삼겹살 파티도 열었다. 아들과 딸 에게는 똑같이 1백만원씩 용돈을 줄 생각.

불우한 이웃을 돕겠다는 그는 아직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상금만 주는 것보다는 학생 한 명과 연계해 자립할 때까지 도와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의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덜컥 맡았다가 오히려 피해가 되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현재는 군 복지과와 수시로 연락하면서 적임자를 찾고 있는 상황.

이용석씨는 정규 학력이 중졸이지만 엄연한 학사학위 소지자다. 1988년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1999년 방송통신대에 입학했다. 졸업하면서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요즘 자서전을 쓰고 있다. 방송 출연 후 출판사에서 자서전을 내자는 청탁을 받았다. 현재 40% 정도 진행됐는데 지나간 삶을 돌아보며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들이 대학생인데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제가 공부하면 따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본보기로 방송대에 입학했어요. 어머니의 한을 풀어들이고 싶기도 했고요. 졸업하는 것도 못 보고 2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아쉬움이 많네요. 근데 아들 녀석은 제가 노력해도 여전히 공부를 안 하더라구요.(웃음)”

후배들은 방송대를 졸업한 엄연한 대졸출신인데도 언론에서 중졸로 취급한다며 방송대를 무시하는 거 아니냐고 퀴즈 프로그램에 나간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퀴즈 프로그램이 가져다준 특별한 행복. 이로 인해 베푸는 여유와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지금처럼 열쇠 수리공을 하면서 주어진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소박한 꿈처럼 언제나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지닌 사람이 되길 기원해본다.

글 / 강승훈(객원기자)  사진 / 지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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