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선언으로 사실상 정계은퇴 선언한 오세훈 의원

‘불출마’선언으로 사실상 정계은퇴 선언한 오세훈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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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다신 안 해요. 1년간 환경 공부하러 유학 떠날 겁니다”

오세훈에 대한 수식어는 많다. ‘부드러운 남자’ ‘귀공자’ … 그도 그럴 것이 훤칠한 키에 핸섬한 얼굴, 어려운 법률 용어를 알기 쉽게 설명할 줄 알고,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MC로 뭇 여성들에게 인기몰이를 하던 그. 환경과 여성 권익 변호사던 그가 ‘푸른 정치’를 내세우면서 국회의원이 된 지 4년.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폭탄 발언의 이유를 들어봤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정치판은 바뀌어야

확실히 쓸데 있는 말 한마디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나 보다. 정치 하면 안면 근육이 경직되는 일반 사람들에게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43)의 한마디는 청량제였다. 한나라당 내 소장개혁파 모임 ‘미래연대’(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를 이끌고 있는 오세훈 의원의 지난 1월 6일 오전, “17대 국회원원 선거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국회의원이 된 지 4년 만의 일이다.

‘초선이기에 어설프지 않았겠냐’는 오해는 금물. 한국사회데이터센터(KSDS)가 지난해 12월 정부 각 부처 공무원, 국회 전문위원, 국회의원 보좌관 등 5백22명을 대상으로 16대 국회의원들의 의정 활동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오세훈 의원은 의정 활동 평가지수 100점 만점에 85.2를 받아 3위에 오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불출마 선언은 ‘물갈이’라는 새로운 정치 키워드를 실행할 수 있는 거대한 파도가 된 듯하다.

“정계 은퇴로 봐도 돼요. 어휘 선택의 문제인데, 이제 겨우 정계에 입문한 지 4년이 지난 상황에 은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맞지 않는 듯해서 ‘불출마’라고 완곡하게 표현한 거예요. 일부 언론에서도 그렇고 일부 사람들도 이 말에 의문을 가진 같더라고요. 한마디로 ‘은퇴라는 용어를 쓰지 않은 것이 정계 복귀의 여지를 남겨두는 말 아니냐’는 거죠. 그때마다 명확하게 ‘은퇴 맞습니다’라고 얘기해요.”

“누구와 허심탄회하게 의논이라도 해보았느냐”는 질문에 손을 가로저었다. 이런 사안은 다른 사람과 사전에 조율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러면서 아내(송현옥, 서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와 의견 일치를 보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송 교수 역시 지난 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주위 반응이 커 당혹스럽다”며 “혹 우리 부부가 건방져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남편의 불출마 결심을 듣고 그냥 담담히 받아들였어요. 남편의 결단이 대단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거든요. 상식을 가진 사람이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미련없이 물러나는 풍토가 틀린 것은 아니죠. 남편이 불출마 의사를 밝혔을 때, 당신의 결단이 한나라당보다 정치 전체를 바꾸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는 말을 전하기는 했어요.”

아내의 응원과 격려가 정치를 바꾸는 변곡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송 교수는 오 의원과 고교 시절 동갑내기로 만나 23세에 결혼했다. 앞서 그녀의 말처럼 주변에서 인정하는 ‘야무진 여자’다.

이번 일의 에피소드를 들춰내지 않더라도 부부 이전에 친구이자 진정한 동반자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남편의 지역구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정치는 남편의 몫이고, 자신도 학교 일에 정신없이 바쁘기 때문이라고. “불출마 선언을 한 지난 6일 저녁에야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고 전하면서 남편이 정치에 입문한 후 느끼던 회한도 숨기지 않았다.

“떠나는 마당에 말하는 게 어떨지 모르지만 정치가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갈라놓고, 합리적인 사람에게 설 땅을 주지 않은 채 회색분자로 몰아가려는 것이 가장 가슴 아팠어요. 앞으로 남편이 환경 공부를 한 뒤 시민운동을 했으면 해요.”

이런 구상은 오세훈 의원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해야 할 일을 남겨놓고 떠나는 것이라 아쉬움이 남는 것은 당연하다.

“정계 입문 초기에는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은 타협의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죠. 정치판은 ‘전쟁판’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에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타협과 대화의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들어왔는데 전혀 먹히지 않았어요. 이제 1년 정도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 환경 문제에 대해 공부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에요. 선진국의 선례를 보며 ‘경제 발전 과정과 환경 정책의 상관관계’ 등을 연구하려고 해요. 돌아오면 환경 전문 변호사로 활동할 것이고요.”

하지만 꼼수에 익숙한 정치인들마저 그의 진의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분석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번 불출마 선언의 배경이 차기 서울시장 직을 노리기 위한 사전 포석이란 얘기도 흘리고 있다.

“전혀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할 만한 상황은 있었죠. 지난 서울시장 선거 당시 캠프 대변인을 했는데,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지지율이 떨어질 때 내가 잠시 ‘러닝메이트’로 거론되기도 했어요. 물론 이회창 전 대표의 반대로 이 이야기는 없던 일이 되기는 했지만… 그후론 내가 무슨 일만 하면 ‘서울시장 이야기’가 따라 다녀요. 그래서 이후 계획까지 명확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내가 유학 가겠다고 밝혔고 진짜 나가는 지, 안 나가는지 두고 보면 알 테니까요.”

말 바꾸기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단호한 이야기에 서슬마저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사람들이 정치에 느끼는 환멸만큼이나 적낙심한 구석이 적지 않았다. 초선 의원들이 느끼는 통과의례일 수 있지만, 자식들이 아비가 국회의원이기에 느껴야 했던 가슴 아픈 순간들도 그의 결심에 자극제가 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둘째 딸 승원이(16)가 방에 틀어박혀 울고 있는 것을 아내가 보았다.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아빠가 창피하고 불쌍해서 운다”고 했단다. 학원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정치가 욕을 하며 ‘모두 쓸어서 한강에 처넣어야 할 족속들’이라고 열변을 토했다는 것. 아이의 아픈 가슴마냥 그의 가슴도 찢어졌을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속이 상했던 만큼 이번 불출마 선언이 과연 낡은 정치를 바꾸는 기폭제가 될까.

“바꿀 수 있다는 의지를 갖고 나를 던진 거예요. 물론 ‘정치인 한 명이 좌절하고 물러나는구나’ 정도로 평가 받을 것도 각오했었어요. 그런데 솔직히 이렇게 반향이 클 줄은 몰랐어요. 물갈이를 원하는 여론이 높다는 방증이라고 봐요. 결과적으로 내가 희망했던 것들이 더 빠른 시간 안에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정치권에 ‘내 탓 문화’ 만들고파

불출마 선언 이후, 여론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그는 일부 네티즌들이 ‘대통령으로 찍어주겠다’는 말을 전해 듣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기분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 주제를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이야기 듣고 정말 욕심내면 바보죠. 다만 앞으로 좀더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러나 해프닝이 되지 않으려면 결과가 있어야 한다. 정치권 주변의 평가는 이번 불출마선언이 최병렬 대표의 ‘물갈이 공천’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는 평이다. 그렇다면 최 대표의 리더십이 정치 개혁과 궤가 맞아야 하는 데, 이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이제는 최 대표의 의지를 믿어요. 최 대표 입장에서는 당연히 인적 쇄신해서 선거를 이기고 싶지 않어요. 하지만 사람을 쳐낸다는 것이 참 힘들잖아요. 선거철마다 공천을 하게 되면 난리가 나는 것을 봐도 이것이 얼마나 첨예한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물갈이 분위기를 만들어야 최대표가 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 최 대표가 우리 의견을 받아들이며 당내에서는 ‘소장파와 대표가 공모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호흡이 잘 맞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우리가 누구의 사주를 받고 한 일은 아니니까 주위에 비판에도 얘기할 명분이 있죠. 지금은 최 대표의 리더십을 믿고 지켜볼 뿐이에요. 최 대표의 역량과 의지에 따라 대폭 물갈이가 이뤄질 수 있다고 봐요.”

원래 생각이 다른 사람이 많고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의지의 표현이라도 무엇인가 이유를 대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정치권 안팎에서 이번 불출마선언에 대해 ‘책임정치를 회피하는 행동’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런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요. 예컨대 ‘일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남아 있으면서 고쳐야 한다’는 등의 비판을 들으면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도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결정을 내린 것은 나의 행동이 정치권 전반에 ‘내 탓이오’ 문화를 만드는 데 작은 계기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정치권의 개혁 중 가장 시급하게 바꾸어야 할 것이 무엇일까.

“거두절미하고, 국회의원의 특권을 없애야 해요. 모든 문제점이 국회원의 특권에서 비롯되거든요. 특권이 많다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그중 가장 문제가 큰 것이 국회의원 후원회제도에요. 후원회라는 명목 하에서 사실상 활동자금을 기업들로부터 무상으로 받아쓰거든요. 많이 받는 사람은 1년에 3억원까지 받아 쓰고 있어요. 이런 특권을 점차 없애 나가면 정말 사명감과 책임감, 업무능력을 지난 사람이 들어올 것 아닌가 생각해요.”

인터뷰 내내 10분 간격으로 울리는 휴대폰이 그가 요즘 정치권의 최대 화두임을 알 수 있었다. 이 탓인지 그는 피곤해 보였다. “불출마 선언을 하기 전에는 마음이 편하더니 막상 하고 나니까 기분이 좀 그렇다”며 주위에서 여러 말이 오고 가는 상황임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와중에 ‘미경연’(미래를 경영하는 연구 모임)에서 걸려온 전화에는 파안대소해 의아했다. 미경연은 판검사, 변호사, 전문 공무원, 기업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소속된 사교 모임이다. 이 모임의 회원이던 오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치인은 받지 않는다’는 내규 때문에 제적됐다.

“설마 자를까하면서 탈퇴서를 냈더니 그냥 접수하더라고요. 일언반구도 없이 그러니 좀 서운하더라고요. 출석 규정도 있어서 정말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한 모임이거든요. 그런데 모임에서 다시 참석해도 좋다고 알려주네요. 사실 그동안 모임에 나오지 못하게 해서 무척 섭섭했거든요.”

그의 티 없는 웃음만큼 우리 정치에도 환한 미소가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 강석봉 기자  사진 / 임재철,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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