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펴내고 무료급식소 설립 준비하는 백련사 설산 스님

소설 펴내고 무료급식소 설립 준비하는 백련사 설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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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나신에 글을 쓰는 장면 때문에 욕 많이 먹었어요”

설산 스님은 괴짜 스님으로 통한다. 20여 년간 무료로 영혼 결혼식을 해주고 있고, 4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이번에는 보살과의 관계에서 번뇌하는 수도승 이야기를 다룬 소설책도 펴냈다. 이런 다양한 활동 뒤에는 사람들과 함께 부딪히면서 살아가려는 스님의 포교 방식이 있었다.

테레사 수녀 보고 봉사 활동 시작

“모든 이들은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갑니다. 사람들이 스님 신분에 ‘알몸’ 이야기가 부끄럽지 않냐고 물어봐요. 하지만 제 철학을 알몸에 비유해 이야기하는 거니까, 전혀 거리낄 것이 없죠.(웃음)”

서울 홍은동에 있는 태고종 사찰 백련사에 있는 설산 스님(속명 이은흥)이 ‘알몸’에 관한 3부작을 펴낸 이유다. 시집 「알몸 이야기」와 수필집 「알몸」을 낸 후, 지난 12월에는 소설 「알몸 인연」을 펴냈다. 이 소설은 보살과의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번뇌하던 수도승이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알몸 인연」에는 특별한 선행이 숨어 있다. 바로 책 판매 이윤으로 무료급식소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설산 스님은 봉사 활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재나 화재 현장에는 꼭 나타난다는 ‘21세기한국사회봉사회’, 동사무소 추천받은 모범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천불장학회’ 등에 참여하고 있다.

“열아홉 살이 되던 1960년에 출가를 했어요. 당시에는 백련사가 충남 조치원에 있었는데, 책만 가지고 절로 들어갔죠. 집 안에 스님이 두 분이 계셔서 어릴 때부터 「천수경」을 외우고 다닐 정도로 불교와 친숙했어요. 자연스럽게 출가를 한거죠. 여러 사찰에 만행을 다니면서도 항상 봉사에 대한 생각을 품었어요. 그러다가 실행에 옮긴 것은 테레사 수녀님을 보고 나서죠.”

1981년, 마더 테레사의 한국 방문이 있었다.  가냘픈 몸으로 극진한 봉사 활동을 하는 테레사 수녀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때부터 마음속에 품었던 생각들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1982년에 ‘한국불교사회봉사회’를 조직, 여러 재난현장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단체가 21세기한국사회봉사회의 전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설산 스님을 유명하게 한 것은 무료로 ‘영혼 결혼식’을 해주는 것이다. 사람이 사모관대를 쓰지 못하고 죽으면 극락에 가지 못한다는 옛 이야기가 있다. 결혼하지 못하고 죽으면 가슴에 한이 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 죽은 자식에게 영혼 결혼식을 해주고 싶어하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여러 제약 때문에 일반인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영혼 결혼식을 쉽게 못 시키는 이유는 비용이 많이 들고, 중매쟁이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아무하고나 영혼 결혼식을 올리는 게 아니거든요. 산 사람보다 더 까다롭게 집안을 따질 정도예요. 20여 년간 무료로 4백여 쌍의 영혼 결혼식을 올렸어요.”

영혼 결혼식으로 많은 경험을 했지만, 15년 전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 날 몇 시까지 장례식장으로 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야기한 장소로 가보니 한 남자의 3일장이 끝나는 날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결혼 3일 전에 남자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 죽은 남자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서 있는 신부, 영혼 결혼식이 열리는 날이 원래 결혼식 날이라고 했다. 양가 친척의 눈물 속에서 영혼 결혼식을 치른 이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설산 스님은 20여 년째 돈이 없는 이들을 위해 ‘무료 결혼식’도 올려주고 있다.

“벽이나 화장대에 사진을 쭉 붙여놓던 때가 있었죠. 한 신도 집에 가서 사진을 보고 있는데, 유독 화장대 위에 놓인 결혼식 사진이 조금 이상한 거예요. 자세히 보니까 남의 결혼 사진에 자기 얼굴을 오려 붙인 거예요. 그 후 형편이 어렵거나 사정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무료 결혼식을 해주고 있어요.”

그동안 미국인 신부, 일본인 신랑 등 다양한 결혼식의 주례를 봤다. 결혼식을 올릴 당시 84세나 됐던 할아버지가 3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봉사 활동을 해왔지만, 지금은 ‘무료급식소’ 설립을 꿈꾸고 있다. 좀더 여유가 생긴다면 건물을 지어 무료 결혼식과 무료 급식소를 함께 운영하는 것이 스님의 소망이다. 혼자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다고 이야기한다.

설산 스님에게는 또 다른 직업(?)이 있다. 바로 ‘영화배우’. 영화배우협회 회원으로 정식 등록되어 있다. 흔히 사람들이 설산 스님을 ‘괴짜 스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영화에 스님이 출연한 것이 큰 사건은 아니지만, 설산 스님의 출연작들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한다. 처음 출연한 영화는 1984년 대종상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을 받은 ‘자녀목’(정진우 감독)이다.



“우연히 출연하게 됐어요. 정진우 감독이 장소 헌팅을 다니다가 백련사에 와서 저랑 차 한잔 마셨거든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그린 그림을 보고 출연해달라고 했어요. 글씨만 쓰는 역이라고 해서 출연을 결정했죠. 그 영화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길 줄은 전혀 몰랐어요.(웃음)”

지금까지 40여편 영화에 출연

설산 스님이 맡은 역은 여자의 나신에 「반야심경」 문구를 붓으로 쓰는 것이었다. 영화사 측에서는 그 장면이 담긴 사진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신자들은 물론 스님들까지도 비난을 펴부었다. 그 일이 있은 후 ‘B타임의 정사 1, 2, 3’ ‘내사랑 황진이’ 같은 에로 영화에도 출연했으니 ‘괴짜 스님’으로 불리는 게 당연.

“어떤 영화에서는 스님과 여배우의 섹스 장면도 있었죠.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바꾸지 않으면 출연하지 않겠다고 한 적도 있어요. 남들은 스님이 왜 그런 영화에 출연하냐고 하지만, 저는 ‘포교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누가 비난하든 말든 제 생각이 있으니까 그런 영화에도 출연했죠.”

한때는 영화에 스님 역할이 있으면 모두 설산 스님에게 섭외가 오기도 했다. ‘오세암’ ‘우담바라’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렇게 스님이 참여한 영화는 벌써 40여 편이나 된다. 하지만 요즘은 배우들도 삭발하는 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다 보니 섭외가 잘 오지 않는다며 웃는다.

설산 스님은 산사에서 혼자 수도하는 성직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다양한 이력 탓에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사찰을 벗어나 사람들과 함께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것이 ‘포교’라는 스님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2004년에는 사람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베푼다는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그러면 좋은 날이 꼭 올거라고 생각해요. 올곧게 살아야지요.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업에 따라 살아 가니까요.”

무료 급식소 설립 문의(303-0024)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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