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길영 상무의 그림 에세이는 그림을 보는 눈 맛만큼 몇 줄 문장 속에 삶의 진리를 얻게 하는 마력이 있다. 히트작을 양산하던 광고맨으로, 행복을 그려내던 화가로 살아온 한 남자의 세월 속에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을까?
남자의 눈물, 그 의미를 아시나요?

인생에 대한 계획은 물거품이다. 흠모하는 사람과의 연정은 깨지기 십상이고 이루고자 하는 꿈은 일장춘몽에 비할 바 아니다. 계획은 고사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도 버겁고, 내일에 여는 데는 힘에 부치게 마련. 그렇다면 인생은 아니 사느니 만 못한 다람쥐의 궤적일까.
하지만 아쉬움에 천착하기에 서글픈 것이고, 작은 기쁨에 인색하기에 낙망한 것일지도. 여기 인생의 성공에 연연치 않고 삶의 환락에 괘념치 않는 희한한 성공자가 있다. 동성제약의 윤길영 상무( ). 미대 출신으로 기업의 임원에 오른 전력이 남다를 법한데, 도무지 한 회사 외길 20년의 때라고는 찾을 수가 없다.
“기껏해야 술을 몇 잔 하는 정도니 광고나 홍보맨으로서는 ‘파이’죠. 임원이 됐으면 회사 입장에서 아랫사람들에게 칼부림도 해야 하는데, 도무지 적성에 안 맞아놔서… 그렇다고 서슬 퍼런 임원회의라고 부득불 핀잔 들으며 앉아 있는 타입이 아니라 곧잘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까지 하니….”
도무지 한 회사의 상무 자리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이지만, 리듬에 맞춰 읊조리면 음계가 입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갈색, 머~리’라는 카피 문고를 썼고, 중년이 넘어선 사람들의 속을 든든히 해주던 정로환의 광고 마케팅을 진행한 베테랑이라고 하면 생각은 달라진다.
그의 말대로 ‘저 사람은 저런 대로 이해해야 돼’라는 주위의 배려가 예술 지망생을 척박하지만 끈기 있는 직장인의 모습으로 바꾼 키워드가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다. 예민한 성격 탓에 멜랑콜리한 드라마에 눈물을 흘리는 팔불출이며, 온갖 사람들을 배려하느라 손해 보는 것이 팔자려니 생각하는 그에게서 어딘지 모를 인간다움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 그가 요사이 자신을 아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 에세이를 선보였다. 「나는 전생에 계집이었나 보다」(해누리)가 그것. 책 속에는 인생을 살아온 한 인간의 자전적 독백이 숨어 있고, 직장인의 고뇌어린 하얀 밤이 농익어 있으며, 또 다른 내일을 예비하는 예술인의 방황이 담겨있다.
“출퇴근에만 하루 평균 5~6시간을 소비한다. 이렇게 차를 몰며 길에 버리는 시간이 제일 아깝다. 운전중엔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음악을 듣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자는 5~6시간을 합치면 하루 중 반 이상을 허비한 셈이다. 잠자리에 들어 있는 동안은 죽은 목숨이나 별다를 게 없다. 나의 경우 많은 노력으로 5~6시간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굳이 8시간 이상 잘 필요가 없다. 할 일은 많은데 해는 서산에 기울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아는 까닭에 마음만 바쁘다. 이런 마음을 하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세월 빠르게 흘러간다.”
책의 한 면에 쓰여진 그의 단상은 직장인의 회한과 황혼에 기댄 고개 숙인 남자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 충분하다. 그의 말대로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그냥 서서 기다리지는 않을 모양이다. 그의 눈엔 가족에게 이미 통보했듯이 다가올 5~6년 후의 일상이 담겨 있다. 양평 어느 한적한 시골에 그리 돋보이지 않는 그냥저냥한 삶터 속에 무수히 책을 읽고 한없이 그림 그리는 백발의 조금은 후줄근한 촌부를.
그가 찾고자 하는 외로움은 그와 동반하는 몽달귀신인지 모른다. 어릴 적 어머니를 잃은 탓에 소년 시절은 물론 사춘기와 청년 시절을 보낸 그의 고독은 어쩌면 그가 사는 처세술이었는지도 모른다.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에 눈물 짓던 버릇도 엄마의 울타리에서 행복한 또래에 대한 무진장한 부러움이 수없이 적시던 베갯머리의 흔적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인지. 친우들과 만나서는 노는 데 한가락하는 ‘한량’으로 비쳐지던 그지만, 젊은 날 뭇 처녀와의 데이트 코스 중 극장 안에만 앉으면 봇물 터지는 눈물샘에 어찌할 줄 모르던 그의 모습이 오늘에도 여전히 투영되어 있다. 그가 이런 탓에 세 번째 엮어낸 책의 제목을 자신의 전생을 빗대 ‘계집’ 운운하는 언사를 서슴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
그 눈물이 여지껏 마르지 않은 것도 곤궁한 삶을 지탱하기 위해, 그리도 하고 싶은 미술을 뒤로하고 직장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울분이 여전히 끓어 넘쳤기 때문일 터.

“얘, 니 아빠 또 시작이다. 빨리 수건 대령해라”며 큰소리로 다져진 다 커버린 외아들을 부를 때면 그 민망함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상황을 만든다. 예술을 하는 감성이란 것이 가족을 안중에 두는 심정을 못가진 때문인지, 살가운 정 한번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탓에 여전히 어색한 것도 당연하다.
이제 책을 냈으니 또다시 개인전을 준비한다. 다시 붓을 잡기 시작한 지 10년. 그동안 갈증 때문인지 미술협회 일도 열심이었고 작품 활동도 쉼이 없었다. 이미 개인전 4회, 그룹전 50여 회를 돌파했으니 중견이란 말을 들을 때가 됐다. 오는 3월 24일부터 30일까지 노화랑에서 펼쳐질 예술가가 되지 못한 직장인의 오기가 사람들에게나마 사색의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안고 싶었던 우리 땅과 그리 치유하고 싶었던 우리 환경에 대한 독백들이 또다시 펼쳐질 날이기에.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남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친구가 있다. 남을 돕는 데 앞장서고, 중매 서고, 취직 알선해주고, 어려움에 빠진 딱한 사람의 빚 보증까지 서주고는 당하기 일쑤다. 자기가 무슨 수호천사라고…. 마치 남에게 헌신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그러다 보니 가정은 늘 뒷전이고 고통받고 피해받는 쪽은 오로지 그의 가족 몫이다. 타고난 천성에 함박눈보다 푸짐한 축복 있으라!”
주위를 돌아보는 것을 즐기는 그의 눈에 비친 어떤 이는 어쩌면 그의 내면 속에 있는 또 다른 자아인지 모른다. 전시회를 한다고 돈을 받고 팔 궁리를 하기보다는 누구 그림 필요한 이 없나 챙겨보는 그의 마음 씀이기에 그런 헌신의 공덕을 쌓는 이가 눈에 들어왔을 수도.
“막걸리 한 사발 값만 있어도 행복하다던 천상병 시인의 모습을 동경해요. 미술 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저는 행복에 겨운 편이죠. 돈 때문에 정말 그림을 사랑하면서도 전시회 한 번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순데, 전 그림을 그리는 행복과 전시회를 여는 포만감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에요.”
자신을 낮추고 주위를 우러르는 모습! 상무라는 직책이 주는 중압감을 조금도 허용치 않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 그렇게 살아가는 이의 피곤함은 차치하고 그렇게 살아온 이를 칭송할 뿐. 그런 그의 붓끝이 이어지는 한, 세상을 살리는 소돔과 고모라의 몇 안 되는 귀인의 폼새가 그에게서 사랑 바이러스가 되어 온 세상을 밝게 하길 바랄 뿐.
“부라보~ 부라보! 유어 라이프!”
글 / 강석봉 기자 사진 / 임재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