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 또라이’족의 유쾌한 족장, 제노프릭스 CEO 하영균

‘변종 또라이’족의 유쾌한 족장, 제노프릭스 CEO 하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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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물건’ 만들어서 더 즐거운 세상 만들고 싶습니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제노프릭스 하영균 사장을 만났을 때 문득, 몇 해 전 이목을 끌었던

모 이동통신사의 CF 카피가 떠올랐다. 청바지 차림에다 로커를 연상케 하는 긴 머리를 한 CEO.

‘변종 또라이’족의 족장을 자처하는 그에게선 한눈에도 뭔가 범상찮은 ‘이종(異種)’의 감이 왔다.

유쾌한 공작소의 엉뚱한 신인류 CEO

xeno [zenou-] : 외부의; 이종(異種)의

freak [frik] : 1. 이상 현상, 변칙, 일탈. 2 변종(變種) ; 진기한 구경거리, 괴물.

‘제노프릭스’는 두 단어를 조합해 만든 말이다. 풀이하자면 ‘변종 또라이’쯤 된다. 회사 이름치곤 좀 과격하다 싶지만, 사실 이 회사 사람들에게 이만큼 잘 어울리는 이름도 없다. 고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새로운 생명체’ 혹은 ‘새로운 인류’로 분류되고 싶다는 거예요. 종전의 시선과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신인류’가 돼보자는 뜻이죠. 그렇게 되면 세상이 더 재밌어질 거라고 믿거든요. 제노프릭스에서 만드는 물건들은 앞으로도 쭉 그런 취지를 담는 시리즈가 될 겁니다.”

제노프릭스는 한마디로 유쾌한 공작소다. 하영균 사장(43)은 그곳에서 새로운 종족의 ‘족장’을 자처한다. 하영균 사장의 창업 정신에 따라 제노프릭스의 첫 상품으로 만든 ‘픽스’라는 물건이 요즘 인기다.

외계에서 온 듯한 이 요상한 물건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디지털 액세서리다. 목걸이처럼 목에 걸거나 팔찌처럼 팔뚝에 찰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 범상찮아 보이는 물건의 또 다른 용도다. ‘자기 표현 극대화 장치’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픽스에는 시각적인 문자나 이미지를 담을 수 있다. 문자, 이미지, 이모티콘 등등 자신이 원하는 영상 콘텐츠를 담아 기분이나 성격을 표현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자그마한 개인 전광판을 달고 다니는 셈이다. 여러 개의 동영상을 저장하고 있다가 모든 동영상을 보여줄 수도 있고, 선택적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여줄 수도 있다.

또 사용자가 직접 컴퓨터에서 그린 이미지를 픽스에 직접 다운로드할 수도 있다. 현대인들의 고질병 중 하나인 심심증을 치료해줄 약이라는 뜻에서 패키지도 플라스틱 약병 모양이다. 심지어 그 약병에는 ‘복용시’ 주의사항까지 적어놓았다. 트렌드 리더에게 효험이 있는 처방이라는 건데, 피식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다.

홍대 앞 클럽 일대나 강남의 대형 포장마차에 가면 픽스를 단 젊은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포장마차 웨이터들은 픽스 안에 메뉴를 입력해서 달고 다니고, 홍대 앞 클러버들은 귀여운 캐릭터나 하트 등을 깜빡이면서 픽스를 이용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자기 표현을 중시하는 감각파 젊은이들 사이에서 픽스는 일종의 ‘고급 장난감’인 동시에 개성의 표현 방식이 되고 있다. 9만8천원이라는 다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현재 1천여 개 이상 팔려나간 상태다.

엉뚱한 발상의 아이디어 뱅크인 하 사장은 의외로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박사 출신이다. 연세대 기계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의 동경대학과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디자이너 김종철씨, 기술이사 채승훈씨 등 전 직원이 로보틱스에 정통한 재원들이다.

대학원 박사 과정 재학 시절인 87년부터 사업에 뛰어들었던 하 사장은 한때 연매출 1백억원대 벤처기업을 키우기도 했다. 당시 그는 모 벤처회사에서 게임 개발팀장으로 일했는데, IMF를 맞아 회사가 잘못되는 바람에 게임 개발팀을 해체하게 됐다. 제노프릭스의 디자이너와 기술이사는 당시 같은 회사에 있던 후배들. 그때도 이들은 엽기적인 아이디어와 튀는 발상으로 사내에서 ‘언더그라운드’적인 아이디어 뱅크로 통했다. ‘변종 또라이’다운 역전의 용사 3인이 제대로 뭉친 셈이다.

‘자기 표현 극대화 장치’ 픽스는 제노프릭스가 갖고 있는 무수한 아이디어 목록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들이 모인 처음 한 달 동안은 줄창 아이디어 회의만 했다. 말 그대로 브레인 스토밍 과정. 그때 나온 아이디어만 줄잡아 1천 개가 넘는다. 그 속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웃기는 물건’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셋이 모여 회의를 하면 아이디어가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 당분간 공식적인 아이디어 회의를 자제하고 있을 정도다.

“자기 표현의 극대화라는 것이 하나의 문화 트렌드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장신구에 콘텐츠 개념을 도입한 거죠. 콘텐츠가 장신구화 되면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것 같았어요. 투자상의 문제 때문에 규모가 큰 물건은 만들기 힘들지만, 이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데 가장 관심이 많습니다.”

하 사장은 어려서부터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공대에 진학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엉뚱한 발상 때문에 어려서부터 말썽도 많고 탈도 많았다. 초등학교 때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악동이었다. 그가 즐기던 장난 중 하나는 바로 ‘간판 바꿔치기’.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가게들의 간판과 표지를 뒤바꿔놓던 엉뚱한 아이였다. 중학교 때는 방 안에서 화약 실험(?)을 하다가 집을 홀라당 태워 먹을 뻔한 적도 있다.

화약을 직접 제조하고 그 효과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그만 방에 불이 붙은 것. 다행히 소방차가 와서 불을 껐지만 그의 방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그의 이런 개구쟁이 같은 기질은 고등학교 시절에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고2 때 한 선생님이 반장인 그에게 수업 시간마다 삼각 비닐로 포장된 커피우유를 책상에 갖다놓으라고 하셨단다. 그 선생님이 얄미워서 한번은 그 삼각 우유 모서리에 바늘로 살짝 구멍을 뚫었다. 그런 다음 빨대 곳곳에도 구멍을 뚫어놓았다.



이윽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고 우유를 마시려고 들었는데 당연히 뚫린 구멍으로 우유가 줄줄 흘렀다. 어서 마셔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선생님은 얼른 빨대를 꽂아 쪽쪽 빨기 시작했고 상황은 더 악화됐다.

빨대에 난 구멍 사이로 커피우유가 분수처럼 흩어졌던 것. 얼굴이 새빨개진 그 선생님은 그 길로 나가버렸고, 다시는 삼각 커피우유를 갖다놓지 않아도 됐다. 때로 그의 이런 개구쟁이 기질은 정의감과 결탁하여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학교 재단의 비리를 규탄하며 일종의 ‘쿠데타’를 모의했던 것. 주도면밀하게 조를 편성하고 행동강령까지 만들었다. 뜻 맞는 동지들과 거사일(?)을 기다렸건만, 쿠데타가 대부분 그렇듯 밀고자 때문에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고.

이전에 없었던 재밌고 새로운 것 추구

대학에 가서는 밴드 활동을 했다. 그가 몸담았던 밴드들은 ‘DDD’(디딤돌의 약자), ‘천둥번개 날벼락’ ‘정화조와 화장실’ 등등. 밴드에서 그는 베이스를 쳤는데, 포지션에 걸맞지 않게 무대매너가 어찌나 화려(?)하던지 그때 붙은 별명이 ‘날으는 베이스’였다고.

취직을 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대학 졸업 후 우연히 한 선배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 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가 대박을 내기도 했다. 독서실 회원 관리 시스템을 개발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건 아주 혁신적인 개념이었고 실제로 능률이 좋은 아이템이었다. 독서실에 바코드를 설치해 카드를 긁고 들어가면 한 달 동안 그 학생의 출입 내역이 모두 기록으로 남고, 총무실에서 조회해보면 비어 있는 자리가 한눈에 들어와서 단기간 이용자들에게 자리를 내줄 수도 있었다.

학생들에게는 일종의 족쇄였겠으나 학부모들에게는 그 시스템이 설치된 독서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아이템만 수백 개를 팔았고 그 덕분에 회사는 재미도 짭짤하게 봤다. 볼링장 자동 채점 시스템을 개발한 것도 그 무렵의 일. 스트라이크를 하면 채점기에서 탄성이 나오고 폭죽 터지는 비주얼도 나타나는 방식을 연구했다.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 6개월 동안 볼링장에서 살았는데 투자를 받지 못해 사장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는 볼링장엔 절대 가지 않는단다.

제노프릭스의 인터넷 홈페이지(www.xenofreks.com)에는 단골 접속자가 꽤 많다. 별종다운 부족장과 부족민들의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를 구경할 수 있기 때문. 홈페이지 항목 중 ‘프리키 아이디어’라는 코너가 특히 인기 만점이다. 항균 소재의 인공 근육으로 만든 혓바닥 모양의 세척기가 달린 ‘세계 최초의 소변기용 비데’, 홍채인식·지문인식 장치를 뛰어넘는 최첨단 ‘항문 인식 시스템’, 쭈그리고 앉아서 일을 보고 있으면 창 밖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도록 빙빙 돌아가는 원통형 화장실 등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적인 아이템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쯤 되면 이들이 정말 외계에서 온 무리들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 법하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인간관계잖아요. 사람 사이의 ‘끈’ ‘인연… 그런데 거기에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웃기는 물건’에 집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이왕 사는 거 세상을 좀더 재밌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물론 너무 가볍게만 가면 안 되겠죠.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전체적으로 너무 무겁고 심각해요. ‘웃기는 물건’ 몇 가지로 그렇게 가벼워질 정도는 아니죠. 재밌게, 즐겁게 살려는 노력들이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를 균형감 있게 만드는 시도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 과정이 제게는 소중하고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시간이기도 하죠. 앞으로도 더 재밌고 웃기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제 꿈입니다.”

글 / 박연정 기자  사진 / 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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