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한국 유기농 역사에 중요한 일을 해낸 이들이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 누구도 통과한 적이 없는 ‘국제 유기농 심사원 자격’을 따낸 한농복구회 이기송 부총재와 천경욱 심사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중 강원도 원주에서 유기농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천경욱 심사관에게 국제 유기농 심사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들어봤다.

‘유기농’의 사전적 의미는 ‘농약이나 화학 비료 따위를 쓰지 않고 동식물의 비료를 사용해 짓는 농사’다.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유기농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마련.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유기농을 실천한다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기’와 같다. 성공하기도 어렵고, 돈을 벌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먹고살기도 힘든데, 그것에 대한 연구가 쉬울 리 없다. 하지만 제대로 된 유기농을 실천하기 위해서 꼭 넘어야 할 산이 ‘국제 유기농 심사원 자격’ 취득이었다. 이 자격은 세계적으로도 유기농에 대한 전문성이 절실하게 요구됨에 따라 생겼다.
국제 유기농 심사원 교육을 하는 국제기구가 여럿 있지만, 두 사람이 자격을 취득한 곳은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IOIA(Independant Organic Inspectors Association, 독립 유기농 전문 심사원 협회)다. 이 협회에서 주관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양성된 전문 심사원들은 전세계적으로 3백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은 각국에서 유기농 인증기관의 전문 심사원이나 유기농 관련 단체·기관에서 전문임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격증을 따면 세계 어느 국가에 있는 유기농 인증기관이나 유기농 관련 기관·단체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

천경욱씨(41)가 자격을 취득하기까지는 두 달이 걸렸다. 미국 오리건 주 교육센터에서 경종(Check), 축산, 가공을 3일씩 교육받는다. 그리고 마지막 날 농장이나 가공 공장을 직접 방문해 심사원이 된 것처럼 질의와 심사를 해 보고서를 작성 제출한다. 다음날 4시간에 걸쳐 필기시험을 보고, 두 달간(원래 한 달 정도 심의기간이 걸린다)의 심의 후 합격 통지를 받았다고 한다.

이번 시험에는 국내 공무원 2명이 함께 응시했지만 떨어졌다. 그리고 지난 2001년에도 유기농 전문가 3명이 응시했다가 실패했다. 그만큼 자격 취득이 만만치 않은 일. 그는 현재 몸담고 있는 한농복구회에서 청년들을 교육하는 교육부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틈틈이 준비를 했다.
“합격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죠.(웃음) 하지만 막상 그곳에 가니까 한국에서 능통한 영어 실력에도 어려움이 있었죠. 재작년에 갔던 분들도 언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의 합격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과 중국에 지사를 가지고 있는 OCIA(국제유기농산물인증협회)에서 심사원으로 오라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이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유기농 관련 단체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천경욱씨는 한국 내에 국제 인증기관이 설립되면 거기에서 일하고 싶은 바람이 더 크다고 말한다.

천경욱씨는 원래 봉사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친구들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직장에 다닐 때 뜻이 맞는 젊은이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했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를 다니면서 버림받은 이웃을 위해 10여 년간 봉사 활동을 했다. 그러다 1994년 한농복구회가 설립될 때 창단 멤버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유기농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
한농복구회 필리핀 지부로 파견되어 5년 동안 농장을 개척하고, 필리핀 회원과 함께 유기농을 시작했다. 그때 라모스 대통령에게 최우수 영농단체로 표창을 받았고, 에스트라다 대통령 때도 최우수상을 받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이제는 유기농 관련 단체에서 천경욱씨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

천경욱씨의 이런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시대를 앞서가고,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활동하는 그의 발걸음에 이번 합격 소식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안전한 먹거리와 더 나은 인류의 삶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제공 / 한농복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