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은 시민운동가만 한다? 아니다. 관료도 한다. 할 수는 있겠지만 설마…. 정말 환경운동을 구 행정의 1순위로 여기는 구청장이 있다. 서초구 조남호 구청장이 그다. 산책 코스를 개발하고 산의 무분별한 훼손을 막기 위해 직접 땅을 매입하는 트러스트 운동까지 벌인다. 별난 구청장, 아니 정말 멋진 남자 조남호 구청장을 만나봤다.

환경은 생명이다. 생명을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를 살리는 일임에도 개발 공약에 치이고 우선 순위에 밀려난다. 지금까지 우리의 정책은 그러했다. 더군다나 중앙집권에서 지방자치로 행정 체계가 바뀌면서 ‘난개발’로 대별되는 제멋대로 개발이 우리 환경을 최악으로 ‘리미트’시키고 있다.
우리의 산은 천공되고 관통되면서 치유 불가능의 장애를 입었고, 우리 하천은 각종 오염과 개발로 동맥경화 증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개발 이익은 한때의 편의가 될 뿐, 영원으로 이어져야할 생명들에게 불치의 한만 남기고 있다.
이런 때, 환경과 생명을 구 행정에 연결시킨 지방자치의 수장이 있다. 조남호 서초구청장이 그다. 특별시에서도 잘 사는 구로 손꼽히는 그곳에서는 개발 정책보다는 환경 정책을 우선시한다.
“아일랜드의 더블린과 같은 주민 건강형 워킹코스(Walking Course)를 개발하려고요. 한마디로 구청이 주민들에게 건강을 파는 회사로 여겨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한강과 우면산, 예술의 전당 등 관내 산과 강, 역사 문화 명소를 연결하는 ‘워킹프로젝트’를 3월 시작했습니다. 워킹 프로젝트를 내실 있게 추진해 올해를 건강 원년의 해로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이런 사업은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 서울 서초구에서 처음 개발되고 시행되는 것이다. 조성되는 걷기 코스는 ▲서초구 전역을 관통하는 중·장거리 코스(4∼8㎞) ▲동 단위의 단거리 생활형 코스(2∼3㎞) 18곳 ▲주요 문화유적지를 잇는 역사 문화 탐방코스(15㎞) 1곳 등 모두 24개 코스로 돼 있다.
구는 코스의 노면을 우레탄 등 탄성제 포장제로 교체해 걸을 때 무릎·허리의 부담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코스마다 맨발로 걷는 거리 등 테마구간도 조성된다. 버려지는 전력 케이블 포장 바닥판을 보도에 설치해 방향, 위치, 거리, 소요 시간 등을 써 넣을 예정이다. 도중에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나무 벤치 등 시설물을 곳곳에 설치할 것이다.
구는 주민은 물론 교육청과 기타 관공서,기업체 등의 걷기 프로그램 참여를 유도하는 한편 학생들이 역사 탐방로를 걸은 후 탁본을 제출하면 도서·문화상품권이나 기념 배지 등을 지급하기로 했다. 만 65세 이상 노인들이 걷기 프로그램에 참가할 경우, 만보기를 나눠주고 구 보건소에서 실시 중인 건강 진단과 치아 관리 등도 받을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왜 구청장이 직접 나서서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행정기관이 구심점이 되어야 주민들도 신뢰감을 갖고 동참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개발 이익을 목적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이를 복원하기 위해 다시 재원을 투자하는 모순이 이어지고 있어요. 앞으로 자연 경관을 훼손하는 어떠한 개발 행위도 주민과 힘을 모아 대처할 작정입니다. 자연을 보전하는 일은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먼저 생각할 일이거든요. 이는 곧 지역 사랑이며 국가를 위해 우리 가 행해야 할 의무인 거죠.”
지역 주민과 단체, 기업체 인사 등과 함께 이미 ‘우면산 트러스트 창립준비위원회’를 발족했고, 지금은 우면산 땅 매입을 위한 기금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말만 거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도 다부지게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위원회는 기금이 모이면 우선 개발업자들이 아파트 건립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우면산 자락(남부순환도로 예술의 전당~서울시교육원 입구)의 도로와 접한 약 9천 평 규모의 땅을 매입할 작정이다. 산자락에 아파트를 지으려면 도로 주변을 진입로로 확보해야 하므로 미리 이 일대의 땅을 매입하면 진입로 확보가 어려워 아파트 등 대형 건물의 신축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이 운동에는 창립준비위원회 공동상임대표인 송정숙(전 보사부 장관)·김기수(전 검찰 총장)·유상옥(코리아나화장품 회장)씨를 비롯해 재계와 학계, 종교계, 언론계 지도자 19명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회원은 700명에 이른다. 이 운동이 성과를 거두면 초등학교 아이들이 30분만 걸으면 소풍 장소인 우면산에 도착할 수 있고, 새소리가 들리는 숲속에서 가재도 잡을 수 있게 된다.
건강한 구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여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병원의 사각 시간대를 보건센터를 이용해 야간진료센터로 만들었다. 적어도 서초구에서는 동네 병원문이 닫힌 시간, 아이 몸이 불덩어리가 됐을 때 전전긍긍하는 부모들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지난해 3월 개설됐는데, 진료 사각 시간대인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운영되고 있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서초보건소는 외국인 노동자 진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동포를 비롯해, 필리핀·방글라데시·말레이시아·베트남 등지에서 온 노동자들이 이용하고 있다. 일요일 오후 2∼5시에 운영되며 매주 80여 명이 무료 진료를 받고 있다.
이런 관심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초구청장으로 새롭게 벌인 일 중 하나가 서초구 내에 프랑스 마을인 서래마을을 조성한 것이다. 한불정보센터를 설치한 것은 물론 등산 프로그램, 프랑스 영화제, 불어 강좌를 진행해 프랑스인과 서초구민 간의 교류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이런 점이 인정되어서인지 프랑수아 데스쿠엣 주한 프랑스 대사로부터 그 나라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레지옹 도뇌르’는 1802년 나폴레옹 1세가 제정한 것으로 국가에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이다.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조남호 서초구청장을 ‘우리 프랑스 마을의 시장님’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최초와 최선의 구 행정은 오비이락(烏飛梨落)의 횡재는 아니다. 구청이 주식회사로 거듭나려는 노력은 행정의 중심을 구청장이나 간부가 아닌 구민으로 환원하려는 21세기 시민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글 / 강석봉 기자 사진 / 전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