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국회의원 도전해 낙선한 민노당 비례대표 후보 이주희

최연소 국회의원 도전해 낙선한 민노당 비례대표 후보 이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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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이 원내에 진입했으니 만족합니다. 이젠 출마하지 않을 거예요”

모두들 이주희가 국회로 진출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불과 2 %의 득표율 부족으로 국회 진출 문턱에서 돌아서야 했다. 만일 그녀가 국회의원이 된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을 것이다. 그녀가 17대 총선에서 보고 배운 정치, 아쉽게 물러나야 했던 낙선의 변.

“나이 어려 자원봉사자로 알더라고요”

너무나 아쉬운 날이었다. 그녀를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남겼다. 모두들 ‘될 것이다’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5일 17대 총선 투표일. 투표 마감과 함께 개표가 시작되자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한쪽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졌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숨과 탄식이 쏟아졌다. 헌정사상 50여 년 만에 진보정당으로 원내에 진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던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중앙당사는 후끈 달아올랐다.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나온 수많은 취재진들로 당사가 북적거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출입기자가 모 신문사 기자 달랑 한 명인 상황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민노당 당사 앞에 설치된 대형 TV 앞에는 젊은 당원들이 모여서 개표 방송을 지켜봤다. 민노당 후보 중 권영길, 조승수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당사 바깥에서는 축포가 터지기 시작했다. 당사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당원과 후보들 역시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민노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이 높아지면서 이주희 후보(26)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그녀의 원내 진출이 확정되면 지난 195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세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50년 만에 새로운 ‘챔피언’이 등극하는 것이다. 게다가 서울대학교 지구과학 교육과를 휴학 중인 학생이라는 신분이 더욱 이목을 끌었다. 그날 기자들은 당선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당선 소감을 미리 물어보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그녀는 “당선이 확정된 후에 소감을 말하겠습니다”고 배수진을 치기도 했다. 시시각각 당락이 엇갈리는 개표 방송을 지켜보면서도 의연했다. 그녀는 총선 투표 당일에도 딕 체니 미국 부통령 방한을 반대하는 집회에 다녀왔을 정도다.

“민노당이 국회에 입성하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진보정당이 의회에 진출하는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민노당의 진출을 원했고, 도움을 주셨어요. 이번 총선은 그래서 중요했고, 그것을 이루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지난 2월, 이주현 후보가 민노당 비례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젊은이의 ‘객기’쯤으로 치부했다. 어떤 이들은 “지역구에 도전해야지, 왜 비례대표에 출마하는지 모르겠다”며 비꼬기도 했다. 하지만 3월 경선에서 대학생 당원들의 지지로 비례대표 9번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때부터 그녀의 당선 가능성 여부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선거운동이 본격화되자, 밤 10시나 돼야 끝나는 힘든 스케줄을 견디며 전국 캠퍼스를 누볐다.



“저에게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은 이유를 많이 물어봐요. 저는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제 지역구는 학교라고 생각해요.(웃음) 제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출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지역구 의원에 도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녀는 선거운동 중 나이가 어려서 겪은 에피소드 하나. 어깨 띠를 메고 전국 투어를 다니며 후보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때 챙 모자를 쓴 아주머니들이 그녀의 사진을 찍으면서 “명백한 불법선거다.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비례대표 후보는 커녕 선거운동을 돕는 자원봉사자쯤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그런 일은 반복됐고, 민노당의 인기가 올라가자 선거법 위반을 감시하는 눈이 많아지면서 더욱 잦아졌다.

“나이에 대한 편견 때문에 고생한 것보다는,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더 컸습니다. 앞으로 사회는 젊은이가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일 제가 이번에 국회의원이 되었다면 제가 출발점이자 통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젊은 국회의원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약자 도와주고 싶어서 국회의원에 도전

개표율이 높아질수록 그녀의 당선 여부가 불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민노당이 11석 이상을 얻을 것이라는 방송사의 출구조사가 예측을빗나간 것이다. 결론적으로 민노당은 지역구 의원 2명과 비례대표 8명이 당선됐다. 그녀가 당선되려면 2% 의 비례대표 득표율을 더 얻어야 했다. 민노당이나 그녀에게나 아쉬움이 남은 결과였다. 그러나 그녀는 결과에 승복하면서 그녀를 도와준 선거 캠프 자원봉사자에게 고마워했다.

“직업 구하는 것도 뒤로 미루고, 선거운동을 도와준 선배들이 너무 고마워요. 햇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열악한 사무실이었는데, 제 일처럼 너무나 열심히 도와줬거든요. 그리고 진보정당을 지지해준 전국 학생 당원들에게 너무나 감사합니다.”

선거운동 중에 만난 지지자들도 그녀의 기억에 각인됐다. 특히 울산에서 만난 한 노동자에 대한 기억은 지울 수 없다. 유세 지원 차 시장을 도는데,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다리를 저는 그를 만났다. 낮이었는데도 술을 먹었는지 얼굴이 불콰했다. 손을 덥석 잡으면서 “민노당을 너무나 좋아한다.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해 눈물을 흘릴 뻔했다. 왜 이렇게 힘들게 뛰어다녀야 하는지 그 이유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읽었던 동화 「인어공주」.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본 「인어공주」를 접하고는 너무 마음이 아파 책장에 꽂을 때는 그 책을 제목이 보이지 않게 꽂아놓았다. 착한 사람에게 닥친 비극이 어린 주희에게를 상처를 준 것이다.

결혼하면 아이를 5명 정도 입양해서 키우고 싶다. 물론, 남편이 될 사람은 그것을 이해해줘야 한다. 사람에 대한 연민이 결혼에 대한 꿈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다.

“아주 잠깐 대통령이 되고 싶은 적이 있었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 길을 찾다가 그런 꿈을 갖게 됐죠.(웃음) 그 이후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저에게 국회의원은 100m이상 떨어져서 걸어가고 싶은 사람들이었죠. 이번 국회의원 출마도 세상의 약자를 돕고 싶어서였습니다. 당선이 됐다고 해도 저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웃음)”

1남 2녀 중 장녀인 이주희씨. 앞으로 졸업까지 3학기를 남겨둔 그녀는 가을 학기에 복학을 할 예정이다. 어쩌면 국회의원 이주희의 모습을 보기는 힘들 듯하다. 앞으로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 하지만, 강자보다는 약자를 위해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은 변치 않고 계속될 것이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임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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