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티네 쇼콜라’ 디자이너 카트린느 팡방

유인경기자가 만난 사람(5)

‘타티네 쇼콜라’ 디자이너 카트린느 팡방

댓글 공유하기
“고마워요, 마담 팡방, 덕분에 수술비 굳었어요.”

쉰여섯 나이에 참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상처투성이의 작은 손, 웃을 때마다 포물선을 그리며 순식간에 온 얼굴에 퍼지는 주름살. 이혼과 피랍, 그리고 암투병… 보통 사람은 한 번 겪기도 힘든 불행을 지나왔으면서도 그녀는 다섯 자녀와 아홉 명의 손주를 거느린 할머니로 곱게 나이 드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자연스러움 속에 깃든 팡방의 재능과 아름다움에 매료된 오후.

참 신기한 일이다. 그는 프랑스 사람이고 영어로 이야기하는데도, 마치 우리 동네 아줌마와 수다 떠는 것처럼 편하다.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에 염색을 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반찍이는 은발. 이것저것 메모가 가득한 낡은 수첩에서 연신 자기 손주들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얘가 큰아들 손주고, 이 아이는 딸아이의 손녀고…”라며 설명하고, 스크랩을 펼쳐서는 “이건 프랑스 인테리어 잡지에 실린 우리 집이고, 이건 스페인 신문인데 날 톱기사로 다뤄줬고…”라며 마치 처음 매스컴에 소개되는 사람처럼 자랑을 한다.

그는 ‘아동복의 샤넬’이라고 불리며 프랑스를 비롯해 전세계 30개국에서 팔리는 세계적인 아동복 `타티네 쇼콜라를 만드는 회사의 사장이자 디자이너이며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훈장까지 받은 명사다. 본국인 프랑스는 물론 미국, 몽골 등에도 집이 있고 그림 같은 성과 호텔도 있는 부자다.

굳이 거만을 떨지 않아도 주눅이 들 만한 조건인데, 처음 만난 사람도 아주 오랜 친구인 듯 편안히 대하고, 누구든 무장해제를 시키는 사람. 그는 카트린느 팡방이다. 그는 최근 한국의 보령제약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사업상 한국을 수차례 방문했다.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난 이 쉰여섯 살 아줌마한테 감동 먹었다. 하루는 자기 친구라며 한국 아줌마를 소개했다. 패션계 인사가 아니라 너무 평범한 사람이어서 어떤 사이냐고 물었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했다.

“남산 산책을 하다가 길을 잃어서 물어봤죠. 그런데 이 아줌마가 불어는커녕 영어를 전혀 못하는데도 손짓 발짓으로 뜻을 해석하곤 내 손을 잡고 데려다줬어요. 그래서 같이 식사를 했답니다. 말은 안 통하는데 뜻은 통해요. 이 정도면 친구 사이 아닌가요?”

항상 유쾌한 표정이지만 그의 삶은 드라마틱하다. 지금은 이자벨 아자니, 제라르 드 파르디유 등 톱스타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각 나라의 인테리어 잡지 화보를 장식할 만큼 멋진 집에 살며 그의 성공담이 화제가 되지만 그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눈썰미와 손재주가 뛰어나 아홉 살 때부터 조개로 인형을 만들어 팔 정도였단다. 이성에도 일찍 눈을 떠 열여섯 살에 덜컥 임신을 하는 바람에 곧바로 결혼한 그는 20대 초반에 이미 세 아이의 엄마였다. 폭력을 일삼는 남편은 밖에서도 사고를 쳐서 수시로 감옥을 드나들었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 꾹꾹 참으며 메모 패드, 에이프런 등 생활용품을 만들어 성공을 거두고 회사도 만들었다. 하지만 남편의 폭력과 횡포를 견디다 못해 결혼 10년 만에 이혼을 결심한 그는 모든 재산을 남편에게 던져주고 아이들과 함께 스페인을 거쳐 미국으로 간다.

“자연 속에 파묻혀 생활하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렸어요. 미국 생활은 제게 아주 유익하고 보람 있었어요. 아침마다 신문과 사전을 펴놓고 영어 공부도 하고, 하루 종일 세 아이들과 지내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답니다.”

남편도 재산도 다 버리고 도망간 미국 생활. 그러나 세 아이에게만 온전히 모든 사랑과 시간을 투자한 덕분에 그는 제2의 삶을 시작하며 부와 명성을 얻을 기회를 얻었다. 너무 귀엽고 천진난만한 아이들… 아이들을 위한 예쁘고 아름답고 또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옷은 없을까? 왜 어른들은 모피 코트다 뭐다 값비싼 옷을 척척 사서 입으면서 애들은 아무렇게나 입힐까? 아이들 옷도 고급스럽게 만들면 어떨까.

그런 생각에서 탄생한 것이 타티네 쇼콜라다. ‘버터빵과 초콜릿’이란 뜻으로 엄마가 따스하고 달콤한 간식을 아이에게 만들어주며 품에 꼭 안아보는 느낌을 전해주는 이름이다. 파스텔 톤의 빛깔에 고급스러운 소재, 단순하면서도 귀여운 장식이 있는 쇼콜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 두 명의 아이를 더 낳았고, 이미 커버린 아이들은 재빨리 결혼해 또 손주들을 낳았다.

그는 스물다섯에서 마흔 살까지의 아이 다섯, 열다섯 살에서 한 살까지의 손주 아홉이 있다. 아이들이 그에게 새로운 일을 주었다면, 손주들은 끝없는 영감을 주고 에너지를 준다. 쇼콜라의 모든 카탈로그 모델은 그의 손주들이다. 할머니가 디자인하고 만든 옷을 입고 손주들은 멋진 곳에 가서 즐겁게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든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그의 성공 뒤엔 눈물, 고통, 한숨도 따랐다. 부자란 이유로 돈을 노린 사람들에게 납치된 적도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에도 그는 담담했단다.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고, 그저 유괴 영화를 본 이야기를 하듯 “전에 내가 납치되었을 때는…”라고 유쾌하게 말한다.

두 번이나 암에도 걸렸다. 자궁암과 위암. 처음 암이 발견됐을 때 그는 특유의 낙천성으로 시골로 떠났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지내며 투병 생활을 하기 위해서였다. 낡은 성을 산 그는 1초도 가만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성 주변의 나무를 베고 직접 돌을 나르며 공사를 했다.

“내가 자기한테 신경 안 쓰고 너무 열심히 일만 하니까 암세포가 심심했는지 사라졌어요. 자연과 편안한 마음처럼 좋은 치료법은 없다우.”

그 다음에 암이 발견되었을 땐 좀더 먼 곳, 몽골로 떠났다. 그곳의 더 강한 자연과 벗하며 그는 몽골의 가난하고 병든 아이들을 만났다. 그래서 그곳에 병원을 세우고 지금까지 지원을 하고 있다.

그의 가장 큰 아름다움과 재능은 자연스러움이다. 그의 집에도 오브락이란 시골의 호텔에도 값비싼 가구나 명품은 없다. 나무, 돌, 물… 그저 자연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고 그가 직접 디자인한 옷감들로 소파며 커튼 등을 만들었다. 그는 아이들 옷만이 아니라 가구, 생활용품, 향수까지 만드는데 그것의 컨셉트 역시 자연스러움이다.

최근 그는 온 가족을 이끌고 쁘와뚜 지방의 성에 정착했다. 그가 직접 꾸민 그곳에는 아이들을 위한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방이 있고 공동 침실도 있다. 친남매, 혹은 사촌끼리 서로 웃고 떠들며 행복해하는 손주들, 그들을 바라보는 그의 사랑이 바로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옷차림이나 얼굴 역시 자연스럽기만 하다. 물론 돈이 많고 안목도 있어서 샤넬, 아르마니 등의 명품도 입지만 그게 명품이어서가 아니라 마음에 들어서 고른 것일 뿐이다. 어느날은 하얀 셔츠의 소맷단에 예쁜 리본을 커프스 버튼처럼 장식했다. 자세히 보니 유명 보석상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그 브랜드에서 옷도 나오냐고 물으니까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냥 포장을 뜯고 난 리본이 예뻐서 묶어본 거예요. 재미있잖아요. 재미가 없으면 뭐 하러 살아요? 항상 꿈과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내가 사는 이유예요.”

로션 정도만 가볍게 바른 얼굴에는 그가 웃을 때마다 나이테처럼 자연스럽게 주름이 잡힌다. 바늘에 찔리고 칼에 밴 상처가 가득한 그의 작은 손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이 들어 자꾸 처지는 얼굴 때문에 신경이 쓰여 보톡스 주사라도 맞아볼까 잔머리를 굴렸던 나는 그냥 이대로 살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의 멋진 주름은 그 어떤 훈장보다 멋져 보였고, 나이든 여성에겐 자연스러움처럼 멋진 액세서리가 없다는 것을 그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마담 팡방. 덕분에 수술비 굳었어요.

Profile

경향신문사 여성팀 부장인 유인경 기자는  MBC-TV

‘아주 특별한 아침’,KBS 2FM 대행진 ‘해피 먼데이’ 등에 고정 출연중이다.

KBS-1TV ‘아침마당’, ‘100인 토론’ 등의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으며

인간미 넘치는 입담으로 꽤 많은 아줌마 팬들로부터 환호를 받고 있다.

물론 아저씨 팬들도 많다.

글 / 유인경(경향신문 여성팀 부장)  사진 / 전영기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