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울며 써 내려간 최인호의 사모곡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울며 써 내려간 최인호의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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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입니다”

얼마 전 최인호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책을 냈다. 그동안 「별들의 고향」 「길없는 길」 「상도」 등 선 굵은 소설을 써온 작가이기에, 편안한 책을 냈다는 것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돌아가신지 20여 년이나 지났지만, 책을 쓰면서 어머니 생각에 눈물 흘린 날이 많았단다. 작가 최인호의 가슴 깊이 남아 있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따라가본다.

기억 하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어머니가 미국에서 보내온 편지

‘다해(다혜) 엄마에게. 두 번 편지 잘 바다보앗다. 너의 두 내위(외)도 잘 잇고 우리 귀여운 다해 경재(아들의 이름은 성재였다)도 잘 논다니 뭇어(무엇)보다도 깁뿐이리로다(기쁜 일이다). 이곳 여러분도 잘 지내고 영호도 잘 잇다.’

미국에 사는 자식을 방문하러 갔을 때, 한국으로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최인호(59)의 어머니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는 책을 준비하면서 아내가 찾아온 이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마치 암호문처럼 맞춤법도 요상하고(?) 무슨 이야기인지 한참을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편지. 30년이나 지난 편지지만, 이번에 다시 읽었을 때는 슬픔에 울어야만 했다. 한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분이 언어도 다른 미국에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그때 외로웠겠죠. 그래서 답장을 보내라고도 했을 것 같고. 하지만 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는 ‘이 노친네가 또 관심 끌려고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김수환 추기경님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 말을 이해하겠어요. 당시에는 머리로 편지를 읽었는데, 30년 만에 다시 찾았을 때는 가슴으로 느낀 거죠.”

기억 두울! 어머니가 30년 이상 사용한 묵주

최인호가 아끼던 어머니의 유품 중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 묵주다. 어머니가 영세를 받을 때부터 30년 이상 사용해 손때가 묻은 묵주를 한시라도 몸에서 떨어뜨린 적이 없었다. 외출할 때도 호주머니 속에 있었고, 잠을 잘 때도 머리맡에 묵주를 놓아둘 정도였다. 그 묵주를 잃어버린 적이 두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운명처럼 다시 찾았다. 하지만 그날은 묵주를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묵주를 잃어버린 것이 가슴에 많이 남아요. 묵주를 잃어버린 날, 빠뜨렸을 만한 곳을 돌면서 많이 울었어요. 쉰 살이 넘은 제가 묵주 하나 때문에 운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겠지만, 당시에는 절실했거든요.”

10년 동안 몸에 지녀온 어머니의 묵주. 소중한 것이지만, 어머니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잃어버린 후 고통스러워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때닫고 나서야 묵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머니의 묵주 대신 신부님이 주신 묵주를 손에 들고 잠을 잔다고.

기억 세엣! 단짝 친구에게 어머니를 ‘할머니’라고 속였던 아픔

최인호가 나온 초등학교는 치맛바람이 거셌던 덕수초등학교. 어머니는 서른일곱에 그를 낳았고, 마흔에 동생을 낳았다. 친구 어머니들은 화장도 예쁘게 하고 학교에 오지만, 어머니는 항상 쥐색 두루마기 차림이었다. 친구 어머니들보다 나이가 많다 보니 할머니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 수업 참관일에 어머니가 쥐색 두루마기를 입고 오셨어요. 그때 제 짝이 어머니를 보고 ‘할머니야? 아니면 엄마야?’라고 물어보더라구요. 친구 어머니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니까 그런 소리가 나왔겠죠. 저는 그때 거짓말을 했어요. 우리 할머니라고.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어머니한테 정말 미안하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접으며

처음엔 어머니에 대한 책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어머니에 대한 책은 쓰기에도 편안하고 읽기도 좋을테지만, 책을 쓰는 것이 어머니를 파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미루고 미뤘던 것이다. 여성에 대한 미안함을 이 책으로 달래보고 싶어서다.

“저는 가족의 중심은 어머니라고 생각해요. 모성을 잃어버리면 많은 것이 붕괴될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머니에 대한 것은 쉬운 이야기였어요. 걱정 많이 했죠. 너무 뻔한 것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요. 교정을 본 후에 보니까 꽤 괜찮아요. 굉장히 쉬운 언어로 썼지만, 그게 오히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최인호의 이번 작품은 그의 말처럼 읽기 쉽다. 하지만 읽다 보면 쉽게 빠져든다. 마치 독자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어머니에 대한 뜨거운 ‘후회’와 ‘사랑’에 관한 보고서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지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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