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대1의 경쟁률 뚫고 뮤지컬 ‘미녀와 야수’의 야수된 현광원

500대1의 경쟁률 뚫고 뮤지컬 ‘미녀와 야수’의 야수된 현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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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kg짜리 의상 입고 무대 위를 뛰어야 하는데… 하지만 자신있습니다”

그의 눈은 깊다. 누군가 ‘눈 값을 할 인물’이라고 한 예상이 맞아들었다. 고독과 슬픔을 눈으로 표현해야 하는 뮤지컬 ‘미녀와 야수’의 ‘비스트’ 역할에 잘 어울리는 눈빛 같다. 2004년 한국 공연계 최고의 화제작인 ‘미녀와 야수’.

고뇌와 슬픔을 벗어던지고 아름다운 왕자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야수 현광원의 눈빛은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비스트’ 역할 위해 로마에서 날아온 멋진 사나이

어릴 때부터 왕자와 공주는 잘생기고 예뻐야만 하는 줄 알았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공주를 키스로 깨우는 왕자, 구두 한 짝을 잃어버린 것이 인연이 되어 멋진 왕자와 결혼하는 공주. 이런 동화를 읽고 사람들은 꿈을 키운다. 그 꿈속에서 마법이나 어려움에 처한 예쁜 공주를 구해주는 왕자는 변하지 않는 공식이었다.

그런데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이런 상식을 깼다. 마법에 걸린 사람은 공주가 아닌 왕자였고, 그 왕자는 잘생기기는 커녕 무섭고 흉측한 모습의 야수였다. 고난과 어려움에 빠진 것은 오히려 왕자였고, 공주는 씩씩하기만 했다.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는 정형화된 동화의 틀을 깨버렸다. 이 애니메이션은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뮤지컬 ‘미녀와 야수’ 역시 전세계 20여 개의 도시에서 상연됐다. 뮤지컬에서도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주제곡 ‘Beauty and the Beast’를 부르는 미세스 폿츠(주전자), 섹시한 바베트(총채), 호기심 많은 소년 칩(찻잔) 등이 벌이는 신나는 만찬이 펼쳐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벨과 비스트다.

지난해 11월, 뮤지컬 ‘미녀와 야수’에 참가할 배우들을 뽑는 오디션에는 5백여 명이 몰렸다. 지원자들의 이력도 화려해 뮤지컬 배우부터 연극, 영화, 성악, 무용 전공자까지 각양각색이었다. 덕분에 벨과 비스트 역은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고 한다. 많은 지원자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은 주인공 벨은 서울예술단 출신의 배우 조정은, 비스트는 성악의 본고장 로마에서 활동중인 성악가 현광원(36)으로 결정됐다. 특히 뮤지컬을 하기 위해 로마에서 건너온 현광원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는 사람 소개로 극단 현대극장의 뮤지컬 ‘팔만대장경’에서 ‘비수’역을 맡았어요. 99년부터 세계를 돌면서 문화사절단 역할을 하는 작품이죠. 공연 때만 잠깐잠깐 서울에 들어오는데, 지난해 모스크바 공연 때 ‘미녀와 야수’ 오디션 소식을 접했어요. 비스트 역할의 조건을 보니까 딱 느낌이 오더라구요.”

애니메이션을 본 이들은 예상하겠지만 비스트 역할을 맡은 배우는 무엇보다 체력이 뛰어나야 한다.

6m가 넘는 꼬리와 가발, 9kg의 의상을 입고 분장을 한 상태에서 상상 속의 야수처럼 무대를 민첩하게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배역보다 에너지 소모가 극심할 것은 당연한 일. 비스트가 소화해야 할 노래 역시 어렵기로 유명하다. 오디션을 담당했던 디즈니 오리지널 크리에이티브 팀은 ‘정통 클래식 트레이닝을 거쳐 바리톤에서 정확한 F음정을 구사’하는 것을 비스트 역할의 기본으로 요구했는데, “현광원은 무엇보다 탄탄한 성악 발성이 중요한 비스트 역에 더할 나위 없는 연기자”라고 평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첫 오디션 때부터 그가 비스트 역에 낙점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원서를 내고 로마에서 ‘미녀와 야수’ 노래를 연습하고 있는데 기획사에서 메일이 왔어요. 뮤지컬 오디션만을 위해 한국에 들어올 것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하라는 내용이었죠. 기획사측에서도 오디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로마에서 서울로 와야 하는 제가 부담스러웠나 봐요. 아내도 다시 한번 생각하라고 하고…. 많이 고민하고 결정했어요. 우리 가족이 서울에서 한 달 동안 쓴 돈이 천만원이 넘어요. 그만큼 서울에 오는 것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죠.(웃음)”

지금 현광원은 서울의 친구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오랜만에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이라 서울에 도착한 후 이틀간은 해방감(?)을 맞봤다고. 하지만 지금은 무척 불편하고 쓸쓸하단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아내가 한국에 들어올 상황이 아니어서 당분간 혼자 지내야 한다고. 곧 총연습이 시작되면 쓸쓸함은 덜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전체 연습은 6월 14일부터 시작돼요. 공연이 시작이 8월 8일이니까 연습시간이 두 달 정도밖에 안 되잖아요. 처음에는 걱정했는데, 디즈니 프로덕션 팀은 10여 년간 이 작품을 해왔기 때문에 걱정 안 한대요. 사전 준비가 치밀하기 때문에 두 달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이탈리아인들 앞에서도 뮤지컬 연기 펼치고 싶어

현광원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왜 뮤지컬을 하느냐?”이다. 그가 이런 질문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는 로마에서 오페라 무대에 서왔고, 콩쿠르 수상 경력도 많은 정통 성악가이기 때문이다. 결혼 후 5년을 예상하고 건너갔던 로마 유학 생활은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다행히 아내와 아이들도 로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원광대 음악과에서 만난 후배와 94년에 결혼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안양시립합창단에서 1년 정도 활동하다가 95년 4월에 로마로 유학을 떠났어요. 국립음악원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 역할로 오페라를 시작했죠. 학교 생활과 오페라 활동을 하면서 5년 정도 지내니까 로마가 너무 편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거의 이탈리아인이 다 됐어요. ‘몬테소리’의 고향이니까 아이들 교육이야 최고죠.(웃음)”

로마는 오페라의 본고장이며, 거리 곳곳에 예술 미학이 담겨 있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로마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광원은 그런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인종 차별도 거의 없는 분위기에서 잘 적응했다. 로마에서 만난 스승 ‘조반니 치미넬리’ 밑에서 그는 성악가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고.

“제가 선생님의 첫 제자예요. 남들은 여러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는데, 저는 계속 그분한테 배웠거든요. 처음에는 유학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던 분인데, 제가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그러니까 배우겠다는 학생들이 밀려들었죠. 나중에는 선생님이 너무 바빠져서 레슨 받을 시간도 없었다니까요.(웃음)”

그는 오페라와 콩쿠르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97년 ‘라 트라비아타(춘희)’의 제르몽 역을 시작으로 ‘라보엠’의 마르첼로, ‘피가로의 결혼’의 피가로 역 등을 맡았다. 그는 지난 97년 아브르쪼 국제 성악 콩쿠르 1등, 98년 나폴리 국제 성악 콩쿠르 1등, 98년 움베르토 조르다노 국제 성악 콩쿠르 3등, 2001년 니콜로시 국제 성악 콩쿠르 1등을 거머쥐어 로마에서도 인정받는 성악가로 활동중이다.

현광원은 이번 작품이 끝나면 로마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리고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이탈리아인들을 앞에 두고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 오페라와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두 장르를 넘나들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싶다는 게 앞으로의 계획이다.

“무대에 올라가면 그때부터 배우들의 작품이 아니라 관객의 작품이 돼요.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고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9kg의 무대 장비가 걱정되긴 하지만 멋지게 비스트 역을 소화해낼 자신있어요.(웃음)”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최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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