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 그리는 작은 거인 화가 김순옥

대작 그리는 작은 거인 화가 김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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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더 알려진 화가 김순옥. 작품명 ‘이과수 폭포’ 더 유명한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정열을 쏟아내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현재 그녀의 작품은 전세계를 순회하며 전시회를 열고 있다. 화가, 시인 등 다양한 재능을 펼치고 있는 그녀가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경기도 인근의 작업실. 강물과 산이 보이는 한적한 곳에 화가 김순옥의 작업공간이 있다. 먼길 달려온 손님을 위해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맞는다. 들어서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는 풍경 속에서 그녀는 한창 작품에 몰두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흐르는 강물과 저 멀리 흐린 날씨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푸른 산. 한참을 서성이며 부러운 눈으로 전경에 빠져 있는 취재진에게 갓 끓인 구수한 커피 한 잔과 밀크티를 권하며 잠시 담소를 나눈다.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솔직하고 담백한 사람이라는 인상이다. 그림에 대한 열정, 인생을 향한 사랑. 홀로 지낸 긴 시간 동안 외로움과 그리움이 화폭에 전해지고 있었다.

“제가 그림에 몰두할 수 있도록 황홀한 공간을 선뜻 내준 지인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자연 염색으로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친한 언니가 이곳의 주인이랍니다. 저는 화학 색감으로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작가잖아요. 언니의 작품을 보는 순간 매료돼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그녀는 대작을 그린다. ‘작가는 상대적인 행위에 집착하게 된다’는 어느 예술가의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마른 체구에 연약해 보이는 미소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은 거친 붓 터치와 빨려들어갈 듯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가 대부분이다. 주제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물에는 생명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어요. 물을 바라보면 심장 속의 정열이 용솟음치는 느낌이 듭니다.”

그녀의 약력은 독특하다.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알려진 화가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이미 UN본부, 파라과이 대통령궁, 아르헨티나 국립미술관을 비롯하여 파리, 일본, 아프리카 등 세계를 무대로 36차례 개인 전시회를 가졌다. 그녀는 자연을 소재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연주의 작가이면서 자연의 외적인 미뿐만 아니라 그것이 주는 역사적 의미와 작가의 혼을 그 속에 담아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자연의 풍광을 담은 그림이 풍기는 서정적, 목가적인 푸근함을 주는 동시에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여운을 남긴다.

또한 철저하게 사실대로 표현하면서 색깔과 빛을 통하여 현대적이며 세계적인 안목을 접목해 독특한 그만의 미술 세계를 창조해나가고 있다. 즉 그는 고전과 현대를 조화시키면서 사실과 추상을 넘나드는 화풍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넓히고 있다. 그녀의 그림은 여성다운 섬세함과 웅장함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경희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그녀의 작품 금강산과 이과수 폭포는 2000호(10m×3m) 규모로 그녀 특유의 섬세함과 웅장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마치 악기마다 섬세한 음률과 동시에 웅장함을 연출하는 베토벤의 ‘영웅’ 오케스트라를 연상케 한다. 그녀의 이러한 미술 세계는 세계 각국에서 전시회를 가질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이미 세계 언론 및 국내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된 바 있다.

문화 전도사로 한국의 미를 알리다

그녀의 무대는 주로 외국이지만 국내에서도 2002년 국전 특선, 아시아 여성 미술계 초대 작가상, 서울시장상 등을 수상했으며, 후학 양성에도 관심이 많아 각 대학에서 겸임교수와 초빙교수로 재직, 미술 실기 강의를 한 바 있다. 그녀의 수많은 해외 전시 경험, 끊임없는 실험 정신, 후학 양성에의 열정은 이제 결실을 맺고 있다.

그녀의 그림 소재는 인사동의 한옥, 경주에 널린 불교문화재, 강원도 정선의 논밭, 처마밑에 매달린 메주, 장독대, 외양간 등이다. 그녀는 전시회마다 한복 맵시를 선보인다. 그녀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민간 외교사절단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자연도 담는다. 중국의 황산이며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 일본의 후지산 등 이름난 곳을 비롯해 알려지지 않은 비경들을 화폭에 담아낸다. 그래서 각 나라에서 전시회를 열때면 그곳의 대표적인 풍경을 함께 전시한다.

“그림은 세계 공통언어예요. 그중 공통 분모는 자연이죠. 자연은 이념과 사상을 떠나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자연을 담은 예술은 국가의 벽을 허물어요”

그러나 그처럼 웅장한 그림을 탄생시키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 없는 것이 늘 아쉽다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3국의 경계인 이과수폭포를 참 좋아해요. 물을 퍼붓는 듯한 힘찬 기운이 느껴지잖아요. 배를 타고 아마존 강을 수십 번 거슬러 올라갔고 다양한 각도에서 숱하게 폭포를 그렸지만, 내 작품은 신의 창작을 모방한 것에 불과해요. 폭포를 그리고 있노라면 그 소리까지도 담고 싶어지거든요.”



대를 잇는 화가의 꿈 이루다

다섯 살 때부터 그림에 매료됐다. 정확히 시점을 이야기한다면 그렇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전시회를 다니며 그림을 감상했다. 선명하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다. 자기 덩치보다 두세 배는 더 커 보이는 화폭에 담겨진 작품을 구경하던 날이었다.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또렷이 기억되는 그림은 산사의 모습이었다. 언뜻 속내를 내비치던 아버지의 혼잣말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세월이 많이 흘러버렸네….”

그 날부터 화가가 되리라 굳게 결심했다.

의류사업을 하던 부모님은 지인의 권유로 이민을 떠났다. 80년대 초반 중남미로 향한 이민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곳에서 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녀의 가족 모두에게 힘겨운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파라과이 노르떼(Norte) 대학교 미술과에 입학한 그녀는 오로지 미술에 전념했다. 하루 종일 그림과 ‘씨름’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끈기와 집중력으로 ‘월반’도 거뜬히 해냈다. 3년 만의 졸업. 학업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연이어 대학원 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3년 만에 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간혹 학창 시절에 즐거웠던 일을 묻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때마다 난감해요. 공부만 했거든요. 제 인생은 미술밖에 없습니다. 물론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준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르바이트라곤 대사관 초청 미술 전시회에 작가로서 활동한 것이 전부였다. 각종 파티에 참석하며 한국인임을 알리는 데 주력하기도 했다. 항상 화려한 한복을 입고 나타나는 그녀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때부터 세계 일주를 시작했다. 틈틈이 전세계를 돌며 전시회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기나긴 외국 생활 속에서 고국에 대한 향수는 깊어만 갔다. 귀국하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그녀의 결심에 가족들도 모두 찬성했다. 서둘러 귀국한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유화 작업에 몰두했다. 중남미의 더운 날씨에서의 작업은 통풍 탓에 건강에 해를 주진 않았다. 하지만 국내의 겨울 날씨에는 창문을 꼭꼭 닫고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유화 물감의 독성으로 인해 실신하는 일이 거듭됐다. 결국 산소 마스크를 끼고 작업을 하는 방법을 택했다.

“진정한 득음을 하기 위해서는 목에서 피를 토해야 한다지요. 저는 그림 작업에 몰두하면서 피를 토했습니다. 공기 순환이 안 되는 공간에서 유화물감으로 작업한 탓이지요. 무척 힘든 시간들이었어요.”

일본의 도쿄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그녀의 그림 주제를 일본풍의 그림으로 바꾸는 조건으로 세계 일주는 물론 후원자가 돼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녀는 거절했다. 그녀를 원하는 곳이라면 전세계 어디라도 달려갈 수 있지만 그림 주제까지 간섭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 그녀는 6월 1일 오픈하는 경향 갤러리 기획 이사로 적극 활동중이다.

작가후기

이과수 폭포

거질게 쏟아 내리는 물줄기

하얀 물보라 일으키며

손짓하는 무지개따라

어느 덧 내 영혼과 하나되어 버렸다.

자연의 오묘함 속

한 존재로 남은 내 흔적마저

이과수폭포는 그렇게 나를 안고 가버린다.

흘러, 흘러 세상 끝까지

희망을 전하자 너와 함께

멈추지 않고 미래를 열어 보자.

글 / 강수정(객원기자)  사진 / 최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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