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문화 수집하는 콘텐츠 프로듀서 백성현 교수

전략적 문화 수집하는 콘텐츠 프로듀서 백성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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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에는 역사와 문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종로구 동숭동에 로봇박물관이 첫선을 보였다.

104년 전 만들어진 로봇을 비롯해 대략 3천5백 점의 로봇과 항공 우주 사료들이 전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 40여 개국의 초창기 로봇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에서 백성현 교수를 만났다.

문화 콘텐츠로 선진국을 논한다

낯익은 얼굴이다. 장난감 로봇을 좋아하는 대학 교수라는 편견 때문인지 미소조차 천진하다. 그러고 보니 그는 8년 전인 1996년에 전세계 저금통 수집가로 알려진 명지 전문대학 교수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수집한 저금통을 선보일 때는 문화의 힘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습니다. 로봇은 자녀들 때문인지 예전에 비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유럽에 있는 토기 저금통, 팁 저금통 등 저금통에 대한 편견을 깨는 전시회를 열었던 그가 다시 한번 문화의 충격을 안겨주겠다고 나섰다. 전시장엔 한 꼬마가 엄마의 손에 이끌려 한창 관람중이다. 백 교수가 다가가 “‘로봇’ 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뭐니?”라고 묻자, 대뜸 “태권브이요!” 한다. 태권브이가 탄생한 지 20여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태권브이는 로봇의 대표 이름이다. 순간 백 교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만약 ‘태권브이’마저 없었다면 문화 선진국 대열엔 합류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2개 층으로 구성된 전시장에는 ‘로보트 태권브이’ ‘마징가 제트’ ‘피노키오’ 등 오랜 세월을 지낸 로봇 3천5백점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로봇을 수집한 시점을 묻자 저금통 하나를 꺼내든다.

“저금통 수집하던 시절이었어요. 로봇 모양의 저금통을 발견하게 됐죠. 어린 시절부터 사내아이라면 로봇에 관심이 많거든요. 나도 모르게 로봇 저금통을 따로 빼서 수집하게 된 거죠. 수집이란 건 그런 거 같아요. 자연스럽게 하나 둘 모으다 보면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커다란 재산이 되는 거죠.”

수집하는 모든 물건엔 역사가 있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은 그 열패감을 극복하기 위해 ‘아톰’을 만들었다. 절대자의 상징인 천황이 무너지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역전시켜야 했던 것이다. 결국 아톰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화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비로소 그토록 갈망하던 원자탄의 비애감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일본이 역경에 처할 때마다 아톰은 국민을 결집시키는 이미지로 등장했다.

“미개한 문화도 문화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문화는 ‘심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문화의 테두리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죠. 결국 ‘심장’을 얻기 위해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 거머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콘텐츠 프로듀서’라고 소개한다. 닥치는 대로 모으진 않는다. ‘세계적 비교 우위’를 가진 것만 전략적으로 수집한다.

그는 로봇을 수집하기 위해 독일로 날아갔다. 돈이 있다고 해서 수집이 이뤄지는 건 절대 아니다. 문화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은 경쟁으로 다가왔다. 문화 컬렉터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지대한 선진국에서 동양인은 낯설기만 했다. 특히 미국은 폐쇄적이고 은밀했다.

“경매장에 가보면 ‘United States Only’란 문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유럽과는 달리 미국의 문화재 관리는 철저합니다. 이미 문화 전쟁은 오래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겁니다.”

현재 그는 EMBC(European Money Bank Club) 리스트에 올라 있다. 아시아인으로는 유일한 멤버인 셈이다. 이런 형태의 모임이 그에게 권위 의식이나 특권 의식을 부여하진 않는다. 다만 이곳의 회원이기 때문에 얻게 되는 좋은 기회가 많다. 가령 동양인에게는 선뜻 보여주기 꺼려하는 소장품들을 EMBC 회원이 대신 사주기도 한다.

그가 40개국의 로봇을 수집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8개국 이상 로봇을 선보인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홀로 싸운 전쟁에서 ‘승리감’을 맛볼 차례가 온 것이다. 그는 로봇의 태동은 신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인간의 갈망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로봇박물관에서는 천사 문양이 새겨진 로마시대의 반지에서부터 전시가 시작한다.

“소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추락하는 문화인압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되면 새로운 도전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로봇 박물관에서 로봇을 관람하고 나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바로 스케치입니다. 습작으로 종이에 로봇 스케치를 해보십시오. 그리고 연도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모든 국민이 이런 시도를 할 때 문화 콘텐츠는 발전해가는 것입니다”

그에게 잊지 못할 사건이 있다. 박물관이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족이 방문을 했다. 똘똘해 보이는 열 살배기 소년은 팔짱을 끼고 로봇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로봇 옆에 일일이 기록된 설명과 탄생년도를 보고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저씨! 이 수많은 로봇들이 제가 지금 가지고 놀고 있는 장난감의 조상이란 말인가요?”

문화는 지속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 꼬마아이는 그날의 기억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글 / 강수정(객원기자)  사진 / 최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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