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0월 19일 아키유키가 태어났다. 체중 2.414kg, 신장 46cm 보통 아이들보다 작았지만 울음소리만큼은 우렁찼던 아이였다. 태어나지 한달이 채 되기전 알게된 다운증후군이란 병, 그리고 합병증으로 ‘심장내막 결손증’과 ‘폐고혈압증’을 얻었다. 의사들이 예상한 아키우키의 생명선은 겨우 일년이었다. 아키유키는 1년을 넘어서 때론 자신의 발로 걸으며 때론 친구들과 놀며 성장해갔다. 그 성장해가는 모습들을 매순간 매순간 비디오로, 사진으로, 마음속으로 정확하게 찍어놓았다. 생명보험회사 메이지생명의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아키우키의 사진이 나왔다. 아키유키가 가장 좋아하던 바다에서 찍은 사진, 하지만 그 광고를 아키우키는 볼 수 없다.



4. 1995년 초, 눈의 아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눈’을 접하게 되었다. 눈 속에 궁둥이를 대보기도 하고 차가운 감촉에 깜짝 놀라기도 하면서 아주 즐거워했다. 그 후, 갑자기 아키유키는 고열로 증세가 악화되었고 입원을 하게 되었다.
5. 아키유키는 작은 몸으로 인플루엔자와 싸워 이겨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너저분한 정원을 고쳐 ‘아키짱 정원’을 만들어 주었다. 비록 약한 건강 상태로 밖에는 나가지 못해도 바뀌는 계절을 정원에서 느낄 수 있다.
#무리하지 않고 감기에 미리 예방하다는 조건 하에 그의 담당 소아과 의사는 아키유키가 학원에 다니는 것을 허락하였다. 집단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무색할 정도로 선생님이랑 친구들과 즐겁게 잘 놀았다. 학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소리를 내서 의사표시를 하거나 자기 주장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학원의 축제나 운동회를 통해 일년 일년 지날때마다 아키유키는 착실히 성장해 나갔다. 4년째 학원을 다닌 아키유키는 현 내의 지체부자유 아동을 위한 양호학교에 취학할 준비를 하였다.





11. 누구의 손도, 어떤 도움도 빌리지 않고 자신의 다리로 천천히 일어선 아키유키.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한걸음씩 내디뎠다. 혼자서 걸을 수 있는 기록은 집에서 세 걸음, 학원의 선생님 앞에서 일곱 걸음이었다.

13. 1998년 크리스마스날, 아키유키집에 끔찍이도 좋아하는 토토로 인형 세 개를 든 산타클로스가 찾아왔다. 아키유키는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토토로 인형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인형들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겨울방학 전날, 나빠진 건강상태를 뒤로하고 매년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했다. 1998년 12월 22일, 마지막 등교일에 아키유키는 빨간색 옷을 입어 크리스마스를 장식했다. ‘열네 마리 염소의 가라가라돈’ 연극을 할때도, 친구들과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를때도 큰소리를 내며 춤을 추는 대활약을 보였다. 아키유키는 풀장을 바라볼 때나 급식을 먹을 때 짓던 평소 그대로의 미소띤 얼굴을 학원에 남겨두었다. 입학까지 남은 기간 3개월, 부모와 보낸 6년 2개월이 되는 그날 아키우키는 잠들었다.
유산위험과 임신중독증 등 아키유키의 엄마는 뱃속에서부터 힘들게 지내온 아키유키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아빠는 10년동안 근무했던 회사를 아키유키의 육아를 위해 퇴직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키유키와의 산 6년의 삶은 그들에게 하늘이 내려주신 보물이었고, 함께 했던 시간들은 충분히 행복했다고 말한다. 아키유키가 사망한지 11개월 후 우연히 ‘행복한 순간’이라는 사진 콘테스트를 보고 아키유키가 몹시도 좋아했던 바다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그녀는 광고를 보면서 그때의 염원은 단 하나였다고 말한다. 아키유키를 엄마의 무릎 위에 앉혀놓고 꼭 껴안은 채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 광고를 보는 것이라고...
글 / 신경미(프리랜서) 사진 / 국일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