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 머물던 대도 조세형(66)이 최근 귀국했다. 그러나 그의 귀향은 절친한 사람들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일본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갖는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국민들에 실망을 안겨준 죄책감 때문이다. 검은돈의 부자들을 떨게 했던 그가, 선교활동을 한다던 그가, 쩨쩨하게 일본 집을 털다 허망하게 잡혔으니 말이다.
지난 11일 강북의 한 연립주택에서 만난 그는 “국민들의 질책이 있다면 죽었다 하는 마음으로 달게 받고 평생 참회하며 살겠다”는 말로 운을 뗐다.
“죽을 죄를 지은 죄인,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고국에 오자 주위 분들이 왜 다시 도둑질을 하게 됐냐고 물으시더라구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일본에 건너가 선교를 하던 중에 전직 일본인 절도범들을 만난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들에게 이런 물건도 손쉽게 털 수 있다는 객기와 호기를 부리며 도쿄 시부야에 있는 주택가에 들어간 것이 문제였습니다. 여러 가지 형편 때문에 당시 정황을 모두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추후에 일본 법정에서 다 밝힐 것입니다”.
그가 일본 법정까지 가서 모든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하는 데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집 전문털이범 출신이 경보기가 달려 있는 일본 주택을 턴 뒤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렸다는 것이 이해가 되냐고 반문했다. 전문털이범이라면 한 집을 털면 그 집에서 멀리 도망가는 것이 상례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경보기가 울리는데 왜 도망가지 않았을까. 그것도 한 집이 아니라 세 집을 털고서도 말이다.
추측은 무성하다. 공범을 보호하려고 일부러 잡혔다는 얘기도 있고, 이 사건이 야쿠자와 연계되어 있어 발설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한 훔친 물건이 대단한 물건이라는 둥 억측이 난무한다. 그러나 그는 묵묵부답이다. 다만 국민들이 배려해 직장까지 마련해줬는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안타깝고 죄스러울 뿐이라고. 또 정황을 모두 밝힐 수 없는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고개를 떨궜다.
죄책감과 괴로움에 시달리기는 그의 아내 이은경씨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귀국하자 그동안 살던 혜화동 집을 떠나 두 달 전 이곳 작은 연립주택으로 잠입하듯 이사를 했다.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성토를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혜화동에 살 때는 감옥 아닌 감옥생활을 했다. 사람을 만나기 무서워 상점을 이용하지 않다 보니 쌀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 사나흘 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집에서 죽만 먹은 적도 있었다. 그가 그런 시간을 보낸 것은 도둑의 아내였기 때문. 남편의 죄와 멍에를 나눠 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남편을 믿는다고 말했다. 남편이 그렇게 한 것은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다는 것. 그러면서 항간에 ‘이혼설’ 등 이상한 소문이 났지만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물론 남편의 사건으로 황당하고 혼란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혼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는 것.
“사건이 터지고 난 뒤 면회실에 갔더니 남편이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믿느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믿는다고 했습니다. 입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눈으로 말한 거죠.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기도를 했습니다. 남편이 건강하게 한국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 기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걸 ‘전화위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남편 덕에 기도하는 시간이 늘었어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제 기도를 받은 분 중에 암 초기 환자가 있었는데 일곱 분이 깨끗하게 나으셨어요. 물론 제가 치료한 게 아니라 제가 병원에 가보라고 조언했는데 그 예언이 적중한 것이지요.”
“고생시키는 남편이 밉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남편은 아직 사회성이 부족해 각별히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내이기 전에 보호자로서 더 신경을 쓰겠다는 얘기다.
“남편은 나이만 많지 대화를 해보면 어린아이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31년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무슨 사회성이 있겠어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남편을 용서해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새사람이 되라는 격려로 저희를 보듬어주신다면 정말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는 법적 대응과 별도로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선교원을 개원하는 일이다. 어릴 적부터 혼자 자라온 뼈아픈 경험이 있는데다 병든 노인들에게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출소 후 집에 있으면서 기도하다가 떠오른 생각이 바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저희 집엔 가출 학생이 몇 명 있는데 좁은 집에서보다는 제대로 된 장소에서 불우한 이웃과 함께 살아간다면 후회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르가 선교회’란 곳이 있는데 사재를 털어서라도 힘껏 도울 생각입니다. 세상에 빚진 게 많은 만큼 온 정열을 이곳에 바칠 계획입니다.”
16년간 청송교도소에 있을 때보다 일본 형무소에서 보낸 3년이 더 길었다고 말하는 대도 조세형. 같은 죄를 반복, 외국까지 나가 징역살이를 하고 돌아온 그를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그에게 성경책을 선물하고 간절한 기도를 가르쳤던 사람들은 조심스레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취재후기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새 출발 하겠습니다!
◆ 그의 집에서 이루어진 3시간 가량의 인터뷰
이유야 어떻든 국민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준 그와의 인터뷰는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그의 가족들이 기자를 경계하는데다 그가 선행을 베푼 이유로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참회와 평생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오는 7월부터 복지선교회에 나가 무보수로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가 선교활동을 하며 주력할 것은 ‘노인복지’다. 고아로 자란 탓인지, 그는 늙어서 기댈 곳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그의 선교활동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은 그의 아내인 이은경씨. 이씨는 그가 일본 형무소에서 수감될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 6시간 이상 기도를 했다. 아예 집 안에 ‘기도방’을 만들었을 정도.
이씨는 기도할 때 빼놓지 않는 기도 제목이 있다. 남편을 밑바닥 인생까지 경험하게 한 만큼 이제는 진정한 의미의 선행을 베풀고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 하게 해달라는 것. 아내가 그런 기도를 할 때마다 조세형씨는 늘 미안한 마음이다. 결혼하고 난 후부터 고생만 시키고 불미스러운 일만 겪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세형씨는 인터뷰 말미에 “국민들에게 대죄를 지은 만큼 질책을 겸허하고 받아들이고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새 출발은 체험을 통한 선교활동. 이전까지는 강연회다, 간증집회다 해서 바쁜 일정을 보냈지만 이젠 노인들과 함께 기거하고 돌보면서 직접적인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얘기다.
◆조세형은 어떤 인물인가
‘드라이버’ 한 개로 권세가와 재벌들의 집을 털며 ‘물방울 다이아몬드’ 등 온갖 희귀한 보석들을 세상에 구경시켰던 절도범 조세형. 그는 훔친 보석 일부를 ‘헐벗고 굶주린 사람’에게 나눠주는 사람으로 인식돼 대도(大盜)라는 닉네임이 붙기도 했다. 부유층만 노렸던 조세형은 1982년 11월, 수개월에 걸친 경찰의 추적으로 검거되었으나 2차 공판 도중 탈주, 115시간 동안 경찰과 숨막히는 숨바꼭질 끝에 재검거되었다. 결국 특수절도죄에 도주죄까지 추가되어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이라는 절도죄 최고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감옥에서 산 세월은 모두 합쳐 31년. 차라리 감옥에서 살았다고 해야 옳은 것이다. 1998년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한 이후 기독교인들을 위한 집회에서 간증을 하고 경비업체인 ‘에스원’에 자문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다가 2000년 일본 방문 중 주택가를 돌며 고급시계, 라디오 등의 물건을 훔치다 또다시 체포, 3년 6개월간을 일본 고부형무소에서 보냈다. 2004년 3월, 만기 출소한 그는 서울 구기동 근처에 있는 도르가 선교회(이춘희 목사)에서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이은경씨와 다섯살배기 아들이 있다.
글·사진 / 연세영 기자(뉴스메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