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살인범 유영철 전처 황모씨·어머니 단독 인터뷰

엽기적인 살인범 유영철 전처 황모씨·어머니 단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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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락업소 여종업원, 부유층 노인, 노점상 등을 상대로 잔혹한 ‘묻지 마’ 살인을 저질러온 살인범 유영철. 엽기적인 살인 행각으로 사회 전체를 ‘쇼크’ 상태에 빠뜨린 유영철의 전처와 어머니에게 현재 심경과 입장을 직접 들었다. 또, 그가 직접 작성한  범죄 노트를 단독 입수, 각종 범죄 수법과 총기류에 대한 관심이 여실히 드러난 메모 내용을 샅샅이 공개한다.

영화 ‘양들의 침묵’ 속 ‘한니발 렉터’ 꿈꿨다

지난해 9월 24일부터 11개월간 20여 명을 살해한 ‘희대의 살인범’ 유영철(33)이 경찰에 검거되면서 인간의 잔인함에 국민이 치를 떨고 있다. 부유층 노인과 일가족은 물론 전화방 도우미·노점상·출장 마사지사 등 자신과 아무런 원한도 없는 노인·부녀자를 무자비하게 살해했다는 점, 종전의 살인 사건처럼 금품을 노리거나 개인적 원한 때문이 아니라 일방적인 이혼과 재혼 실패에 따른 여성과 부유층에 대한 막연한 증오심이 동기였다는 점에서 온 국민이 경악하고 있다.

범인 유씨는 영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한니발 렉터’ 박사를 꿈꿨던 것으로 보인다. 유씨의 메모장은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살해계획을 세웠음을 보여줘 그의 완전 범죄 계획이 고스란히 드러낸다. 유씨가 컴퓨터에 관심을 갖고 자격증까지 획득한 것은 범행을 하기 위한 치밀한 준비 중의 하나였다고 보인다. 가짜 경찰 신분증부터 만들어야 성매매 여성이나 불법 음반 CD 제조업자 등을 협박해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출장 마사지사를 자신의 집으로 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유씨의 책상 서랍 속에는 ‘공공의 적’ ‘베리 배드씽’ ‘크라임 라이프’ 등 엽기적인 살인범을 그리거나 연로한 친부모를 살해하는 패륜 장면이 들어 있는 영화 DVD가 발견돼 상당 기간 살인을 준비해왔음을 보여준다.

유씨는 오랫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만큼 범행도 치밀했다. 증거 인멸을 위해 지문을 남기지 않은 것은 물론, 체모나 정액 등 DNA 추적을 당할 만한 단서는 일체 남기지 않았다. 마사지사를 집으로 끌어들인 후에도 유씨는 DNA 검사를 우려해 성폭행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마사지사 중 첫 희생자가 된 김모씨(25·여)의 사체는 손가락 지문을 모두 도려냈을 뿐 아니라 시신을 잘게 토막내 거주지 인근 모 대학 뒷산에 묻었다.

출장 마사지사 중 유씨의 살해 대상은 ‘아담한 미인’이었다. 미인이 아니거나, 키가 너무 큰 마사지사는 퇴짜를 놓곤 했다. 이는 이혼한 아내가 아담한 스타일이었다는 데서 아내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복역중 이혼당한 후 ‘여성 혐오’ 증세

‘최악의 연쇄 살인범’ 유영철. 그는 어떤 생각으로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던 것일까. 평소 유영철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본지에서는 그의 가족을 찾아 나섰다. 가장 먼저 접촉해야 할 사람은 유영철의 전처 황모씨(32). 경찰에 따르면 유영철은 21세 때인 1991년 ‘마사지 안마사’ 황씨와 결혼했지만, 특수절도 등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중이던 2002년 5월 일방적으로 이혼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과자라는 낙인, 그리고 전처에게 받은 상처가 범행 동기였으리라는 것은 굳이 경찰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알려졌다시피 유영철이 살해한 여자들은의 대부분 출장 마사지 사들이었다. 7월 18일 오후 5시께, 황씨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앳된 사내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자고 있어요.” 유영철의 아들(11)이었다. 그 순간 유영철의 손윗동서가 수화기를 넘겨받았다.

유영철은 어떤 사람이었나

우리에게는 참 잘 했다. 전혀 이상한 점이 없었다. 좋은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잠깐 만날 수 있겠나

싫다. 내가 왜 그런 일 때문에 피해를 입어야 하나. 나도 놀라고 속상해서 술 한잔 먹고 들어왔다. 처제에게 유영철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사람 죽였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엄청나게 놀랐다. 찾아오지 마라. 아이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했나

오해 말라. 아이한테 아무 이야기도 안 했다. 잠깐이라도 만나자

싫다. 괴롭다.

이때 황씨가 수화기를 나꿔챘다. 황씨는 “할 얘기가 아무것도 없으니 전화하지 마세요”라며 일방적으로 쏘아붙이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후 다시 수차례 황씨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황씨는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할 말 없으니까 전화하지 마세요. 벌어먹고 살기도 벅차니까”라며 “메시지도 그만 보내세요. 일해야 하니까” 하고는 더이상의 통화를 거절했다.

전처 황모씨, “그 사람과 살 때 괴로웠다”

황씨와 정식으로 인터뷰를 한 것은 하루가 지난 19일 오후 6시 정각. 뭔가 결심이 선 듯 그녀가 먼저 기자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다음은 황씨와 나눈 일문일답 내용.

이혼을 결심한 계기는 뭔가

기자님이 여자라면 10년을 살면서 교도소를 제 집보다 더 자주 들락거리는데 같이 살고 싶겠나.

이혼 과정은 어땠나. 양육권 문제로 다투지는 않았나

재판을 해서 이혼을 했으니까 자기 쪽에서는 일종의 다툼이라고 생각하겠지. 내가 소송을 제기했으니까.

출소 후 찾아간 적이 있다던데…

아이가 보고 싶다며 딱 한 번 찾아온 적이 있다. 그후에도 아이와는 몇 번 통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애한테는 아빠고, 아이는 아빠가 그런 줄 모르니까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나 만날 생각은 하지 말고 애 만나는 것은 뭐라고 하지 않겠다’고 했다.

직접 만나러 온 시기는?

올 초였다. 그후 아이 때문에 몇 번 통화를 하기도 했다.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심정은?

(한동안 침묵) 기분 아주 × 같았다. 됐나? 나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들춰달라. 나 이혼한 지 4년 됐다. 신문에서 2002년 5월에 소송 제기받았다고 했는데, 나는 2000년 소송 제기해서 그 해 말에 재판이 끝났고, 2001년 1월에 완전히 호적 정리했다. 그뒤로 그 사람 잊고 사는데 지금 와서 살인자가 돼 나타난 사람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냐니,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를 바라는가. 그 사람하고 살 때 괴로웠다. 추억이라도 얘기해주길 바라는가. 그런 거 전혀 없으니까 전화하지 마라. 할 이야기도 없다. 혹시라도 아이 건드리지 마라.

그래도 가족이었는데 안타까운 부분은 없나

살인마 맞지 않나.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죽은 사람들한테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난 이미 가족이 아니다.

그럼 2002년 이혼했다는 건 오보인 셈인가

그 ××가 그렇게 떠들었나 본데 그대로 놔둬라. 수정할 생각도 하지 마라.

결혼 생활중에 혹시 유영철이 폭력을 행한 일이 있나

없다.

현재 직업은? 출장 안마사라고 보도된 것은 사실인가

밝히고 싶지 않다. 출장 안마사는 아니다. 하지만 안마사로 나왔으면 그렇게 알고 있어라. 자기 혼자 그렇게 떠들다 말게. 그 ×× 엄마도 그렇게 떠들고 다닌다는데. 앞으로 우리집에 찾아오거나 우리 아이 찾지 마라. 만약 다시 찾아온다면 참지 않겠다.

어머니, “같이 죽을 수만 있다면 죽자 했는데…”

기자는 황씨와 인터뷰하기 전, 유영철의 어머니(62)와도 세 차례에 걸쳐 전화 통화를 했다. 통화는 18일 오후 9시 20분께와 19일 오전 10시 30분께 사이에 이뤄졌다. 유영철의 어머니는 “아들이 가족에 대한 사랑은 깊지 않았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라며 세 번 부정했다. 다음은 유영철 어머니와 나눈 일문일답.

사건의 원인이 뭐라고 보나

전과 등으로 여자들이 마다하니까 그 충격으로 그런 일을 저지른 것 같다. 자기 입으로 그렇게 불었다고 한다.

가장 마지막에 본 것은 언제인가

15일 경찰에 불려가서 그때 봤다. 그전에는 전화도 잘 하지 않았다. 한 달이 가도 전화 한 번 안 한다. 1년에 몇 번 볼 정도다. 만나서 이야기해봤자 말이 잘 안 통하니까…. 나한테 정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다.

출소 이후의 생활은 어땠나

출소해서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나와는 살지 않으려고 했다. ‘잘 살겠지’ 하고 놔뒀는데 설마 그런 짓거리를 하고 다닐 줄은 몰랐다. 지가 입만 다물고 있었으면 그런 일 한 것을 아무도 모르지 않나. 그런데 지가 죽으려고 자백했다니까 더이상 할 말도 없다. 가만 놔둬라.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땠나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으니까 물어볼 것도 없다.

그래도 가족에 대한 시를 남기는 등 가족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그저께(16일) 도주를 했다고 하지 않나. 그 전날 나한테 그렇게 ‘죽자’고 하더라. 그래서 ‘그래, 같이 죽을 수만 있다면 죽자’ 했는데… . 아니다, 이런 이야기해서 뭐 하나.

수감중에 이혼 소송이 제기됐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

알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그렇게 나쁜 짓 하고 다니다 교도소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남자랑 살려고 하겠는가.

양육권 문제로 시비는 없었나

없었다. 손주를 며느리가 데리고 갔는데 영철이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며느리가 먼저 양육권 이야기를 꺼내더라. 한 달에 양육비로 몇 십만원씩 달라고 했는데 돈이 있어야 줄 것 아닌가.

같이 사는 동안 부부 관계는 괜찮았나

아들은 교도소에 들락거리느라 며느리는 거의 내가 데리고 살았다. 아들만 하나 낳았지 감방 드나드느라 같이 산 시간도 얼마 안 된다. 며느리도 나와 같이 안 살려고 하길래 ‘정 떨어져서 그런가 보다’ 했다. 한두 번 들어갔으면 지가 작심을 하고 들어가지 말아야지 자꾸 들어가니까 며느리가 마다하고 나가더라.

지가 나가는데 내가 어떻게 하나.

출소 이후 아들과 황씨의 접촉은 없었나

교도소 나와서 아들이 한 번 찾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 안 받아줘서 들어서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고 하더라. 다시 찾아가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변호사 선임 문제는 어떻게 됐나

변호사가 뭔가. 조그만 전셋집에 살고 있는데…. 도움받고 싶은 것도 없다. 경찰서에서 어찌나 시달렸는지….

그래도 아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달라. 좋았던 기억도 있었을 텐데…

없었다.

지금 심경은?

누구에게도 할 말이 없다. 죄인인데…. 걔보다 내가 먼저 죽겠다. 머리도 아프고 전화 끊고 싶다. 죄송하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 범죄 수법 배우고, 실제 총도 구하려 했다

본지가 입수한 유영철의 노트를 보면 평소 유영철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쏟았는지 비교적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유영철은 이 노트에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한 신문·잡지 기사와 광고 등을 꼼꼼히 모아두었다.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총’에 대한 유영철의 지대한 관심이다. 유영철은 자신의 노트에 국내에 시판중인 가스총의 제원과 가격이 나온 잡지를 꼼꼼히 스크랩해두고 있었다. 가스총의 올바른 구입법과 가스총 등록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소개된 부분에는 검정 볼펜으로 별도의 표시까지 해두었다. 2003년 4월 17일자 한 스포츠신문에 실린 서바이벌 체험장에 대한 기사와 서울 서초동에 있는 실탄 사격장 전화번호와 이용 가격을 메모해두기도 했다.

특히 유영철은 2003년 4월 29일자 ㅈ일보에 보도된 ‘밀려드는 러 총기 국내 조직도 무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스크랩해놓았다. 이 기사는 러시아제 총기의 국내 유통 실태와 가격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유영철이 실제 총을 구입할 계획까지 꾸몄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 위치한 유영철의 원룸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유영철의 책상 왼쪽 두번째 서랍. 10여 개의 CD와 DVD 타이틀 가운데 영화 ‘공공의 적’ DVD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공공의 적’은 주인공 규환(이성재)이 노부부 등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치밀하게 사건을 은폐하는 내용을 다룬 영화다. 이번 사건과 여러모로 유사한 측면이 있어 유영철이 이 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묘한 여운을 남긴다. 유영철은 자신의 노트에 라이선스지 등에 실린 외제 나이프 세트와 고가의 손전등 소개 기사도 모아두었다. 그의 책상 서랍에서는 손전등 두 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모두 ‘공공의 적’에서 규환이 애용하던 ‘소도구’들이다.

삶에 대한 유영철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특히 한자 능력 검정시험과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준비한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유영철은 2001년 12월 10일 한자 능력 3급 자격을 취득했다. 이듬해 5월 23일에는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을 얻기도 했다. 2003년 6월 14일에는 한자 능력 2급 자격을 취득하는 데 성공했다. 유영철의 노트 앞부분과 뒷부분에 빼곡이 들어찬 메모는 이 같은 그의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워드프로세서 자격시험 예상 문제와 요점 정리를 해놓은 부분과 성명 한자 연습 흔적이 바로 그것.

그가 사용하던 컴퓨터에도 유영철의 취향이 묻어난다. 그의 컴퓨터를 부팅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바탕화면에는 탤런트 전지현의 모습. 유영철은 전지현의 팬이었던 듯 그녀의 사진 수십 장을 별도의 폴더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가 사용하던 프로그램에는 ‘리니지2’와 ‘프리스톤테일’ 등 게임을 즐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즐겨찾기에는 ‘www.soXX.net’ 등 십수 개의 음란 사이트가 등록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에는 신모씨와 배모씨 등 출처 불명의 여자 이력서를 작성했거나 읽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낯선 여자들의 이력서가 왜, 그리고 어떤 경로를 거쳐 유영철에게 입수될 수 있었을까.

마지막으로 가족에 대한 애증의 편린. 유영철은 노트 뒷부분에 열한 살 난 아들 ○을 떠올리며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라는 메모를 남겨놓았다. 메모 위에는 아들의 선물로 준비한 듯한 인라인스케이트의 사진이 곱게 스크랩돼 있었다. 반면 이혼한 전처 황모씨에 대해서는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듯 2000년 9월 자신이 영등포구치소에 수감중이었을 때 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이혼소장을 보관하고 있었다. 특히 유영철의 어머니에 따르면 그는 출소한 뒤 황씨의 집을 한 차례 찾아갔다가 문전박대 당한 경험이 있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의 노트에는 전처 황씨의 집 현관 잠금장치인 ㅇ사의 ㅈ디지털 암호 시스템 광고가 수집돼 있었다. 자신의 취향과 관련된 기사나 광고 스크랩 노트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특히 문전박대 당한 전처의 집에 설치된 것과 동일한, 도어룩 광고 스크랩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글 / 최성진(뉴스메이커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유영철, 그는 누구인가?

연쇄 살인범이 되기까지 유영철의 삶은 지난했다. 그는 서울에서 막노동을 하는 부모 사이에 3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정신분열성 간질환을 앓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가 14살 때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형과 함께 자신도 같은 병을 앓고 있었다. 1993~1995년에는 간질 증세로 국립서울병원에서 치료받기도 했다. 또 지난 7월 14일 연쇄 살인 용의자로 경찰에 붙잡힌 상황에서도 3차례나 거품을 무는 등 심한 간질 증세를 보였다. 불우하고 어둡던 집안 분위기, 그리고 가계 병력은 그를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는 ㄱ공고 2학년을 다니던 중 절도 사건으로 소년원에 수감되어 학업을 중단한 채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는 살인 혐의로 검거되기까지 14차례의 특수절도와 성폭력 등으로 형사 입건되는 등 인생의 3분의 1인 11년을 교도소에서 보낸다. 그의 교도소 생활은 사회에 대한 증오심을 더욱 확대시켰다. 그는 교도소에서 포토샵 기술을 배웠다. 그는 “교도소에 워드프로세서 2급 자격증을 땄고 웹 디자인 포토샵 6.0 사용법을 배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재활을 위한 한 방편으로 기술을 습득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그가 이미 1997년 5월, 안양교도소에 입소할 때도 그 같은 수법으로 경찰 신분증을 위조해 잡혔기 때문이다.

수감 생활도 원만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영철은 전주교도소 수감중에는 다른 수형자와 싸워 2차례 독방 수감 징계를 받는 등 수형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3월, 특수절도 등으로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 2002년 5월께 부인이 이혼 소송을 제기하여 일방적으로 이혼당했다. 그후 말을 잃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게 전화방을 통해 알게 된 김모 여인과 교제하면서 대인기피증은 다소 호전되는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그가 ‘전과자, 자식을 가진 이혼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김모 여인은 절교를 선언했다. 이 일을 계기로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채 타인을 향한 맹목적인 증오와 적개심을 더욱 키우게 됐을 것이라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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