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아닌 할머니 그레이스 리

유인경기자가 만난 사람(7)

할머니가 아닌 할머니 그레이스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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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요리 비법을 책으로 내볼까 해.  요즘은 배워서 남 주자 시대라며?”

30년간 운영하던 미용실을 닫아버리고 훌쩍 통영으로 내려가 중국음식점을 차린 그레이스 리 할머니가 서울을 찾았다. 서로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채워가며 10년의 세월을 나이와는 무관하게 친구처럼 지낸 두 사람. 독서광, 드라마에 푹 빠지기, 맛있는 음식점은 그냥 못 지나가는 미식가…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먹는 것 좋아하는 유인경 기자와 그레이스 리 할머니의 만남은 언제나 유쾌하다. 

할머니, 그것도 70대의 할머니라면 대부분 굽은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걷거나 “옛날엔 말야…”라고 고장난 테이프처럼 매일 똑같은 레퍼토리를 구시렁구시렁 대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레이스 리는 그런 의미에선 할머니가 아니다. 칠순도 넘었고 손주도 있지만 도무지 그에게서 할머니란 느낌을 발견하기 어렵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 청년다운 열정, 장군 같은 카리스마와 기묘한 섹시함, 그리고 100년을 산 듯한 지혜까지 겹쳐져 나이도 직업도 구별하기 어렵다.

그는 70년대부터 장안을 뒤흔든 유명한 헤어 디자이너다. 미용실이라면 그저 머리카락을 지지고 볶고 부풀리던 것이 상식이던 시절, 그는 미용실에 대한 상식과 편견을 깨버렸다.

서른일곱에 이혼한 그는 혼자 미국으로 떠났다. 낮에는 미장원에서 근무하며 미용 기술을 익히고, 저녁엔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서울에 두고 온 아이들에게 눈물로 편지를 쓰며 괴로움과 외로움을 이겼다. 당대의 대가 폴 미첼에게서 미용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도큐호텔에 미용실을 개업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머리 손질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모발 교육도 시켰다. “아니, 이렇게 머리카락이 상했는데 무슨 파마예요. 그냥 다듬기만 하세요” “지금 길이가 딱 좋은데 왜 자르려고 해요. 다음에 오세요” “아, 지금은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요”라면서 고객을 구박하며 당당히 쫓아보내는데도 그의 미용실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당대의 톱스타들, 재벌 부인들, 고관 사모님들이 그에게 머리를 맡겼다. 미국 패션지 `「보그」에도 소개될 정도로 세련된 단발머리를 유행시켰고, 헤어 드라이어를 국내에 보급해서 굳이 미용실에 오지 않고도 가정에서 직접 머리 손질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아직도 그의 골수 팬들을 위해 그는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올라와 제자가 하는 미용실에서 그들의 머리를 다듬어준다. 미용에 대한 공적으로 대통령 표창인지 훈장인지를 탔다는데, 동네 노래자랑에서 상 탄 것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 그게 어디 있는지도 모른단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86년. 당시엔 좀 썰렁하던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그레이스빌딩을 세운 그는 지하엔 아들이 경영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1~2층엔 미용실, 3층엔 큐레이터인 큰딸이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포스터 갤러리를 열어 화제였다.

“아우, 난 사진 찍을 때 괜히 다정한 척 포즈 취하는 것 역겨워. 그냥 대충 찍어요. 그리고 스카치 한잔들 어때요? 난 매일 해질 무렵, 이렇게 술 한잔 한다우.”

당시 그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어찌나 근사하던지, 그리고 딸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어찌나 `‘쿨’하던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충격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깜짝 깜짝 놀랄 사고를 쳐서 그런 게 아니다. 그의 직관력과 감성, 지치지 않는 에너지에 놀란다는 의미다.

그레이스 리가 통영으로 간 까닭은?

그레이스 리는 요즘 경남 통영에 산다. 30년 가까이 운영하던 미용실을 닫고 서울에서도 최첨단 유행 거리인 청담동에 살다가 통영으로 내려가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미용 인생 30년보다 길고 오래된 요리 인생 70년을 꽃피우기 위해서다.

지난해 가을, 통영에 ‘중국요리 이선생’이란 중국음식점을 차렸는데 벌써 통영의 명물로 자리를 잡았다. 통영 주민은 물론 인근 거제와 멀리 서울에서도 그 요리 맛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온다. 통영은 그의 고향도 아니고 쫄딱 망해 은둔하러 간 곳도 아니다.

“왜 통영에 왔냐구? 나이 들었으니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해. 그런데 제주도나 울릉도는 섬이라 오고 가기 불편하잖아. 마침 통영 사는 분이 초대해서 통영에 갔는데, 공기도 좋고 경치도 훌륭하지만 날 반하게 한 건 먹거리들이었어. 펄펄 뛰는 활어들, 싱싱한 굴, 신선한 야채… 가슴이 벌렁거리는 거야. 그래서 그날로 살 집을 계약했지. 그런데 이렇게 식자재가 풍부한데 근사한 식당이 드물더라구. 마음 같아서야 직접 요리해서 공짜로 나눠주고 싶지만, 아직 그렇게 부자는 아니니까 돈 받고 파는 식당을 열었지.”   

그는 워낙 맛에 민감한 미식가인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데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장을 보러 다녀서 음식에 빨리 눈떴다. 나이도 들고 담배도 피우는데 신기하게도 그의 미각은 전혀 녹슬지 않는다.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각종 양념 배합이나 신선도, 인공 조미료의 첨가 여부를 귀신같이 알아낸다. 그동안 번 돈의 70%를 세상 곳곳을 다니며 맛있는 요리를 맛보는 데 썼다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돈 많이 모으셨나요?”라고 물으면 “여기 있지” 하며 배를 쓰다듬는다. 지금도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이 있으면 전국을 누비며 찾아다닌다. 정말 맛있으면 주방장을 찾아 감사의 말을 전해 주방장을 감동시키지만, 엉터리 재료로 무성의하게 만든 식당엔 따끔하게 주의도 준다. 음식만이 아니라 서비스도 바로잡는다.

“보세요. 이렇게 식은 음식을 내놓으면 안 되죠. 그리고 접시에 그렇게 손가락을 빠뜨리지 마세요. 아니아니, 아직 접시는 치우지 말구….”   

날카로운 지적과 까다로운 주문에 함께 간 사람들은 어쩔 줄 모르는데 워낙 그 자세(?)가 자연스럽고 당당해서 어느 식당을 가도 종업원들은 마치 주인 대하듯 고분고분 그의 지도편달을 받는다. 프랑스에 사는 큰딸 김승덕씨가 거든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런 수법(?)이 세계 어디에나 통한다는 거예요. 그 자존심 강하고 까다롭다는 프랑스인들도 엄마한테는 꼼짝 못하더라구요. 일본에서는 다른 재료를 쓴 걸 지적하니까 음식값을 받지 않았어요. 이탈리아에서는 정육점 주인이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하기도 했답니다.”

꿈은 계속된다

지난해 그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였고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투병중이면서도 그는 혼자 통영에 내려가 식당을 열었다. 장소를 정하고 종업원을 구하고, 식기 구입이나 인테리어를 직접 하고, 전단지 만들고 뿌리고, 메뉴를 짜고 하는 일을 직접 도맡아 했다. 젊은이들도 지쳐 백기를 들 만한데 그는 펄펄 힘이 났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즐거움 때문이다. 삶에 대한 치열한 열정은 그 무서운 암세포에게조차 “어머, 이제 오셨군요. 그런데 제가 좀 바쁘니 가주세요”라고 해서 떠나게 만들었다.

“걱정하고 초조해한다고 뭐가 해결되나? 물론 속으로 놀라긴 했지. 그런데 막상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니 아주 담담하고 초연해지더라구. 그래, 이제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뭐가 아쉬운가. 그동안 원도 한도 없이 일했고, 돈도 벌어봤고, 세계 여행도 해봤고, 맛있는 음식은 남보다 많이 먹었다. 사랑하는 가족도 곁에 있고, 열심히 살아와서 후회도 없다… 그렇게 정리하니까 마음이 편해져서 의사 지시에 따라 약 먹구 검사받는데 아직 멀쩡해. 사는 동안, 즐겁게 신나게 사는 게 목표야.”

그는 엄청난 독서광이기도 하다. 베스트셀러는 물론 신문, 잡지도 꼼꼼하게 본다. 영화, 연극, 뮤지컬 등 공연장이나 미술관, 박물관도 즐겨 찾는다. 요즘은 ‘파리의 연인’을 보느라 주말이 즐겁단다. 읽은 책이나 본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감성이 신세대보다 젊고 발랄해서 놀라울 따름이다. 또다른 재미는 요리를 연구·개발하는 것. 통영의 싱싱하고 멋진 수산물을 비롯, 각종 재료로 만드는 중국 요리를 연구한다. 그래서 식당은 손님이 가득한데 아직 돈은 별로 못 벌었다. 워낙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쓰기 때문이다.

요즘은 서울에도 자주 올라온다. 외아들 김승용씨가 서울 논현동에 ‘중국요리 이선생’ 지점을 열어 재료도 공급하고 메뉴도 연구하기 위해서다. 어머니를 닮아 요리 솜씨가 뛰어난 김씨는 독일 주방기구 회사에 근무하다 식당 일에 뛰어들었다. 그 역시 무서운 어머니를 스승 삼아 요리 만들기와 미각 훈련을 익혀서 가장 즐겁고 신나는 일이 요리 만들어 대접하기란다. 모전자전, 피는 참 무섭다.

“거제도에도 소문나서 거제에 지점을 차리라는 성화가 빗발친다우. 곧 거제도에도 문을 열어야 할 것 같아. 그 다음에 낚싯배를 한 척 만들어야 할 텐데… 내 취미가 낚시거든. 그리고 내가 아는 요리 비법을 소개하는 책도 써볼까 해. 혼자 알면 아깝잖아, 요즘은 ‘배워서 남 주자’ 시대라며?”

그의 눈동자가 또 호기심과 열정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아, 저런 열정은 그의 피를 수혈받으면 닮아지려나.….

글 / 유인경(뉴스메이커 부장)  사진 / 이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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