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 어린왕자를 잊지 못해 소설 펴낸 ‘전원일기’ 연출가 권이상

사막과 어린왕자를 잊지 못해 소설 펴낸 ‘전원일기’ 연출가 권이상

“드라마는 제 평생의 꿈입니다. 아직도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권이상 PD는 국내 최장수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의 연출가 중 마지막 주자였다.

그가 휴식기를 끝내고 소설과 창사 특집 드라마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PD가 웬 연애소설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소설 곳곳에는 그의 순수함과 순박함이 숨어 있다.

마치 ‘전원일기’의 평화로운 한 장면처럼….

PD, ‘연애소설’을 쓰다

“소설 속의 PD와 연예인은 실제 인물이 아닙니다. 모두 픽션이죠”

소설 「어린왕자를 찾아서 나는 사막으로 간다」(문학과의식)는 우선 ‘정상의 인기 스타와 방송사 PD간의 사랑과 갈등, 연예계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부제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독자들은 ‘소설이지만 분명히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았을 거야’라는 확신(?)을 가지고 책을 펼칠 것이다. 수많은 ‘~카더라’ 통신 이야기 중 뭔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작가 역시 현직 PD라는 신뢰감까지 주니 말이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읽다 보면 약간 이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끈기를 가지고 읽어봐도 뭔가 화끈하고, PD와 연예인의 밀착 관계를 고발하는 내용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통속소설처럼 야하지도 않고, 특별한 사건도 많지 않다. 소설은 PD로 일하고 있는 ‘나’라는 인물이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 PD인 ‘중훈’과 톱스타 ‘소이’의 관계를 무덤덤하게 이야기해나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얼핏 요즘같이 바쁘고 자극적인 세대에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책은 술술 잘 넘어간다. 현직 PD만이 아는 내용들이 잘 버무러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전원일기’ PD로 유명한 권이상부국장(54)이기에 독자들은 “실제 있었던 일 아니냐?”고 자주 묻는다.

‘소설 속의 소이가 대체 누구냐?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많기는 해요.(웃음) 이 작품은 픽션과 논픽션이 섞여 있어요. 저의 일기 부분은 논픽션이라고 봐도 됩니다. 미국 연수 시절 메모해놨던 것을 작품에 실은 것입니다. 그러나 중훈과 소이의 관계가 나오는 부분은 모두 픽션이에요. 혹여 누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실는지 모르지만 픽션입니다.(웃음)”

권 PD가 일기와 소설 형식을 접목한 것은 과거의 기억 때문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형식의 글이 유행했다. 연애편지든  창작 소설이든 이런 형식으로 많이 썼다고 한다. 

이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은 등장인물이 현재의 누구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기자 역시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권 PD는 자신의 작품이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알려주는 그런 책으로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 작품성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 PD와 연예인이 만나 잘된 커플도 있지만, 소수잖아요. 서로 추구하는 것이 다른 것 같습니다. 연기자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만, PD는 창작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연기자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권 PD는 이 작품을 95년 3개월간 LA에서 연수를 받았을 때 썼다. 소설에도 나오는 것처럼 연수를 받으면서 많은 곳을 다녔다. 특히 그때 처음으로 본 사막의 석양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장관이다. 주인공 중훈이 사막 위에서 자살하는 것은 바로 이 기억 때문이다. 바쁜 방송일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담고 있었는데, 지난해 고려대 대학원에서 연수를 받으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은 전부터 써보고 싶었죠. 대학 시절에 몇 차례 신춘문예에 응모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막상 작품을 쓰고 출판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죠.(웃음) 아직도 써놓은 것은 많은데, 출판은 언제쯤 하게 될지 모르겠어요.”

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PD로서…

“ ‘전원일기’ 2부 만들고 싶어 극적으로 끝내지 않았어요”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22년 동안 계속돼온 ‘전원일기’는 2002년 12월 1088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도 가끔 택시를 타면 ‘전원일기’ 끝나니까 재미가 없다고 하시는 기사분들이 많습니다. 거기 나오는 얼굴들 보면 반가운데….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전원일기’의 내용을 보는 게 아니라 정든 사람들 보는 재미로 그 드라마를 사랑하셨던 겁니다.”  - 김혜자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중에서

권이상 PD와 만난 곳은 ‘전원일기’의 촬영지였던 양수리의 한 카페다. ‘전원일기’는 권 PD와 따로 생각하기 힘든 작품이다. ‘전원일기’는 1980년 10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22년 2개월간 한국 TV 방송사상 최장수 농촌 드라마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세월만큼 이 드라마를 거쳐간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특히 연출자는 이연헌 PD를 필두로 14명이나 된다. 다들 한 번으로 끝났던 연출을 권이상 PD는 유일하게 두 번이나 한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90년부터 92년 8월까지 연출을 맡았어요. 그 뒤에는 ‘베스트극장’에서 단막극을 만들었죠. 99년에 ‘전원일기’ 기획으로 참여했다가 드라마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제가 다시 연출을 맡게 됐죠. 이렇게 두 번 맡으면서 500회, 1000회를 제가 만들었어요. 두번째 연출을 맡을 때는 처음 했을 때와 달리 연기자가 많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원래 멤버들을 복귀시켰더니 드라마가 다시 힘을 받더라구요.”

최불암, 김혜자 없는 ‘전원일기’는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권이상 PD는 ‘전원일기’의 대표적인 연출자로 인식됐다. 하지만 자신이 연출을 맡았을 때 드라마를 끝내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시청자와 시민단체가 많이 반대했어요. 드라마를 끝내는 것은 제가 결정할 사항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종영이 됐어요. 회사에서도 너무 오래된 드라마다 보니까, 새로운 것을 찾아보자고 요청했죠. 그리고 연기자들이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지만, 연세 드신 분들이 무척 힘들어하셨어요. 정애란 선생은 대사 한마디 하기도 힘드셨거든요. 시간대가 자주 바뀌면서 시청률도 예전처럼 나오지 않았고. 너무 오래 하다 보니 소재도 고갈되고, 드라마에 매너리즘도 생겼고… 이런저런 이유들이 겹친 거죠.”

종영 6개월 전부터 PD와 연기자들은 준비를 하고 있었단다. 다들 아쉬워했지만, 이심전심으로 드라마 종영이 기정사실화된 것. 하지만 아직도 끝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종영 1년 전에는 쌍봉댁(이숙)과 응삼이(박윤배)가 드라마틱한 결혼을 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복길이와 영남이의 결혼’은 마지막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실에서는 두 사람이 백년가약을 맺는 해피엔딩을 보여줬지만. 그리고 나이도 가늠하기 어려운 할머니의 죽음도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전원일기’를 다시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아직도 좋은 시나리오만 있다면 다시 해보고 싶어요. 지금 창사 특집극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원일기’가 끝난 이후의 이야기를 하려고도 했다니까요. 그때 결혼도 시키고, 할머니 죽음도 보여주고 하면서요. 여러 가지 사정상 그러지 못했지만…”

그동안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야외 촬영지인 양수리는 겨울엔 너무나 춥고, 여름엔 너무나 더운 곳이었기에 촬영시 겪는 어려움도 많았다. 그리고 갈수록 농촌 분위기가 사라져갔기 때문에 장소도 옮겨  다녀야 했다. 무엇보다 “농촌 드라마가 농촌의 현실을 하나도 안보여준다”는 비난이 가장 가슴 아팠다.

권 PD는 누가 뭐라고 해도 훈훈한 가족 드라마로 밀고 나갔다. 드라마가 사회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드라마 촬영지에 시청자들이 많이 찾아오셨어요. 심지어 해외에서 오신 분도 있었다니까요. ‘전원일기’를 보면서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경로사상 을 배운다는 사람도 많았죠. 저도 그런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구요.”

권 PD의 뚝심이 ‘전원일기’를 그토록 장수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철학적인 드라마 만드는 PD

“아직도 드라마 만드는 데 체력은 문제 없어요”

5형제 중 둘째로, 그의 집은 ‘전원일기’의 가족같이 증조부를 모시고 살았다. 증조부는 명성황후가 살해됐을 때 하얀 갓을 쓰고 벗지 않았을 정도로 완고한 분이었다. 아버지는 ‘전원일기’의 김 회장 같은 면장으로 모든 마을 일에 관여했다. 선비 집안이었기에 경제적으로는 많이 부족했다. 대학 다닐 때도 용돈은 직접 벌어 충당해야 했다.

‘범생이’처럼 공부만 하면서 대학을 졸업했다. 78년 문화경향(현재는 MBC와 경향신문으로 나뉘었다)에 PD로 입사했고, 처음에는 쇼,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쇼프로 PD와는 천성적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음주가무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선배들에게 많이 깨지기도 했다.

“그래도 ‘웃으면 복이 와요’ 같은 유명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서울국제가요제’도 만들어봤고, 남이섬에서 열린 ‘음악페스티벌’도 연출해봤죠. 하지만 처음부터 드라마를 지망했기 때문에, 10년 정도 지난 뒤 드라마 PD로 자리를 옮겼어요.”

그때부터 권 PD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베스트셀러극장’을 통해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단막극을 만들었다. 88년 ‘애너밸리를 위하여’라는 작품으로 단막극에 데뷔했다. 그리고 최진실이 신인이었을 때 출연한 박범신 원작의 ‘시진읍’은 단막극 PD로서 그의 이름을 알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후 문순태 원작의 ‘제3의 국경’이나 이정길이 출연한 ‘비늘’ 등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주제가 강한 작품을 많이 했어요. 드라마로 만드는 매력이 있거든요. 그때야 원작 자체가 구성이 좋고 힘이 있어서 드라마로 만들고 싶은 작품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베스트셀러극장’이라는 프로그램 이름도 ‘베스트극장’으로 바뀌었잖아요.”

드라마를 만들면서 그동안 숨겨놓은 능력들을 하나 둘씩 펼쳐나갔다. 지금도 후배들처럼 현장에 나가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현재는 창사 특집극을 준비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뒤지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체력적인 면이나 아이디어나. 드라마는 평생 만들고 싶습니다. 그게 제 욕심이에요.(웃음)”

인터뷰가 끝난 후에야 권 PD가 왜 기자를 양수리에 초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드라마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최병준  장소 협찬 / 카페 오데뜨(031-751-7721)

「어린왕자를 찾아서 나는 사막으로 간다」는 어떤 소설인가?

이 작품은 시점을 1995년에 두고 1980년부터 15년간에 걸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픽션과 논픽션을 교차해 풀어나갔다. 소설, 일기, 시, 여행기 등의 형식을 혼합한 ‘퓨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본인의 일기 부분을 소설 형식과 교차 구성해 리얼리티가 느껴진다. 작품 중간 중간 나오는 시는 작가의 작품. 작품의 주인공은 방송국 PD ‘중훈’과 톱스타 ‘소이’다. 1980년 시골에서 상경해 명문 대학에 입학한 중훈은 친구의 사촌동생인 희선(나중에 연예인이 되면서 ‘소이’라는 예명을 쓴다)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대학 신입생과 고등학교 2학년인 이들은 사귄 지 두 달 만에 동반 가출을 감행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사랑은 끝내 아쉬움 속에 추억만을 남긴다. 대학을 졸업한 중훈은 방송사 프로듀서가 되고, 방송사가 주최하는 가요제에 참가한 희선을 다시 만난다. 희선은 소이라는 예명으로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 일약 스타로 떠오른다. 방송 프로그램을 하면서 두 사람은 은밀하게 사랑을 나눈다. 소이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마침내 영화에도 출연해 톱스타가 된다. 소이와 중훈의 관계는 점차 소원해지고, 소이의 결혼식이 있던 날 중훈은 캘리포니아의 한 사막에서 자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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