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학후 줄곧 이름모를 수초들을 그려온 서양화가 이강화

프랑스 유학후 줄곧 이름모를 수초들을 그려온 서양화가 이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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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풀을 그립니다. 소박함이 살아나니 나약함을 벗어 던질 수 있었어요”

고향은 투기 속에 웅대해진다

그림은 우리의 기억을 부양한다

균일한 외양, 거대한 위용! 메트로폴리스도 모자라 메갈로폴리스로 내달리는 신도시는 하늘을 목표로 삼으려는 듯 서로 어깨를 견주고 있다. 중차대한 선진 조국의 꿈은 동심을 비웃고 우리의 고향마저 깡그리 무시했다. 세상이 변하고 바뀌어가듯 작가의 어릴 적 놀이터도 그 본연의 자연스러움이 사라진 지 오래. 작가가 어릴 적 뛰놀던 인천 부평은 이제 중동 신도시란 이름이 어울리는 거대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인사동 갤러리에서 21번째 개인전을 가진 서양화가 이강화 교수(세종대)의 화폭에는 여전히 고향이 있다.

그가 화폭에 담는 것은 작은 생명들. 사람들이 고개 들어 스카이라인을 좌지우지하는 아파트 단지의 위용에 혀를 끌끌 차고 있을 때, 작가의 시선은 고개를 낮추어 여전히 가녀린 생명을 잇고 당당하게 움을 틔운 그들을 놓치지 않았다. 엉겅퀴, 강아지풀, 이름 모를 수초들, 버드나무, 들국화….

“저 아파트들 있잖아요. 거기가 다 논이었어요. 미꾸라지도 참 많이 잡았죠. 여기가 시골이었거든요. 이번 개인전에 올린 작품 중 ‘회상 ­ 신트리’라고 있는데요, 몇 해 전 화실 근처의 풍경이죠. 늪지대였는데, 지금은 그곳에 건물이 들어섰네요.”

그가 창작 방향을 사실주의에 의한 잡풀 묘사로 못박은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고,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조형적 풍요로움에 대한 자각에서다. 오랜 기간 부단한 실험과 변모를 거듭한 결과 ‘자연을 구현하는 회화’라는 결론을 얻게 됐다고.

그렇다고 과거의 그것에만 연연하지 않았다. 주위에 소중한 생명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알기에. 화실 옆 골목만 나가도 이름 모를 풀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바로 그 영상들이 작가의 손에 의해, 작가의 가슴에 의해, 작가의 머리에 의해 화폭에 옮겨졌다.

사실 이강화 교수의 이전 그림은 원경을 답사하는 노고가 있은 후에야 가능했다. 화실에서 그나마 가까운 강화 외포리는 물론, 동강과 우포늪의 자연 환경을 찾아 대담한 필치로 작품을 그려냈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러 서는 굳이 멀리 여행을 떠나야 볼 수 있는 것에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것들로 옮겨졌다.

거친 질감 위에 담담하게 묘사된 이름 모를 들꽃, 빛 바랜 창호지를 연상시키는 투박한 배경 위에 핀 새빨간 코스모스,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려갈 듯한 갈대밭. 소재들이 오래전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그의 작품들은 소박한 식물의 아름다움을 대담하면서도 정성 어린 필치로 묘사되고 있다.

난해하기에 설명이 장구한 예술

소박하지만 그것으로 이해되는 그림

작가는 무척이나 곱고 예쁜 그림을 그린다. 풀잎의 비밀스러운 속삭임, 잎새에 이른 살랑거리는 바람을 그대로 담아낼 만큼 섬세한 촉수를 지녔다. 그는 대상을 충실히 모방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속마음까지. 감정이입을 통한 정신적 모방이라고 할까. 턱없이 난해함만을 쏟아내는 현대 미술의 질주 속에서도 ‘고전적인’ 그림만을 고집해온 것. 결국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 가진 생명의 아름다움은 소시민들의 삶에서 발견되는 건강함과 다르지 않다.

전시되었던 40여 점의 작품은 모두 풀과 꽃, 늪지들이지만 ‘자연’이라기보다 작가가 거주하는 인천 부평이 소재다. 일상 생활에서 하찮다고 여겨지는 자연의 소박함을 작가 자신의 가치로 표현해냈을 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토끼풀, 엉겅퀴, 나팔꽃 등은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쓰이는 꽃들은 아니지만 작가의 시선을 통해 마음 한구석이 따스해지는 정감을 느끼게 한다.

“강아지풀을 자세히 보면 그 머리 위가 발그레하거든요. 제 작품을 보고 ‘강아지풀이 왜 그래’ 하는 분도 있어요.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보면 정말 강아지풀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이처럼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것도 다 다리품을 판 덕분이다. 그의 작업은 자신이 사는 인천 주변의 강변, 들판, 산 등을 쏘다니며 스케치하고 찍은 사진들을 화면에 재구성해 자신만의 회화적 풍경을 형상화하는 것. 때로 나무 소재의 문짝이나 도마, 철판을 캔버스 위에 올리고 풀과 꽃을 그리거나, 안료에 흙과 젯소를 섞어 담장이나 흙바닥의 거친 질감을 살려낸다.

버려진 물건들을 그림의 바탕으로 이용하는 것도 재료적인 호기심도 호기심이지만 오랜 시간의 때와 향수를 간직한 물건들에서 떠오르는 정감 때문으로 여겨진다. 잘 다듬은 문짝과 도마 등은 작업실 한구석에서 작가의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작가와 서로 익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작가의 발상이 떠오르면 하룻밤 사이에라도 향기로운 들풀의 이미지가 새겨지게 된다. 캔버스와는 또다른 느낌의 색조와 질감으로 투박하면서 색다른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소재를 선택하고 작품에 다가서는 태도에서부터 작품으로 사람들과 따스하게 공감하고자 하는 바람까지….

그런 탓에 강렬한 색상을 발하는 꽃과 잎새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여백이 살아났다. 이 ‘여백’은 특이한 질감과 바탕색으로 메워져 ‘공백’과는 거리가 멀다.



작품은 낯선 풍경이 아니면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화면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꽃이나 풀을 묘사하는 데보다 여백을 기르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이번 전시는 300호가 넘는 대작이 7점이나 전시되어 무엇보다 작가가 추구한 자연에 대한 표현이 소박함을 넘어서 강한 기운을 내뿜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의 리듬을 온전히 습득해 작가의 내면으로 간직한 자유로움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 속 풍경은 압도하는 힘으로 다가온다. 어떤 것은 날카롭고(생명-흐름:강아지풀), 어떤 것은 절절하고(축복:엉겅퀴), 어떤 것은 사랑스러운 느낌(외출:들국화)을 던진다.

“자연이 표현하는 선과 색채, 그리고 그 독창성과 다양함은 사람의 머리로 만들어내는 어떤 흔적보다 풍요롭다.”

현대 회화의 급진적 질주

작가는 작가가 원하는 길을 간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파리 유학 후 작가가 선택했던 것은 바로 자연에 관한 소박한 이야기다. 다양한 현대 미술이 교차하는 곳에서 작가는 현대 회화의 급진적인 질주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자 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지점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자연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다 정직하게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소재와 기법, 내용을 선택했다는 것. 현대 미술의 관심 영역이 첨단 매체, 또는 이질감에 의한 충격으로 시선 끌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지향하는 현상과 비교된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당연히 현대 미술의 세례를 흠뻑 받았을 작가가 별로 튀지도 않고 주목받기 어려운 소박한 소재와 재료를 선택한 데에는 용기와 자기 확신이 필요했을 터.

어쩌면 그림을 천직으로 생각해온 자연스러움에 이끌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마땅히 미술 교육을 통해 그림을 만나지 않았다. 그저 소질이 있었고 미술 대회에 나가면 상을 타왔지만 언제나 혼자 그림을 그렸다. 공부도 곧잘 하던 그에게 미대 진학은 벽과의 싸움이었지만 자신의 확신에 다른 것을 따지지 않았다.

“제가 나온 고등학교가 시험제 학교였어요. 주변에 공부 잘한다는 수재들이 오는 학교였는데, 그림을 그리겠다고 나선 학생은 저밖에 없었으니 선생님들의 시선도 그리 곱지 못했죠. 물론 집안의 반대도 적지 않았고요.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하면 그림을 그리게 해준다는 말에 공부를 했고 서울대 인문대는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왔어요. 물론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공부하기를 바랐을 거예요. 근데 전 미대를 택했죠. 그 미대를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기 위해 받은 성적이었으니 당연히 그림을 그려야죠.”

그렇게 그림과 연을 맺었으니, 남편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그의 성적표는 0점이란다.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애틋함은 여느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그림을 곧잘 그리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상상력을 망치고 싶지는 않아요. 그림 그리는 것을 업으로 삼아도 말리고 싶지 않고요. 다만 서양화만은 그리지 않았으면 해요. 괜히 누구의 자식, 누구의 아버지라는 말로 창작의 열의를 망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서양 화가인 자신으로 인해 아이들의 미래가 지장 받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아이들의 미래를 점지하는 말인 듯도 해 의미심장하다.



그림은 그의 모든 것이다. 작품을 그리기 시작하면 꼬박 화실에서 시간을 보내니 그럴 듯도 하다. 한 작품을 마무리해야 다음 작품에 손을 대는 스타일이라 길게는 3~4개월간 한 작품에 목을 매기도 한다. 그 많은 시간들을 온전히 혼자 보내야 하는 탓에 음계만 익히고 연주하기 시작한 클라리넷 연주도 웬만한 실력을 갖추었을 정도다.

“요즘은 작품 소재를 주위에서 찾는 탓에 화실 옆 공원 등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있어요. 아마 수건 하나만 목에 걸고 나가면 일 없는 동네 백수의 폼새가 그대로 나오죠. 스트레스가 쌓이면 자는 편이고요.”

하나의 작품을 마치고 다음 작품을 구상하다 보면 ‘무엇을 그려야 할지 느낌이 온다’고 한다. 영감은 예술 분야에서 특히 강조되는 요소다. 현실에서는 비타협적일지라도 창작의 모티브를 감지할 때는 민감하게 열려 있어야만 한다. 외압은 차단하되 오는 것은 기꺼이 마중 나가야 하는 것이다.

가녀린 풀을 렌즈에 담고 가슴에 담는 작가는 그것으로부터 오는 것을 확실하게 붙잡기 위해 혼자의 시간을 갖는다. 긴 창작의 시간 속에 급격한 현대 미술의 물살도 비껴간다. 마음으로 확신한 것을 회화로 확인하기 위한 나름의 분투가 느껴진다. 그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희미하게 ‘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살아 있음, 생명의 힘이다.

나약한 잡풀이 뿜어내는 생명의 기운이 얼마나 큰 것이냐마는 작가는 확대경을 대고 그 생명의 신호를 포착했다. 귀엽게 보아준 것이 아니라 생명의 존엄을 본 것. 시선을 잠시 던져 삶에 끼워준 것이 아나라 놀라울 만큼의 힘과 스케일을 부여한 것. 이것이 바로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아닌, 회화적인 성취를 붙잡은 자연이다.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현재도 살고 있는 인천은 근 10년 사이에 아파트 단지와 상업지구로 변모했다. 논이고 밭이고 개울이었던 땅은 아스팔트와 건물로 바뀌어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졌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을 통해 어린 시절의 친구들을 불러내고 있다. 마음을 주었던 풀과 작은 꽃들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움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넉넉한 존재의 힘과 회화적 역량을 통해 재탄생시키고 있다.

자연이 그리는 드로잉, 그 리듬을 체득한 작가가 앞으로 보여줄 변주곡이 기대된다. 외형의 자연, 당위로서의 자연에서 내재의 자연을 품게 된 작가의 성취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리라 믿는다. 그것은 또다른 투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원칙은 동일할 터이다. 자신에게 진실함을 요구하며, 희미하게 ‘오는 것’에 대한 예민함을 잃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다.

세상은 작가의 고향에 투기(投寄)를 했다. 그렇지만 작가가 성취한 회화는 자신의 모든 것을 투기해 얻은 것이다.

글 / 강석봉 기자  사진 / 지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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