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기도 여자 연주자가 있는데, 몇 그램의 지휘봉으로 하는 오페라 지휘가 남자만의 성역이라뇨!”

첫 무대는 떨리게 마련이다. 게다가 드물게 여자 지휘자라는 이력이 알려지면서 주위의 관심도 폭발하고 있다. 지난 10월 15일과 16일 충남 아산에서 열린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지휘자 채지은씨(40)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녀의 이력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오페라를 위해 준비를 해 왔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녀는 서울예고와 서울대 음대, 로마 산타체칠리아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피아니스트다. 하지만 그녀의 길은 다른 곳에도 있었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익힌 분석적 통찰과 감각은 지휘자로 설 수 있는 튼튼한 자양분이 됐다. 이후 움베르티데 국제 오페라 아카데미에서 성악을 공부했으며, 밀라노 시립음악원에서 가곡과 오페라 코치과를 졸업했다. 움베르티데 국제 오페라 아카데미와 한스 슈바로프스키 아카데미에서 각각 쟌프랑코리볼리와 줄리어스 칼마르에게 지휘를 사사한 후, 이탈리아 현지에서 ‘밀라노 오페라 스튜디오’를 창단했다. 음악감독 및 지휘자로서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했다.
밀라노에서 창단한 오페라단 ‘밀라노 오페라 스튜디오’. 성악을 전공한 남편의 지원으로 두려움 없이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 ‘나비부인’ ‘라 보엠’ ‘돈 파스콸레’ 등 10여 편 오페라를 제작하고 지휘했다. 현지의 「꼬리에라 델라 세라」 「로페라’」 등의 일간지와 음악 잡지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이력은 우리에겐 여전히 생경하다. 법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유독 오케스트라의 지휘대는 남자들의 차지였다. 무겁다는 이유로 남자 악기라 여겨지던 금관악기까지도 여자 연주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자휘봉만큼은 넘기 힘든 벽이었다. 몇 그램 나가지 않는 지휘봉이 그렇게 들려지기 무거웠던 것이다. 물론 숙명여대 김경희 교수 등이 오케스트라의 무대를 오래 전부터 누벼오기는 했지만 오페라 전문 지휘자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한결같이 비극으로 끝나야 하는 오페라의 전통상 오페라 지휘대의 작은 공간은 여자에게 있어 비극의 무대였던 셈이다. 그러나 비극의 무게를 걸머지고 수많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그녀의 파워는 그녀에게는 격정이 되고 관객에게는 격찬이 되었다.
“우연히 시작했어요. 사명감 같은 것으로 치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성악과 피아노를 고루 다루면서 오페라의 세부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오페라 코치가 되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지휘까지 넘보게 되었어요. 다행스러운 것은 주위의 평이었죠. 여자라고 여성스러운 지휘가 나올 줄 알았나 봐요. 힘차게 지휘해서 다행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녀가 2002년 밀라노의 작은 스칼라 극장으로 불리는 스트렐러 극장에서 지휘한 ‘나비부인’은 현지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나 채(Gina Chae)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연주자를 이끌면서 엮어내고 꿰어내는 지휘는 남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런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요. 물론 남성 위주의 전통은 여전히 완고한 것 같아요. 특히 기악이나 성악에 비해 지휘만큼은 ‘남자의 성역’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였죠. 하지만 여자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물론 주위의 시선도 말 한마디도 그리 곱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성격이라 스트레스 없이 무던하게 지휘 공부와 지휘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이 무던함은 집안 살림에도 그대로 드러난다고 한다. 공연 준비 때문에 집안이 엉망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쏟아야 하는 땀과 노력을 쉽게 얘기할 수는 없다. 수많은 사람을 조율하면서 화음을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이끄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겨울날 연습을 끝내고 집에서 밥을 먹는데 추위가 느껴지더라구요. 주위가 싸늘해지는 것이… 하루 10시간씩 오페라를 연습하면 남자들도 지치는데, 내장까지 꽁꽁 언 것이 그제야 풀리는 느낌이었죠. 지휘할 때는 엔도르핀이 막 솟아서 몰랐는데, 긴장이 풀리면서 몸도 놀란 거죠.”
여전히 열악한 분위기다. 대형 뮤지컬 무대에서나 받을 수 있는 찬사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은 않다.
“지휘자가 기운이 빠져 있거나 헤매면 모든 단원이 중심을 못 잡거든요.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정돈해주면서 전체를 끌고 가야 하므로 지휘를 그냥 공연장에서 팔 운동하는 사람쯤으로 여기면 안 되죠. 연습할 때 제가 어찌나 독하게 했던지 사람들이 ‘전사(戰士)’라는 별명을 지어줄 정도니까요.”
뮤지컬과는 달리 고전(古傳)을 소재로 고전적인 발성으로만 공연하는 오페라. 그런 만큼 오페라는 하는 사람들의 노력도 고전(苦戰)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뿌린 만큼 거둔다고 그들이 흘린 땀과 노력을 거름 삼아 오페라는 점점 더 대중 속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결국 진두 지휘자는 그녀다.
글 / 강석봉 기자 사진 / 황정옥
오페라의 주인공은 반드시 죽는다!
오페라는 모두 비극이다. 그 비극이란 의미는 단순히 사랑하는 남녀가 이루지 못하고 헤어졌다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다. 잔혹스럽게도 누군가 죽어야 끝이 난다. 결국 오페라의 비극이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한두 명 정도 죽는 것은 보통이고 주인공들이 단체로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탓에 비극이 아닌 오페라는 오페라 부파(Opera Buffa)라고 하여 오페라와는 다르게 취급한다. 이 경우는 오페라의 규칙들도 적용되지 않는다. 여주인공이 죽지 않고 대사가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비극적 오페라를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라고 부르지만 잘 쓰지 않는 용어이고, 그냥 오페라로 부른다. 따지면 비극 오페라를 뜻하는 것이지만, 결국 그것이 오페라를 통칭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