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뽀이’로 시작해 최고경영자까지 오른 호텔 리베라 박길수 사장

‘호텔 뽀이’로 시작해 최고경영자까지 오른 호텔 리베라 박길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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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고 성실한 것이 유일한 ‘빽’이었습니다”

‘호텔 뽀이’여서 결혼 전 양가 상견례에서 얼굴을 붉혀야 했던 사람. 일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것이란 믿음을 가졌지만, 학력 때문에 스카우트 대상에서 제외됐던 사람. 그가 호텔리어의 꿈인 최고경영자가 되어 부러움을 사고 있다. 웨이터에서 시작해 사장에 오른 리베라 호텔 박길수 사장의 삶을 통해 일상에 찌든 사람들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윗선배가 하는 일을 눈여겨봤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호텔 리베라의 박길수 사장(48)은 웨이터에서 시작해 특급 호텔의 경영자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호텔 경영자들의 친목 모임에 나가면 다른 호텔 사장들이 그에게 “막내 왔는가?”라는 말을 할 정도다. 호텔에 근무하는 친구의 누나가 “얼굴 반반하니 ‘호텔 뽀이’로 일하면 굶어죽지는 않겠다”고 한 말에 시작한 일이 그의 인생을 바꿀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가 처음 호텔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 대학 입시에 연거푸 낙방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였다. ‘호텔 뽀이’가 되기 위해 YMCA에서 6개월 연수 과정을 마치고 웨스틴조선호텔 ‘나인스 게이트’의 실습 웨이터로 시작했다. 부지런하고 성실해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서울 힐튼, 신라, 라마다 르네상스 등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2001년 호텔 리베라 총지배인으로 옮겼고, 지난해 마침내 사장이 된 것.

승승장구로 표현되는 성공 신화를 일구었지만 그가 걸어온 길이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해프닝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다. 그 아픈 기억들을 딛고 선 것이 성공의 열쇠였던 셈. 간판은 없지만 실력은 있는 그를 알아본 신안그룹의 박순석 회장의 눈도 범상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요즘에는 저처럼 갖추지 않은(?) 사람이 성공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회장님은 바닥부터 모든 일을 해본 사람을 찾고 있었고 그게 제게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직원들의 유니폼과 식사를 직접 챙기며 아무리 경기가 어려워도 학자금 지원은 중단하지 않는 것을 보고 저도 배운 게 많습니다.”

사실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는 쉽지 않다. 이력과 경력, 상황이 내세울 것 없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1982년에 결혼을 했는데, 처가 식구들에게 첫인사를 드릴 때 난감했어요. 직장을 물어 ‘조선호텔에 근무합니다’ 했더니 ‘거기서 뭐 하나?’란 질문이 이어지더군요. 할 수 없이 ‘웨이터’라고 대답했죠. 시골 어르신들이라 처음에는 뭔가 하다가 손님 시중드는 일이라고 설명했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리시더라고요. 민망하기도 하고….”

첫 만남의 부담스러움을 더 열심히 찾아뵙고 성실히 살아가는 것으로 보상받기는 했지만 제일 난감한 순간이었다고. 물론 지금은 사위 자랑에 침이 마를 새 없지만도.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해프닝을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자신을 고객에게 각인시키는 도전이기도 하다. 지난 81년 어느 날, 그는 백두진 당시 국회의장에게 발칙한 사고(?)를 저질렀던 것.

“맥주를 일부러 그분의 팔에 엎질렀습니다. 큰절을 세 번 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게 오히려 귀여움을 샀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분 눈에 들고 싶어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뭔가 꽉 막힌 듯한 체증에 벽을 맞닥뜨린 것 같은 순간도 경험했다. 항상 자신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살피고 미리 공부했다. 웨이터 시절에는 캡틴(중간관리자)이 하는 일을 지켜봤고, 캡틴이 돼서는 지배인의 일을 눈여겨봤다. 그런 덕에 승진도 빨랐고 스카우트 제의도 많았다. 한번은 성실히 일하는 것이 소문이 나서 다른 회사의 중역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경영진 면접까지 본 상황에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확인전화를 해야 했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은 “중역이 되려면 대학 졸업 학력이 필요한 데, 그게 없어서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화도 났고 기분도 상했지만 고졸 학력인 것은 사실이었고 그런 인사 관행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대학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호텔 경영 이론을 배우고 있다. 미래에는 대학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쳤으면 하는 소망도 품고 있다.

사장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박길수 사장

간혹 그의 성공을 운으로 빗대며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의 하루 스케줄을 보면 성공의 포인트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왕도는 성실함과 부지런함.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면 출근하고 밤 9시가 넘어야 퇴근한다. 집보다 호텔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다. 그렇지만 아이러니컬 하게도 호텔 리베라의 사장실에서 가장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 또한 그다. 사장실이 성역이어서가 아니라, 사장실에 붙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호텔 안팎으로 분주히 움직인다. 직원들의 고충을 들어 해결하고, 고객을 만나 직접 호텔 판촉을 하며, 시설 상태를 점검하고, 영업장이 바쁘면 직접 접시까지 든다. 직원과 고객에게 친근하고 인간적인, 그러나 쉽게 대할 수 없는 독특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또 하나의 성공 요인은 메모 습관이다. 메모는 그가 최고경영자에 이르게 한 중요한 자산이다. 권위적이지 않지만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 많은 것도 메모 습관에서 비롯된 확실한 일 처리에서 있다.

“호텔은 종합 예술이고 문화죠. 누구 한 사람이 뛰어나기보다 전체적인 조화가 중요해요. 유리잔을 닦는 일은 굉장히 하찮아 보이지만 그것을 소홀히 하면 아무리 훌륭하게 객실을 꾸며도 다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리니까요.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결국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 호텔이란 예술을 만드는 중요한 배역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동기 부여가 가장 중요하다. 언제나 스스로 중간쯤 간다고 생각하던 그에게 1984년 신라호텔 동방플라자에 지원해 수석 합격을 한 것은 인생을 다르게 보는 전기가 되었다고.

“고등학교 때도 도회지 학교가 아닌데도 전교생 5백여 명 중 250등 정도 했어요. 평생 1등이란 자리는 제 것이 아닌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1등을 한 거예요. 그 경험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지요.”

현재 호텔 리베라는 1백50여 실 규모의 별관을 짓고 있다. 완공되는 내년 5월경이면 서울 강남의 새로운 특1급 호텔로 거듭날 것이다. 변화와 변신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른 박 사장처럼 호텔도 한꺼풀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것.

“기본에 충실하면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어요. 또 자신의 일에 프라이드를 가지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일에 매력을 느낄 수 있고요. 그러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에게 그 노력에 합당한 도움을 줄 겁니다.”

그 처음, 미약하지만 그 꿈이 창대했듯 많은 이의 부러움이 집중되는 자리에 선 박길수 사장이 전하는 말은 도덕 교과서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의 이력에 오버랩된 이야기는 살아 있는 어드바이스로 꿈틀거리는 느낌이다.

글 / 강석봉 기자  사진 / 지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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