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지가 독도인 최초의 한국인 해병대 조강현 일병

독도는 우리땅

출생지가 독도인 최초의 한국인 해병대 조강현 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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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을 하고 나서 독도에 관한 영화나 연극 만들려구요”

독도 출생지 한국인 1호로 기록되고 있는 조강현 일병. 그는 요즘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정도다. 지금은 군인 신분이기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말하는 일본인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말하지 못하지만, 전역 후에는 독도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 독도 사랑을 실천할 계획이다.

아버지의 손에 46일간 이끌려 독도에서 살아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에 있는 작은 섬. 36개의 암도와 암초로 구성된 섬이다. 평균 기온은 영상이고 강수량이 연중 고루 분포하지만, 해풍이 심해 사람이 살기에는 어려운 땅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인의 가슴속에 커다란 섬이 되었다. 그 작은 섬의 이름은 ‘독도’. 일본 시네마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발표는 한국인의 가슴에 ‘독도 사랑’ 불을 질렀다. ‘독도는 우리 땅’은 이제는 아무리 외쳐도 지겹지 않는 구호가 되었다.

독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 가족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독도의 유일한 주민이었던 고 최종덕씨 일가. 1965년부터 어로채취권을 얻어 독도에서 생활해왔다. 5평짜리 움막을 짓고, 빗물을 받아서 생활해야 할 정도였다. 식수를 구할 수 없어 자연샘인 ‘몰골’을 직접 만들었고, 이곳까지 이어지는 998계단을 놓기도 했다. 독도에서 생활하기 위해 수중 창고를 마련하기도 하고, 전복 수정법과 특수 어망도 개발했다. 경운기 엔진으로 자가발전을 해서 생활을 할 정도로 고인은 독도에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1987년 태풍으로 인해 생활 터전이 모두 파괴되었고,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독도는 또다시 무인도가 될 위기에 처했지만, 한 사람이 고인의 유지를 받들었다.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독도에 들어가 생활한 이는 사위 조준기씨(49)다. 울릉도에서 해병대 하사로 근무하다 고인의 딸과 결혼을 했고, 장인이 세상을 떠난 후 독도 사랑을 이어가기로 한 것. 제대 후 스물여섯 살이 되던 1985년 7월부터 1993년 8월까지 8년 동안 독도에 살았다. 자연스럽게 조준기씨의 주소지는 독도로 되어 있었다.

아들 조강현 일병(21)은 울릉도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주소지를 따라서 출생지가 독도가 된 것. 독도출생지 한국인이 된 것이다. 독도가 많은 입에 오르내리면서 조강현 일병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됐다. 특히 아버지의 뒤를 따라 해병대에 근무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많은 매체에서 그를 취재하려고 열을 올리고 있다. 갑자기 ‘뉴스 메이커’가 된 사실 때문에 그는 어리둥절할 정도다.

“아주 어렸을 때 독도에 살아서 솔직히 기억은 잘 안 나요. 요즘 인터뷰 요청이 많은데, 난감해서 아버지께 여쭤보기도 하고 그래요. 아버지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라세요.”

사실상 조강현 일병이 독도에서 산 날은 46일 정도밖에 안 된다. 조 일병이 두세 살 때 조준기씨는 독도 출생으로 되어 있는 아들이니까 독도에서 살아봐야 한다고 생각해 데려가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조 일병이 기억하는 독도는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기억 속에는 꽤 넓은 집이 5평짜리 움막이라는 것도 요즘 알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모르던 독도 생활은 아버지의 이야기와 일기장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언뜻 본 아버지의 일기장에는 ‘나무도 심고, 토끼도 키우던’ 이야기들이 나왔다. 아버지는 계단 난간을 그물로 막고, 조강현 일병의 몸을 끈으로 묶어놓기도 했다. 어린아이가 독도에서 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곳, 독도에서 아버지가 삶의 터전을 만들어 살아낸 일에는 자부심을 느낀다. 학창 시절 ‘독도 소년’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모두 아버지 덕분이다.

“수업 시간에 독도 이야기가 나오면 선생님들이 모두 저를 지목했죠. 아버지가 독도에서 생활하셨다는 것을 아셨거든요. 저 때문에 교육적인 효과가 높았을 거예요.(웃음)”

어렸을 적부터 집 안에 수도 없이 붙어 있는 독도 사진들을 보면서 커왔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독도에 관한 애정은 많다. 하지만 군인 신분에 독도에 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은 곤혹스럽기만 하다. 지금은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인들에게 말을 아끼고 있지만, 제대 후에는 독도에 관한 영화나 연극을 만들어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것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끼’ 물려받아 배우의 꿈 키우고 있어

조강현 일병은 동국대학교 연기전공 03학번이다. 학창 시절부터 학교에서 MC도 보고, 연극으로 대상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배우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러다가 지난해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남들은 모두 힘들어서 기피하는 해병대에 자원한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가 해병대 하사관 출신이잖아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해병대를 친숙하게 여겼던 것 같아요. 해병대 간다고 하니까 아버지도 좋아하시던데요.(웃음) 군대는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에요. 몸은 힘들지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거든요.”

조 일병의 아버지 조준기씨는 ‘끼’가 많은 사람이다. 그 끼를 이어받아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연기를 시작했다. 고등학생 시절 ‘백지나무’라는 청소년 극단에서 연극을 하며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연극·영상학부에 들어가기 위해서 준비한 것은 거의 없었다. 아니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다. 수능을 마치고 실기시험을 위해서는 선배가 알려준 연기학원에 4일 동안 다닌 것이 유일한 준비였을 정도. 강원도에 살면서 정보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조강현 일병은 요즘 학교에서 스타가 됐다고 한다. 독도 관련 기사에 자신의 이름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조 일병이 나온 기사를 스크랩해놨을 정도다. 조 일병은 2006년 7월 제대하면 독도에 관한 작품을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연극이 될지, 영화가 될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독도 출생지 1호 한국인 조강현 일병이 제작할 독도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백성우

독도에서 태어날 뻔(?)한 조강현 일병의 동생 한별이

조강현 일병의 동생 한별(16)은 독도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 조준기씨는 한별이의 출생일에 맞춰 독도에 들어가기로 계획하고 준비를 해놨다. 의료진은 출산일에 맞춰 울릉도에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고, 방송국에서는 헬기도 마련해놨다. 하지만 독도에 들어가려던 날 기상 악화 때문에 배가 뜨지 못했다. 큰 이벤트가 됐을 법한 일이었지만, 독도에 들어가는 일은 그만큼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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