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 걸린 아버지에 대한 사랑 책으로 펴낸‘현대판 효녀 심청’ 신원미

루게릭병 걸린 아버지에 대한 사랑 책으로 펴낸‘현대판 효녀 심청’ 신원미

“최신형 휴대폰, 디지털카메라 다 필요 없어요. 아빠 손잡고 예식장 들어가는 거, 그거면 돼요”

아버지가 설 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아빠는 ‘돈 벌어오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열여덟 소녀 원미에게 아빠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원미 아빠는 몸도 마음도 가난한 루게릭 환자. 벌써 8년째 투병중이다. 하지만 원미에게 아빠는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존재.

아빠 곁에만 서면 언제 어디서나 씩씩한 캔디가 된다는 현대판 효녀 심청, 원미가 전하는 ‘아빠 사랑 바이러스’.



눈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듣는 부녀

“아빠, 하고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덜덜거리는 차를 타고 서울에서 5시간. 경상북도 영양양, 원미네 집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아빠가 경제적 능력이 없으니 생활 형편이 많이 어렵겠지? 어쩌면 곰팡내 나는 단칸방에 옷가지는 사방에 널려 있고 발 디딜 틈조차 없을지 몰라. 8년간 병간호를 해왔다니 가족들 표정도 굉장히 어두울 거야. 그래도 티 내진 말자. 웃으며 들어가자. 어설픈 동정으로 안 그래도 힘든 사람들 가슴에 대못 박는 실수는 범하지 말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인간은 역시나 어리석다. 편견을 갖지 말자 되뇌면서도 어느새 또다시 제 멋대로 세상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우를 범하고 마니 말이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정체 모를 따사로운 기운이 ‘훅’ 하고 가슴속을 파고든다. 원미네는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주 작은 집이다. 따사로운 햇볕이 마구마구 쏟아지는 거실 한켠에는 이 집안의 최고 어른인 원미 아빠의 침대가 놓여 있다. 원미 아빠는 누워서 손님을 맞는 게 못내 미안했는지 반달 눈을 깜빡이며 연거푸 눈인사를 건넨다. 병자라고 하기엔 너무도 해맑은 모습이다. 가족들도 어느 한 사람 꼬인 사람이 없다. 환하디환한 웃음에 동화되어 함께 웃다 보니 혹시 루게릭병이라는 게 독감보다 가벼운 병은 아닐까라는 어처구니없는 의심마저 든다.

원미네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행복한 가족이다. 좁은 아파트 방 한구석이지만, 아빠의 침대 곁에서 원미와 어머니, 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함께 TV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밥을 먹는 모습이 단란하기만 하다.

오랜 투병 생활에도 불구하고 여느 가정과 다름없는, 아니 보통의 가정보다 화목한 원미네 집. 불청객처럼 찾아들어 아버지를 옴짝달싹 못하게 침대 위에 묶어버린 그 몹쓸 루게릭병만 아니라면 이보다 행복한 가정이 또 없을 듯싶다. 

원미 아빠는 직장에 안 나가신다. 아니 못 나가신다. 8년쯤 됐다. 사무실에 나가서 일을 하는 대신 하루 종일 거실에 있는 침대에 누워 생활을 한다. 아빠의 침대 위로는 컴퓨터 모니터가 달려 있고, 화면 가득 바둑판이 떠 있다. 또각, 또각, 또각… 원미 아빠의 유일한 취미는 컴퓨터로 바둑 두기. 손가락도, 손목도, 팔도, 어깨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아빠는 손 대신 발로, 더 정확하게는 엄지발가락으로 마우스를 클릭해 바둑돌을 움직인다. (인터뷰 차 방문했을 때도 원미 아빠는 컴퓨터로 바둑을 두고 계셨다.)

몸의 모든 근육이 조금씩 굳어가는 병,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이 병으로 인해 사망한 뉴욕 양키스 출신의 유명 야구선수 루게릭의 이름을 따 ‘루게릭병’이라고도 부른다. 루게릭은 근위축성측삭경화증으로 38세에 죽었는데, 원미 아빠는 38세에 루게릭병에 걸렸다. 원미가 초등학교 4학년, 동생 민철이가 2학년, 엄마가 37세 때의 일이다. IMF 시절이었고, 아빠가 대기발령을 받은 뒤였다. 원미 아빠는 원래 군청 공무원이었다. ‘가방 끈’이 짧은 아빠는 학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죽도록 일만 하고 살았다. 원미는 어린 시절, 일과 테니스에 미쳐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던 아빠가 항상 불만이었단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빠가 루게릭병으로 집에만 있자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며 철없던 당시를 떠올렸다.

루게릭병은 아빠의 손가락을 멈추게 하더니 스멀스멀 온몸을 타고 내려왔다. 이제 아빠는 발가락을 제외하고는 온몸이 굳은 상태. 거동은 물론이고 말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원미는 “아빠” 하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말한다.

내가 웃을 수 있는 이유! 그래도 희망은 있다

“고맙습니다, 황우석 교수님”

원미는 참으로 이상한 아이다. 보통 아빠가 많이 아파 장애를 입으면 부끄러워 숨기려 드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원미는 한 번도 아빠 얘기에 얼굴을 붉혀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아빠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떠벌리며 입이 마르도록 아빠 자랑을 해대기 일쑤.

“천재 과학자 스티븐 호킹은 스물세 살 때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고 우리 아빠처럼 의사가 길어도 5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 할아버지 지금 나이가 몇인 줄 알아? 무려 63세야. 그러니까 루게릭병은 머리가 아주 똑똑한 사람들만 걸리는 병이지. 우리 아빠도 어렸을 때 천재 소리 많이 들었대.”

중학교 졸업식이 있던 날도 사실 아빠는 학교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휠체어 탄 아빠의 모습을 만천하에 공개해 딸아이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원미가 사춘기에 들어설 즈음이라 더욱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원미는 오히려 “아빠, 졸업식에 꼭 와야 해”라며 연거푸 아빠에게 매달렸다. “아빠는 몸이 아파서 못 가”라며 둘러대도 막무가내였다. “졸업식에 꼭 와달라”는 원미의 말은 도리상 그냥 해본 말이 아니었다. 아빠는 당시 원미가 보여준 배려를, 그 사랑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원미는 그런 아이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속이 깊은 아이.

원미의 눈에 비친 아빠는 ‘불쌍하거나 딱하지’ 않다. 올 초 호흡기를 단 이후로 말조차 할 수 없는 아빠지만, 원미와 의사소통 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눈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듣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듣기도 잘 들으시고, 비록 말은 못하시지만 의사 표현도 글로 하면 되니 문제 없어요. 저희가 잘못하는 게 있으면 화도 내시는 걸요. 아빠를 보고 있으면 하나도 안 아프신 분 같아요. 항상 웃으시고, 매일 누워만 있으니 답답하실 텐데도 짜증 한 번 안 내시죠. 아빠를 보고 있으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와요. 집념, 승부욕도 얼마나 강하신데요. 아빠가 곁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큰 힘이죠.”

‘아빠’라면 끔찍한 원미지만 그렇다고 원미가 아빠를 늘 좋아만 했던 건 아니다. “아빠가 아프고 나서 아빠가 정말 미웠던 적이 딱 한 번 있다”며 원미는 아픈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후였어요. 아빠의 몸 상태가 최고로 안 좋았을 때죠. 아빠는 ‘헉, 헉’ 하며 또다시 호흡 곤란을 일으키셨고, 엄마가 구급차를 부르려는데 아빠가 막더군요. 내가 이 병 아는데 식구들한데 짐만 되니 이제 그만 하자는 거예요.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를 쳤죠. ‘아빠가 말하지 않았냐구요.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아빠가 여기서 포기하는 게 진짜 옳은 거냐구요. 그게 정말 우리 가족을 위하는 길이냐’구요. 그때 딱 한 번 아빠를 미워했어요.”

원미가 슬그머니 아빠의 손을 잡는다. 오랜 투병 생활로 인해 아빠의 손목은 원미의 손목보다 가늘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손을 내밀어주는 아빠가 원미는 고맙기만 하다.

엄마를 도와 아버지의 대소변을 다 받아내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을 안 하는 원미는 영양 시내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지난 2004년엔 희귀난치병인 루게릭병으로 투병중인 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한 공적을 인정받아 가천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제6회 ‘심청 효행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원미는 아버지를 보살피며 깨달은 ‘아빠 사랑’을 최근 「아빠는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책  속에 풀어놓기도 했다. 원미는 불행을 외면하거나 눈물만 짜는 스타일이 아니다. 얼마나 씩씩한지 원미를 보고 있으면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가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진다. 학교에선 말도 잘하고, 잘 웃어 친구도 많다. 선생님이 남녀 차별적인 발언을 하면 당당하게 반론을 펴는가 하면, 친구들의 고민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배려심도 지녔다. 뿐만 아니다.  전교에서 10등 안에 드는 우등생에 과학경시대회, 영어연극대회에서도 연달아 입상하며 ‘슈퍼 심청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원미는 결혼식 때 아빠 손을 잡고 행복하게 식장에 들어서는 야무진 꿈까지 세워두고 있다.

“다른 친구들 아빠가 부자라고, 또 건강하다고 해서 부러워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결혼할 때 다른 사람들이 값비싼 혼수를 해 가는 건 부럽지 않아요. 하지만 결혼식장에 아빠 손잡고 들어가는 것만은 무척 부러울 것 같거든요.”

원미는 요즘 신문에 ‘황우석’이라는 이름만 나오면 흥분부터 하고 본다. 황우석 박사는 원미의 가족에게 한 줄기 희망이다. 의사들이 5년을 넘기기 힘들다 했지만 원미 아빠는 8년을 견뎠다. 가족의 한결같은 사랑이 치료에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드디어 햇빛이 반짝이는 출구가 이들 가족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 인간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이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보는데 가슴이 쿵덕쿵덕 뛰어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아빠의 말처럼 희망을 갖고 매일매일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았더니 이렇게 좋은 소식이 또 들려오네요. 이제는 희망이 생겼어요. 황 박사님의 연구가 실용화되는 날, 제 꿈도 이뤄지겠죠? 아빠가 건강해지시면 함께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거든요.”



아빠가 인공호흡기를 단 후에는 불가능해졌지만 루게릭 판정을 받고 나서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가족 여행을 계획하곤 했던 원미 가족. 특히 아빠와 함께한 제주도 여행을 원미는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로도 가족 여행을 강행했던 아빠. 움직일 수 있는 한 계속하자던 가족 여행은 거제도 여행을 앞두고 무산된 후 현재까지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씩씩한 아이 원미는 요즘 행복한 꿈을 꾼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에 온 가족이 올라타고 집 근처 동해 바다로 드라이브를 떠나는 꿈을, 계획만 세워둔 채 미뤄둔 거제도 땅을 온 가족이 함께 밟는 꿈을, 결혼식 날 아빠의 손을 잡고 행복한 신부가 되어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꿈을 말이다.

글 / 최은영 기자  사진 / 강예지

이 세상에 둘도 없을 아빠께

우선아빠,  축하드려요! 

황우석 교수님이 ‘배아 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했다고 하잖아요. 이제 7년 동안 아빠를 괴롭히던 루게릭병을 훌훌 털고 일어나실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아빠 말이 맞아요. 아빠는 언제나 아빠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황우석 교수님 같은 훌륭한 분이 우리나라 분인 걸 보면, 아빠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아빠가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게 딱 두 가지예요. 아빠한테 테니스 배우는 거랑, 온 가족이 손잡고 일요일마다 성당에 다니는 것. 그렇게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상상만 해도 막 가슴이 설레요.

하지만 지금도 별로 불만은 없어요. 아빠는 아빠가 행복하다고 하셨지만, 사실은 제가 제일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아빠처럼 멋진 아빠가 내 아빠니까요. 

아빠가 언젠가 말했죠. “원미야,  아빠는 하늘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투병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게 지금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아빠들처럼 돈을 잘 벌지는 못하지만, 정신력만큼은 너희에게 큰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 아빠는 그렇게나마 너희에게 아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싶다.”

저는 아빠 이야기를 듣고 아빠가 참 든든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어요. 아빠, 절대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돈을 잘 벌어오는 아빠나 건강한 아빠들이 절대 부럽지 않아요. 지금처럼 “아빠!” 하고 부르면 싱긋 웃어주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저는 아빠란 등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앞길을 보여주는 사람, 어떤 험난한 일이 있어도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사람…. 저는 아빠가 지금 비록 말도 할 수 없고, 움직이실 수도 없지만 아빠의 역할을 정말 훌륭하게 해내고 계시다고 생각해요. 지난 8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하면서 아빠는 한 번도 불평하신 적도 없고, 화내신 적도 없잖아요. 저는 그런 아빠의 의지력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리고 아직도 아빠를 잊지 않고 찾아오는 사무실 아저씨들을 보면 우리 아빠가 정말 사회생활을 책임감 있게 잘했구나…하는 생각에 아빠가 자랑스러워요.

그런 아빠 덕분에 저는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학도 가야 하고, 이뤄야 할 꿈들을 생각하면 어른이 된다는 것이 조금 두렵고 막막하지만 아빠를 생각하면 금방 힘이 나요. 아빠는 저에게 고난을 피하는 방법보다는 넘어가고 이겨나가는 방법을 가르쳐줬잖아요.

아빠, 저는요. ‘노무현 대통령님’이나 ‘황우석 교수님’처럼 큰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나중에 사람들이 “허허, 그 집 아빠는 참 좋겠어!”라고 하는 말을 아빠가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아빠가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요! 저는 정말로 아빠한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요. 

하느님은 지고 나갈 수 있는 십자가이기에 주신다고 하셨지요. 지금 아빠가 지고 있는 십자가는 어쩌면 우리 가족 모두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 것 같아요. 저는 우리 가족이 똘똘 뭉치면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그러니까 아빠, 우리 힘내요!

아빠를 위해 그리고 열심히 연구하시고 계실 황우석 교수님을 위해 매일매일 기도할게요.

아빠, 사랑해요.

- 아빠를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 원미가

사랑하는 우리 공주, 원미에게

원미야, 정말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써보는구나. 아빠 성격이 원래 무뚝뚝한 것은 너도 잘 알지… 오랜만에 이렇게 편지라는 것을 써보니 사실 무척이나 쑥스럽다. 아빠는 지금 컴퓨터 모니터에 찍힌 자판을 따라 한 글자 한 글자 발가락으로 클릭해 우리 예쁜 딸에게 편지를 쓰고 있단다.

아빠가 병에 걸린지 벌써 8년이 넘어가고 있구나. 처음에 아빠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느낄 때, 또 조금씩 온몸에 힘이 빠져가는 것을 알았을 때 사실 좌절도 많이 했단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힘을 쓸 수 있는 두 발가락이라도 남겨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덕분에 바둑도 두고, 우리 딸 원미에게 편지도 직접 쓸 수 있으니까.

아빠는 우리 딸 원미를 생각하면 딱 두 가지 마음이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친구하고 놀고도 싶을 텐데 늘 학교가 끝나면 아빠에게 달려오는 원미를 볼 때면 아빠는 참 마음이 아프다. 우리 딸 하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아빠 간호하느라 좋은 시간을 이렇게 집에서만 보내는구나….

아빠가 원미에게 제일 미안했던 때가 언제였는 줄 아나? 엄마가 우유 배달 가고, 민철이가 학원 가고, 원미랑 단둘이 있을 때 아빠 소변 보는 것을 원미가 도와줬잖아. 그때 참 얼마나 부끄럽고 민망했는지. 아빠가 못나서 딸에게 별일을 다 시킨다 싶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원미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미안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해준 원미가 한편으로는 참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고맙다, 원미야.

참, 그리고 아빠가 원미에게 정말 사과할 것이 있구나. 지난 봄에 호흡 곤란이 왔을 때 가족 앞에서 그만 포기하겠다고 말했던 거… 그때 아빠 심정은 그랬다. 24시간 내내 가족의 도움 없이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아빠가 엄마나 민철이, 우리 원미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될까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한시라도 편하게 자고,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자신들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자…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원미가 울부짖고 하는 걸 보면서, 아빠가 얼마나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아빠는 결심했다. 아빠가 다른 아빠들처럼 돈을 잘 벌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아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아빠가 가장으로서 우리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당당하게 희망을 갖고 투병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 원미와 민철이에게 정신적으로나마 큰 밑거름이 되어주겠다고.

그래서 힘들고 지친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용기를 내서 이겨내려고 한다. 이렇게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투병하는 것이 우리 원미와 민철이에게 아빠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재산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원미가 언젠가 물었지. “아빠 행복해?”

그때 못 해준 대답을 지금 해야겠다. 그래, 원미야 아빠는 지금 행복하단다. 비록,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매일 누워 있는 처지지만 그래도 아빠는 행복하단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있는 한 아빠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할 거야. 그리고 이 추한 아빠를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는 원미와 민철이만 생각하면 아빠는 늘 용기가 생기고 희망이 생긴단다.

원미야, 아빠는 지금처럼 우리 가정이 영원히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실 아빠가 건강해서 직장에 다닐 때는 국가와 사회가 가정보다 우선이었단다. 그런데 이렇게 병에 걸리니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구나. 우리, 어려운 형편이지만 서로를 생각하며 좌절하지 말자. 가족끼리 언제나 사랑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살자.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는 말을 믿고, 늘 희망을 갖고 살아나가자.

그리고 원미야, 아빠는 원미가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아. 대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이걸 하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겠다… 하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늘 누군가를 배려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원미의 꿈은 임상심리학자라고 했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사람. 아빠도 그 꿈이 참 마음에 든다. 그 꿈을 꼭 이루기 바란다.

그리고 당부하고 싶은 말이 또 한 가지 있다. 나중에 출가해서라도 우리 집안 13대 종손인 민철이가 외롭지 않게 제사 같은 때 꼭 같이 참석하기 바란다. 엄마랑 아빠가 죽으면 이 세상에는 민철이와 원미, 둘밖에 없으니까 의지가 될 수 있도록 늘 아껴주면서 살아가야 한다.

나를 닮은 원미야, 아빠는 세상에 원미 같은 딸을 보내주신 하느님께 매일매일 감사기도를 한단다.

원미야, 아빠는 너를 영원히 사랑한데이~!

- 2005년  초여름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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