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CEO에서 택시기사 된 김기선씨의 즐거운 인생

금융계 CEO에서 택시기사 된 김기선씨의 즐거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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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를 하면서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사람 사는 맛을 느낍니다”

39년 동안 금융인으로 살아온 김기선씨. 그는 몇 년전 CEO의 자리를 마다하고 택시기사가 됐다. 20년전부터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꿈을 예순의 나이에 이룬 그는 요즘 어느 때보다 흥겨운 삶을 살고 있다. ‘행복한 운전사’ 김기선씨와의 해피 토크.


20년 전 택시기사가 되기로 결심
“아니, 이 좋은 일을 왜 안 한답니까?”
금융계 CEO 자리를 박차고 택시기사가 된 김기선씨(61). 사람들이 “사장님이 어떻게 택시기사를 하느냐?”고 물어올 때마다 그는 이렇게 되묻는다. 39년 동안 금융인으로 살았고, 영풍상호저축은행 대표이사까지 지냈던 그가 임기 1년을 남겨두고 택시기사를 선택한 건 그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20년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예순이 되면 택시기사 할 거라고 말했어요. 환갑 이후에는 저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살아야겠다 생각했고, 그런 면에서 선택한 게 택시기사예요. 정년 없고, 여기저기 다닐 수 있고, 많은 사람 만날 수 있는 택시기사가 노년에는 최고의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나이가 길어봐야 65~70세잖아요. 그런데 택시기사 중에는 여든이 넘은 분들도 많아요. 현재 최고령 택시기사가 여든일곱 살이에요.”

남들처럼 집에서 쉬며 안락한 노년을 맞이할 수도 있었지만 김기선씨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그는 나이가 들수록 일에 취미를 갖고 육체적인 노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은 밋밋한 삶에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활력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택시기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설마 진짜로 하겠느냐’ 였다고 한다. 심지어 오래 전부터 세뇌(?)당해온 가족조차 반신반의했다고. 기사로서 핸들을 잡은 순간에도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얼마 못 갈 것이다, 한두 달 하면 그만 둘 것’이라고 여겼다. 가끔 동창들은 ‘택시기사를 왜 하냐’며 아쉬운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김기선씨는 “5년이나 10년 후에 삼겹살에 소주 한잔 살 수 있는 놈은 나밖에 없을 거다. 너희는 월급 사장이지만 나는 오너야”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고 한다.

그의 결정에 가족이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달가워한 것도 아니었다. 가족이 표현은 안 했지만 어쩌면 자신이 택시기사를 하지 않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김기선씨.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게 사실이다. 택시기사보다 회사 사장이 훨씬 그럴싸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큰아들이 대한항공 부기장인데 한번은 제가 불러놓고 그랬어요. 너나 나나 같은 운전사다, 너가 나보다 좀 빠른 것뿐이지 더 좋은 게 있냐고 얘기하면서 둘이 웃었죠 최근에 제가 책을 냈고, 그 때문에 신문에도 종종 인터뷰가 실리다 보니까 지금은 자식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내는 한술 더 떠요. 보통 남편들이 실직하면 집에서 잔소리만 늘어놓게 마련이잖아요. 전 안 그러니까 ‘우리 신랑 최고!’래요.(웃음)”

함께 택시기사가 된 세 친구
주변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김기선씨는 3년 반째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다. 6개월 전부터 개인택시를 몰았다는 그는 일이 한결 자유롭고 즐거워졌단다. 그는 택시기사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사는 맛을 느낀다고.

“기사식당에서 먹는 된장찌개가 아주 꿀맛이에요. 예전에는 제육볶음이 그렇게 맛있는지 몰랐어요. 나이 들면 밥맛 없고 잠이 오지 않아 고생한다는데 전 밥맛이 너무 달고, 잠도 얼마나 잘 자는지 몰라요. 열심히 일한 자의 행복이 이런 것인가 봐요. 사장으로서 기사가 모는 차 타고 편하게 이동할 때보다 제가 직접 운전석에 앉아 있는 지금이 훨씬 행복합니다.”

물론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순간순간 회의가 느껴질 때도 있다. 손님이 없어 빈 택시를 몰 때면 외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것들이 여느 직장 생활과 비교할 때 그리 큰 어려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택시는 중노동’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중노동’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

“주부들이 시아버지 생신 잔치 치르고 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고 하지만 친정 아버지 생신은 3일동안 잔치를 해도 멀쩡해요. 매끼 남편 밥상 차리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봉사 활동으로 식사 당번할 땐 12시간 일해도 괜찮구요.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면 어떤 일도 힘들지 않아요. 택시기사는 지구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오히려 순간순간 즐거운 일이 더 많아요. 잔재미도 있고, 작은 일이지만 만족도 자주 느껴요. 손님들에게 ‘친절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들어도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요. 생활이 좀 어려워 보이는 노인들이 타면 요금도 깎아주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요금 안 받는 것보다 깎아주는 걸 더 좋아해요.(웃음) 외국인 근로자들이 택시를 타면 요금 안 받는다는 기준을 정했는데, 그렇게 할 때마다 제가 더 기분 좋고 뿌듯해요.”

김기선씨가 택시기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동조한 친구가 셋 있다. 모두 그와 마찬가지로 회사 CEO와 간부들이었는데, 그들은 정년퇴임 후 김기선씨와 함께 택시기사가 됐다. 교육을 마치고 택시기사로 현장에서 뛰기 일주일 전 그들은 일종의 결단식 차원에서 전국 일주를 했단다. 그중 한 친구는 안타깝게도 택시기사를 포기했고, 나머지 두 친구만이 택시기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동창 한 명이 더 합류했다고.

김기선씨는 그들과 함께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도 하고, 더욱 친절한 김기선씨는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비우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하고 보니 너무나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지더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 요즘 가장 멋있어 보이는 것이 마을버스를 모는 아주머니의 모습이라고. 여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단다. 다음에 만났을 때 어쩌면 그가 푸근하고 친절한 마을버스 기사로 변신해 있을지도…. ‘몸보다 마음이 폼나는 택시기사’ 김기선씨. 그의 즐거운 인생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글 / 신현화 기자 사진 / 유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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