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시각장애와 함께 천재적 음악 재능을 타고난 이소영씨. 그녀는 한 번 들은 음악을 즉석에서 피아노로 연주하고, 생활 속의 모든 소리를 음으로 잡아내는 ‘절대 음감’을 지녔다. 친구들의 따돌림과 사람들의 편견,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재능을 키워온 그녀의 특별한 음악 인생.

네 살 때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그후 한 번 들은 음악은 그 자리에서 피아노로 연주하는 천재성을 보인 이소영씨(23).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의 징후를 여러 번 보였다고 한다.
늘 손으로 무언가를 치는 시늉을 하던 그녀에게 부모님은 실로폰을 사줬다. 그런데 세 살배기 아이가 곧바로 동요를 쳤다. 물론 그녀에게 실로폰 치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피아노를 사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영이가 기저귀를 차고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쯤 잃어버린 적이 있어요. 남편과 제가 아파트 단지를 비롯해 사방을 찾아 헤맸는데 어두워질 때까지 찾지 못했어요. 남편이 아파트 앞 상가 건물에 있는 교회 복도를 지나가는데 교회 안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더래요. 아이가 친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한 연주였지만 문이 열렸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더니 컴컴한 곳에서 소영이가 혼자 피아노를 치고 있더래요. 그걸 보고 남편이 깜짝 놀랐죠. 어릴 때부터 소영이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곳이면 어디든 들어가서 피아노를 치려고 했어요. 한번은 소영이를 업어서 재우려고 ‘과수원길’을 불러줬는데 슬프게 우는 거예요. 그 곡이 단조 느낌이잖아요. 그래서 밝은 분위기의 다른 자장가를 불러주니까 그제야 잠이 들더라구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는 이소영씨. 그녀의 첫 작곡은 같은 반 남자아이가 자신을 발로 찼을 때 화난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피아노를 등지고 서서 뒤로 팔을 뻗어 능숙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녀의 모습은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할 ‘진기명기’에 가깝다. 이런 자세로 피아노 연주를 한다는 건 오른손과 왼손의 역할이 뒤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왼손으로 멜로디를, 오른손으로 반주를 하는 것이고, 악보에 적힌 손가락 번호도 완전히 뒤바뀌는 것이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거울의 원리를 생각하여 피아노를 친다고 말한다.
이소영씨의 가장 놀라운 음악적 재능은 ‘절대 음감’. 그녀는 음계뿐만 아니라 공사장 망치 소리, 상가의 셔터 내리는 소리, 심지어 바람 소리에 이르기까지 생활 주변의 소리나 소음의 음계까지 정확하게 집어낸다. 무슨 소리든 음으로 듣는 습관을 가진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소리가 들리면 그곳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아 조용히 음을 듣곤 했다고. 그녀의 절대 음감은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증명됐다. 음계를 잡아내는 테스트에서 그녀는 기계와 맞먹는 탁월한 음감을 선보인 것. 전세계적으로 그녀와 같은 절대 음감을 가질 확률이 1%에도 못 미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엄마 안 죽으면 안 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이소영씨의 천재적인 재능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그녀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선천적 백내장으로 그녀는 태어나서 앞을 보지 못했다. 생후 6개월부터 초등학교 1학년까지 네 차례나 큰 수술을 했음에도 겨우 약시만을 유지했다. 자라면서 눈의 상태는 점차 악화되었고, 지난 2001년에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았으며 두 달 전에는 결국 오른쪽 눈이 완전히 실명되고 말았다. 그간 마음 속으로 천천히 준비해왔지만 막상 실명 판정을 받으니 ‘다시 시력을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에 큰 실망감이 들더라고 했다.
천재적인 음악 재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장애는 그녀에게 여러모로 걸림돌이자 아픔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은 그녀는 언제나 외톨이였다. 지금도 친구가 많지 않다는 그녀는 혼자 지내는 생활에 무척 익숙하다. 자신의 어눌한 말주변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하는 그녀.

지난해 모 대학 작곡과에 지원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2차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그녀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면접관의 편견과 자신의 말주변 때문인 것 같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올해 독학으로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지휘과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편견 없이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한 독일 교수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현재 이소영씨의 가정 형편은 안정적이지 못하다.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이었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가세가 기울었다. 있는 돈으로 사업을 시작한 어머니 고경애씨(57)는 실패를 거듭했고, 허리까지 다쳐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거기다 소영씨의 병원비에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언니까지 보살펴야 했기에 집안 살림은 더욱 어려워졌고, 급기야 가족이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기도 했다. 약을 사서 차를 타고 인근 한적한 공원까지 찾아간 가족… 마지막 순간 그들의 마음을 되돌린 건 소영씨의 말 한마디였다. “엄마 안 죽으면 안 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당시의 자살 기도는 ‘정신의 한계에 부딪혀 이른 선택’이었던다고 말하는 고경애씨. 그 일이 있은 후 소영씨 가족은 독실한 크리스천이 됐다. 크게 나아진 것 없는 여전히 팍팍한 일상이지만, 힘들 때마다 의지할 곳이 생겼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데 힘을 얻는다고 한다. 고경애씨는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소영씨에게 엄마로서 그 흔한 레슨 한 번 받게 해주지 못한 것이 가슴 아프다고. 하지만, 소영씨는 그런 어머니의 마음마저 보듬는 착하고 속 깊은 딸이라고 한다.
다행히 소영씨가 수석 입학한 덕분에 대학에서 모든 학비가 지원된다. 자신의 절대 음감을 살려 앞으로 피아노 조율을 해보고 싶다는 그녀. 너무 소박한 꿈이지 않냐는 질문에 “음악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이 합쳐진 피아노 조율은 소박한 일이 아니에요. 음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구요”라고 답한다. 성악과 작곡에도 재능을 보이는 그녀는 기회가 된다면 공중파 방송이 끝날 때 나오는 애국가를 자신이 직접 부르고 편곡해보고 싶다고 한다. 방송사마다 같은 목소리와 느낌의 애국가가 너무 따분하게 들리기 때문이라고. 좋은 음악가가 되어 물질적으로도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게 그녀의 꿈이다.
글 / 신현화 기자 사진 / 백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