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삼성 저격수’로 이름 떨치는 심상정의원

국정감사 스타

①‘삼성 저격수’로 이름 떨치는 심상정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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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집안일을 80% 정도 해줘요. 가족의 도움이 없으면 국회의원 하기 힘들죠”

국정감사 때만 돌아오면 생각나는 국회의원이 있다. 노련한 장관을 진땀 나게 하고, 사회적인 금기를 깨고 이슈를 만드는 이들은 대부분 겁 없는(?) 초선의원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주목을 받은 이가 있으니 바로 심상정 의원이다. 노동운동가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심 의원의 뒤에는 가족의 헌신과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국회 입성 1년 만에 ‘베스트 의원’으로 뽑혀
장면 하나. 해외에서도 인정하던 경제통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 그는 1997년 국민의 정부 시절, 한국 경제의 구조 개혁을 실시한 당사자이다. 그런데 그가 2004년 국정감사장에서 진땀을 뺐다. 한국 경제의 시스템과 현황을 한눈에 알고 있는 이 전 장관은 한 국회의원의 질문과 추궁이 매우 곤혹스러웠다. 감추고 싶은 비밀이 국회에 처음 입성한 초선의원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그 초선의원은 한마디로 ‘떠버렸다’.

장면 둘. 2005년 국정감사의 키워드는 ‘삼성’이었다. 재경위 소속의 한 국회의원이 지적한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의 문제점이 삼성과 얽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 국회의원은 2004년 이헌재 전 장관을 놀라게 한 초선의원이다. 동료 국회의원을 놀라게 하고, 사람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준 주인공은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45)이다. 정작 본인은 준비 안 된(?) 초선의원이지만, 심 의원에게 보내는 국민들의 응원은 뜨겁기만 하다.

“지난해 국정감사를 준비할 때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어요. 당도 초선이고, 의원들도 모두 초선이다 보니 정보도 없고 경험도 없었죠. 오로지 밤을 새워가면서 국감을 준비하는 노력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때 잘했다고 3관왕을 주셨어요. 올해는 지난해와 비교되니까 얼마나 부담이 되던지…. 보좌관들이 국정감사를 준비하면서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다니까요.(웃음)”

심상정 의원은 초선의원으로는 드물게 지난해 ‘베스트 3관왕’을 차지했다. 경향신문, 시사저널, 일요신문이 동료 의원과 기자들이 선정한 ‘베스트 의원’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것. 여야 의원 가릴 것 없이 그녀의 노력을 인정해준 것. 올해는 지난해보다 큰 사건(!)을 터뜨렸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삼성에 관한 쟁점을 이슈화한 것. 삼성의 금산법 위반에 대한 정부의 봐주기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심 의원의 활약으로 올 국정감사는 `‘삼성 감사’가 되어버렸다. 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삼성자동차의 3천억원대 분식회계를 밝혀내 삼성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은 심 의원의 추궁에 금산법 개정안 수정을 검토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삼성에게 심상정 의원은 저승사자처럼 느껴졌을 법하다.

“박영선 의원은 삼성에게 압력을 받았다는데, 저는 없었어요. 압력을 줘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나? 저보고 ‘삼성 저격수’라고 하던데, 저는 총을 만져본 적도 없고 쏴본 적도 없어요.(웃음)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부패하게 마련인데, 삼성이 지금 그 상황이에요. 예전과 비교해도 삼성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을 이번에 많이 느꼈어요.”

경제부처에서는 심 의원이 국정감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는지 알아내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심 의원의 사무실에는 매일 경제부처 사람들이 와서 질문지를 받아가려고 상주하고 있었을 정도. 그만큼 경제부처 공무원에게는 가장 ‘껄끄러운’ 의원으로 꼽힌다. 공무원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절반의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정부가 서민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의 입성한 지 1년반 만에 이뤄낸 심상정 의원의 활약상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국회의원이 된 후 사무실에 있으면 전국 기관장들이 문턱이 닳도록 찾아와요. 전에는 6개월 동안 텐트 농성을 벌여도 만나기 힘들던 은행장도 쉽게 만날 수 있구요. 국회의원의 위력이죠. 이제는 법을 만들어서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요.”

긴 생머리, 하얀 피부의 처녀 vs ‘인민무력부장’
심상정 의원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기 때문에 지역구가 없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총선에서 무조건 당선된다는 비례대표 1번에 심상정 의원을 올렸다. 일반인에게는 낯선 이름이었지만, 노동계에서는 신화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인생은 노동운동의 흐름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그녀의 활동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시작된다. 서울대 사범대 역사교육과에 입학한 뒤 1980년 서울대 최초로 여학생회 결성을 주도했고, 학교를 떠나 노동 현장에 투신했다. 1983년에는 구로공단에서 노조 결성·쟁의로 수배됐고, 1985년에는 서울노동운동연합 결성을 주도하고 중앙위원장을 역임했다. 그후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쟁의국장과 조직국장을 맡았고,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과 민주노동당 당대회 부의장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 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 그녀는 항상 노동운동의 선두에 섰다. 한때는 ‘인민무력부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성’이었다. 하지만 외모는 청순하기 그지없었다는데….

“믿지 못하겠지만 제가 전노협에서 쟁의국장을 할 때 긴 생머리에 얼굴이 하얀 처녀였어요.(웃음) 쟁의국장은 전국의 노동집회를 조직하고 기획하는 일을 해요. 싸움을 하는 자리죠. 언젠가 40~50대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맨 앞자리에 앉아서 제 소개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 소개를 하니까 강의실에 모인 아저씨들이 모두 뒤쪽을 쳐다봐요. 제가 쟁의국장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죠. 얼마나 우락부락한 사람이 나오는지 궁금해서 다들 뒷문을 쳐다본 거예요.(웃음)”

자연스럽게 집안일은 남편의 몫이었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아들도 항상 외부 활동으로 바쁜 엄마를 잘 이해해줬다. 2002년 금속노조를 그만둘 때 가족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아들 역시 엄마를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가득찼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된 후 아들은 “고아가 됐다”고 말할 정도. 아침 7시부터 라디오 인터뷰가 있는 날은 6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한다. 8시 의원총회를 시작으로 빡빡한 국회의원 일상이 시작된다. 잠자리에 드는 시각은 새벽 1시.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식사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노동운동을 할 때도 바빴는데, 국회의원이 된 후에 더 바빠졌어요. 남편이 집안일을 80% 정도 해줘요. 남편이 정말 고맙죠. 아들하고는 친구같이 지내는데, 제 일을 잘 이해해줘요.”

가족의 도움과 노력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국회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까지 많은 활동을 해왔지만, 2008년 5월 임기가 끝날 때까지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신용불량자의 고통을 해결해주고 싶은 것이 첫째고, 암이나 중병에 걸린 임산부와 노인 등의 무상 의료 지원을 입법화시키고 싶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정치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곳곳에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싶다. 아줌마들의 정치 참여도 심상정 의원의 관심사다.

다른 국회의원처럼 크고 육중한 중형차 대신 아반떼를 타고 다니는 심상정 의원. 국회의원 배지의 생살여탈권은 자본과 권력이 아닌 국민과 당원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식의 룰을 벗어나는 일에는 비타협적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심상정 의원의 또다른 활약을 기대해본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박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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