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다. 결혼 1년 만에 갑자기 쓰러진 아내. 하루에 두세 번씩 병원과 회사를 오가며 지극 정성으로 아내를 간호한 남편. 또다시 시작된 불행. 식물인간 상태로 5년 동안 누워 있던 아내가 1년 전 드디어 눈을 떴다. 이 드라마 같은 순애보의 주인공은 바로 안상수 인천시장.

‘워커홀릭’ 시장님의 알려지지 않은 속사정
“결혼한 지 1년 만에 갑자기 쓰러진 아내…”
인천을 대표하는 얼굴 안상수 인천시장(59). 안 시장의 하루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시작된다. 그 어떤 직원보다 일찍 시청 본관에 나와 주요 일간지를 챙겨본다. 보좌관의 어깨너머로 안 시장의 스케줄을 훔쳐보니 10분 단위로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하다. 하루 세끼 바깥 식사는 기본에 주말 출근도 예삿일. 안 시장은 안팎에서 ‘워커홀릭’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것도 그냥 워커홀릭이 아닌 중증 환자(?)다. “일 말고 다른 관심사는 없느냐” 물으니 “시민의 출산·육아 문제가 시급하다”며 또다시 일 얘기로 화제를 돌린다.
나랏일에 이렇게까지 열심인 공무원이 있다는 건 분명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반면 ‘아내까지 있는 남자가 이렇게 심각한 일중독자라면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혹자는 ‘와이프가 누군지 거 참 불쌍하다’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 시장의 알려지지 않은 속사정을 듣고 나면 생각은 또 달라진다.
그가 개인적인 일로 자리를 비우는 경우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병든 아내 간병을 위해 병원을 찾는 일. 안 시장의 아내 정경임씨(52)는 현재 뇌졸중의 일종인 ‘모야모야병’에 맞서 투병중이다. 모야모야병은 뇌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면서 생기는 희귀 질환. 뇌경색, 뇌출혈, 간질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의 몸에서 모야모야병이 발견된 건 결혼한 지 꼭 1년 만인 1984년의 일. 어느 날 갑자기 아내는 맥 없이 쓰러졌다. 불행은 언제나 그렇듯 예고 없이 찾아온다. 안 시장에게도 불행의 그림자는 준비 없이 찾아들었다. 그것도 한창 깨가 쏟아질 신혼에 말이다.
“병명이 뭐라구요? 모야모야가 뭔데요?”
의사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의사의 말에 더욱 기가 찼다. 한번 발명하면 사망하거나, 운이 좋아 산다 해도 불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악성 희귀병. 혈관의 모양이 보통 사람과 달리 연기 처럼 생겼다고 해서 ‘모야모야’(일본말로 연기를 뜻함)라 부른다. 숨이 턱 하고 막혀 왔다.
“‘하늘이 나를 이렇게 버리는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사람에게는 저마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있는 건가 싶은 게 암담하기도 했구요. 가정의 불행이 내 숙명인 것처럼 다가왔죠.”
막내가 사고로 죽으면서 오랫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만 누워 계시다 돌아가신 어머니, 조업을 나갔다 어선이 전복돼 어부 두 사람을 잃고 가산을 완전히 날린 아버지, 밑으로 동생 여섯을 먹여살리기 위해 혼자서 발버둥치던 자신의 청년기까지 겪은 아픔이 기억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어렵사리 취직을 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보리라 다짐하기 무섭게 또다시 찾아든 시련. 하지만 어떻게 꾸린 가정인데… 포기가 쉽지 않았다.
“뇌출혈이 생겼는데 병원에서 수술을 하겠냐 물었어요. 처가 식구들은 섣불리 수술했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냐며 수술하지 말자고 했죠.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을 누운 채로 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제가 고집을 부려 수술을 받게 했는데 4, 5개월 동안 깨어나지 않더군요. 그러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아내가 눈을 뜨고 차츰 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완전히 정상인의 몸으로 회복한 거예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사랑의 힘이 낳은 또 하나의 기적!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던 아내와 요즘은 전화 통화도 해요”
아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던 것은 순전히 남편 안 시장의 보살핌 덕분이다. 그러나 아내를 다시 얻는 대신 안 시장은 가슴 아픈 대가도 치러야 했다. 의사에게 아내가 몸이 허약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은 것. 병약한 산모의 힘으로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기를 낳을 경우 산모에게도 위험하다는 의사의 진단은 그를 한없이 나약하게 만들었다. 아기를 포기한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리하게 아기를 가져 아내에게 치명적인 부담과 고통을 안겨줄 수도 없었다. 안 시장은 의사의 진단 이후 2세 계획을 과감히 접었다. ‘더 열심히 살자. 아내를 더 사랑하자. 태어나지 않은 자식의 몫까지 더 열심히…’ 가슴속으로 수없이 되뇌고 또 되뇌면서.
“아내는 면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여자였어요. 경기여고와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의류직물학 분야의 전통 있는 일본 오차노미쯔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학업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죠. 다시 찾은 인생에서도 아내의 꿈을 향한 질주는 멈출 줄 몰랐습니다. 2년간 꾸준한 치료로 건강을 되찾은 아내는 대학으로 돌아가 강단에도 서며 성실하게 생활했는데…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는 아내가 행복해 보였습니다. 무리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았지만 좋아서 하는 일 말렸다가 더 큰 병날까 싶어 묵묵히 지켜만 봤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후회가 돼요. 그냥 집에서 쉬게 할 것을….”
아내가 건강을 되찾았을 때 안 시장은 사실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 생각했단다. 하지만 ‘불행’의 불씨는 여전히 아내의 몸속에 남아 불씨를 키울 ‘때’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지금부터 6년 전인 지난 1999년 8월, 또다시 쓰러진 정경임씨. 이번엔 수술도 소용없었다. 안 시장은 어떻게든 아내를 살려보겠다고 병원을 다섯 곳이나 옮겼다. 하지만 아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옮긴 병원마다 ‘식물인간’ 상태로 소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절망적인 진단을 했다.

아내는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밥을 먹거나 대화를 하거나 거동을 하거나 배설을 하기는커녕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누워만 있었다. 안 시장의 눈물 어린 아내 간병기는 그렇게 다시 시작됐다.
요즘 정경임씨는 시청에서 30여 분 떨어진 한방병원에서 요양중이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안 시장은 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내의 병간호를 도맡으면서도 한결같다. 시정 활동으로 바쁜 날에도 일주일에 세 번은 꼭 병원을 방문한다는 게 보좌관의 설명. 시간이 빠듯한 날은 2~3분 잠깐 얼굴만 보고 돌아오는 게 고작일 때도 있다. “어차피 얼굴만 보고 나오는 건데, 이젠 좀 뜸해도 사모님께서 이해하시지 않겠냐” 했더니 돌아온 안 시장의 대답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저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데요. 자기랑 가장 가까운 사람이 차츰 모습을 감추면 공포스러울 거고, 그러다 보면 살겠다는 희망마저 버릴지 모른다는. 그리고 보호자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간병인들도 환자를 등한시하게 마련이에요. 지금까지 간병인을 열 번 정도 바꾼 것 같은데, 한번은 옆방 환자한테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지금 일하는 그 아줌마 못 쓰겠더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대체 나 없는 사이에 아내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싶어 억장이 무너지더군요. 느낌에 막 때린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맥 놓고 누워 있는 아내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그런 얘기까지 들으면 정말 ….”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병원에서조차 포기한 환자였다. 안 시장의 끔찍한 아내 사랑에 하늘도 탄복한 걸까? 정경임씨에게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건 1년 전. 얼굴에 표정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내 가족과 가까운 지인을 알아보고 이름까지 또렷이 기억해냈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감정의 일부를 표현하기까지. 안 시장은 “요즘은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 ‘아침이슬’도 흥얼거린다”며 대견하다는 듯 아내의 손을 어루만졌다.
사실 5년을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던 사람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는 건 우리나라 의료 사상 거의 전무후무한 일. 이 마술과도 같도 같은 변화를 가까이에서 눈으로 지켜본 인천 길병원의 이길여 회장은 정경임씨의 병세 호전을 두고 “사랑의 기적”이라 표현했다.
“안 시장은 해외 출장 갔을 때를 제외하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부인을 찾아와요. 병실에서 부인과 ‘응답 없는 대화’를 나누고, 곳곳을 주무르며 스킨십을 계속해 ‘남편의 사랑’을 여과 없이 보여주지요. 이것이 그 어떤 치료제보다 큰 효과를 낳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제 우리 병원에서 ‘안 시장의 애틋한 사랑 얘기’는 유명한 일화가 되었답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마련!
“‘굴비 시장’이 청백리의 대명사로 불릴 날, 반드시 올 겁니다”
가정에서의 행복. 남들에겐 쉬워 보일지 몰라도 이 기본적인 일이 안 시장에겐 가장 어렵고 난감한 과제다. 의지만으로 되는 일 같았으면 이렇게까지 끔찍하지도 않았을 게다. 마치 덫에 걸린 듯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불행은 그를 더욱 세게 옥죄어왔다. 어머니의 오랜 투병 생활, 식물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내의 비운을 보면서 안 시장도 인간인데 왜 신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내가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로 병실에 누워 있을 때였는데, 상대 진영에서 상상도 하지 못할 흑색 선전을 퍼부었다. 내용인즉슨 “안상수가 첩이 네 명인데, 이것을 안 아내가 화가 나서 선거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혹자는 “안상수는 이혼남”이라며 말을 지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안 시장은 일일이 해명하지 않는다. 몸이 아파 움직이지 못하는 아내의 얘기를 하면 할수록 의지가 약해지고,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명한들 또 무엇 하랴? 나만 떳떳하면 그만인 것을.
이제 시장 임기도 8개월가량 남겨두고 있다. 인천시민 복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으니 시장으로서 하루하루가 소중하기만 하다. ‘굴비 시장’이란 오명을 쓰고 살아야 한 지난 1년. 1,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이 내려진 ‘굴비 사건’은 현재 대법원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안 시장은 무죄를 자신한다. 다만, 대법원 판결이 남은 상황에서 법원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할 것 같아 억울하지만 함구하는 것일 뿐.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마련이다. 안 시장은 믿는다. 진실의 힘을….
“혹시 압니까? ‘굴비 시장’ 타이틀이 청백리의 대명사처럼 불릴 날이 올지!”
글 / 최은영 기자 사진 / 안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