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종교자유 위해 또다시 1인 시위 재개한 강의석

학내 종교자유 위해 또다시 1인 시위 재개한 강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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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하는 건 강의석이란 이름도 서울대란 타이틀도 아닌 오직 ‘종교의 자유’예요”

지난해 자신의 고등학교에서 종교의 자유를 외치다 퇴학 조치 당한 강의석이 대학생이 됐다. 하지만 그는 다시 1인 시위를 재개했다. 더불어 모교 재단인 대광학원과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5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사람들의 색안경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 특별한 젊은이 강의석을 만나본다.

1인 시위, 손해배상 청구, 권투… 잠시도 쉬지않는 젊은이
강의석(20)을 만나기 위해 처음 전화를 한 날. 그는 병원에 있었다. 권투를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뇌가 부었다고 했다. ‘뇌가 부어?’ 아픈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속으로 웃었다. 간이 부었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뇌가 부었다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속으로 ‘간이 부어서 고등학생 신분으로 학내 종교의 자유를 외치더니, 대학에 가서는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뇌가 부었구나’ 생각했다.

“작년 겨울부터 권투를 다시 시작했어요. 권투는 정말 힘든 게 매력인거 같아요. 곧 개최되는 전국 대학생 권투 동아리 선수 시합 때문에 평소보다 무리하게 운동을 한 게 화근이었어요.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께서 뇌가 부었다고 당분간 쉬는 게 좋겠다고 하시더라구요. 몸이 회복할 때까지는 당분간 권투를 못 할 거 같아요. 아직 학생이니까 공부도 해야 되고, 쉬면서 그동안 진행하던 캠페인도 다시 구상해야죠.”

강의석은 지난해 학내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1인 시위와 단식농성을 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당시 학교 측은 고3이던 강의석을 제적했다. 기말고사를 치르기 위해 학교에 등교하던 강의석은 시험 도중 불려나가 학교 징계위원회로부터 제적통보를 받은 후 퇴교조치 당했다. 그리고 그해 강의석은 서울대 수시2학기 모집전형에서 법대에 지원해 최종 합격했다.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제가 서울대에 입학한 후에 관심을 갖은 분도 많았어요. 서울대에 입학한 후에 제가 학교 이름을 말하면 상대방은 의래 ‘대단하다’란 말을 해요. 이제는 그런 말이 예상되니까 대답하기가 꺼려지네요. 그런데 본질은 제가 서울대생이 아니라 종교의 자유거든요.”

강의석은 최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학내 종교 자유’ 문제로 1인 시위를 벌였다. 또 자신의 모교 재단인 대광학원과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5천만1백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인 시위를 재개하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면서 인터뷰 요청이 좀 많아졌어요. 또 ‘1년을 비교한다’와 같은 식으로 지난해와 달라진 제 모습을 취재하겠다는 분도 있었구요. 권투를 한 것도 화제가 됐죠. 언론과 사람들은 자꾸만 ‘강의석’이란 인물만을 부각시키려고 해요. 제가 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 캠페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말이죠.”

“돈도, 권력도 없는 저를 도와준, 법을 배워야죠”
강의석은 이제 스무 살이 된 청년이다. 주말이면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를 특별한 시선으로 본다.
“선입견을 갖고 있는 분과 만나는 게 제일 불편해요. 저에 대해서 잘 알기도 전에 미리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해버리죠. 그런 분과 만나면 전 괴로울 때가 많아요. 안타깝지만 그렇게 본다는데 어쩌겠어요. 그냥 그 시간에 다른 일에 매진하면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안 쓰도록 노력해야죠.”

말은 그렇게 했어도 한동안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보는 편견이 그도 부담스러웠다고. 자신과 만날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이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가슴 아픈 건 따로 있었다.

“사실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시선은 견딜 만했어요. 별로 관심도 없구요. 그보다는 진짜 믿었던 사람들에게 실망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고등학교 때 정말 의지하던 한 선생님이 ‘TV에 나오니까 좋으냐’ ‘제는 대통령 되려고 저런다’란 말을 하셨을 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저를 비난해서라기보다 당시 그 말을 한 사람의 인격을 믿었기 때문에 실망감은 훨씬 컸죠.”

강의석은 중1 때가 자신의 사춘기라고 말했다. 당시에 어떤 변화가 있어서는 아니다. 다만 그때부터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삶에 대한 고민?’ 너무 조숙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라고 답했다. 일찍부터 고민을 해서인지 그는 대학 진로를 정할 때 법학과가 아닌 철학과와 정치학과를 희망했다.

“원래는 철학과에 가고 싶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철학과 간다고 철학하는 것 아니다’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정치학으로 진로를 결정했죠. 그런데 작년에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하면서 입시 직전에 법학과를 선택했어요.”

강의석은 지난해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검정고시를 봐야 할 상황이었다. 그 당시 검정고시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꼼짝없이 1년을 쉬어야 했다.

“퇴학을 당해서 학생 신분을 잃게 되니까 대학원서조차 제출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저를 관심 있게 지켜본 변호사님께서 도움을 주셨죠. 다행이 법원에서 빨리 판결이 나고, 임시 학생 신분을 얻었죠. 그 순간 법이 내 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요. 그런데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저를 도와준다고 하니까 법에 대한 인식이 바뀌더라구요.”

그는 어느새 특별한 사람이 돼버렸지만 그의 어머니는 대한민국 보통 엄마였다. 아들이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랐다. 특히나 공부를 썩 잘하던 모범생 아들이 내심 명문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했다.

“공부에 재미도 느꼈지만, 성적이 좋으면 선생님들이 무시하지 못하고, 부모님들도 제 행동에 대해서 걱정을 덜 하세요. 모범생인 줄 안 아들이 학교에서 욕을 먹고, 갑자기 퇴학까지 당해서 어머니가 많이 놀라셨어요. 우리나라 정서상 자식을 대학 보내는 게 부모의 의무잖아요. 하나뿐이 아들이 남들이 가지 않는 가시밭길을 갈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죠. 하지만 퇴학 후에는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여주셨어요.”

요즘 그의 어머니는 말썽꾸러기 외아들이 운동을 하다가 머리를 다쳐 또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강의석은 지금까지 해온 종교 자유 캠페인을 계속해서 진행할 계획이다. 강의석은 사회운동이 거창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가 살면서 느낀는 것을 바꾸려는 노력이 사회운동이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살면서 불편하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잖아요. 저는 당번을 정하는 일처럼 사소한 것도 불합리하다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펼쳐진 모든 것이 사회운동의 범주에 포함돼요. 대부분 ‘이제까지 참았는데…’라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참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나쁜 제도는 빨리 고쳐지는 게 좋잖아요. 불편해도 참는 것보다는 조금 힘들어도 불편을 없애는 게 낫지 않나요?”

강의석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자신의 의지가 남보다 강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자신이 처한 환경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절박했기 때문에 언론에서 관심을 갖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주위에 불합리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너무 불합리에 익숙한 탓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소신에 따라 용기를 낼 수 있는 청년 강의석. 시간이 지나 그가 기성세대가 된 후에도 지금과 같이 불합리와 싸워주기를 바란다.


글 / 김성욱 기자 사진 / 박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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