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스타 된 한국계 미식축구 선수 하인스 워드 모자의 감동 스토리

최고스타 된 한국계 미식축구 선수 하인스 워드 모자의 감동 스토리

미국 최고의 스포츠 축제라는 슈퍼볼. 그 절정의 순간에 한국계 혼혈 선수 하인스 워드가 드높이 빛을 발했다.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슈퍼볼 최고의 영예인 MVP로 선정된 워드는 한없는 사랑과 헌신으로 그를 뒷바라지한 어머니 김영희씨에게 모든 영광을 돌렸다. 실력뿐 아니라 지적인 소양과 인간적 성품까지 지니고 있어 더욱 매력적인 하인스 워드.
워드 모자의 감동 스토리가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인의 가슴을 훈훈하게 데웠다.

“나의 모든 것은 어머니로부터 왔다”


“어머니는 저의 전부입니다”
제40회 슈퍼볼에서 승부의 쐐기를 박는 43야드 터치다운으로 피츠버그를 26년 만에 미국 프로풋볼 정상에 올려놓은 주인공은 한국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와이드리시버 하인스 워드(30)였다. 워드는 이날의 빛나는 활약으로 MVP의 영예를 얻었다.

미식축구는 야구, 농구와 함께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3대 스포츠의 하나로, 그 가운데서도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로 꼽힌다. 미 프로풋볼리그(NFL) 양대 컨퍼런스의 챔피언 팀이 왕중왕을 가리는 결승전, 즉 슈퍼볼은 북미대륙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이기도 하다. 슈퍼볼에서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슈퍼볼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트로피)와 MVP를 같이 거머쥔 하인스 워드의 성과는 그야말로 입지전적이다. 최고들만 설 수 있는 무대에서 혼혈과 가난이라는 역경을 극복하고 최고가 된 하인스 워드는 말 그대로 ‘영웅’이 됐고, 그 영웅이 자신의 모든 공로를 어머니에게 돌릴 때 그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하인스 워드는 1976년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아버지 하인스 워드 시니어와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씨(59)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워드의 부모는 미국으로 건너간 뒤 곧 이혼했다. 결혼 2개월 만에 독일로 발령 받아 모자의 곁을 떠난 아버지가 결국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재혼했던 것.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이국땅에서 어머니 김경희씨에겐 워드에 대한 양육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이렇다할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고 경제력이 없으니 양육권도 가질 수 없다는 법원의 통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워드는 루이지애나에 있는 할아버지 집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그는 자신과 피부색이 같은 사람들 속에서 여덟 살 때까지 살았다. 한편 어머니 김영희씨는 하루라도 빨리 아들을 다시 데려 오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고 돈을 모았다. 접시닦이, 식료품점 점원, 호텔 청소부 등 하루에 몇 시간 자지도 못하면서 한꺼번에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했다. 그렇게 8년 후. 갖은 고생 끝에 어머니는 마침내 워드를 데리고와 애틀랜타의 한 작은 마을에 정착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엔 작고 초라한 동양 어머니 부끄러워해”
그러나 두 모자의 관계가 처음부터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어린 워드는 피부색이 다른 자그마한 동양인 어머니를 경멸했다. 더구나 어머니는 워드에게 한식을 만들어 먹였고 교육도 한국식으로 시켰다. 식탁에는 늘 쌀밥과 김치가 빠지지 않았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신발을 벗어야만 했다. 워드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매를 들어서 가르쳤다. 워드는 그런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고 한다. 한국문화를 강요하는 것도 싫어했다. 친구들이 어머니를 볼까봐 길에서 어머니를 봐도 못본 척 도망갔다. 어머니가 차로 학교까지 데려다 줄 때면 친구들이 한국계라고 놀릴까봐 의자 깊숙이 몸을 숨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고 말없이 눈물 흘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봤다. 어머니에 대한 비뚤어진 마음을 고쳐먹은 것은 그때부터였다.

어머니는 당시에도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며 보냈다. 하루 종일 허드렛일을 하며 자기 몸 돌보지 않고 번 돈으로 아들에게만큼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려고 했다. 워드는 그런 어머니를 부끄럽게 생각한 것을 뉘우쳤고 자기 몸 속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려졌다시피 그의 오른쪽 어깨에는 한글로 ‘하인스 워드’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그의 고교시절 은사인 정삼숙씨는 워드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전했다. 당시 포레스트 파크 고등학교에는 한국계 학생이 15명 정도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워드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자신에게 선뜻 어머니가 한국사람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김치를 비롯해 한국음식도 잘 먹는다고 말했다는 것. 워드는 당시에도 공부와 운동을 모두 잘하고 성격이 온화해 싫어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좋은 평판을 받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1994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한미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자 “등록금은 안 내도 되니 장학금은 어머니에게 드리겠다”고 했다 한다. 당시 그는 여러 대학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던 중이었다. 워드가 미국 최고의 대학 풋볼 명문 네브라스카 대학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쳤던 것도 어머니가 있는 고향의 조지아대를 택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에서도 그는 리시버·쿼터백·테일백 등 여러 포지션을 맡으며 출중한 실력을 발휘했다.

1998년 프로 입단 계약금을 받은 뒤 워드는 제일 먼저 어머니에게 집과 벤츠승용차를 선물했다. 워드는 “어머니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희생하셨다”면서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나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배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워드가 출중한 실력에 자만하지 않고 늘 겸손한 자세로 성실하게 운동에 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인 어머니의 헌신적인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인스 워드 어머니 김경희씨 인터뷰
워드를 어떻게 교육시키셨는지? 때리기도 하고, 엄하게 길렀다. 그렇게 혼날 짓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부러 엄하게 했다. 그래야 세상 무서운 줄 알고 겸손해질 것 아닌가.

왜 디트로이트에 경기를 보러 가지 않으셨나. 너무 떨리기도 하고, 난 요란한 것 싫어한다. 아들이 MVP에 뽑히고, 플로리다와 피츠버그에서 사람들이 아들에게 환호할 때도 평소에 나가던 고등학교의 식당일을 빠지지 않았다.

아들이 이렇게까지 잘 해낼 줄 알았나. 정말 MVP는 뜻밖이다. 그렇게까지 될 줄은 진짜 몰랐다. TV를 보면서 마냥 좋았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날마다 아침 7시까지 동네 고등학교 구내 식당에 출근한다. 오전 6시에는 늘 ‘해피’와 아침 산책에 나선다. 해피는 아들이 내가 외로울까봐 사준 강아지다. 엄마 혼자서도 즐겁게 잘 지내라고 해피라는 이름까지 지어줬다. 이름이 좋아서인지 그새 정도 많이 들었다.

어떻게 아들을 그렇게 훌륭하게 키우셨는지. 키우긴 뭘 키우나. 애들이 부모 마음대로 되는가. 다 제가 알아서 컸고 제 성품 좋은 탓이다. 따져보면 그 애가 다 해나가는 거지 뭐, 내가 하는 게 있나. 집도 그렇고, 차도 그렇고, 생활 꾸려나가는 것도 그렇고.

워드는 ‘나의 모든 것은 어머니로부터 왔다’고 했는데. 잘한 건 다 아들 탓이고, 아들이 다 알아서 한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지내실 것인지. 지금까지처럼 살 거다. 식당 일을 해 받는 월급은 600달러 정도다. 얼마 못받는다. 워드도 자꾸 그만두라고 하는데 그래도 놀면 뭐하나. 몸 성한 동안은 계속 나가서 일할 거다. 몇 년 전 한두 달 일을 쉬었더니, 못살겠더라.

왜 아들이 사준 스톡브릿지의 저택에 살지 않고 맥도너의 작은 집으로 이사했나. 그 집은 너무 크다. 여기는 학교도 가깝고 큰 집보다 오히려 편하다.

아들이 벤츠를 사주었는데. 집에서는 항상 차고에, 학교 주차장에서는 가장 안전한 곳에 모셔둔다. 맥도너에서는 벤츠가 흔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부러워하곤 한다.

한국에서도 전화와 인터뷰 요청이 많을 텐데. 아예 전화선을 뽑아놓았다. 나는 요란한 건 싫다. 조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려울 땐 혼혈이라고 돌아보지도 않았는데 관심이 너무 과잉됐다.

한국에는 언제 오시나. 아들이 4월쯤에 가자고 하는데, 아직 정확한 날짜와 일정은 정하지 않았다.

정리 / 박연정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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