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서민들의 대변인 역할을 자청해온 참여정부는 출범 후 많은 우여곡절을 거쳤고 급기야 2004년 여름에는 대통령 직무정지라는 전무후무한 상황까지 겪어야 했다. 본지는 2006년 2월 25일 참여정부 출범 3주년을 맞아 영부인 권양숙 여사를 인터뷰했다. 청와대 안주인으로 살아오면서 행한 언론과의 최초 인터뷰였다. 이하늘이 주신다는 이 땅의 지도자를 내조하고,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세계 각국에 한민족의 정신을 알리면서 바삐 지내온 3년. 청와대에서 지난 3년 동안 보듬어온 기쁨과 슬픔 그리고 감동의 기억들을 공개한다.
가는 겨울이 아쉬운 듯, 입춘 추위가 반짝 기승을 부리더니 전국은 어느새 따뜻한 봄바람의 물결이다. 지난 2월 25일은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추운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이 오는 자연의 섭리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우리 사회는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보냈고 그런 만큼 발전과 변화의 시간도 가졌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년의 시간을 청와대 안주인으로 지낸 영부인 권양숙 여사는 취임 후 처음으로 청와대 무궁화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따뜻하고 화사한 느낌의 무궁화실은 권양숙 여사가 가장 아끼는 청와대 공간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손수 고른 분홍빛 투피스 정장 차림으로 이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한 권양숙 여사는 지난 3년 동안의 청와대 생활에 대해 진솔하고 편안하게 술회했다.
한복만큼 예쁜 옷도 없습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 나라 정상과 부인들이 한복에 대해 극찬합니다. 여담이지만, 재작년 칠레 APEC에 참석했을 때 참가국 정상 부인 중 가장 옷 잘 입는 영부인으로 뽑혀 제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맵시 나는 한복 덕분이었죠.
손녀는 아들을 닮았고 외손녀는 사위를 닮았습니다. 손녀가 아들을 닮아서인지 손녀의 모습에서 언뜻 제 모습도 비춰지는 것 같습니다. 손녀 자랑을 하는 데는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두 손녀 모두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Part 1 지난 3년간의 청와대 생활
참여정부 출범 3주년이 되었습니다. 청와대 생활에 대한 감회가 어떠신지요?
지난 3년을 돌이켜 보면 어려웠던 일도 많았지만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가 나아지고 있어서 고맙고 다행스럽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청와대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인수위 시절부터 조금씩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청와대에서 생활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다르고 제약 받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힘이 들었지만 이제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지난 3년을 되돌아볼 때 가장 힘들었던 기억과 가장 기뻤던 일은 무엇입니까?
가장 힘들었던 때는 아무래도 대통령의 직무정지 기간이었습니다. 당시 두 달여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관저에서 보냈습니다. 문밖 출입은 딱 두 번, 저녁 무렵 본관에 내려간 것이 전부입니다. 마음 고생이 심하니 당최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덕분에 미루어둔 책을 많이 읽었지요. 그때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 대통령과 함께 관저 안 작은 뒤뜰이나 상춘재 툇마루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시간들이 소중한 추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시 서울 시청 앞과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우고 촛불을 밝혀든 국민들의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늦은 밤, 잠시 바람을 쐬러 관저 앞마당을 거닐다 보면 멀리서 사람들의 함성이 들리고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평소 생활하시며 경호 상의 불편함은 없으셨는지요? 항상 가까이서 내외분을 경호하는 분들에 대한 영부인의 생각이나 느낌을 듣고 싶습니다.
참여정부 들어 경호 방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대통령께서 뭐든지 과하게 대접하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시라 경호실의 경호 방식도 예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청와대에 오기 전에는 ‘경호원’하면 왠지 권위적이고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섰는데, 막상 겪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경호원들의 수준은 요원들과 실력이나 전문성에서 세계 어느 나라 요원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젠가 한번은 경호실 직원들이 경호 시범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경호 무도의 목적이 사실은 죽는 훈련이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유사시 몸을 던져 국가원수를 보호하는 대신 자신이 죽는 연습인 셈입니다. 참으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여사님의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오전 5시에 기상해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아침식사를 한 후 대통령께서 출근하시는 것을 도와드립니다. 지난해 일간지에 출근하시는 대통령을 제가 배웅하는 사진이 게재됐었지요. 오전 11시경부터 오후 5시까지는 제 집무실에서 근무하는데, 오찬 행사나 접견 자리에서 많은 분들을 만납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여성계와 문화계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나 해외동포들을 주로 만납니다. 이외에도 소규모로 비공식적인 접견이나 간담회 행사들을 많이 갖습니다. 때때로 종교계 지도자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각계의 전문가들을 만나 그 분야의 현황이나 애로사항을 듣기도 합니다. 그만큼 느끼고 배우는 것이 참 많습니다.
청와대 생활을 시작한 후 대통령님과 영부인께서 기념일(생일, 결혼기념일 등)에 주고받은 선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선물의 의미도 함께 말씀해주세요.
우리 부부가 특별히 생일을 잘 챙기지는 못합니다. 대통령 당선 직후 커플링을 맞춘 것이 유일합니다. 경상도 남자들이 무뚝뚝해서인지 대통령께서도 무슨 날이라고 해서 꽃다발 하나 사는 걸 쑥스럽게 여깁니다. 그래도 가족들 생일이나 기념할 만한 일이 있으면 저녁 시간만은 잊지 않고 비워두십니다. 케이크 사다가 식구들과 둘러 앉아 노래도 해주십니다.
밖에서 받은 선물이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여성 장애인이 보내온 ‘무궁화 꽃등’이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가운데도 직접 수작업으로 만들어 보내주신 작품인데 꽃잎을 말려서 일일이 전등에 붙여 문양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지 꽃 장식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만든 사람의 정성과 마음이 배어 있는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Part 2 여성&사회 문제
우리나라 여성들의 사회적인 지위가 향상됐다고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여성 문제에 대한 영부인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전업주부로 30년 넘게 살아왔습니다만, 우리 주부들은 거의 만능인입니다. 아이들 교육에서 살림살이까지 도맡아 해내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아 실력이 남성들 못지않습니다. 때문에 사회참여도 그만큼 활발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우리 여성들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사회적 토양도 마련되었다고 봅니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가 들어서서도 호주제 폐지 등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어려움은 많습니다. 여성을 보는 사회적 인식이나 문화도 더 많이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 50% 수준에 이르고 있는 여성 경제활동인구도 한층 늘어나야 합니다. 특히 여성 인재들을 발굴하고 키우는 데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다가오는 지방선거가 여성들의 정치참여를 대폭 늘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출산이 사회적인 이슈가 됐습니다. 보육 문제도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국가에서 보육 정책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영부인께서는 이 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대통령 선거 때 “아이를 많이 낳으십시오. 국가에서 다 키워드리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저출산 문제는 한 개인이나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아들 딸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습니다. 땅도 작고 인구폭발이 문제가 되는 시대였지요. 불과 20~30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산아제한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아이 울음소리가 끊겼다’는 곳이 많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보면 2004년 1.16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는 저출산 문제에 시달린다고 하는 프랑스나 스웨덴 같은 나라보다도 적습니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할 때 정말 걱정되는 문제입니다.
사실 참여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무엇보다 보육정책을 보건복지부에서 여성부로 이관하여, 국가의 주요정책으로 다루게 했습니다. 지난 3년간 보육예산을 3배 이상 늘렸고, 지난 1월에는 앞으로 5년간 총 19조원을 투자하는 ‘저출산 종합대책’도 마련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야는 역시 보육입니다. 영유아 보육료 지원에만 9조 7천억원 이상이 투자됩니다.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 이상의 가정도 직접적인 보육료 혜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 믿고 맡길 수 있는 육아시설이 더욱 많아지도록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저출산도 문제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불임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대책도 있으신지요?
불임부부의 문제도 더 이상 가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체 기혼여성의 13.5%가 불임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정부는 형편이 어려운 불임부부들에 대해 시술비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올해에만 1만 4천 명, 2010년까지 24만 명이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Part 3 영부인의 공식 활동
영부인으로서의 공식적인 활동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어떤 것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보람은 지난해 부산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꼽고 싶습니다. 우리가 해외에 나가 국위 선양을 하는 것도 값진 일이지만 월드컵이나 APEC 같은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APEC 직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ASEAN+3 정상회의 행사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정상들이 하나같이 부산 APEC에 대해 부러움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부산 APEC의 성공은 부산 시민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힘을 모아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권양숙 여사께선 영부인으로서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요?
대통령께서 마음 편히 국정 운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이겠지요. 가족이나 친·인척과 관련된 일 등 안에서 챙겨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이와 함께 국민의 생각과 뜻을 전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 인터넷도 잘하시고 뉴스도 빠짐없이 보시기 때문에 대부분은 알고 계시지만, 보통 국민들의 입장에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장애인과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을 돕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당장 큰 도움을 드릴 수는 없다 해도, 그분들께 위로가 되어주고 자그마한 힘이 되어줄 수만 있다면 언제든 기꺼운 마음으로 찾아갈 것입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의로운 선행을 베푼 의사상자나,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도 여전히 어렵게 살고 계신 독립운동가의 후손과 국가유공자, 그리고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께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저의 몫입니다.
여사님께서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어떤 행사나 모임에 참석하시는지요?
각계 각층의 단체나 기관에서 행사 참석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때마다 마음은 앞서지만 일일이 참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벌이기보다는,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집중해서 행사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제가 참석한 행사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행사는 지난해 초에 있었던 ‘여성 1호 초청 오찬’입니다. 참여정부 들어 각 분야에서 여성 최초의 자리에 오른 분들을 모신 행사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이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환경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여성들을 만나 그분들의 경험과 사연들을 들으니 한 편의 인간승리 드라마를 보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께 “여러분의 사연을 책에 담아보시라”고 권했는데 나중에 정말로 책을 엮어냈더라구요. 우리 여성들의 변화된 위상을 엿볼 수 있어서 참으로 가슴 뿌듯했습니다.
또 사회복지사들을 청와대에 모신 일과 지난해 성탄절, 희귀병에 걸린 아이들과 그 부모를 청와대로 초대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명예위원장을 맡은 것과 국내 입양 가족들을 초청한 일도 가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 해외 순방차 여러 나라를 다니셨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국내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해외에 나가 보면 대한민국과 해외 동포들의 높은 위상과 역량을 실감하게 됩니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에 대해 나라도 작고 기름 한 방울 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전쟁과 분단을 겪으면서도 어쩜 이렇게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합니다.
실제로 지난번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푸틴 대통령이 한국이 발전한 까닭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교육’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교육열이 대단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공부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고민인데…”라고 몇 번씩이나 부러워했어요. 저는 우리나라가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기러기 아빠도 있고 교육 과잉 문제도 있지만, 그만큼 배우려는 열의가 있기 때문에 희망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순방 길에 느낀 또 한 가지는 우리 기업들에 대한 자긍심입니다.
외국 도시 거리 곳곳에 우리 기업들의 간판이 걸려 있고, 대한민국 상품들이 명품으로 당당히 대접받고 있습니다. 물론 한류 열풍도 실감했습니다. 역시 대단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동포들 정말 훌륭합니다. 낯선 환경에서도 특유의 성실성과 부지런함으로 현지에서 뿌리내려 성공하고, 자손들도 유능한 인재로 잘 키워냈습니다. 또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도 대단합니다. 한글학교를 세워서 2세, 3세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고, 우리의 문화도 열심히 배우고 있더군요. 저는 이런 우리 해외동포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Part 4 요리&취미 그리고 여가 생활
영부인께서는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 직접 요리할 기회가 있으셨는지요. 또한 대통령의 건강관리를 위해 해드리는 특별 보양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평소에는 청와대 조리사들이 차려준 식단대로 식사를 하지만 일요일 아침에는 조리하시는 분들을 쉬게 해드리려고 직접 상을 차립니다. 고구마나, 감자, 옥수수 등을 쪄서 먹는데, 그 맛이 참 별미입니다. 예전에는 쌀이 없을 때 먹는 음식이었는데 요즘엔 웰빙시대라고, 오히려 이런 식단이 인기를 끌고 있다죠?
대통령께서는 특별히 가리시는 음식은 없습니다. 그래서 보양식이랄 것도 따로 없습니다. 해외에서도 현지 음식들을 잘 드시는 편이라 특별히 챙겨드리는 건강식은 없습니다. 다만 대통령과 제가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양식이나 중식보다는 한식이 입맛에 잘 맞습니다. 대통령께서 가끔 “출출하다”고 하실 때면 라면을 끓여드리기도 합니다.
음식 외에 특별히 신경 쓰는 것은 차나 음료수입니다. 대통령께서는 회의나 행사가 많아 말씀을 많이 하시기 때문에 목 관리 차원에서 오미자차를 해드립니다. 냉장고에 넣었다가 시원하게 해서 드리면 좋아하십니다.
최근에는 각종 문화행사와 공연을 간간이 즐기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론에 보도되는 공식일정 외에 공연과 문화생활을 즐기는 경우가 많으신지요?
자주 즐기는 편이 못 됩니다. 한번 청와대 밖을 나서게 되면 비서진들과 경호실 직원들이 다 같이 움직이게 되니 괜한 고생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 발길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이번 설에도 부속실이나 경호실 식구들, 꼭 필요한 경우 말고는 편히 쉬라고 했습니다. 굳이 나들이라고 한다면 등산을 꼽을 수 있는데 멀리는 못 가고 청와대 뒤편에 있는 북악산에 오릅니다. 그럴 때면 가끔씩 산 아래 있는 식당에 들러 식사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청와대에서 생활하면서 감동적인 공연을 여러 편 접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지난해 말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던 한빛맹학교 자선공연입니다. 제가 초대받은 행사였는데 공연 전날 대통령께 말씀드렸더니 “마침 시간도 되는데 같이 가볼까” 하면서 동행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녀와서는 공연의 여운이 꽤 깊었던 것 같습니다. 몸이 불편한데도 어쩌면 그렇게 연주들을 잘하던지… 특히 마지막 난타 공연을 볼 때는 대통령도 저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지난해 10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전무후무’라는 공연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문화재이신 이매방 선생님을 비롯 한국무용계의 대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공연이었습니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나오신 분도 정작 연주가 시작되니 신들린 듯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시는데… 공연 내내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는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영부인께서는 건강 관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요. 또 취미와 여가 활동은 어떻게 하십니까?
건강 관리를 위해서는 국선도를 하고 있습니다. 시작한 지 2년 정도 되는데, 매일 아침 1시간씩 하고 나면 정신도 맑아지고 몸도 가뿐해집니다. 요즘 우리나라 주부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요가를 배우는 분들이 많던데 국선도는 전통적인 ‘한국식 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취미는 특별한 게 없고 틈날 때마다 책읽기를 즐깁니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관저에서 영화를 보거나 산책을 합니다. 가끔씩 대통령께서 일정이 없으실 때는 함께 청와대 뒷산을 오르는 것도 제가 누리는 여가 활동 중의 하나입니다.
대통령님과 책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싹틔우셨을 정도로 여사님께서는 책 읽기를 좋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책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으신지, 또한 소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특별히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 세대가 다 그렇지만 취미생활이라는 게 별다른 게 없어서 그저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박경리 선생의 「토지」입니다. 스케일도 크지만 그 속에 나오는 무수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쩌면 그렇게 생생하게 풀어낼 수 있는지 지금도 그 감동이 가슴에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한비야씨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도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저자가 여행과 봉사활동만 잘하는 분인 줄 알았더니 글을 엮어내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더군요. 인류애와 같은 거창한 교훈이 아니더라도,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깨우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최근에 관심 깊게 읽은 책은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입니다. 이 책은 공공도서관의 인프라가 열악한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책입니다. 기회가 닿으면 대통령께도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권할 생각입니다.
Part 5 소소한 일상&손녀 자랑
보통 할머니들은 손자나 손녀가 생기면 재롱보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들 합니다. 손녀 자랑을 조금만 해주십시오.
요즘은 손녀 보는 게 큰 낙입니다. 일찍 손주 본 친구들을 만날 때면 하도 자랑을 해서 왜 저러나 했는데 요즘 제가 그렇습니다. 우리 손녀는 이제 갓 두 돌이 지났는데 말도 잘하고, 재롱도 보통이 아닙니다. 제 노래에 맞춰 춤을 출 때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손녀가 음감이 우수한 것 같습니다. 한참 전에 눈이 내렸을 때 손녀를 등에 업고 눈 위에 발자국을 만들면서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이라는 노래를 불러줬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 다시 눈이 내렸는데 손녀가 “할머니,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하러 가자”고 하더라구요. 딱 한 번 불러준 노래를 기억하고 있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손녀를 보고 있으면 매일매일이 새롭고 경이로워요. 대통령께서도 손녀 재롱에 넋을 놓을 때가 많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이고 엄마, 아빠가 모두 경상도 출신이라 손녀도 사투리를 배우지 않을까 싶었는데 서울말 쓰는 게 참 신기하더군요. 가끔씩 식구들끼리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니 어디 가노?” 하면서 사투리를 흉내내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우리 손녀가 제일 똑똑하고 예쁜 것 같습니다. 저도 손녀 자랑할 때는 여느 할머니들과 다를 게 없어요.
외손녀는 이제 18개월이 됐습니다. 딸 가족은 현재 외국에 있어서 외손녀 재롱은 요즘 못 보고 있습니다. 딸이 자주 전화를 하는데 그때마다 “이경(외손녀)이는 잘 있냐?”고 물으면 “하루 종일 뭐라고 중얼중얼 하고 다녀요”라고 합니다. 이제 말을 배우려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를 중얼거린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이제 두 돌이 지난 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특별한 분이라는 것을 아는지요?
아직 그런 것은 모를 겁니다. 그런데 대통령과 함께 해외 순방을 가면 텔레비전을 통해 그 자료 화면이 방송되지 않습니까. 손녀는 아직 어려서 현실과 텔레비전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텔레비젼에 할아버지가 나오면 화면 앞으로 달려가 “할아버지, 빨리 나와요”라고 한답니다. 저는 그런 것들까지 모두 기특하고 예뻐보입니다.
아드님, 따님과는 자주 연락을 하시는지요? 자녀 분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우리 아들은 회사에 잘 다니고 있고 자주 찾아와서 관저에서 자고 가곤 합니다. 며느리랑 손녀도 그때 늘 같이 오구요. 딸아이는 유학 중인 남편과 함께 지금 미국에 있습니다. 딸은 성격이 밝고 사려가 깊습니다. 아이 욕심이 많아서 셋쯤 낳겠다고 하네요. 전화도 자주 하고, 이메일로 외손녀 사진도 보내오는데 그래도 한국에 없으니까 좀 허전합니다. 대신 며느리가 요즘은 딸아이 몫까지 다 합니다. 며느리는 신세대답게 활달하고 생기가 넘쳐요. 며느리가 저나 대통령께 참 싹싹하게 잘합니다.
여사님께서는 ‘한복은 물론이고 양장까지 옷맵시가 상당히 좋다’는 말씀을 많이 들으십니다. 전속 코디네이터가 있으신지요. 그리고 평상시와 공식행사시 코디 방법이 궁금합니다.
전속 코디네이터는 따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나 한복을 입어야 할 때, 대통령 담당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거나 외부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행사의 성격이나 분위기를 고려해서 제가 직접 옷을 고릅니다. 옷을 입을 때, 특별한 취향이랄까 스타일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감색이나 회색 계통의 옷을 주로 입었는데, 요즘은 가능하면 밝은 색 옷을 입으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화려하지 않고, 단정하고 반듯한 정장 스타일을 선호합니다.
한복은 될 수 있는 한 자주 입으려고 합니다. 한복만큼 예쁜 옷도 없습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 나라 정상과 부인들이 한복에 대해 극찬합니다. 여담이지만, 재작년 칠레 APEC에 참석했을 때 참가국 정상 부인 중 가장 옷 잘 입는 영부인으로 뽑혀 제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맵시 나는 한복 덕분이었죠. 당시 초록 치마에 황금색 저고리를 입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우리 한복 입기를 권장하고 싶습니다.
Part 6 새해 소망&퇴임 후 계획
요즘 대통령님께서는 퇴임 후 구상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십니다. 아직 임기가 2년 정도 남아 좀 이른 감이 있기도 합니다. 대통령님께서는 고향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여사님의 꿈도 그러신지요?
대통령께서 임기를 마치면, 함께 고향 김해나 부산에 내려가 살고 싶습니다. 실제로 가능할지 소망에 그칠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생각은 굴뚝같습니다. 고향에 가서 자그마한 정원을 만들어 나무도 가꾸고, 가끔씩 서울에서 손주들 내려오면 채소밭 상추도 같이 따고… 생각만 해도 그 재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보면 퇴임한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가 지역발전에 기여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일에 모범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대통령님과 영부인, 두 분이 건강하셔야 나라도 튼튼합니다. 새해가 되면 어른들께서 덕담을 해주시는데 올해는 어느 가정이건 유독 건강에 대한 말씀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06년 새해 소망을 듣고 싶습니다.
건강보다 소중한 것이 있겠습니까.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게 가장 좋은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2006년 새해의 바람은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다행히 국민 여러분이 가장 염려하시는 경제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좋은 정책들을 만들고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 모두의 성원과 협조가 절실합니다. 서로 열린 마음을 갖고 의견이 다르더라도 한 발씩 양보하면서 미래를 함께 설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살림살이가 더 나아져서 우리 국민 모두가 어깨를 펴는 한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글 / 경영오 기자 사진 / 민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