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공식적인 멘토링 활동이 끝난
이후부터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될 거예요”
살다 보면 학연, 지연, 혈연 등등 네트워크가 짱짱한 경쟁자로 인해 씁쓸해지는 순간이 있다. 내 인생을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순수한 열정을 가진 동지를 만날 수 있는 곳, 사이버멘토링은 여성 스스로 양질의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보자고 권한다. 이제 남은 건 당신의 용기뿐이다. |
지난 10월 14일 결혼식이 많은 탓인지 약속 장소인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으로 가는 동안 교통 체증이 극심했다. 하지만 때마침 친지의 결혼식 참석차 서울에 온 멘토 송인선씨를 만날 수 있었으니 그쯤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다. 이미 약속시간을 넘어선 시계를 보며 헐레벌떡 도산공원을 알리는 표지석을 지나갈 무렵, 경쾌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저희 모두 도착했어요.” 오늘 소개할 멘토링 식구는 모두 세 명이다.
법(法) 안에서 하나로 뭉친 맹렬 여성 3인방
“지민씨와 진경씨 모두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어 자신의 꿈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에요. 더 잘하고 싶은 열의가 뜨겁다는 점에서 두 분의 이미지가 참 닮아있구나 했는데, 실제로 뵈니 다들 미인이네요.”
이지민씨는 노무사 관련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학부 전공이 영문학이라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등록했는데, 아무래도 자신에게 동기부여를 해줄 관련 업계 선배를 만나고 싶어서 사이버멘토링의 문을 두드렸다.
“한번은 멘토님께서 여 검사의 생활에 대한 글을 올리셨어요. 막연하게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점도 인상적이었지만, 어떠한 장벽이 있어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할 수 있어서 뿌듯했어요. 직장에 다니면서 공부하다 보니 게을러지기 쉬운데, 멘토링을 통해 마음을 고쳐먹곤 합니다.”
검찰 사무직을 희망하는 백진경씨는 법조계 멘토를 찾는다는 가입신청을 하고 몇 개월 대기한 끝에 서인선씨와 매칭된 케이스. 여 검사라고 하면 굉장히 경직되고 인간적인 재미가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서씨를 만나보니 마치 유치원 선생님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제가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 주변에서 역할 모델을 해줄 사람이 없어서 막막했어요. 그때만 해도 여성 합격자 수가 적다 보니, 어머니조차도 ‘하늘의 별 따기라는데 그냥 시집이나 가라’고 말릴 정도였으니까요. 멘토 활동을 하는 이유도 제가 도움을 찾는 누군가에게 절실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예요.”
여성들이 서로 나누면서 강해지는 길
독서량이 많은 백진경씨는 읽은 책 가운데 감명 깊었던 대목을 인용하거나 감상문을 올려 그 감동을 나누었다. 이에 서인선씨는 그동안 읽은 책 가운데 무려 1백60여 권의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책 리스트를 사이버상에 올렸다. 이지민씨는 ‘일주일에 두 번 글 올리기’라는 멘토링 캠페인을 누구보다 잘 실천하고 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나는 대상이 바로 멘토링 식구가 되어버렸다. 틈틈이 사이버멘토링 홈페이지를 방문해 글을 올리고 답변을 다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제 머릿속의 90% 이상 차지하고 있는 건 사건인데, 그 얘기를 멘티에게 들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사실 검사들은 별 얘깃거리가 없어요. 눈만 마주치면 사건 얘기만 하거든요(웃음). 어떻게든 멘티들과 시선을 맞춰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니까 일 외에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더군요.”
세 명의 여성은 하나같이 기자를 부러워했다.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여성이 수적으로 우세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점이었다. 서인선씨가 직장 내에서 자신을 동료로 바라보지 않는 남성들의 시선을 인식하면서 예외적인 존재라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하자 이씨와 백씨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성들은 동문회를 비롯해 각종 모임을 통해 거미줄처럼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자신들의 영역을 공고히 하는 데 반해 여성들은 여고모임조차 여의치 않은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이다.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각개전투를 해야 하는 게 현실이잖아요. 여성 인적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는데 여성부에서 사이버멘토링을 시행하고 있어서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온라인상이고 활동하는 인원도 적지만, 지금의 멘티가 멘토가 되어 후배들을 이끌어준다면 미래는 나아지지 않겠어요? 우리 여성들도 서로 나누면서 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인터뷰가 끝이 나자, 세 여성은 잔뜩 들뜬 표정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죽이 잘 맞는(?) 여자 셋이 모였으니 그 이후의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을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이젠 서로 얼굴도 보고 온라인으로 나누지 못하던 개인 사정에 대해서도 들었으니 앞으로 보다 구체적이고 밀도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이버멘토링의 공식적인 기한은 1년이지만, 그 이후부터가 진짜 시작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부터 더 노력해야죠. 이분들이 자신의 진로를 찾아가는 데 정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 글 / 장회정 기자 ■ 사진 / 이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