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 아시안게임 한국 첫 금메달 안긴 유도스타 장성호

도하 아시안게임 한국 첫 금메달 안긴 유도스타 장성호

“2008년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생이별도 감수할 자신 있어요”


지난 12월 15일 폐막한 도하 아시안게임은 많은 스타를 탄생시켰다. 경기 종료 11초 전 허리 후리기로 일본의 이시이 사토시를 꺾고 만년 2인자 징크스를 당당하게 깬 장성호 선수(수원 시청)의 우승은 대한민국의 첫 금메달이자, 아내에게 바치는 결혼 1주년 선물이었다.


도하 아시안게임 한국 첫 금메달 안긴 유도스타 장성호

도하 아시안게임 한국 첫 금메달 안긴 유도스타 장성호

지난 12월 3일 새벽(한국 시간) 들려온 장성호(29)의 금메달 소식에 아시안게임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 한 장의 사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어느 한곳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한 여인의 모습에서 장성호 선수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 김성윤씨(28)의 미모 때문에 ‘얼짱 부부’로 소문난 금메달리스트 장성호의 신혼냄새 폴폴 나는 경기도 용인시 자택을 찾았다.


금메달 소식에 그동안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져
부부는 시상식 다음날에야 기사를 봤다고 했다. 김성윤씨는 울어서 얼굴이 잔뜩 부은 사진이 기사화된 것이 영 마음에 들지않는 눈치였다.

“지난 1년 동안 오빠가 너무너무 고생했거든요.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올라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2005년 12월 17일, 결혼식을 올린 뒤 3개월이 채 안돼 장성호는 선수촌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친정에서도 제법 떨어진 용인 집은 아내에게는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해질 무렵이면 다정하게 집으로 들어가는 다른 부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혼자 눈시울을 붉힌 날도 많았다. 투정을 부리고 싶은 적도 있지만,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야하는 남편의 하루를 망칠까봐 속으로 삭이기만 했다.

그러던 중 아시안게임 2차 선발전을 열흘 앞두고 일이 터졌다. 훈련 중 장성호의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은 것이다. 걷기조차 힘든 상황. 감독은 경기를 포기하라고 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무너지면 은퇴하리라고 독한 맘을 먹은 장성호는 경기 당일 마취제를 맞고 매트에 올랐고 1위로 당당히 출전 자격을 따냈다. 그날도 김성윤씨는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었다. 아픈 남편을 챙겨주지 못한 것이 못내 속상해서였다.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된 뒤 아내에게 결혼 1주년 선물로 금메달을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동안 고생한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선물은 그뿐이겠더라고요.”

시합 전날 카타르에 도착한 아내의 얼굴을 보고 투지를 불사른 덕분에 장성호는 역대 전적 3전 3패를 기록한 숙적 이시이를 누르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14시간을 날아가 경기를 지켜본 김성윤씨는 온 신경을 집중해 기도하느라 사진을 찍어달라는 남편의 부탁은 까맣게 잊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금메달을 딴 다음날에야 두 사람은 동료 선수의 금메달을 빌려서 유도경기장에서 아쉬운 대로 기념촬영을 했다.

지금이야 유도 전문가가 다 됐지만, 김성윤씨는 올림픽을 제대로 본적이 없을만큼 스포츠에 문외한이었다. 아테네 올림픽이 끝난 2004년 10월 친구로부터 장성호를 소개받았을 때도 ‘타이즈를 입고 운동하는 사람이 뭐 저렇게 키가 큰가’하고 의아해했단다. 유도, 레슬링, 태권도의 차이를 잘 모를 정도니 장성호가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지, 잘생긴 외모로 여성팬들을 몰고다니는 스타인지 알 턱이 없었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났지만 하루 서너 시간 전화 통화는 끄떡없을 만큼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는 장성호·김성윤 부부.

결혼한 지 1년이 지났지만 하루 서너 시간 전화 통화는 끄떡없을 만큼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는 장성호·김성윤 부부.

“연애가 힘든 건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바뀌기를 원하기 때문일 텐데, 이 사람은 저에게 100% 자신을 맞추겠다고 했어요. 말로만 그러려니 했는데 정말 하나하나 지켜나가더군요. 오빠만 나에게 맞춰가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 물었더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도록 자신이 바뀌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재밌고 행복하대요. 그 얘기에 또 감동을 받았죠.”

교제 경험도 거의 없는데다가 워낙 수줍음이 많은 장성호는 술 기운을 빌어 “난 너 마음에 든다. 우리 사귀자”라고 고백을 했다. 이후 술을 싫어하는 김성윤씨를 위해 술자리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등한시하던 교회도 꼬박꼬박 함께 나갔다. 김성윤씨와의 교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성팬들도 여럿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근사한 이벤트보다 아내를 감동시킨 진심 어린 프러포즈
“아내의 첫인상은 솔직히 굉장히 도도해 보였어요. 물론 예쁘기도 했지만(웃음). 마냥 어린애처럼 천진하고 여려 보이지만, 저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끔찍할 정도로 각별해요. 저를 좋은 방향으로 바뀌도록 이끌어주고, 먹는 것 하나까지 세심하게 챙겨주는 게 눈물날 정도였어요. 고마운 거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죠.”

2005년 10월 17일, 장성호는 프러포즈를 했다. 더 근사하게 준비하고 싶었지만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선수촌 생활을 할 때라 대학로의 한 소극장을 빌리고, 풍선 장식을 꾸미고, 영상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간단한(?) 이벤트를 선보였다.

“제가 원래 꿈꾸던 프러포즈는 정말 간단한 거예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반지 주면서 ‘나랑 결혼해줄래?’라고 말하는 그거였는데…. 전 원래 이벤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돈이 아깝잖아요(웃음).”

그 말에 장성호가 서운한 듯 “그래도 그날 울지 않았느냐”고 하자, 김씨는 “평생 나만 바라본다고 한 말이 감동적이라 그랬지”라고 답했다. 김성윤씨의 부모는 장성호를 처음 만나던 날 흔쾌히 결혼을 승낙했다. 누가 봐도 좋은 인상 덕분이라고 김씨는 귀띔했다.

김씨는 주일·주미 대사를 지낸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의 장남 김대녕 해오 실업 사장의 맏딸이다. 그녀의 셋째 고모 김영자씨는 LG 가문의 허광수 삼양인터네셔널 회장과, 넷째 고모 김영명씨는 정몽준 회장과 혼인해 재벌가 혼맥 관련 기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집안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첫째 고모 김영애씨는 모건스탠리사의 부사장이며 둘째 고모 김영숙씨의 딸 손정희씨는 홍정욱 헤럴드미디어 사장과, 셋째 고모의 딸 허유정씨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장남 방준오씨와 각각 결혼했다.

“집안 어른 중 한 분께서 ‘올림픽에 나가서 은메달을 딸 사람이면 무엇을 하든지 잘할 것’이라며 결혼시켜도 걱정없을 거라 말씀하셔서 모두들 축복해주셨어요.”

경기 종료 11초 전 허리 후리기로 일본의 이시이 사토시를 꺾고 한판승을 거둔 장성호의 값진 금메달.

경기 종료 11초 전 허리 후리기로 일본의 이시이 사토시를 꺾고 한판승을 거둔 장성호의 값진 금메달.

결혼에 대한 부담감은 오히려 김성윤씨에게 있었다. 보통 주부들이 밥 차리기 귀찮을 때면 대충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 먹거나, 전화 한 통으로 배달 음식을 시켜먹지만 남편이 몸을 쓰는 운동선수다 보니 밥 한끼 대충 때우기가 어렵다고. 이번 아시안게임에 응원 갈 때도 홍삼과 쌀을 가져가 홍삼물을 달이고 죽을 끓였다니 그 정성을 짐작할 만하다.

“저는 양식은 양식당에 가야지만 먹을 수 있는 줄 알았어요(웃음). 근데 그걸 집에서 다 해줘요. 연애 초기에 케이크와 쿠키를 만들어 오길래 ‘예사 솜씨는 아니구나’ 했는데 결혼하고 보니 아주 못하는 요리가 없어요. 거의 요리사 수준이에요. 제가 요리 이름을 다 몰라서 말씀을 못 드린다니까요.”

음식 잘 나오기로 소문난 선수촌에서도 갈비찜과 불고기가 나오면 손도 대지 않던 장성호가 아내표 요리는 뭐든지 잘 먹는다. 김씨의 요리 비결은 몸에 좋은 한약재를 백분 활용하는 것. 황기와 인삼 끓인 물을 음식 만들 때 육수처럼 활용하면 잡내도 없어지고 보양의 효과도 낼 수 있단다.

“연애 시절에 종로 커피숍에서 아내를 만났는데, 그날이 복날이라며 삼계탕을 싸왔더라고요. 집에서 만든 거라며 보온병에서 꺼내 주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잘 먹었죠(웃음). 커피숍에서 식사를 하려니 민망하긴 했지만 어떻게 마다하겠어요? 남자친구를 위해 정성껏 준비해왔는데.”

멍석을 깔아 놓으니 서로에 대한 감사의 말들이 술술 터져 나온다. 내친김에 김성윤씨에게 언제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듣고 있던 장성호가 12월 3일이 아니겠느냐고 선수를 쳤다. “아, 금메달 땄을 때? 그거 말고 평소에도 많아.”


남편은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아내는 현모양처를
결혼 전 김성윤씨의 친구들은 “성호 오빠같은 사람이라면 정말 결혼할 만하다”며 힘을 실어줬다. 결혼 이후 그의 애정은 더욱 깊어졌다. 다른 친구들은 자랑처럼 말하는 음식물 쓰레기 대신 버려주기는 남편의 선행 리스트에도 못 오를 정도다.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아내의 팔을 이끌고 처가를 찾고, 인천에서 토플 시험 치르는 처제를 위해 모처럼의 주말 휴가를 반납하고 운전기사로 나서기도 했다.

도하 아시안게임 한국 첫 금메달 안긴 유도스타 장성호

도하 아시안게임 한국 첫 금메달 안긴 유도스타 장성호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큰 시합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둘 때면 나도 아버지가 계셔서 칭찬받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랐거든요. 결혼하고 장인어른께서 ‘너는 앞으로 내 아들이다’라고 하셨는데 가슴이 찡했어요. 그동안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서 못했던 걸 장인어른께 다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번에 금메달 소식에도 얼마나 기뻐하셨는데요.”

2006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계기로 장성호는 은퇴 계획을 과감하게 접었다. 유도 대표선수의 최고령이 20대 후반임을 감안하면 서른 살이 되는 그는 그야말로 노장이지만,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목표에 한번 더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유도 대표 팀원 중 유일한 유부남인 그는 부인을 잘 만난 덕분이라며 넉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김성윤씨는 또 한번 ‘생이별’을 준비해야할텐데.

“그게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는데 결과가 좋으니까 그동안의 아쉬움이 눈 녹듯이 사라지더라고요. 고생은 되겠지만 남편이 원하는 일이니까 좋은 결과만 있길 바라야죠.”

아동심리학 석사를 마친 김성윤씨는 아시안게임 준비로 인해 올 3월부터 밟으려던 박사과정을 미뤄둔 상태다. 원래 아시안게임 시기에 맞추려했던 2세 계획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무렵으로 조정했다. 모든 삶의 스케줄이 남편 위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한 섭섭함은 없을까 우려했더니,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주유소에 갔는데, 주유소 사장이 아내 힐러리가 젊은 시절 사귀었던 남자였다. 주유소를 빠져나오며 빌 클린턴이 우쭐한 마음에 “당신이 저 남자랑 결혼했으면 지금쯤 주유소 사장이 되어 있을텐데, 나와 결혼했으니 영부인이 된 줄 알라”고 했다. 그러자 힐러리가 답했다. “그랬더라면 저 사람이 지금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있겠죠.”

“힐러리의 말에 공감해요. 아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편의 앞날을 좌우한다고 믿거든요. 제 꿈은 원래 현모양처였어요. 남편에게 최고의 아내가 되도록 노력하면서 살고 싶어요. 오빠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열심히 해서 자신의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갔으면 좋겠고요. 오빠는?”

“성윤이가 너무 잘해주니까 잘되겠지(웃음).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저를 위해 애써주는 가족이 있으니 꼭 원하는 결과를 얻고 싶어요.”

한 이동통신사의 커플 무제한 요금제가 없었더라면 한 달에 1백만원 이상을 통신 요금으로 고스란히 바쳐야할 만큼, 나눌 이야기가 많다는 장성호·김성윤 부부. 카타르에서 귀국한 지 일주일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감사의 인사를 드릴 분들이 많아서 결혼 1주년 여행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는 부부는 인터뷰로 둘만의 시간을 빼앗은 것이 미안할 만큼 애틋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감기까지 사이좋게 나눌 정도로.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박형주·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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