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조정 성공률 70%의 비밀! 나는 이혼을 막지 않는다”
하루 400여 쌍이 이혼, 세계 2위의 이혼율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가히 이혼이 홍수처럼 범람하는 이 시대에 “이혼을 절대 막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며 70%의 높은 이혼조정 성공률을 보이고 있는 김영희 위원. 이혼을 앞둔 위기의 부부들과 만나 마지막 화해의 기회를 유도하는 김 위원을 만나 ‘이혼’이 가져다줄 ‘불행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 모씨는 대학교 4학년 때 남편에게 납치당해 성폭행당한 후, 아이가 생겨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지만 딸은 정박아로 태어났고 남편은 평생 술과 폭력을 일삼으며 조씨를 괴롭혔죠. 먹고 살기 위해 친정 아버지로부터 받은 돈으로 작은 약국을 차렸지만, 그것마저 남편이 돈을 빌린 사채업자들에게 순식간에 빼앗겼습니다.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잃은 조씨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쳤고, 그 충격에 설상가상으로 친정아버지까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이후 조씨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친정으로 도망갔으나 친정까지 쫓아온 남편은 장모를 벽으로 밀쳐 결국 장모까지 언어장애 반신불수 상태로 만들어버렸죠. 이를 알게 된 조 여인 역시 남편에게 죽기 살기로 달려들다가 얻어맞아 1년 이상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입니다. “소리없는 총이 있다면 남편을 쏴 죽이고 싶다”고 말하는 조씨에게 누가 ‘이혼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지난달 13일, 매서운 겨울 바람이 몰아치던 날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만난 김영희(65) 조정위원 협회장. 그녀는 ‘이혼은 또 다른 행복 추구권’이라며 “이혼을 무조건 막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조정당일, 위원실에 들어선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조씨의 남편과, 얼굴에 핏기 하나 없이 나무꼬챙이처럼 깡마른 조씨는 서로 한때 부부였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조씨는 조정위원실에 들어와서도 “이혼 못 하면…. 자살 할래요”라고 말할 정도로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었고, 여자를 무섭게 노려보는 남편의 눈에서는 살기가 느껴졌다고 한다.
김 위원은 두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어 보여 조씨에게 지난 사연은 전혀 묻지도 못하고, 이혼의사만 확인한 후 이혼 조정을 마쳤다고 한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
1997년부터 약 11년간 서울 가정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약 1만여 쌍의 이혼조정을 해온 김 위원은 이혼현장에서 사건 당사자들이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습니다”라며 절규하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래서 지난해 말, 두 번째로 내놓은 책의 제목도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로 정했다.
이혼에는 ‘협의이혼’ ‘조정이혼’ ‘재판이혼’이 있다. 이중 위자료, 재산분할, 양육권 등의 조건이 서로 합의가 안 될 경우 재판을 해야 하는데, 그 전에 ‘조정단계’에서 양측이 합의를 이루어내면 ‘조정이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조정이 안 될 경우는 결국 재판으로 넘어간다. 재판으로 넘어가면 2~3년 이상의 장기전이 되면서 양측의 심리적 체력적 소모가 클 뿐만 아니라, 재판 결과 내용도 결국 조정단계에서 이루어진 것 이상의 더 큰 이득이 없기 때문에 ‘조정단계’에서 합의점을 찾아내는 게 현명하다는 것이 김 위원의 설명.
김 위원은 “조정이혼 이라는 개념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조정위원’을 단순히 ‘상담’만 해주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라면서 “모든 합의를 조정위원에게 받고 나서, 최후의 판결만 재판관 앞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정위원들은 라이센스 없는 재판관과 똑같다”고 전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서 신구와 정애리가 하는 역할이 바로 조정위원 역할. 하지만 드라마와는 달리 실제는 한 명의 조정위원이 40분 안에 이혼부부들의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이혼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수많은 부부들은 모두 가지각색의 이혼 사유와 우여곡절의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김 위원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들과 마주할까.
김 위원은 조정실에 들어가기 전 밤을 새워 양측의 소장을 모두 외운 뒤, 상식선에서 마음속으로 50%의 결정을 내리고, 조정실에서 당사자들을 만난 후 말투와 태도, 인상 등을 통해 30%, 나머지는 서로의 추가 입장을 들어보는 것 20%를 합쳐 최종적으로 ‘조정’을 한다고 밝혔다. 또한 김 위원은 “하늘이 내게 아무래도 신내림을 주신 것 같다”며 웃으면서 “조정위원실에만 들어가면 신들린 듯이 그 사람들의 감정을 읽어 내려간다”고 말했다.
이 결과 김 위원은 국내 최초로 70% 이상의 높은 이혼조정 성공률을 기록하며 ‘솔로몬’이라는 평까지 받았으며, 지난해 12월 18일, 여성 최초 서울 가정법원 조정위원 협의회 회장직까지 맡았다.
“1년 3백65일 중 3백60일은 이혼하고 싶었다”
사실 김 위원은 특별한 법률 전문가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유명인사도 아니었다. 결혼 후 20여 년 이상, 남편과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며 주부로 지냈다. 그러다가 여성단체에서 인권 여성지위향상 운동에 참여한 이후, 지난 1997년 당시 윤관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조정위원의 일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김 위원이 이렇게 높은 조정 성공률을 보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이혼 부부들을 대하기 때문. 김 위원 역시 현재 자신을 찾아오는 수많은 이혼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1년 3백65일 중에 3백60일, 아니 하루에도 수백 번씩 이혼을 결심했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부잣집 외동딸로 자란 김 위원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5년의 열애 끝에 신문기자였던 남편과 결혼했다. 하지만 남편은 한 달에 세 번 정도만 집에 들어왔고, 월급은 술값으로 모두 날려 집에는 한푼도 가져오지 않았다. 남편은 신문사에서도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소문난 술꾼이었던 것.
또한 집에서 아이들이 밥은 먹고 사는지, 아픈지 어떤지도 몰랐다. 돈이 없으니 생쌀을 갈아서 아이에게 죽을 만들어 먹이는데, 그렇게 서글픈 눈물이 쏟아지더란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이혼을 결심했다가도, 아이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결국 마음이 약해져 이혼을 못했다. 하루에도 수번씩 이혼을 할까말까 고민하며 살기를 수십 년.
어느날, 김 위원은 몸이 너무 아파 머리를 싸매고 자리에 눕게 됐다. 이때 평소 관심도 없이 무뚝뚝하기만 하던 남편이 ‘화채’ 한 그릇을 만들어서 김 위원에게 가져와 “이것 좀 먹어봐”라고 말했다. 남편이 생전 처음으로 만들어본 화채. 사과와 수박을 삐뚤빼뚤 썰어 만든 화채를 바라보는데, 그 속에 남편의 사랑이 보이면서 눈물이 나더라는 것.
‘남편이 마음속 깊이 날 사랑하지만, 그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라는 걸 느낀 김 위원은 수십 년 동안 쌓여왔던 남편에 대한 미움들이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려가는 걸 느꼈다.
남편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이후, 살아가면서 조금씩 남편의 진심을 알게 됐고 이제는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인터뷰 때문에 밥을 못 먹고 나가는 김 위원을 위해 남편이 ‘한과’와 하와이에서 사온 ‘건포도’를 정성스럽게 싸주었다며, 기자앞에 꺼내어 놓는다. 이어 김 위원은 “지금은 등산을 하다가도 내가 넘어질까봐 먼 발치서 날 지켜봐주는,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람”이라며 행복감을 한껏 드러냈다.
특히 그중에는 김 위원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고, 3개월의 숙려 기간이 지난 뒤 이혼을 취하하러 온 커플도 있었다고 한다. 이 젊은 부부는 “아이들이 다 커서 예쁘고, 자랑스러울 때 그 기쁨을 같이할 수 있는 남편이 없으면 그건 ‘반쪽짜리 행복’에 불과하다”는 김 위원의 말에 크게 공감해 그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 부부가 재판실에 들어가 이혼을 취하하는 결정을 내릴 당시,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기립박수로 그들의 새 출발을 축하해줬다. 엄마 아빠와 따로 지내던 아이들과 시부모님들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김 위원 역시 그들 부부의 손을 잡으며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겁니까”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이후에도 그 부부와는 안부 전화를 하며 같이 저녁을 먹기도 한다.
이혼 사유 성격 차이, 외도, 돈, 가정폭력, 섹스 순
지난 1997년 처음 일을 시작할 때와 지금은 이혼의 사유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그녀에게 요즘에는 어떤 사유로 이혼하는 커플이 가장 많은지에 관해 물었다.
“우선 성격 차이, 배우자의 외도, 경제적인 문제, 가정폭력 등을 가장 큰 이혼 사유로 꼽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변태적인 성행위를 요구하는 남편, 의처증과 의부증, 마약중독, 알콜중독, 도박중독 역시 이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유죠. 이런 경우에는 아내가 더 이상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이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중 김 위원의 책 속에 담긴 한 모씨의 사연은 그야말로 충격에 가깝다. 30세의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인 한 모씨는 핸섬한 엘리트 장씨와 첫눈에 반해 3개월 만에 결혼했다. 하지만 한씨는 부부관계시 남편의 해괴한 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알고 보니 남편은 형형색색 여자 팬티와 온갖 성기구들을 즐겨 사용하는 변태 성욕자였던 것.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젠틀맨이었던 남편의 이중성에 한씨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이혼을 해주지 않으면, 양가 부모님들에게 사실을 다 털어 놓겠다”고 말해 겨우 이혼을 하게 됐다.
또한 아이를 유산한 뒤, 마취가 덜 깬 상태임에도 남편이 부부관계를 요구했고, 이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이혼을 당한 여성도 있었다.
김 위원은 이런 경우 공식적으로는 ‘성격 차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혼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이처럼 심각한 경우에는 더 이상 불행하게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혼을 해야 한다”며 “다만, 이혼을 생각할 때 ‘내가 정말 결혼생활과 인생에 충실했나’를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김 위원은 “이제는 남성들이 권위적인 자세를 낮추고 가족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남자가 변해야 남자가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김 위원은 특별한 이혼 사유를 제외하고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혼을 하고 나서 당사자들이 진짜 행복할까요? 이혼 후,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이유와 자녀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고, 80%가 이혼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게다가 재혼 실패율이 70~80%가 넘는 것을 보면, ‘이혼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죠. 즉, 그 여자가 그 여자고, 그 남자가 그 남자라는 거죠.”
이어 김 위원은 마지막으로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 부부들에게 “내가 그랬듯이(웃음), 차라리 지금의 배우자와 함께 결혼생활을 개선해서 사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며 “서로 한발씩 물러서서 양보하고 이해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지난해 말 새로 나온 책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의 서문에서 김 위원은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그 이야기를 다 못 해서 너무 안타깝다고 심경을 밝힌 바 있다. 이날 김 위원은 기자와 무려 3시간에 걸친 장시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도 버스에 오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다 못 해서 아쉽다”면서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말로 인터뷰를 갈음했다.
김영희 위원이 말하는 행복한 부부 결혼생활 7계명
“부부 위기는 소리 없이 찾아오는 ‘암’과 같다”
1. 혀끝을 조심하라
따뜻한 한 마디 말은 상대를 감동시키지만, 독한 말은 상대에게 큰 상처를 준다. 마음에 받은 상처는 평생을 간다는 것을 잊지 말고 독한 소리는 못 살고 헤어질 때 단 한 번만 하자.
2. 상대의 단점을 고치려 들지 마라
상대의 단점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점을 발견하지 못 하고 결혼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라.
3. 두 사람만의 대화 시간을 가져라
아파트 단지 내 산책로나 집 앞 카페에서 살림 이야기가 아닌 두 사람만의 사랑과 인생을 이야기하라.
4. 잔소리는 1분이면 족하다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잔소리만큼 끔찍한 고문은 없다. 상대가 잔소리라고 생각되지 않게 부드럽고 온화한 말씨로 하라. 그 효과는 훨씬 더 크다.
5. 자기 허물을 인정하고 사과하라
자기 잘못부터 먼저 인정하라. 잘못을 지적한 사람에게 화를 내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맞서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다.
6. 좋은 점을 찾아서 많이 칭찬하라
칭찬받는 것처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상대를 칭찬하면 칭찬받는 것보다 그 기쁨이 두 배가 된다. 칭찬에 인색한 사람은 고달픈 삶을 살게 된다.
7. 자존심을 지켜 스스로를 잘 대접하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존심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생각한다. 노력 없이 자존심은 절대 지켜지지 않는다.
건강한 이혼 준비를 위해 필요한 두 가지
1. 이혼을 하기 전 여윳돈을 준비해 둬라
남편이 재산을 빼돌려 위자료를 못 받거나, 아주 적은 금액의 위자료를 받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혼 여성들이 적지 않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이혼을 하려면 먼저 집을 ‘공동명의’로 해놓고, 배우자가 숨겨놓은 재산이 있는지 확인한다.
2. 남남이 되어서도 ‘증오’는 남기지 말자
헤어진 다음에도 서로를 증오하면, 자기만 더 불행해진다. 특히 이 경우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없는 아이들이 받게 될 상처는 상상 그 이상이다. 이혼한 후에는 상대방을 비난하지 말고 오히려 칭찬해줘라.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박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