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희망과 용기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유달리 부모님 얼굴이 아른거리고, 고향생각이 간절해지는 2월, 설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도 자식을 잃어버렸거나 어린 시절 부모님과 헤어진 사람이라면 매년 찾아오는 ‘이 놈의 설’이 반가울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도 희망이 보인다. 헤어진 가족 찾기에 발 벗고 나서는 마음 착한 경찰관, 이건수 경사가 있으니.
부모의 이혼으로 세 살 때 어머니를 잃은 김지빈(33·가명)씨가 30여 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와 만나는 시간. 약속 시간 훨씬 전에 도착한 그는 자리에 앉을 생각도 잊은 채 멀끄러미 창밖만을 내려다보고 있다. 중학교 때까지는 어머니 원망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가 행복하게 살고 계시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약속 시간을 30여 분 넘긴 시각, 드디어 모자(母子) 상봉이 이루어졌다. 서로를 보자마자 와락 껴안고 우는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울기만 했다. 어머니를 찾고픈 마음은 항상 있었지만 형편이 어려워 그럴 수 없었다는 아들. 죄인이기 때문에 자식 앞에 나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한평생 아들을 가슴에 묻고 지냈다는 한 많은 어머니. 이런 두 사람의 만남은 순전히 남양주경찰서 이건수 경사 덕분에 성사될 수 있었다.
잃어버린 가족 찾기 전문가
이건수 경사는 남양주경찰서 민원실의 ‘헤어진 가족 찾기’ 부서 전담자다. 경찰서 수사과에 근무하던 중 2002년 2월 14일 민원실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부터 이경수 경사의 ‘잃어버린 가족 찾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건수 경사는 지난 5년 동안 이산의 아픔을 가진 수많은 가족을 상봉시켰다. 숫자로 헤아리자면 무려 1백8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말 이런 그의 사연은 방송 전파를 타기도 했다. 그후로도 현재까지 30여건의 이산가족을 더 만나게 해주었다니 과히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엔 멋모르고 한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또 그렇게 하다 보니 더 많은 가족을 상봉시킬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경찰서에 사람을 찾는다는 신청서가 접수되면 대개는 관할 경찰서로, 거기서 또 관할 파출소로 신청서를 전달합니다. 이런 걸 소재수사라고 하죠. 하지만 저는 지난 5년 동안 소재수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신청인의 사연을 공감하지 못하면 끝까지 찾아줄 수 없다는 믿음 때문에 제가 직접 찾아나서는 겁니다.”
이건수 경사는 헤어진 가족을 찾을 때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고 말했다. 우선 신청 내용을 꼼꼼히 기록한다. 그후 찾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법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취한다. 이장, 지역연구가, 동사무소와 시청 직원, 지역 유지에게도 도움을 구한다. 그래도 결정적인 단서가 안 나올 경우에는 마지막 수단으로 편지를 띄운다. 찾고자 하는 사람과 이름이 같은 전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띄워 그 가운데 연락을 준 사람들 위주로 처음부터 다시 수사하는 것이다.
이건수 경사는 ‘헤어진 가족 찾기’에 관한한 베테랑 수사관이다. 찾는 사람이 사망을 했다거나, 만나기를 거부한 경우, 장기 실종자를 제외하고는 신청, 접수된 모든 건을 해결해냈다. 그 배경에는 이건수 경사의 사람을 대하는 예의 진실된 마음과 성실함이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외국과 비교하며 전문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특수한 상황입니다. 전쟁고아나 해외입양자가 좀 많아야죠. 가족과 헤어져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헤어진 가족 찾기 전문센터 건립’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센터를 만들어 단기처리반에서는 실종자를, 장기처리반에서는 고아나 해외입양자를 찾아주는 겁니다.”
이산가족의 한 풀어주고파
고아들의 사연을 접할 때 특히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놓는 이건수 경사. 자라는 동안 자신의 부모를 잊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지만 결국 부모를 찾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상황이 안타깝기 때문이란다.
잊혀지지 않는 상봉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건수 경사는 양녀로 들어간 누나와 고아원에 간 동생이 만나던 순간을 떠올렸다. 동생의 부인이 신청을 해 누나를 찾았으나 둘은 만나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동생은 ‘우리 누나가 아닐 것’이라고, 누나는 ‘내 동생이 아닐 것’이라며 서로를 부정했다.
“오랜 설득 끝에 마침내 누나와 동생이 상봉하던 날이었어요. 누나 분이 10년 전에 찾은 또 다른 동생과 많이 닮았다며 ‘너는 내 동생 맞다’고 말하더라고요. 어릴 적 사진을 보며 한참을 이야기하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헤어진 가족의 상봉을 주선하다 보면 간혹 재회시 침묵이 흐를 때도 있습니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수록 그런 경우가 많죠. 수년에서 수십년이란 세월의 장벽이 그들의 마음속에 또 다른 벽을 쌓은 탓일 거예요. 그런 모습을 볼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답니다.”
3년에 걸쳐 가족을 찾아준 일도 이건수 경사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여섯 살 때 다른 집에 양녀로 들어간 딸이 어머니를 찾는 사연이었다. 신청자가 기억하는 어머니 이름으로 전국을 샅샅이 훑었지만 그런 이름을 가진 이는 없었다 한다.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건수 경사는 신청자에게 “포기하는 게 낫지 않냐”고 말했다. 이에 신청자는 “내가 살아있는데 어떻게 포기하냐”고 되묻더라고.
그는 처음부터 다시 수사를 시작했다. 신청서를 접수한 지 3년, 오랜 기다림 끝에 신청자의 어머니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법. 재혼한 가족들이 자신의 과거를 모른다며 어머니가 딸 만나기를 한사코 거부했던 것이다. 이건수 경사는 ‘딸의 한을 풀어주자’고 어머니를 설득했고, 그의 진실된 마음에 감동받은 어머니는 결국 딸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헤어진 가족이 상봉한 후 그후로도 자주 연락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이건수 경사. 경찰관으로서의 보람도 그때 느낀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헤어진 가족 찾기’를 채무관계 해결 또는 사기수법으로 이용하려는 나쁜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았다. 이건수 경사는 그런 경우라면 수사 과정에서 모두 드러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수사 과정에서 만나서는 안 될 가족이라는 판단이 서면 상봉시키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포기는 없다’고 외치는 집념의 경찰관
남양주경찰서 민원실 이건수 경사의 책상 위에는 현재 70~80건의 신청서가 쌓여 있다. 지난해 말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한 후 한 달에 4~5건이던 신청서가 하루에 4~5건으로 늘어난 결과다. 게다가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주는 경찰관으로 소문이 나 남양주경찰서 관할이 아닌 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신청서를 놓고 가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이 정도면 급격히 늘어난 업무량에 불평할 만도 하지만 그는 오히려 고마워했다.
“텔레비전에 안 나갔으면 이렇게 많은 신청서를 받지 못했을 거예요. 저로서는 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됐으니 영광이죠. 사실 한때 이 일을 하며 ‘언론 덕을 볼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곧 부끄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깊이 반성하게 됐죠. 그 이후 개인적인 욕심은 전부 버렸습니다. 헤어진 가족들에게 상봉의 기쁨을 주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걸 얻은 사람이에요. 가족의 소중함, 우리 가정의 행복, 아내와 자녀들의 존경심까지…. 차고도 넘칠 정도입니다.”
말을 잇던 이건수 경사는 정말 부끄럽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부끄러운 고백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할 수 있는 그런 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헤어진 가족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일이 ‘평생의 꿈’이라면 그의 마지막 꿈은 인권변호사다.
“학창 시절 하도 못 먹어서 하늘이 항상 노랬어요. 말할 수 없이 가난하게 살았던 거죠. 상고 졸업 후 은행에 취직했으면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힘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 법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인권변호사가 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거든요.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경찰관이 되었지만 인권변호사의 꿈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환하게 밝은 정해년 새해에도 헤어진 가족을 찾는 일에 온 몸을 바칠 생각이라는 이건수 경사. 그의 건투가 계속되길 빌어본다. 이산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그의 가족 찾기는 계속되리라.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 헤어진 가족이 있거나 주변에 헤어진 가족의 사연을 알고 계시는 분이 있으면 남양주경찰서 민원실 이경수 경사에게 연락 바랍니다.
남양주경찰서 민원실 031-563-5304
남양주경찰서 자유게시판 http://nyj.ggpolice.go.kr
이건수 경사 이메일 keons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