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하지 않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이가 주는 선물, 축복이 아닐까요”
우리 연극무대를 대표하는 배우 박정자·손숙씨가 15년 만에 ‘신의 아그네스’로 다시 뭉쳐 화제를 낳고 있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는 1983년 국내 초연 후 25년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베스트셀러 명작. ‘신의 아그네스’는 어머니이자 딸, 그리고 아내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인생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신의 아그네스’ 간판 스타 박정자·손숙씨의 실제 여자로서의 인생은 어떨까. 카리스마 넘치는 두 배우를 ‘신의 아그네스’ 공연이 한창이던 서울 정동극장에서 만났다.
역시 ‘연극계 대모’ 타이틀은 괜히 붙여진 게 아닌가 보다. 배우 박정자는 공연 하루 전날 밤 최종 연습을 마치고 나서다 빙판길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진통제를 맞아가며 무대에 올라 박수 갈채를 받았다. 손숙은 지난해 10월 라디오 진행을 그만두면서까지 작품활동에 매달려 작품에 임하는 남다른 열정을 느끼게 했다.
‘신의 아그네스’는 젊은 수녀가 남몰래 낳은 아기를 탯줄로 목졸라 죽인 사건을 소재로 한다. 신에 대한 믿음과 기적의 의미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 박정자는 신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아그네스의 순수성을 지켜주려는 수녀원 원장 ‘미리암’을, 손숙은 사건의 전모를 밝히려는 이지적인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 박사’를 맡아 열연중이다. 윤석화, 신애라, 김혜수의 뒤를 잇는 아그네스 역에는 신예 탤런트 전예서가 캐스팅됐다.
15년 만에 같이 한 무대에 선 두 배우는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박정자는 예의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와 표정 연기로 무대를 압도했고, 손숙 역시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면서도 이성적인 존재감으로 무대를 장악해나갔다. 연기 고수 두 사람의 열연은 관객을 팽팽한 긴장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이런 두 사람과의 만남은 첫 공연 이튿날인 정동극장 내 카페에서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영원한 라이벌로 불꽃 튀는 연기 경쟁을 펼쳐보이던 두 사람. 그런데 무대 밖에선 “형님“ “아우” 하며 주거니 받거니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 어찌나 다정하든지 ‘친자매가 아닐까’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무대 위에서의 철철 넘치던 그 엄숙한 카리스마는 어디로 다 흘려보냈는지 말이다. 이런 두 배우에게서는 봄날의 꽃향기가 물씬 풍겼다.
# 박정자·손숙… 그리고 ‘신의 아그네스’
김승현(이하 김) 온 국민이 박 선생님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신문에서 보니 상당히 많이 다치신 것 같던데요.
박정자(이하 박) 나이 먹는 게 이런 건지. 총연습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바닥에 울퉁불퉁한 요철이 있었던가 봐요. 그런데 그걸 못 보고 그냥 넘어진 거죠. 그때 내가 다른 사람을 내 차에 태우려고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거든. 사고가 나던 순간 직감했어요. ‘아! 이거 대형사고구나’ 무엇보다 공연이 걱정이었죠. ‘아! 내일 공연할 수 있을까’ 그 생각 먼저 들었으니 말예요.
김 첫날은 굉장히 상태가 심하셨다고 들었어요. 대본을 들고 무대에 서야 했을 정도로 말이죠.
박 배우로서는 상당히 치명적인 상황이었는데 당시에는 정신이 혼미해서 어쩔 도리가 없었죠. 대사를 해야 하는데 정말이지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 거예요. 그런 저 때문에 손 선생님이 더 힘들었을 게야. 나야 정신이라도 없었지.
손숙(이하 손) 정신없는 건 순전히 진통제와 마취제 때문이었죠. 내가 살다 살다 박정자 선생님 그런 표정은 정말이지 처음 봤어요. 넋나간 표정이었어요.
박 그 당시 손 선생이 나 때문에 없는 대사까지 즉석에서 어찌나 잘 만들어내주시는지요. 손숙씨 보통 때 별명이 천재 소녀잖아요.
김 이상한데요. 저와 방송할 때는 전혀 아니시던데요. 방송국에서 탤런트 이승연씨를 보고 ‘저 친구가 심은하냐’ 하시고 말이죠(웃음).
손 나 인터뷰 안 해!
김 으이그~ 농담이에요 농담! 아시면서~.
김 모노드라마였다면 더욱 큰일이었겠어요.
손 저 혼자 내 대사에 박선생님 대사까지 도맡아 하며 연극이 1/3가량 진행됐을 때였죠. 사실 저 ‘이렇게 연극을 접어야 하나’ 생각했는데 바로 그때 선생님께서 다행히 손에 대본을 들고 나오시더군요. 그것이 바로 관록 아니겠어요? 커튼콜이 올라가고 제가 관객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죠. 그랬더니 관객들도 이해의 박수를 보내주시며 응원을 아끼지 않으시는데… 그날 저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박 감동스런 순간이긴 했으나 그런 감동은 두번 다시 없었으면…(웃음).
김 죄송스런 말씀인데 부상당한 사실이 대대적으로 기사화돼 공연 홍보는 확실하게 된 것 같아요. 1년 내내 연극 한 편을 안 보는 제 친구까지도 박 선생님을 걱정하던걸요.
박 그럼 전화위복인가… 하하하.
손 사고 당일 선생님 얼굴에 피가 얼마나 흥건했는지요. ‘거울을 못 보시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어떤 사람이 후에 ‘이 연극 대박나겠는 걸’ 하는 거예요. 피를 봤다구요.
김 아무튼 액땜하셨네요. 자주 박정자, 손숙 선생님을 뵙지만 두 분이 한 무대에 서는 것은 참 오랜만인 것 같아요. 1995년 한태숙 연출의 심리공포극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후로는 처음 인 듯한데요.
박 그 다음에 ‘세 자매’도 있었죠. 박정자, 손숙, 윤석화가 출연했던. 두 사람이 함께하는 공연은 언제나 그렇듯 기쁨이에요.
# 무대에선 라이벌, 무대 밖에선 절친한 자매
김 오랜만에 다시 만나 함께 공연하는 기분이 어떠세요? 감회가 남다를 듯한데요.
손 좋지 뭐~ 서로 너무 편하고. 그 사이 신뢰가 한층 더 두터워졌다는 걸 느껴요. 오랜만에 좋아하는 분과 함께하게 돼 나로서는 영광이 아닐 수 없어요.
박 15년이라는 세월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잖아요. 그 사이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이승을 떠났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다시 무대에서 만나니 감사할 따름이죠. 15년 만에 다시 함께하는 무대여서 각오도 새로워요. 15년 전 본 관객이 또 보러 올 수도 있잖아요? 세월만큼 관객도 성숙해졌을 거구, 우리도 인간적으로 그리고 배우로서 더 철이 들었을 테니 감회가 새롭죠.
김 두 분의 첫 만남을 기억하시는지요?
박 내가 손 선생님을 처음본 건 대학 시절 연극부 활동을 할 때였어요. 나는 이화여대 문리대 연극부였고, 손 선생님은 고려대 연극부에서 활동했는데 당시 고려대 연극부가 정말이지 쟁쟁했을 때예요. 그때 손숙씨가 출연했던 ‘삼각모자’를 참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어요.
손 66년 자유극장에 올려진 연극을 보며 박 선생님을 처음 뵀어요. 그때는 박 선생님 연세가 굉장히 많으신 줄 알았죠. 박 선생님은 노역부터 시작하셨잖아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나이들면서 배역이 더 젊어지고 있으니 신기하죠?
박 그건 내가 어려서 노역을 워낙 많이 한 것에 대한 보상이야. 노역을 숙명으로 받아들였지. 그때는 분장기술이 떨어질 때라 고생도 많이 했어요. 구두약으로 얼굴 주름 만들고 머리에 흰 페인트 칠하고 말야.
손 남자들은 구두약으로 수염 그리고 그거 지울 때면 석유로 닦아내고 그랬잖아요. 돌이켜보니 그런 시절이 다 있었네요.
김 보는 것과 말하고 친해진 것은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가까워지신 건가요?
김 두 분 만남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 같아요. 같은 일 하며 두 분처럼 상대를 배려하고 아끼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박 서로 도울 때는 돕지만, 우리는 사실 소리 없는 라이벌이에요.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긴장하죠.
손 첫날 공연은 정말이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막을 내리지 않을 수 있었어요. 굳이 내가 아니어도 상대가 어느 정도 해줄 거라는 믿음.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를 거예요.
김 ‘신의 아그네스’는 유명한 작품이긴 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두 분이 맡은 역할 설명을 다시 부탁드려도 될까요?
손 저는 정신과 의사죠. 아그네스의 정신 분석을 맡은 의사. 박 선생님은 원장수녀님이고. 아그네스를 구원하려는 마음은 같으나 두 사람은 방법이 달라요. 의사는 과학과 데이터에 의해서 현실적인 구원을 바라고, 원장수녀는 기적이라든가, 영적인 구원에 더 의지하죠. 그래서 두 사람은 부딪쳐요.
김 15년 전에 봤던 분들이 다시 보신다면 어떤 생각들을 할 것 같은지요?
손 첫째, “박정자, 손숙이 그때보다 더 잘하려나. 어디 두고 보자? 늙어서 또 해?” 할 것이고(웃음). 아그네스도 궁금해하겠지. 초연 때 윤석화가 맡아 사회면 톱기사로 ‘윤석화 신드롬’이 게재되는 등 대히트를 기록했잖아요. 또 다른 아그네스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할 것 같은데요.
박 전 이 작품을 딱 세 번만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 번 볼 때는 그냥, 두 번째 볼 때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서, 세 번째는 눈감고 대사만 들어도 좋을 겁니다.
손 ‘신의 아그네스’에는 정말 좋은 대사가 많아요. 어떻게 그런 대사를 다 썼을까.
김 한 번 했던 연극을 다시 하는 건 어떠세요? 어찌 보면 연기하기가 더 쉬웠을 듯도 한데 말이죠.
손·박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오히려 처음 하는 작품보다 더 어렵고 조심스럽죠. 한 번 했던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접근 방식도 한층 더 신중하게 되고.
박 15년 전 8개월을 했는데도 놓친 대사가 있더라구요. 대사만 외웠지 그 속에 담긴 속뜻을 간과하고 넘어간 게 많았던 거예요. 저 요즘 숨은그림찾기 하듯 그렇게 ‘신의 아그네스’와 만나고 있습니다.
손 저도 마찬가지예요. 무심코 흘렸던 대사들이 어느 순간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김 ‘신의 아그네스’는 초연 후 지금까지 무대에 올리기만 하면 관객이 절로 찾아드는, 한마디로 명품 공연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동안 신애라, 김혜수, 윤석화 등 수많은 스타를 배출해낸 아그네스 역은 누가 맡았나요?
손 MBC 공채 탤런트 출신 전예서씨가 맡았어요. 1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재원이죠.
김 ‘신의 아그네스’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세 사람인데, 연극계 대모 두 분 사이에서 전예서씨가 무척 긴장했겠어요.
손 굉장히.
박 아마 숨도 제대로 못 쉬었을걸요.
손 연습하면서 혼을 참 많이 냈는데 나중에는 알았겠지. 미워서 혼낸 게 아니라는 걸. 다 좋은 배우 되라고 그러는 건데 뭘.
김 후배들에게 엄하게 하는 편이신가 봐요.
손 우리 엄하게 안 해요.
손 어른이 둘이면 한 사람은 가만히 있어야지, 둘 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박 악역은 주로 내가 맡는 편이에요. 내가 한바탕 혼줄을 내고 나면 손 선생님이 어깨 다독이며 달래주는 역할을 해주죠.
손 작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내는 거지, 작품 벗어나면 박 선생님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니까. 나는 잔소리는 안 해도 좀 무심한 편이에요. 그런데 박 선생님은 그렇게 무섭게 혼을 내면서도 속으론 또 얼마나 자상하고 정이 많은지 몰라요.
김 맞아요. 박 선생님 자상하신 거야 저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나저나 요즘 우리 주부들 보면 애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막상 자신을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운치 있게 정동길 걷고 연극도 보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이번 작품 특히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지요.
손 대상을 한정짓기 힘들어요. 현대 사회를 살아가려면 반드시 봐둬야 하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요. ‘삶이란 무엇인가’를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되새겨보길 바랍니다.
박 영화도 물론 좋죠. 하지만 한 번쯤 제대로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예요. 가슴속에 무거운 쇳덩어리를 하나 앉힌 것처럼 말이죠. 이 겨울에, 좋잖아요? 노래방, 골프장만 가지 마시구요.
김 맞아요. 공연장, 박물관 찾는 사람들이 드문 것 같아요.
박 외국 공연장에 가보면 관객들 평균 연령이 50대예요. 그 나라 그 사회야말로 진정 성숙한 사회가 아닐까요?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이 표를 사려고 몇 시간 전부터 줄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 저런 사회가 될까 부럽기도 했어요.
손 서양에서는 연초에 1년 동안 볼 공연을 예약해요. 그리고 새 작품 기다리는 재미로 1년을 살죠. 화제가 되는 연극을 안 보면 대화에 낄 수 없을 정도예요. 우리도 무슨 옷을 입을까만 고민하지 말고 마음의 양식을 쌓는 일에 좀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어요.
박 나는 공연장에만 가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던데. 내가 하는 건 힘들어도 다른 사람들의 무대를 볼 때는, 특히 좋은 공연을 만났을 때의 그 기쁨은 이루 다 말로 설명이 안 되죠.
김 요즘 TV 드라마에서, 신인인데 연기를 꽤 잘한다 싶어 알아보면 죄다 연극배우 출신이더라구요.
손 연극은 기초예술이에요. 무대에서 잘하는 배우가 방송에 진출해서도 잘할 수밖에 없죠.
박 난 연극배우가 장르의 폭을 넓혀 드라마나 영화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더라구요. 설경구, 송강호, 최민식 등 요즘 영화판에서 잘나간다 싶은 배우들만 봐도 그래요. 죄다 연극배우 출신이잖아요.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도 연극배우들이 많이 나오는데 한번은 그게 너무 고마워 임권택 감독을 따로 만나 감사 인사를 전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역시 거장은 다르더군요. 임권택 감독은 되려 연극인들에게 감사를 표했어요. “연극에서 훈련받은 사람들 영화에서 고맙게 쓰게 해줘 감사하다”구요.
손 연극이 융성해야 영화도 번창할 수 있어요. 기초예술이 튼튼해야 문화가 바로 서지요.
# 여배우, 그리고 나이가 든다는 것!
김 한국 연극계의 대표 배우 두 분을 모시게 됐는데요. 혹시 여배우여서 힘든 점이 있었을까요?
박 전혀요. 나는 다시 태어나도 여자로, 배우로 살고 싶은데요. 남자 배우는 왠지 싫어.
손 나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데. 예쁜 여자도 꼬시고 말이지. 옛날에 용하다는 할머니가 있어 점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그 할머니가 그러는 거야. “껍데기만 여자구만! 완전 남자 팔자야” 그때 얼마나 웃었나 몰라요.
김 그렇담 나이 많은 여배우라 힘든 점은요?
박 나이 때문에 힘든 일보다는 좋은 점이 더 많죠. 전 제 나이, 제 삶에 감사해요. 지난 시간들도요. 무엇보다 철이 들었을 테니까요. 어설프지 않고 조금은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잖아요.
손 나이 들어 좋은 건 자꾸 버리는 연습을 하게 돼 홀가분해진 거예요. 다 버리고 가야죠.
김 두 분이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전성기는 언제인가요?
박 지금! 제 연극인생은 늘 현재 진행형이에요.
손 난 이제껏 전성기가 특별히 없었던 것 같은데.
김 그것도 “지금”이라는 박 선생님의 말씀과 동일하게 들리는데요? 연극은 언제까지 하실 건가요.
손 형님은 수차례 언론을 통해 밝혔듯이 연극 ‘19 그리고 80’을 80세가 되는 날까지 2년마다 하십니다. 박정자 선생님의 대표 공연이잖아요. 형님은 앞으로 일곱 번 더 하면 끝나네요. 그런데 나는 매일 지금이 은퇴야.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안 따라 주는 걸 어떻게. 힘에 부친다 싶을 때가 많죠.
박 말만 그렇게 하지 이 사람도 무대를 쉽게 떠나긴 힘들어. 매일 힘들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하면서도 계속하잖아? 오죽하면 이 사람 별명이 손깡일까.
김 제가 그건 또 잘 알죠.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10년 동안 같이 했는데 그 오랜 기간 동안 아파서 못 나오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손 나에게 주어진 일, 아파서 못하고 그럼 쓰나. 남이 보기엔 깡인데 그래도 나는 힘들어요.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박 그만두면 내가 가만둘 줄 알고? 멱살을 잡고서라도 끌고 나오지.
김 그런데 두 분 평상시 호칭은 어떻게 하시나요?
손 나는 형님!
박 난 그냥 손숙!
손 나는 형님이라 부르는 사람이 박 선생님밖에 없어요. 낯을 많이 가려 누군가와 친해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을 확 주지도 못하는 그런 성격이죠. 그런데 박 선생님께는 왠지 모르게 끌리더라구요. 15년 전 ‘신의 아그네스’ 함께 공연하며 박 선생님께 쪽지를 쓴 적이 있어요. 앞으로 형님이라 부르겠다고 말이죠.
박 그 쪽지 나도 기억하는데 받고서 얼마나 부담스럽든지. 날 형님이라고 부르면 내가 형님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얘긴데 그럴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말이죠.
김 이번 연극 출연을 결정하시며 ‘손숙이 한다니까, 형님이 한다니까’ 그런 게 있었는지요.
손 작품이 좋으니까 해볼까 하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래서 박정자 선생님이 원장수녀 역을 맡는다면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김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왔으니 배우로서 더 큰 바람이나 욕심은 없으실 듯한데요.
손 난 아직 많은데? 춘향이도 안 했고. 오필리어, 줄리엣도 못해봤는 걸요. 꼭 한 번 해보고야 말 거야.
박 손숙의 꿈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야. 소녀 같은 감성이 어찌나 풍부한지….
# 어머니, 딸, 아내… 여자라는 이름
김 이제는 배우로서가 아닌 여자로서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합니다. 배우 이전에 여자로서의 삶을 돌이켜보면 어떠신가요.
손 여자로서는 못 살았지. 그 점에 있어선 한이 많아요.
김 지금부터라도 다시 잘해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손 그게 어디 혼자서 한다고 되는 일이어야지. 이젠 포기했어요.
김 어머니로서는 어땠나요?
손 ‘신의 아그네스’ 원장수녀님이 극중에서 말하죠. 어머니로서는 빵점짜리라고. 나도 비슷해. 좋은 엄마도, 나쁜 엄마도 아니었어. 집에서 앞치마 두르고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간식은 못해줬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며 사는 모습은 보인 것 같아요. 부모가 최선을 다해서 살면, 긴 세월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자란 아이들도 크게 빗나가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실제로도 그랬고. 올곧게 자라준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죠.
박 딸 셋이 너무 예쁘게 잘 컸잖아. 자기는 그것만으로도 큰 복이야.
김 세 딸 다 출가시켜 현재 모두 호주서 살잖아요. 박 선생님은 자제분이 어떻게 되세요?
박 나는 아들 하나 딸 하나! 우리 아들 한 달 전에 장가보냈어요.
김 박 선생님은 어떤 어머니세요.
손 그건 내가 대신 말해줄 수 있어요. 얼마나 좋은 어머니인지. 아이들을 좀처럼 가둬 키우는 법이 없어요. 아주 멋진 어머니라 할 수 있죠.
김 무대 위에서의 모습을 늘 봐와서 아는데 무대 밖 생활은 또 어떠실지 궁금해요. 취미 생활이 있으신가요?
박 특별한 취미 생활은 없어요. 연극 관람, 여행 등 좋아하는 것은 많지만 시간이 없어 못하죠. 연극은 정말 많은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에요. 일주일 공연을 위해 한두 달을 꼬박 연습실에 박혀 살아야 하는 고된 작업이죠. 이 일 하다 보면 다른 곳에 눈 돌릴 여유가 없게 돼요.
손 박 선생님은 정말 공연을 많이 보세요. 영화도 많이 보시고. 얼마 전에는 결혼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며느리와 하루 종일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보셨대요. 좀 심했죠? 박 선생님이야 좋았겠지만 그 며느리는 얼마나 괴로웠겠냐구요. 신랑하고라면 모를까 시어머니와….
김 이제 곧 있으면 설인데요 이번 설, 어떻게 보내실 생각이신가요.
손 설에는 우리 연극도 끝나고 애들도 호주에 있으니 독거노인이죠 뭐. 가까운 사람들이랑 여행이나 다녀올까 해요.
박 설에 특별히 할 게 뭐 있나요. 잘 먹고, 푹 쉬어 체력 보충이나 해둘밖에요. 빨리 상처가 나아서 연극 준비도 해야 하고 마음이 바빠요. ‘19 그리고 80’을 2008년에는 뮤지컬로 올리려 해요.
김 제가 이 시리즈 맡기 전에 손숙 선생님이 레이디경향 연재 코너 ‘손숙이 만난 사람’을 진행하셨잖아요. 전관 예우하려니 참 어렵네요(웃음).
손 김승현씨는 첫달에는 김성수 성공회 주교, 둘째달에는 원성스님. 성직자와 스님만 만나다 민간인 만나니 느낌이 어때요? 새롭지 않나요? 이 시리즈 1년쯤 하고 나면 아마도 마음의 키가 훌쩍 큰 듯한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손숙이 만난 사람’ 통해 다양한 사람들 만나며 인생공부 참 많이 했죠.
김 이번이 세 번째지만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오늘 두 분 통해서도 많은 걸 배웠습니다. 저 또한 앞으로 1년 동안 어떤 분을 데이트에 초대할까 설렙니다. 이제 곧 설날인데 덕담 한마디씩 해주시죠.
박 밤길 조심하세요. 안 그랬다간 저처럼 됩니다. 어떤 일을 하건 서두르지 말고 항상 자신의 템포를 가지고 살아가시길 바라요. 너무 느리게도, 안그래도 빠른 세상 너무 앞서가지도 말고 말이죠. 조금은 호흡을 늦춰가며 사는 한 해가 됐으면 합니다.
손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라 말하고 싶어요. 가끔은 하늘도 보고 자라나는 나무 보살피며 그렇게 말이죠. 요즘은 세상이 너무도 각박하게만 돌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김 저도 오늘은 마무리용 한 말씀 남기겠습니다. 은행, 미장원 등 사람들이 기다리는 모든 곳에서 레이디경향을 만났으면 좋겠고,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저 김승현, 더욱 열심히 뛰겠습니다. 두 분도 즐거운 설 보내시고 늘 건강하세요.
1942년 인천 출생. 1962년 이화여대 신문학과 재학시 연극반에서 활동했고 극단 자유, 동아방송 성우 1기(1963)를 거쳐 40여 년간 무대를 지킨 카리스마의 대명사. 현재 한국영상자료원 이사,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이사, (재)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문화예술경영인이기도 하다.
대표작으로 연극 ‘피의 결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건넜다’ ‘신의 아그네스’ ‘햄릿’ ‘넌센스’ ‘19 그리고 80’ 외, 영화 ‘말미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만다라’ 외 다수. 백상예술대상(1970·72·86·87·90), 대종상 여우조연상(75·85), 동아연극상(75), 한국연극예술상(88), 서울연극제 최우수주연상(91), 이해랑연극상(96), 서울시문화상(98)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저서로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 「연극배우 박정자」 「얘들아, 무대에 서면 신이 난단다」 「朴正子」 등이 있다.
1944년 경북 밀양 출생. 고려대 사학과 재학 시절 연극을 시작해 1967년 동인극장에서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데뷔작 ‘상복을 입은 엘렉트라’를 시작으로 극단 산울림, 국립극단을 거쳐 대한민국 연극제 여우주연상(86),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91), 한국문인협회 선정 ‘가장 문학적인 상’ 연극영화 부문(96), 이해랑연극상(97), 문화훈장 대통령 표창과 올해의 배우상(98) 등을 수상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입지를 확고히 했다.
99년에는 환경부장관을 역임했고,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용사 후원회장,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호 영상관광산업협회 창립회장, 아름다운 가게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92년부터 약 10년간 MBC 라디오 ‘손숙, 김승현의 여성시대’를 진행했고 SBS 라디오 ‘손숙, 김승현의 편지쇼’를 통해 청취자들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 MBC 라디오 ‘여성시대’DJ로 두각을 나타내며 현재 SBS 러브 FM ‘손숙 김승현의 편지쇼’를 통해 여성 청취자들의 든든한 멘토 역할을 해오고 있다.
■글 / 최은영 기자 ■사진 / 민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