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3개월 차 사업가 겸 방송인 전철우·표진영 부부

신혼 3개월 차 사업가 겸 방송인 전철우·표진영 부부

“외로운 시절은 끝났습니다. 늦게 만난 인연 행복하게 잘 살아야죠”


새터민(북한 탈주민의 새 표현)이 남한 사회에서 순탄하게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문화적인 차이도 크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정든 고향과 가족을 떠나 겪는 근원적인 외로움이라고 한다. 조건 없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힘든 노릇. 그런 면에서 전철우 대표는 행복한 사람이다. 힘든 시기도 물론 많았지만 사랑스런 아내와 단란한 가족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봄날 오후에 마주한 부부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신혼 3개월 차 사업가 겸 방송인 전철우·표진영 부부

신혼 3개월 차 사업가 겸 방송인 전철우·표진영 부부

새터민 출신 사업가로 단란한 새 가정 이뤄
국내 새터민이 1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약 4천9백만 명이니 4천9백 명 중에 한 명은 새터민이라 봐도 무방하다는 얘긴데 아직도 우리가 체감하는 이미지는 낯설고 먼 ‘탈북자’에만 머물러 있는 듯하다. 수가 늘어나는 만큼 ‘귀순 용사’로 주목받던 초기의 열렬한 관심도 사라지고 각박한 세상에서 밥그릇 나눠 먹는 이들로만 치부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때문에 새터민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여러 차례 보도되기도 했다. 외식업체 (주)스페로스를 운영하는 전철우(40) 대표는 방송인으로 시작해서 대중에게 가장 친숙하고 또 성공한 새터민 출신이다.

그런 전 대표가 지난 1월 조용히 화촉을 밝힌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잔잔한 화제를 모았다. 신부는 한국무용을 전공한 표진영씨(32). 둘은 지인의 소개로 첫 만남을 가졌고 6개월여의 짧지만 뜨거운 연애를 거쳐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고 한다.

결혼식은 지난 1월 9일 서울 이태원동 캐피탈 호텔에서 가족들과 절친한 지인들만 모시고 간소하게 치렀다. 신랑·신부가 직접 쓴 서약서를 서로 읽고, 가족들이 혼인 서약을 읽어주는 것으로 주례 없이 파티 형식으로 진행됐다고. 개그맨 이재성이 사회를, 절친한 가수 김범룡과 진시몬이 축가를 맡아 이 부부의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서울 용산의 한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리고 이제 결혼 3개월째에 접어든 부부는 사업 때문에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 대표는 “결혼을 계기로 정말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됐지요. 진영이는 제가 하는 일을 많이 이해해주고 잦은 출장과 불규칙한 일정에도 불평하지 않고 내조해주는 최고의 신부”라며 평소엔 잘 하지 않는다는 칭찬을 겸연쩍게 털어놓았다.

진영씨 또한 칭찬에는 지지 않는다. “저희 오빤(아직은 오빠라고 부른다) 끼도 많고 유쾌해요. 감정 표현에는 좀 서툰 편이지만 솔직한 면이 많아요. 착하고 성실해서 가족들에게도 잘해요. 인연을 너무 늦게 만났지요.”

알려진 것처럼 전 대표는 이번이 두 번째 결혼이다. 새터민 출신이라는 남다른 이력도 결혼에는 방해 요소로 작용했을 터. 주변의 지나친 걱정과 관심이 오히려 부담스러웠다는 두 사람은 주변 상황이 아닌, 사람만 보고 결혼했다고 입을 모은다.

“처음엔 물론 조심스러웠죠. 소개를 받았지만 선뜻 편하게 만나기가 어려웠어요. 하지만 막상 사람을 만나니 주변 상황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부모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꼬치꼬치 캐묻기도 하고 취조도 많이 당했어요. 그렇지만 진심은 통한다고, 나중엔 도리어 지인들이 오빠를 많이 좋아해주시던데요.”

“참 괜찮은 여자예요. 외로움을 가장 견디기 힘들었는데, 이제 외롭지는 않을 거 같아요”라는 전 대표에게서 행복이 묻어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겉보기보다 심지가 굳은 신부 진영씨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가 딸 둘 중에 막내인데요. 결혼 전에 ‘좋니’ 딱 한 번 물어보시더니 금세 허락하셨어요. 지금은 어머니가 오빠를 많이 예뻐하세요.”

망명에서 성공과 실패를 오간 남다른 인생 역정
사실 전 대표의 삶은 누구보다 드라마틱했다. 길지 않은 시간에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맛보면서 호된 경험을 겪은 그이기에 어쩌면 오늘의 행복이 더 크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전 대표는 북한에서 잘나가는 엘리트였다. 후일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 ‘평양 놀새’(오렌지족이란 뜻)란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군 장성인 아버지와 대학교수였던 어머니 덕에 북한의 명문대를 나온 그는 국비유학생으로 동독 드레스덴 대학으로 유학까지 갔지만 구동독의 실상을 보고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틈을 타 극적으로 망명에 성공했다.

이후 1994년 MBC에서 개그맨으로 데뷔, 북한 사투리 개그로 인기를 모으며 방송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사업을 시작해 ‘전철우의 고향랭면’이란 상표를 내 전국적으로 점포를 늘려갔다. 큰 성공을 거두는 듯했지만 재산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첫 도전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사업의 실패보다 더 큰 고난은 방송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정사 문제였을 터. 그는 사랑하던 이와 2000년 결혼했다가 4년 만에 이혼했는데, 이를 모 TV방송에서 다루면서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당시 PD는 “드라마 내용은 새터민 몇 명의 사례를 수집해 각색한 것으로 실화가 아니다”라며 부인했지만 네티즌의 입방아에 오르면서 주변 사람들까지 합세해 너무 많은 이야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인터넷을 달군 소문과 진실, 욕설과 비판 속에서도 전 대표는 말을 아끼고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이혼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그 때문에 너무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단순한 가십 때문에 상처를 받는 이들이 이리도 많은데, 아무래도 방송이나 언론은 실패담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신혼 3개월 차 사업가 겸 방송인 전철우·표진영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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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이지만 성공해서 잘 사는 사례도 많아요. 한의사 석영환씨의 경우도 그렇고요. 자격증도 다시 따고 열심히 해서 진료를 잘한다고 입소문이 났어요. 이젠 환자들이 줄을 선다고 하더군요.”

그도 물론 주변의 차별과 차가운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양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던 시절, 친구가 소개팅을 주선했지만 결국 만나지 못한 경험도 있다. 그는 북한 출신이라서 무섭다는 반응을 접하면서 ‘잘 살아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잘 사는 모습을 보인다면 무섭다거나 거부감이 든다거나 하는 말은 듣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전 대표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자세와 자신감, 성실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북 출신의 망명가들을 중심으로 새터민 후원 모임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그런 모임보다는 개인적인 후원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희 직원 중에도 이북 출신들이 있고요. 잘 챙겨주고 싶지만 더러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참 안타까워요.”

국밥과 정육사업으로 재기 성공, 밤낮없이 일 생각만
여러 난관을 겪으면서 전 대표는 단단해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젊은 시절의 치기와 열정, 장난기 대신에 이제는 세월이 주는 안정과 성숙이 자리한 듯하다.

“어렸을 땐 장난기도 많고, 밝은 성격이었어요. 하지만 공부할 때는 치열했어요. 머리도 중요하지만 뭘 하든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평소에도 외곬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살다 보니 남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이 성숙하는 계기가 돼요. 뜻대로 잘 안 되더라도 속상해 하지 않고 빨리 받아들이는 편이죠.”

사실 전 대표 자신도 외로움을 많이 타고 주변에서 위안을 많이 얻기 때문에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에는 이민자들이 훨씬 많잖아요. 혼자 넘어가서도 잘들 사는데 난 그나마 말도 통하고 나은 편 아닌가. 이렇게 위안 삼으면서 힘을 냈죠.”

전 대표는 심기일전해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면서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2005년 ‘전철우의 고향마을’을 창업하고 현재 (주)스페로스 대표로 재직 중이며 ‘제주청정정육마을’이란 새 브랜드를 개발해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전철우의 고향마을’은 2천9백원짜리 국밥으로 유명세를 타며 패스트푸드형 한식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지속적 연구개발로 다양한 메뉴와 저렴한 가격을 갖추고 있어 현재 50여 개 체인이 성업 중이다. 홈쇼핑에도 직접 출연해 ‘전철우 고향랭면’을 꾸준히 판매하고 있다고 하니 어찌 안 바쁠 수가 있을까.

명함에 새겨진 전 대표의 직함은 ‘대표 일꾼’이란 우리말이다. 으뜸으로 일도 열심히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말이다. 그래서 아직 신혼의 단깨가 쏟아지는 시절인데도 진영씨는 신랑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오빠가 평일엔 늦게 들어오니 주말에만 제대로 볼 수 있어요. 바쁜 게 좋은 소식이려니 하지요. 그래도 주말엔 전화조차 받지 않고 꼭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요.”

전 대표가 일을 열심히 하는데 집에서는 다정한 남편인지 궁금했다. 음식은 누가 더 잘하는지 물어봤더니, 진영씨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요리학원에 열심히 다니고 있다”고 고백한다. 남편이 요식업에 종사하다 보니 입이 너무 까다로워서 힘들다고 한다. 일종의 직업병이라서 어디 가서 무얼 먹어도 며칠이나 된 식재료인지, 뭐가 부족한지 무의식적으로 말하니 난처할 때가 있다고.

“솔직히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몇 시간 동안 열심히 요리했는데 맛만 보고 숟가락 탁 내려놓으면서 ‘이 재료 가지고 맛을 못 내면 안 되지’ 그런다니까요. 집에서도 사장님 같아요(웃음).”

“주중엔 일 때문에 계속 먹으러 다니기 때문에 주말은 집에서 만든 음식이 먹고 싶어요. 점심만 네 끼 먹을 때도 있으니까요. 새로운 고기 메뉴 개발하느라 계속 먹고, 주말에 양념도 바꿔가며 재어도 보고 정신없지요. 연구개발이야 직원들과 같이 하지만 현장에서 먹힐지 궁금해서 실험 삼아 해보는 거예요. 진영이가 같이 먹어주면 맛도 있고 더 재밌거든요.”

말로는 주말엔 일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역시 집에서도 사장님 본성을 버리지 못하는 전 대표나 그런 남편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진영씨나 서로 아끼고 이해하는 건 매한가지인 듯하다. 진영씨는 처음엔 서운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지만 이제는 일에 대한 열정도 차츰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노력파인 전 대표는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는 거죠. 요식업도 파고드니까 재미있어요. 일이 워낙 바쁘니 바람 피울 사이도 없어서 좋다”며 웃는다.

그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다 경험해봐서인지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자본주의는 가능성이 많이 열려 있는 사회지만 모든 이를 상대로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이 큰 것이 당연하다고.

“가족 같은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니까 저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죠. 마음이 무거워요. 자녀들 뒷바라지하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걱정도 되고요.”

신혼 3개월 차 사업가 겸 방송인 전철우·표진영 부부

신혼 3개월 차 사업가 겸 방송인 전철우·표진영 부부

마음 약하고 정 많은 전 대표지만 음식 장사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부분에 대해선 경험에서 우러나는 냉정한 조언을 들려준다. 향후 책으로 내고 싶은 계획도 있단다.

“계속 돌아다녀야 해요. 발품 파는 만큼 절약이 많이 되거든요. 움직이지 않으면서 스스로 세뇌해서 좋아 보이고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은 당장 버려야 합니다. ‘잘되겠지’ 이런 게 제일 위험한 생각이에요. 저도 처음엔 그랬지만요. 그리고 음식은 그 자리에서 평가받는 즉석 서비스입니다. 그래서 힘들어요.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한번 틀어지면 다시 발길을 하지 않는 게 음식점이니까요. 반품이 불가능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죠.”

후회 없는 삶과 아이 낳는 것이 목표
전 대표를 지치지 않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굳이 찾자면 틈틈이 해온 독서와 소중한 가족의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푸껫으로 신혼여행 갔을 때도 책을 싸들고 가서 봤을까.

“푸껫에서도 관광하는 틈틈이 책을 봤어요. 일할 때는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쉴 때 봐야 해요. 신문 주말판의 책 소개는 빼먹지 않고 봐요. 책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아요. 책을 통해 얻는 게 많거든요.”

신혼여행을 가서 책 읽는 전 대표가 기가 막혔던 진영씨도 이제는 같이 책을 읽는다. 그리고 2006년에 남쪽으로 내려온 누나와 매형의 존재도 큰 힘이 된다. 북에 계신 부모님의 생사는 알 수 없지만 누나가 그 빈자리를 대신 채워주니 한결 마음이 안정된다고.

“제게 ‘사랑한다’고 말하실 땐 누님이 정말 어머니 같으세요. 이북의 어머님께서 그러셨대요. 여자하고 고양이는 쓰다듬어줄수록 좋다고. 그런 말 들으면 정말 공감이 가고 현명한 분이셨던 거 같아요.”

진영씨는 아이를 낳는 것이 가장 큰 목표란다. 가족계획은 세웠는지 물어봤더니 두 사람의 대답이 엇갈린다. 어찌 됐거나 가능한 한 많이 낳고 싶다는 전 대표와, 2∼3명이면 충분하다는 진영씨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중이다.

“머리는 아빠를 닮고, 키는 엄마를 닮아야 하는데(웃음). 이왕 하는 거 내조를 잘하고 싶어요. 오빠를 두 번째 만났을 때부터 연애 감정보다는 내가 옆에 있어줘야겠다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일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시지만 건강 해치지 않게 좋은 것 잘 챙겨서 주고 있어요. 아빠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니까요.”

전 대표도 진영씨의 이런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맙고 밖에서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마음 한구석이 든든하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던 이북 사나이도 사랑 앞에서는 변하는가 보다. 처음에는 애정 표현도 잘 안 하고, 전화해도 바쁘다며 뚝 끊던 사람이 이제는 알아서 전화도 하고 많이 변했다고 한다.

“먼저 속마음을 말하지 않았죠. 처음엔 그게 섭섭했는데 이젠 듬직하고 믿음이 가요. 안 하던 전화도 하고 이제는 오빠에게 제 자리가 좀 생기는 것 같아요. 순간순간 그런 게 느껴져요. 회식 자리에서 시끄러운데도 전화해주고요. 옆에서 막 노랫소리도 나고 그래요(웃음). 그러면 오히려 제가 고맙죠.”

같이 살아간다는 게 서로 양보하고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라는 게 실감나는 대목이다. 행복한 가정이란 목표를 이룬 전 대표에게 남은 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목표를 높이 설정하는 건 힘들 거 같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지요. 후회하지 않는 일을 하자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저희 프랜차이즈 체인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제 몫은 아니지만 매출이 오르면 기분 되게 좋습니다. 저뿐 아니라 직원들도 마찬가지고요.”

방송 활동도 예전만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영화 ‘교도소 월드컵’에 우정출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살려 ‘남남북녀’ 시나리오를 감수하기도 했다. 사업이 만만치가 않아서 두 개를 다 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사업이 자리 잡아가는 단계라서 아직은 일이 우선이지만,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그를 다시 보더라도 놀랄 일은 아닐 것 같다.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뭔가는 이룬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전 대표와 진영씨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기를, 외로운 새터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모델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글 / 위성은(자유기고가) 사진 / 이주석 장소 협찬 / 어반가든(02-777-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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