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부부의 사랑법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부부의 사랑법

아내의 기도, 남편의 들어주기가 우리 부부의 사랑의 힘


“불과 10년 전만 해도 국민들이 자유롭게 금강산 관광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까? 또 서울에서 개성공단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누가 그렸겠습니까? 꿈을 갖고 상상을 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면 꿈이 현실이 됩니다. 좁은 국토이지만 통일이 되면 엄청난 역량을 갖게 되고 세계가 주목하는 강대국이 될 겁니다. 상상해보세요. 개성에서 파리행 열차를 타고 유라시아 철도를 따라 파리에 도착하는 모습을….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부부의 사랑법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부부의 사랑법

유난히 늦게까지 노란 개나리가 피어 있는 민통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철책을 따라 걸어오던 남자를 보고 반가움에 눈물을 글썽이며 달려가는 여자…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한 이들은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과 부인 민혜경씨다.

4월 9일부터 13일까지 5일간의 ‘평화대장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정 전 의장은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 나온 아내를 꼭 껴안았다. 하도 다정하고 반가워해서 마치 수십 년 만에 상봉한 부부 같기도 하고, 반나절만 떨어져도 마냥 그리운 신혼부부 같기도 하다.

숙명여대 음대에 다니던 민혜경양에게 반해 매일 기숙사에 가서 구애를 해도 반응이 없자 이름을 부르며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질러 모든 기숙사 여학생들을 놀라게 했던 서울대 복학생 정동영. 그때 화가 나서 나온 혜경양에게 막 따온 개나리 꽃묶음을 내밀어 마음을 사로잡았던 ‘개나리 아저씨’ 정동영 학생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이자 대권후보로 변신했다.

하지만 만난 지 30년, 그리고 결혼한 지 26년째인데도 이들 부부는 여전히 눈동자에 씌워진 껍질이 벗겨지지 않았다. 현재 군에 복무 중인 두 아들 역시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수십만 유권자를 달콤한 공약으로 사로잡기는 쉬운 일이지만, 가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정치 생활을 하며 이렇게 부부나 가족 사랑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볼 것, 못 볼 것 다 보여주며 30여 년을 살아온 아내에게 아직도 사랑을 받는 비결이 뭔지 궁금했다. ‘집에서 안 쓰는 중고품을 자선바자에 내놓으라’는 안내문을 볼 때마다 남편을 내놓고(?) 싶은 욕구를 꾹꾹 참고 있는 중년 아주머니들을 위해 항상 남편에게 반할 수 있는 묘약은 뭔지도 알아보고 싶었다.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할 거예요
“집에서나, 차 안에서 혼자 있을 때 남편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러다 남편도 날 생각하면서 기분이 좋아질까 하는 의문이 들면 더 잘해줘야겠다는 각오를 다지죠.”

새댁처럼 볼을 발그랗게 물들이며 말하는 정동영 전 의장의 부인 민혜경씨. 50이 넘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젊어 보이고 비결이 궁금할 만큼 뽀얗게 빛나는 피부를 유지하는 외모는 그저 남편 사랑에 흠뻑 취해 사는 행복한 아내로만 보인다.

하지만 민혜경씨는 20여 년간 엄격하고 깐깐한 시어머니 수발은 물론 세 명의 시동생까지 거둬 결혼시킨 ‘파란만장한’ 인고의 세월을 겪었다.

지금이야 최다득표에 빛나는 국회의원, 통일부장관에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두 번이나 역임한 거물정치인, 게다가 ‘귀공자풍의 미남’이란 찬사도 듣지만 청년시절의 정 의장은 홀어머니에 장남, 줄줄이 달린 어린 동생들, 키도 작고 기자란 고달픈 직업이라 교육자인 친정아버지는 금지옥엽 곱게 키워 피아노를 전공시킨 딸을 선뜻 주려 하지 않았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부부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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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헤어져 있다가 정 의장이 직장에 사표까지 쓰고 전주에 내려가 설악산 납치소동(그저 소동일 뿐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친정부모를 설득해 결혼을 했지만 막상 결혼하고 나니 시집살이가 시작됐다. 특히 시어머니는 장남인 정동영 전 의장을 단순한 아들이 아니라 연인이자 희망으로 알아 유난히 아들사랑이 각별했다.

“아휴, 두 모자 사이엔 제가 끼어들 틈이 없었어요. 아프다고 짜증을 부리시다가도 아들이 돌아오면 반가워 어쩔 줄 몰라하시고, 어리광도 부리시고, 그저 바라보기도 아깝다는 표정이셨거든요. 퇴근해서 돌아오면 일단 어머니 방에 들러 팔도 주물러드리고, 다친 손가락에 반창고도 붙여드리고, 이불 덮어드린 후에 두 아들 방에 가서 이야기 나누고 제일 마지막에 제가 있는 안방으로 왔어요.”

‘꼴찌’로 찾아왔지만 섭섭하지는 않았단다. 안방에서는 아내를 여왕 대접했고 자분자분 전하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었고 다정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고개 끄덕이며 정겨운 눈빛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독여주는 남편 손길에 시집살이의 고달픔도 시동생들과 두 아들 뒷바라지하느라 피곤하고 서운한 마음도 눈 녹듯 사라졌다.

“가끔 저와 세대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시어머니에 대한 불평을 하면 남편은 ‘당신이 참아’라거나 ‘도대체 왜 그래’라고 하지 않고 ‘난 그래도 우리 어머니를 이해해’라고 말하며 제게도 이해해달라고 했어요. 집안일은 물론 정치생활을 하면서도 그 어떤 상황이나 갈등에도 단 한 번도 흐트러지거나 평정을 잃는 모습을 못 봤어요. 다시 태어나도 이 남자랑 살고 싶어요.”


아내의 새벽기도가 남편을 지켜주는 힘
-어여쁜 아이여! 신이 내게 내린 최대의 선물이며 내 그대에게 줄 최선의 선물이니 그것은 사랑일 뿐. 우리의 믿음이 변치 않고 우리의 삶이 참되기 위하여 아름다움을 닦고 착함을 배우자. 나의 여인이여! 나의 마돈나여!
그대를 얻음에 내 인생에 푸른 길이 열리고 의지가 굳으며 성공의 신념이 예감처럼 휩싸여온다. 그대여 우리 사랑의 화원을 정성스런 손길로 가꾸어가자-

1978년, 처음 만난 지 1년 후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던 정동영 학생이 쓴 일기의 한 구절이다. 동그란 얼굴에 자그마한 체구의 민혜경씨를 ‘작은 아이’란 애칭으로 부르던 정동영 의장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내를 보는 눈빛이 여전히 애틋하다.

교장선생님의 외동딸로 곱게 자란 해맑은 소녀. 당시 일등 신랑감이던 의사들이 줄을 섰는데도 순진하게 사랑에 눈멀어 가난한 기자, 홀어머니 장남에게 덜컥 시집온 아내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세 명의 시동생을 교육시키고 장가까지 보냈으면서도 생색이나 투정을 내지 않음에 정 의장은 감사한다.

“아내가 정말 고맙죠. 시집살이며 정치생활 내조해준 것, 두 아들 잘 키워준 것이 너무 감사하죠. 밖에서 아무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지쳐 돌아와도 가정에선 다 잊고 평화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내란 울타리 덕분입니다. 특히 제가 정치를 시작하고부터 아내는 매일 새벽기도를 다닙니다. 어느 때 눈을 뜨면 아내가 새벽기도 다녀와 다시 내 머리맡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뭉클하죠. 아내 덕분에 ‘하나님’이란 큰 ‘빽’을 얻었으니 그것도 고맙고….”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아이구, 우리 남편도 나이들었나 봐요. 고맙다는 말도 하고…’라 하면서도 마냥 흐뭇한 표정이다. 그러면서 다시 은근히 남편 자랑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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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정치인 부인들에 비해서 저는 내조를 잘 못해요. 원래 나서는 성격도 아니고요. 남편도 제게 강요하지 않아요. 다만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남자로서 남편을 신뢰하니까 굳이 제가 내조를 하지 않아도 정치를 잘할 것으로 믿어요. 남편은 한 번도 먼저 화를 낸 적이 없어요. 제가 좀 속 긁는 소리를 하면 웃으면서 ‘나 화난다’라고 해요. 화날 때 웃으니 더 무섭죠. 또 단 한 번도 ‘그건 안 돼’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무슨 말을 해도 제 의견을 다 들어주고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라고 해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꼭 남편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더라고요.”


믿음은 꿈을 현실로 만든다
일요일 오후, 정동영 전 의장 집에서 인터뷰를 할 때 군복무 중 휴가를 나온 장남 욱진군이 외출했다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서 아버지의 구두를 발견한 욱진군은 ‘아~버~지’라며 마냥 정겹고 사랑 어린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스물네 살 청년이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는 드문 일. 그 아버지 역시 아들에게 다가가 ‘사랑하는 아들~’하며 포옹을 했다. 지켜보던 민혜경씨가 투정 아닌 투정을 했다.

“저렇게 아버지가 자상하니 엄마인 제가 악역을 할 수밖에 없다니까요. 우리 두 아들은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래요. 기자생활 때부터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없으니 함께 있을 때는 항상 껴안아주고 쓰다듬고 스킨십을 자주 해요. 뭐든 아이들 의사를 존중해주고 자유방임으로 키웠어요. 또 저한테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하는데 아들에게는 늘 ‘사랑하는 아들’ ‘난 널 믿는다’ ‘네가 내 아들인 게 자랑스럽다’란 말을 해요. 이 세 마디로 최고의 아버지 대접을 받는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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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스탠퍼드 대학에 재학 중, 군대에 입대한 욱진군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큰 만큼 미안함도 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한 번도 혼난 기억이 없어요. 제 의견을 존중해주셨으니까요. 아버지가 MBC LA 특파원 시절에 제가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거든요. 귀국해서도 미국에서 더 공부하고 싶어서 유학을 가고 싶다고 졸랐어요. 저 혼자 학교 알아보고 지원서도 보냈지만 정치인의 아들이 고교시절에 조기유학을 가는 게 그렇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죠. 또 어린 마음에 제가 원하는 인생을 사는 것, 내가 좋은 게 아버지께도 좋은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머니는 돈도 없다, 안 된다고 펄쩍 뛰셨지만 아버지는 제 의견을 존중해주셨어요. 나중에야 저 때문에 ‘정동영 아들, 호화 미국유학’이란 기사나 가십이 나도는 걸 알고 혼자 샤워기 틀어놓고 울었죠. 제 동생(현중, 연세대 재학 중 현재 군 복무 중)이 더 똑똑한데 나 때문에 유학기회를 놓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장학생으로 공부하다 귀국, 군인생활을 하는 욱진군은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묵묵히,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아버지를 보면 나도 저 나이에 저런 거센 바람이 불어도 의연하게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아버지처럼 나이 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가장 인기 있고 실력 있던 방송 앵커 생활을 접고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 정동영 전 의장이 가족을 무조건 신뢰하듯 가족들도 아버지나 남편을 믿었다. 그리고 전국 최다득표의 영광을 얻으며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민주당 경선대회에 나가서 꼴찌를 했을 때는 억장이 무너지기도 했단다. 국민들에게는 끝까지 완주하며 페어플레이의 진수를 보여줘 근사해 보였는데 말이다.

“고지를 눈앞에 두고 후보를 만들었으니 다 같이 축하해주자고 말하던 남편의 모습이 멋지긴 했어요. 하지만 대전에서였나, 꼴찌를 하던 날 아들과 함께 지켜봤는데 아들은 ‘엄마 마음은 어떨까’를 생각하고 저는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라며 아무 말도 못했죠. 그래도 남편이 경선 주창자로 정권 재창출을 한 주역이란 자부심을 느껴요.”

5년 전, 민주당 대권주자 후보로 최초의 국민 경선 드라마를 연출했던 정동영 전 의장은 5년 사이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두 번이나 당의장을 역임했고, 통일부장관을 맡아 대북 포용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리고 분열된 열린우리당에 아직까지(2007년 4월 말) 남아 여권의 대권주자로 또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이다. 물론 상황은 암담하기만 하다.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워낙 낮고 탈당의원들을 중심으로 범여권 구도가 재편 중인 데다 ‘통합 후보’ ‘제3세력’등의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5년 전 국민경선이란 새 역사를 만들었던 정 전 의장은 여전히 자신감에 넘친다.

“제가 대통령이 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어떤 대통령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하죠. 그래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에게 함께 동참하자고 제안한 겁니다. 판단과 심판은 국민이 하는 것이지만 함께 국민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자는 거죠.”

요즘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수시로 대화를 나누는 ‘플레이톡’에 심취한(?) 정 전 의장은 평화대장정에서 느낀 이야기, 플레이톡의 친구로 인연을 맺은 소설가 이외수씨가 강원도 화천군 깊은 산골에 문하생들과 함께 하나의 조그마한 문학공동체를 꾸린 감성마을 바운기 등을 남겨 신세대들과의 교감을 나누고 있다. 또 통일부장관 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개성에서 파리행 기차를 타다」란 책을 써서 곧 출간할 예정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국민들이 자유롭게 금강산 관광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까? 또 서울에서 개성공단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누가 그렸겠습니까? 꿈을 갖고 상상을 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면 꿈이 현실이 됩니다. 좁은 국토이지만 통일이 되면 엄청난 역량을 갖게 되고 세계가 주목하는 강대국이 될 겁니다. 상상해보세요. 개성에서 파리행 열차를 타고 유라시아 철도를 따라 파리에 도착하는 모습을….

그러기 위해선 전쟁을 막고 안전하게 사는 평화가 중요하죠. 제가 늘 평화는 돈이라고 주장합니다만 평화는 환경이기도 합니다. 민통선 길을 걸으면서 양 옆으로 보이던 아름다운 산과 개천, 그리고 나무들은 민통선 밖 평화로운 곳의 모습하고 차이가 없었습니다. 을지전망대에 올라가서 넓은 들에 군데군데 펼쳐져 있는 철조망과 초소들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라는 생각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이러한 이념에 따른 분단과 그 유산인 철조망을 보면서 후손들은 얼마나 우리를 어리석게 비웃겠습니까? 후손들은 이 모습을 ‘선조들의 어리석음의 상징’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조망을 한시라도 빨리 걷어내는 건 우리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일입니다.”

평화에 대해 강조하는 정동영 전 의장 곁에서 가족들은 신뢰에 찬 눈빛을 보냈다. 가족 사랑과 서로의 믿음을 모두에게 나눠주질 기대하면서.


글 / 유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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