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도 보이지 않는 제 삶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용기를 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합창지휘과에 수석 입학한 시각장애인 이소영씨가 자전 에세이 「그래요, 눈이 없는데 귀가 있더라고요」를 펴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의 빛을 보는 눈 대신 귀를 선물받은 절대음감의 소유자 이소영씨.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일어선 이소영씨와의 인터뷰를 1인칭 시점으로 옮겼다.
나 이소영(25)은 피아니스트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에 재학 중이다. 나는 선천성백내장, 소안구증, 사시를 가지고 태어났다. 생후 6개월부터 세 살까지 나는 세 번의 전신마취 눈 수술을 받았다. 아홉 살 때 마지막 네 번째 수술을 받은 이후 가까이 있는 사물만 구분할 수 있게 됐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세상의 빛을 보는 눈 대신 작은 소리까지도 구분할 수 있는 귀를 선물했다.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소리에 민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 피아노를 배웠고 4학년 때는 작곡을 시작했다. 그리고 예술성을 인정받아 인천예고 음악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외환위기를 겪으며 엄마가 하시던 사업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우리 가족은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게 됐다. 엄마는 신용불량자가 됐고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던 언니의 월급봉투까지 차압당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함께 죽기 위해 살충제 뚜껑을 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엄마, 안 죽으면 안 돼?”라고 말하자 엄마는 살충제를 내동댕이쳤다. 그날 우리는 하염없이 울었다.
마음으로 쓴 자전 에세이
죽음 직전까지 내몰렸던 우리 가족은 다시 한번 살아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이를 악물었다. 결국 나는 지난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합창지휘과 수석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내가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극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수석 입학하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주목했다.
얼마 후, 출판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처음 그 제안을 들었을 때 기가 막혔다. 앞도 보이지 않는 내가 글을 써 책을 만들다니. 하지만 내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용기를 내기로 했다.
엄마의 도움을 받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시작했던 작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다행히도 출판사의 도움으로 타이핑은 다른 사람이 대신하고 나와 엄마는 구술로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제 내 이름이 박힌 책이 출간됐다. 남들은 책 한 권을 쓰는 데 몇 년씩 걸리지만 나는 2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나로서는 2년만큼이나 긴 시간이었다.
언제나 지금처럼만 행복하길
엄마는 나에게 꼼꼼하다 못해 융통성이 없다는 얘기를 자주 하신다. 때문에 티격태격 서로 다투는 일도 많다. 사람들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친구 같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엄마는 내 인생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요 친구다.
사실 지금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다. 허리가 좋지 않은 엄마는 잠시만 외출하고 돌아와도 나에게 “허리 좀 두두려봐”라고 말씀하신다. 최근에는 건강이 더 나빠지셔서 걱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바람을 묻는다. 사실 특별히 바라는 것은 없다. 지금처럼만 우리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경제적으로 지금보다 조금 더 윤택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우리 가족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바람을 갖지는 않는다.
엄마는 앞으로 성악과 피아노 작곡을 병행해 세계적으로 이소영이라는 이름을 알렸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나 역시도 엄마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내 바람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합창지휘과에 입학했던 난, 현재 성악과로 전과했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 훌륭한 교수나 연주자가 되고 싶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내 바람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난 그동안에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희망을 찾아 노력할 것이다.
■글 / 김성욱 기자 ■사진 / 이성원 ■장소 협조 / 만민중앙교회(02-818-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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