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가 달라지고 있다는 소식은 익히 들었다. 구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행정 서비스의 질적 개선은 성공적이다. 박성중 서초구청장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서초구를, 그리고 서울을 세계적으로 손색없는 명품 도시로 만드는 꿈이다.
지난 6월 18일 오후 3시, 박성중 서초구청장(49)을 만났다. 서초구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그간의 보도를 통해 익히 알려졌다. 청계산을 새롭게 꾸며 등산객들의 편의를 도모한 것도, OK민원센터를 만들어 민원 처리 속도를 개선한 것도 그의 구청장 부임 이후다. 눈으로 확인한 서초구청은 상상했던 관공서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구청 앞마당에 조성된 작은 휴식 공간 그늘 아래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구청사 로비에는 야생화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왼쪽에는 OK민원센터가 있었다.
“네, 편리하죠, 아무래도 전에 비해 시간이 절약되니까 좋습니다. 민원 거리가 있어도 부담이 없어요.” - 강병길씨(48)
서초구청의 OK민원센터는 종전에 구청사 곳곳에 흩어져있던 부서들을 1층으로 내려 민원 처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예를 들어 이전에 건축 민원을 내려면 토목과와 공원과 등 서너 부서를 민원인이 직접 찾아다니며 도움을 구해야 했다. 민원이 처리되기까지는 빨라야 일주일이 걸렸다. OK민원센터에는 각 부서의 대표들이 상주한다. 민원 접수 즉시 다양한 부서의 협조가 가능하다. 창구 직원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책임을 지게 한 것도 처리 시간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절차에 따라 차장, 과장까지 올라가며 결제에 소요되던 시간을 최소화한 것이다. 이전에 일주일씩 걸리던 민원 처리 소요 시간은 2시간으로 줄었다.
“예전에 1층 민원실에는 27종의 민원 처리만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3백 종의 민원을 취급하죠. 담당자도 30명에서 60명으로 늘었습니다. 창구 직원에게 처리부터 책임까지의 권한을 위임했죠. 각 부서의 주요 대표선수들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OK민원센터는 고객 행정 개선의 일환이다. 서초구는 경영 행정, 세계 행정에도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경영 행정이란 간단히 말해서 ‘돈을 아끼는 것’입니다. 대회의실을 비롯해 업무 절차상 문서를 없애고 영상을 이용해 회의를 진행하는 것도 대표적인 예죠.”
서초구청의 대회의실은 현대적으로 리모델링됐다. 화이트 스크린과 프로젝터를 이용, 문서 없는 회의가 가능하다. 각각의 자리에는 LCD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 문서 생산을 최소화해서 경비를 절감한다는 것은 이해가 갔지만, 장비를 갖추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대회의실 정비 이후 1년에 1억의 경비 절감 효과가 있습니다. 장비를 갖추는 데 쓴 비용은 1년 만에 충당됐죠.”
서초구청의 자원봉사제도도 주목할 만하다. 변호사, 법무사, 세무사, 건축사 등의 전문가가 각 요일을 담당해 구민을 대상으로 무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월요일은 법률, 화요일은 세무, 수요일은 건축, 목요일은 부동산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세계 행정은 ‘함께 가자’는 의미입니다. 자원봉사가 대표적이죠. 프로골퍼를 섭외해서 강사단을 구성해 무료로 강습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체육, 예술, 의학 등의 분야도 마찬가지로 진행하고 있죠. 10개 분야 68개팀, 3천1백 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반인이 프로선수에게 강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강습에 참여한 구민들은 자발적으로 강습비를 걷어 구청에 전달했다. 이렇게 모인 1천7백만원을 불우이웃 돕기에 썼다. 다른 자원봉사도 마찬가지다. 자원봉사로 생긴 수익금은 관내 불우이웃 돕기에 쓰이고 있다.
국제 명품 도시로의 도약
서초구청은 전 세계 40개국 1백 개 도시의 한인회와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한인회에서는 현지 자료를 서초구에 보내주고, 서초구에서도 한국의 정보나 서적 등을 지원한다. 서초구 홈페이지는 최근 20개국 언어로 번역됐다. 한인회에서 자발적으로 번역 작업을 도왔다. 현지 2세들의 교육과 정보 공유를 위한 작업이다.
해외 한인회와 각 도시들과의 자매결연과 더불어, 구청장이 직접 해외를 둘러보며 느낀 점도 행정에 반영하고 있다. 지난 연말과 올 초까지 유럽 7개국을 돌아본 박성중 서초구청장은 한국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또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탈리아 두오모 성당을 보고 놀랐습니다. 짓는 데만 4백 년이 걸렸죠. 5백 년이나 된 건물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오는 관광 상품이 됐습니다. 바로 그런 것이 명품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비싸고 겉모양새가 화려하다고 해서 명품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식과 철학은 명품의 필수 조건이다. 그는, 지금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서초구의 여러 계획들, 즉 방배동과 고속터미널의 개선 계획이 단순한 재개발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1백 년이 지나도 가치가 있는 곳으로 만들 겁니다. 40년, 50년이 걸리더라도 역사와 철학을 담아낼 수 있는 ‘명품’으로 만들 계획이에요. 제 임기와는 관계없습니다. 다음 구청장이 오더라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기반 사업을 튼실히 해야죠. 한강과 어우러지는, 서울시 전체와 조화되는 명품이 될 겁니다.”
청계천 개발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던 그는 청계천 프로젝트가 행정상, 그리고 경영상으로는 성공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한다.
“환경 복원, 교통, 비용 절약 측면에서는 성공입니다. 주변 상권도 활발해졌죠. 세계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명품이라고 하기엔 모자라는 점이 있어요. 너무 빨랐죠.”
1%의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그 1%에 담겨 있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다. 박성중 서초구청장의 비전은 그 1%에 있다. 한국에서만이 가능한, 서울이기에 할 수 있는 명품 도시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가족에게는 미안한 점이 많은 아버지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그는 취임 1년 만에 많은 것을 개선했다. 그의 리더십은 결심한 일은 과감하게 추진하면서도 구민과 구청직원에 대한 사려 깊음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가정에는 미안한 점이 많다.
“집에서는 그렇게 못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사로 지쳐 들어가는 데다 주말에도 행사가 많아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요.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죠.”
박성중 구청장의 아내는 유치원 원장이다. 1백50여 명의 어린이와 17명의 식솔과 함께 유치원을 꾸리고 있다.
“가정일은 집사람이 거의 맡고 있어요. 아무래도 경영을 하다 보니 빨라요. 집도 아내 앞으로 돼 있죠. ‘나중에라도 차이면 큰일인데, 내 이름으로 바꿔야지’하고 농담을 하죠. 하하.”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는 날은 일기를 쓴다. 그는 지난 2006년 가을 한국수필가협회가 발간하는 「한국수필」에 두 편의 수필로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하다. 일기뿐 아니라 메모도 습관이 됐다. 특히 여행을 할 때는 현지와 비교해서 행정상 개선할 점이 떠오르거나 배워야 할 점이 있으면 수첩을 펼쳐 메모를 한다. 그의 수첩에는 검정 글씨로 빼곡하게 여행을 하며 느낀 점과 잊어서는 안 될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두바이에 가니까 공항에서 짐이 엄청 빨리 나오더라고요, 공항 면세점도 24시간 열고, 출구에도 면세점이 있는 공항은 처음 봤어요.”
시간이 없어 공식적인 업무가 아니면 외국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는 항상 공부하는 마음으로 여행한다. 책을 읽는 것도 견문을 넓히는 좋은 방법이지만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영감이다.
마지막으로 ‘명품’을 강조하는 그에게 물었다. 서초구는 다른 구에 비해 세수가 높은 자치단체다. 한마디로 돈이 많은 부자 자치단체라는 뜻이다. 다른 자치단체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우려는 없을까.
“발전 격차는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은 먼저 진행이 되어야지요. 하지만 서초구가 많은 돈을 쓰고 있지는 않습니다. 세수의 97%는 다른 곳으로 보내고 있죠.”
서초구가 직접 집행하는 예산은 전체 세수의 3%라고 한다. 1년 세금 5조2천억원 중 서초구에서 쓰는 세금은 1천3백억원이다. 4조2천억원은 국가에, 8천7백억원은 서울시에 보내 예산이 부족한 다른 자치단체에서 쓰도록 하고 있다. 부자 구청 서초구라서 명품 운운할 수 있다는 것은 편견이라는 뜻이다.
“지방자치 12년입니다. 하지만 아직 뿌리가 내렸다고는 할 수 없어요. 더 발전되고 뭔가 선도할 수 있는 서초구로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제도, 관습, 법에 묶여 발전이 더딘 측면이 있어요. 흐르지 못하고 있죠. 타성에 젖어 있으면 안 됩니다. 과감한 혁신을 실천해야 해요.”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이 이어지자 그는 어색해했다. 포토그래퍼의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인터뷰에서 거침없던 언변과 ‘불도저’라는 그의 별명을 생각하니 그의 어색한 포즈가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와 함께 나온 언론홍보과 직원들은 ‘구청장님, 좀 자연스럽게 웃으세요’라며 어색해하는 그를 보고 신나게 웃었다. 하지만 박성중 구청장의 얼굴은 내내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아이디어는 1의 노력, 구체적인 계획은 10, 실천은 100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뤄진 성과들은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만 앞으로의 계획은 말을 아낍니다. 실적을 가지고 말해야죠.”
서울을, 서초구를 세계적인 명품 도시로 만들고 싶은 그의 꿈, 하나하나 실천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같이 만들어가면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서 만들고 싶어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할 수 있어요.”
■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박형주